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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 안녕하세요 카페분들 따뜻한 봄날 잘 지내시는지요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게
리복의 농구화라서 잘 모르지만 리복 농구화 역사에 대해서
대충 알아봤는데 좀 잼있드라구요. 몰랐던 사실도 있고 해서
한번 글로 써보겠습니다. 리복 농구화의 역사!
리복은 영국에서 1890s 시절
조셉 윌리엄 포스터라는 사람이 운동화를 만들기 시작 함으로써 역사가 시작됩니다.
때는 1958년 포스터의 증손자는 새로운 브랜드 네임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고민하던 결과 아프리카 가젤이라는 뜻인 'Reebok'을 브랜드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 합니다.
그러던 1979년 시카고에서 스니커즈를 전문적으로 무역하는
Paul Fireman은 리복이란 브랜드를 알게 되고 마침 아웃도어 운동화에
1981년에 폴씨는 그때당시에 $60 상당의 초고가의 런닝화를
시장에 내놓았는데 이게 대박을 치게 됩니다. 이것에 탄력을 받아
최초의 여자 운동화도 내놓게 되고, 또 1989년 Pump라는 리복 최초의
농구화를 내놓게 되죠.
Pump는 리복 최초로 농구를 위해 디자인된 농구화 인데
신발 곧곧에 에어가 들어가 있었고 또 발목 부상을 예비하기 위해서
탄탄하게 발목을 고정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다른 신발보다
두배이상 비싼 가격에도 이 신발은 날게 돋히게 팔리게 됩니다
1991년 보스턴 셀틱스의 Dee Brown이
슬램덩크 콘테스트에 이 펌프(검/흰/주)을 신고
손으로 눈을 가리고 클런칭 덩크를 성공시켰는데 이때
많은 아이들에게 리복의 농구화가 각인 되게 됩니다.
샤킬 오닐 시리즈를 내세워 쏠쏠한 이익을 챙기지만
샤크어택 시리즈는 4까지만 나오고 오닐이 리복과 계약을 맺지 않아 결국
포기해야 됬고, 결국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리복은
1996 슈퍼루키인 엘런 아이버슨을 모델로 잡고
리복의 히트작 The Answer를 내놓으면서 다시 시장점유율을 높여 가기 시작하고 결국.
2001년에는 아이버슨과 종속 게약을 맺어 버립니다.
2009년 아이버슨의 은퇴설과 맞물려 리복에 새로운 라인 리복 직텍의 농구화
직텍 슬래쉬(새로운 소재를 사용해 에너지를 다시 돌려준다는 그 신발)
를 프로모션할 선수를 찾던 리복 직텍은 2010년 슈퍼루키인 리복 워싱턴의
존월과 5년간의 계약을 맺고 리복 직텍 슬래쉬를 포로모션을 시작합니다.
2010년 존월과 계약을 맺어 점점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던 리복은
새로운 모델인 2011형 리복 직텍 슬래쉬를 내놓게 되는데요 이 모델은
존원 시그네쳐 모델로 제작되어 빠르게 앞뒤로 움직이는 움직임에 특화되어 나왔다고 하내요.
확실히 가드용 농구화로 특화되서 나온 농구화랍니다.
