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가르기와 어머니
김 단희
베란다에 담가둔 장 항아리에 갈색의 간장물이 진해지고 발효되는 과정에 생기는 꽃, 곰팡이가 동동 떠오르니 이제 장 가르기를 할 때가 되었다.
저 곰팡이를 옛 어른들은 꽃이 피었다고... 음식에 생기는 곰팡이란 부정적 이미지로 부름을 피해왔다. 그 재치와 음식에 대한 경건한 자세와 온전한 발효를 기원하는 마음이 느껴져 오랜 세월 귀하게 대접받던 된장과 간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기야 모든 음식의 기본이 되는 장에서 피어나는 단백질 꽃의 다름 아닐 듯..
해마다 설을 쇠고 음력해가 바뀌면 일년 중 내게 가장 소중한 행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좀 추운 때에 정월장을 꼭 담가야 한다.
먼저 메주를 수소문해서 겨우내 잘 발효된 것으로 지인을 통해 구하기도 하지만 마땅히 구할 수 없을 때는 재래시장을 찾아 기웃거린다.
요즘은 메주 공장에서 전통방식으로 콩을 삶아 온도를 맞춰 발효시킨
메주도 많아서 굳이 힘들게 찾지 않아도 깨끗하고 질 좋은 메주를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정월의 기운은 나를 밖으로 끌어내어 아직 차가운 시장통 거리를 돌면서 집에서 농사지어 띄운 거라는 장황한 설명을 듣고 가장 끌리는 메주 서 너장을 흡족하게 사들고 돌아온다. 직접 농사짓고 직접 메주를 만들지 않았으면 어떠랴. 누구의 수고이든 메주가 내게 왔으니 감사하지. 올해에도 캐나다의 아들네가 오면 해 묵은 된장을 담아주어야지 . 배추 된장국을 유난히 좋아하는 손주들...
내게도 손주들만큼 어린 시절이 있었다. 장독대,.크고 작은 수십개의 장독들과 그 사이에 피어서 빨강,노랑, 진분홍 얼굴로 쳐다보던 키 작은 채송화, 두 살 아래 동생과 장독사이를 돌며 숨바꼭질 할 때면 어머니는 항아리 깰라. 큰 소리로 야단치시고... 그 항아리들 안에는 된장, 고추장속에 더덕이, 무가 마늘이 짭짤하게 맛이 들고 그들은 참기름을 바르고 도시락반찬이 되어 나와 반 친구들의 점심시간을 입 맛나게 했던 그런 시절이..
지금 어머니는 만날 수 없는 분이 되어 내 가슴에 자주 아지랑이로 바람소리로 때론 향기로 다녀가신다. 언제나 젊고 고운 모습으로..
육 남매중 어머니를 가장 많이 닮았다는 나는 어려서부터 입 짧은 딸내미였다,
고기는 물론 멀리했고 기름진 음식은 메슥거렸고 처음 대하는 음식에 대해 낮가림도 극심, 나를 당신과 닮은 탓이라고 걱정하며 정갈함이 지나쳐 소박한 밥상이 우리 집의 일상이었다.
노년을 살지 않고 이생을 거두어 가신 어머니는 늘 내 기억에 젊고 바지런하다. 동동걸음으로 저 세상까지도 바삐 가셔야 했던 당신의 아픔이 몸으로 이해되고 절절히 그리워 진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긴 세월 어머니를 기억하는 아픔이 힘겨워서 그 추억을 회피했으며 나의 가정과 아이들과 눈에 보이는 삶에 급급했으니 그저 어머니의 사랑도 짧은 생애도 지난날일 뿐으로 건조하게 치부해 덮어 버렸다. 그런데 