하악.여기까지 외국사이트 여럿 뒤져 가면서 대충 발번역해 한번 글 써봣내요
잘못된 점 있으면 댓글 남겨 주시면 바로 고치도록 할게요 'ㅡ' 그럼 좋은하루 되시고
다들 건강하세요 전 뾰로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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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그네쳐 선수를 꾸준히 두는 것은 여러가지 리스크가 도사립니다. 리그의 터프함을 견디고 선수가 다년간 (적어도 계약기간동안이라도) 변수없이 활약을 해줄 수 있는가가 그 출발선에 놓입니다. 제 아무리 뛰어난 하드웨어와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더라도 부상을 당해 리그에서 훌륭한 활약을 해주지 못 한다면 시그네쳐 선수로서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면에서 브랜드들마다 시그네쳐 선수들에게 거액의 계약금과 자신들의 기술을 집대성해 훌륭한 디자인까지 결합시켜 신발을 신겨주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지요. (나이키가 캔 그리피 쥬니어와 마이클 빅스에게 야구와 풋볼계에서의 상징성을 부
여하며 그들에게 시그네쳐 신발을 신겼지만 그것이 큰 인기를 얻지 못 한 것과도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두 선수의 신발을 야구와 풋볼에 최적화된 그들만의 신발도 있었지만 트레이닝화도로 존재했습니다. 현재의 루나 시리즈처럼 말이죠. 하지만 나이키가 시그네쳐화로서 다용도 스포츠에 적용되어서 성공을 거둔 것은 조던투르너와 같은 트레이닝/조깅화였을뿐 나이키는 나이키대로 ACG의 육상, 아웃도어용 기능성 의류들이 성공을 거둘 수 밖에 없었지요.) 그렇기에 리복은 거물 선수들이 아니면 적극적으로 시그네쳐의 구애를 하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로 농구계에서 시그네쳐 계약에 다소 인색했던 아디다스가 유럽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
던 시기에도 리복은 당시 EPL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였던 전성기의 앙리와의 관계에 중점을 두었죠. 디 브라운일는 걸출한 덩커 이후에 샤킬오닐이라는 전무후무한 선수에게 신발을 신기면서 리복은 광고에 윌트챔벌레인, 압둘자바와 같은 선대 최고의 센터들을 광고에 등장시키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LSU때까지 특별한 메이져 부상이 없을만큼의 강골에 타고난 신체 + 축복받은 운동신경까지 현재까지 거의 20여년간 리그에서 최고로 살아남아온 샤킬오닐을 정확히 보고 베팅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샤크에게 펌프 기술 이후, 헥사라이트 기술까지 나름 에어맥스 기술을 견제할 모든 리복의 기술을 하나로 묶은 신발들을 샤킬오닐에
신겼음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결별 수순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였던 리복은 비슷한 시기에 숀캠프에게도 자신들의 신발을 시그네쳐 형식으로 제공했습니다. 이후 아이버슨까지 넘어갈때에도 리복은 다양한 디자인으로 시장에서 잘 버텨나갔고, 아이버슨을 만나면서 나름대로 농구 시장에서 전성기를 맞이할 수도 있었지요. 아이버슨 외에도 2000년대에는 리그 입문후 다이나믹했던 스티브 프란시스와 제이슨 리차드슨에게도 여러가지 신발을 신겼습니다. (프란시스의 경우, 인스타 펌프 계열의 신발로서 아이버슨 신발의 다운 그레이드급의 신발을 제공받았고, J-Rich는 뛰어난 기술이 집대성된 신발을 제공받지느 못 했지요.) 리복은 아이버
슨이라는 걸출한 스타 하나로 독식하는데 있어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를 대체할만한 인물은 마땅히 없는데 마케팅 자체가 아이버슨에 너무 의지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리그 역사상 그 패션으로 영향이 컸던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고글과 같은 안경류를 착용하던 빌 월튼처럼 특출나게 equipment를 착용하거나 장구류 혹은 두발관련해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드문 일이거니와 그만큼의 실력을 인정받아야만 가능한 일이었기에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선수 개인의 기술은 득점 루트를 위해 필요하다면 다른 선수들도 따라하기 쉬었지만 외형적인 부분에서 따라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Dr. J, 줄리어스 어빙은 자신만
의 독특한 아프로헤어를 리그에 나름의 트렌드로 선보였고(물론 적극적으로 아프로가 리그에 당도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 모습은 나름 시대상으로 비춰보자면 나름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슬램紙 및 여러 매체는 그의 모습을 그런 특별한 것으로 그립니다.), 마이클 조던의 민머리 또한 리그에 선수의 정석으로 그려질만큼 흔하게 만든 모습이었는데 이처럼 특별한 차림새나 외형이 인기를 끌게 했던 것이 아이버슨이었습니다. 아이버슨의 영향력은 그러나 코트보다는 사회에 미치는 모습이 더 컸는데 당시 혜성처럼 등장했던 Eminem과 갖가지 래퍼들과 비슷하게 다양한 문신과 힙합의류(미첼앤네스 져지, 듀렉, 문신, 악세서리 etc)의 인기
가 선풍적이게 했던 아이버슨만의 스타일을 리복이 계속 제공해준 것이지요. 이것은 아이버슨의 은퇴와 함께 vanish될 것이 분명했던 도착점이 있는 아이템들이었지만 리복은 감히 그와 대체할 그 어떤 시그네쳐 선수도 발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영향력을 미칠 선수였으면 적어도 르브론 정도는 되어야 했겠지요.) 그런 찰나에 02년 데뷔하는 야오밍이라는 선수를 통해 중국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마음으로 리복은 그와 계약을 했습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야오밍은 그러나 리그 역사에서 언제나 전해오던 말처럼 센터는 신발을 팔 수 없다는 정석처럼 그 자신의 시그네쳐 신발을 동나게 하는데는 실패했습니다. 이런 센터의 신발의 인기
가 수요의 한계가 나타나는 이유는 센터 포지션의 어쩔 수 없는 발목지지로 인해 지나치게 신발이 높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발목이 높은 신발을 평균의 신체를 가진 소비자들은 원치 않지요. (하지만 장신의 센터의 시그네쳐슈로 나와서 판매가 잘 되었던 신발도 있었는데 그것은 1995년도 발매된 데이빗 로빈슨의 에어스트롱이었습니다. 드문 경우였고, 다소 단신이었던 로드맨의 에어 쉐이크, 에어 다윈과 팀던컨의 맥스류 또한 나름 판매가 잘 되었지만 그 경우는 단지 근래에 보기 드문 희귀한 디자인과 그다지 높지 않은 발목부분이 주 이유였습니다.) 리복은 야오밍의 신발을 좀 더 적극적인 판매를 위해서 결국 아이버슨과
함께 atr the pump를 신기고, 이후에도 종종 동일한 기술로 좀 더 시그네쳐슈의 위상을 높여 브랜드의 가치를 성장하려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물론, 그 시점에는 부상으로 신음하던 야오밍과 져지맨이 되어버린 아이버슨때문에 힘들어졌고, 브랜드 자체는 힘을 쓰지 못 하고 결국 독일 브랜드인 아디다스에게 인수가 된 상황이었지요. 리복은 브랜드의 성장을 위해 중간에 세계적인 래퍼이자 마케팅과 패션 브랜드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던 Jay-Z, 션 카터와 계약을 맺고 시그네쳐 신발인 션카터 시리즈를 발매합니다. 평소 힙합신에서의 그 막대한 영향력을 패션업계에서도 마음껏 발휘하며 독자브랜드인 Roca Wear를 키웠던 Jay-Z와의 계약을 통
해 성공을 도모했던 리복, 그와 DJ 시리즈까지 발매하던 시점, 리복은 NBA와 라이선스를 계약해서 모든 팀의 신발을 발매하고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 했습니다. 션카터 시리즈는 뉴욕 닉스의 자말 크로포드(現 아틀란타 호크스의 키 식스맨)이 신고 뛰었지만 결국 footlocker는 신발을 buy1, get1 free(한국의 1+1과 같은 제도)로 최저 마진을 남기며 처리하였습니다. DJ 시리즈는 50cent와 그의 절친인 Obie trice에게도 스폰서를 했지만 그렇게 뛰어난 힙합 아티스트들도 리복을 건져내는데 도움을 주지 못 했지요. 아디다스는 실패했지만 꾸준히 시그네쳐 선수를 보유하려는 박차를 가하며 중고 시그네쳐 선수
까지 긁어 모으며 간간히 그 역량을 표출했지만 리복만은 그런 노력이 크게 빛을 발하지 못 했습니다. 나이키가 패션업계에 뛰어들던 리복을 보고 자신들도 어떤 노력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을 하고 패션 업계에 뛰어 들며 여러 힙합 아티스트들과의 계약을 하였습니다. (Eminem - Air Jordan, Kanye West - Nike) 재미있게 이 둘을 통한 스폰서는 놀라우리만큼 흥행했는데 이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발매된 극소량의 상품들은 나이키와 에어 조던의 발매가의 적게는 4배, 많게는 6배에 가까운 가격으로 발매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키는 모든 상품을 당일에 가뿐히 팔아 치웠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이키는 하이탑의 신발을 선호하
는 Kanye West에게 Air Yeezy를 직접 디자인하게 해주었고, 이 상품이 반향을 일으키자 Kanye를 Louis Vuitton에게 빼앗겼다는 점인데요. (뭐, 나이키와 꾸준한 라이선스를 맺고 발매할 계획은 없었지만 이토록 허망하게 그가 루이뷔통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게 될 줄을 몰랐을 것입니다.) 비슷한 스타일의의 두개의 스트랩을 가진 하이탑 슈를 디자인한 카녜의 센스만큼이나 그의 디자인과 트렌드를 읽어내는 재주를 파악해낸 나이키의 대단함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아디다스는 스포츠 브랜드와는 별개인 패션 브랜드로서 하나의 의류 사업을 키워 사업 확장을 도모하기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자신들의 브랜드인 마크를 줄이며 좀 더
줄이고, 색감이 강한 캐쥬얼한 브랜드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 우리가 아는 Adidas Original이 그것인데요. 이런 성공은 나이키에게도 큰 영감을 미쳤습니다. 그것은 나이키가 최근 팀조던의 PK티셔츠를 만들어 낸 것처럼 스포츠 분야에서 캐쥬얼 분야 또한 도전하겠다는 전환을 간접적으로 표출한 것입니다. 리복은 이렇게 시장의 다양성이 가열되는 시점에서 뚜렷한 변혁을 추구하지 못 하다가 최근 그의 재능과 다양한 끼를 보이며 전국구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존 월이라는 특별한 스타와 계약해서 자신들이 작년부터 선보였던 zig-tech의 농구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제 2의 아이버슨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물론 아
직 가능성은 많지만) 존월은 중고 루키, 블레이크 그리핀(나이키 스폰서 선수)에게 밀리고, 부상으로 신음하며 리복의 기대에 부응하지는 못 했는데요. 그가 얼마나 성장하며 그의 알통댄스를 보이며 리복을 키워줄지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리복은 외려 이번 zig-tech와 easy-tone을 비롯, run-tone으로 이어지는 쿠션 시리즈를 통해 자사 브랜드의 마케팅적 가치와 시장성을 키워냈습니다. zig-tech는 나름의 신선한 디자인으로 아주 중장기적 히트를 바라볼 수 있는 아이템이 될 것으로 보여 리복에게는 제 2의 인스타 펌프 퓨리와 같은 나름 브랜드를 계속 상기시켜줄 수 있는 고마운 아이템으로 남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이제껏 미국이라는 시장에서 가장 미국다운 것이 무엇인지 찾기에 여념없었던 영국 고유 브랜드, 리복은 세계시장을 꾸준히 개척하면서 미국다운 것이 무엇인지 세계 안팎을 파고들며 성장하여 자신들을 인수하게 된 독일 브랜드, 아디다스를 한번쯤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 미국다운 것이 전 세계적으로 어필하기 좋다는 큰 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되 그것을 찾으며 마냥 해메는 사이에 그들은 서서히 시장성을 잃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독특한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브랜드는 절대 쓰러지지 않습니다. 리복은 그것을 찾아야겠지요. 스포츠 시장에서 주된 무엇인가가 존재하지 않아 흥행하지 못하고 인수당한 브랜드로 남지 않았으면
합니다. 척 테일러를 포함한 다양한 컨버스화를 잘 판매하였음에도 나이키에 인수당한 컨버스(물론, 재정 상태 불량이기보다는 중기적인 자금압박을 견딜 수 없었기는하지만)처럼 언제나 고유의 아이템을 판매할 수 있었음에도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 했던 점을 잘 인식할 필요가 있겠지요. 글이 길어졌네요. 예전에 재미삼아 이쪽분야의 재무제표와 관련한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이것, 저것 분석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간추리려고 했는데도 힘드네요. * 참 Reebok은 원래 아프리칸 표기법으로는 Rhebok이었는데 아주 조금은 손을 본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엄청나게 긴 글이네요. 차리리 답글 형식으로 하나의 컬럼처럼 쓰셨더라면 쓰시기나 읽는 사람에게 더 편했을텐데요. ^- ^ 좋은 글 아주 잘 봤습니다. :)
리복쪽과연관이있으신것같은데 열심히활동하시니 참보기좋습니다 리복농구화의국내부진은 무엇보다도 제대로된시리즈나 제품을 수입하지않는것이고 둘째로는 이상한컬러만 들여온다는것이죠 슬래쉬도 흰검과 회주들어와서안샀습니다
그리고 아디다스코리아 관리를받아서 가격도 비상식적으로높죠 너무아쉬워요 앤써시리즈 세개나가지고있는데
샤크시리즈는 제게 참 애증의 신발입니다..농구화의 세계에 뛰어들게 한 장본인이자..나이키로 넘어가게 했기 때문이죠..제가 첨 신었던 샼3,4 부터 로뮬러스, 샼 시리즈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샼 뭬비우스까지....위에 자세히 설명을 해 주셨는데 인스타펌프와 카본, 헥사라이트까지 당시 리복의 모든 기술이 들어가 있었죠..로뮬러스같은 경우는 슈레이스가 없는 신발이었고, 처음으로 10만원을 넘었던 농구화였었습니다..나이키에서는 조던12가 10만5천원인가 해서 10만원을 넘었고요..두서없는 얘기가 되어버린것같은데 당시 추억(?)이 떠올라 몇 자 적고 갑니다..
여기 댓글을 달면 제 댓글마저 뭔가 산으로 가게될 것 같아 섣불리 다른 말은 못드리겠네요. ㅎㅎ
리복이 농구화 시장에서 큰 도약을 하게 된 것은 샤크와 아이버슨이라는 걸출한 스타 덕분이었지만, 그 이전에 리복이라는 브랜드가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피트니스분야의 여성용 신발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0년대 리복에서 내놓았던 프리스타일 에어로빅 슈즈가 미국 내 여성 피트니스 붐을 일으켜 대박을 터트렸고 리복이라는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었죠. 그 이후에 힘을 얻어 90년대 농구의 인기가 절정에 치달을 때 샤크, 아이버슨의 시그네쳐 외에도 뫼비우스 프로모션, ATR, BLACKTOP등 다양한 제품군을 내
놓으면서 농구화 시장에서의 탄탄한 입지를 굳히게 됩니다. 이후에 NewYorkerHAHA님게서 말씀하신 대로 시그네쳐 모델들의 힘이 빠지고 굵직한 스타를 잡지 못하거나, 코트 위에서 커다란 효과를 볼 수 있는 테크놀로지의 개발 및 지속이 지지부진해져서 이후 리복이라는 브랜드는 힘이 빠져버린 듯한 인상이었지요.
사실 그동안 리복이라는 브랜드가 내놓은 다양한 기술들은 아주 오래전 8,90년대 리복이 만들어낸 기술의 재탕 혹은 가지치기 형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래된 기술을 재발견하여 발전시킨다는 의미에서는 좋은 시도였을지 모르겠으나, 그러한 기술들을 리복 스스로가 지속시키지 못하고 포기해버림으로서 전전긍긍하는
느낌을 줄 수 밖에 없었고, 기술적으로도 뭔가 대단하다는 느낌을 갖게할만한 신발들이 나와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리복이 슬슬 다시 재도약할 조짐이 보인다고 느끼게 된 것이 2010부터의 직텍과 -톤 시리즈의 출시라고 느껴지는데요. 이전까지의 기술을 재탕한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방식의 기술의 직텍이나 이지톤, 런톤 등의 -톤 시리즈는 확실히 이전가지의리복과 다르게 리복에 큰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특히 미국의 여성 피트니스 붐이 일어났던 80년대, 그리고 또 다시 여성 피트니스 붐이 일어나는 지금, 그 두 시기에 똑같이 리복이 함께하며 인기를 얻게되었다는 점이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톤 시리즈 역시 80년대 후반 쓰인 리복 기술의 재탕에 불과한 기술이지만, 그동안 큰 빛을 보지 못했던 기술이 시기를 잘 만나 다시 주목받고 인기를 얻는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역시 쓰다보니 리플이 산으로 갔어... -_ -)
암튼, 개인적으로 직텍 기술은 농구코트 위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기술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저도 신어보지 않아서 섣불리 판단은 내리면 안되겠고, 존 월 역시 이 신발에 불만을 나타내지 않고 나름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으니 앞으로 존 월과 직텍 기술이 어떻게 발전되어질지 역시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좋은 내용의 본문과 양질의 리플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었습니다 스카이워커님... 종종 올려주시는 글들 읽기는 하지만 제품 관련글에는 일일히 다 신어보는 것이 아니라 따로 댓글 남기지 않았습니다. 조만간 신발과 스포츠 산업에 관련한 글을 꼭 한번 정리해서 올려보고 싶네요. :-) 지그텍의 디자인은 어찌보면 문화소비층의 메이져에서 마이너까지 두루 포섭하게 된 리복이 오랜만에 창출해낸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근래 걷기 운동의 건강과의 상관성이 꾸준히 기사화되면서 바르고 편히 걷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연이어 강조되고 있어서 톤 시리즈까지 다양한 히트를 기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판매실적만으로도 리복의 지그텍과 톤시리즈는 바운스
시리즈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시장 점유율을 점령했지요. 다만 농구화에서의 지그텍은 그다지 큰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는 못하는 모양인가 봅니다. 부상에서 복귀한 존월은 몇차례 아이버슨의 퀘스쳔 미드를 신고 나왔는데요. 퀘스쳔이라는 신발 자체가 워낙 가드용으로서 잘 만드어진 작품이라는 면에서 충분히 신을만하고, 리테일에서 재판매가 가능할만한 여지까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네. 언제 한 번 좋은 컬럼 부탁드리겠습니다. :)
애초에 직텍이라는 것이 달릴 때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에너지 손실을 줄여 추진력을 얻게 한다는 개념의 기술인데, 농구화에서는 큰 효용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기술이죠. 게다가 농구화는 기본적으로 급격한 움직임을 지지하기 위한 안정성이나 점프를 위한 반발력, 착지 동작에서의 쿠셔닝 등의 요소을 갖추어야 하는데, 직텍은 솔유닛 모양의 특성상 이러한 요소들을 보조해주기 위한 추가물이 들어가기도 어렵고, 무게중심 역시 높아보인다는 점이 왠지 불안해보입니다. 직접 신어보기전까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SC에서의 평가 역시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는 점도 왠지 씁쓸하네요.
샤크 시리즈의 경우 4까지 나온게 아니라 트레이너?(이름이 헷갈립니다), 샤크노시스, 프리쳐, 등등 97-98년까진가 시리즈가 쭉 나왔었습니다. 아이버슨은 96년 시즌에 퀘스쳔이 나왔었으니 시대는 겹치는 셈이죠. 샤크의 경우 샤크노시스 이후 판매가 하락세였고 역시나 빅맨은 신발을 못판다는 속설이 다시 증명되는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왔었죠. 샤크는 어머니께 혼난 후 저렴한 농구화를 만들어 보급하고자 하여 덩크 넷 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게 된 것 이고 그 중간에 숀켐프의 레무스 혹은 카미가제라 불리는 시그니쳐 라인도 제법 인기를 끌었었죠. 물론 그 이후에 나온 시그니쳐 스타일링이 워낙 아니어서 하락세를 면치 못했지만
샤크 어택시리즈는 4까지나온 것이 맞을 겁니다. 그 외에 프리쳐, 노시스 등의 제품이 나왔고, 트레이너 제품이 한개인가 두개 정도가 나왔었던 걸로 기억되네요.
하악;; 뭐 이런 무서운 댓글들이;;; 글보다 댓글들이 더 주옥 같내요 'ㅡ';;
댓글들 참고해서 한번 글 다시 써보겠습니다
댓글보다 글이 흥한 바람직한 글이라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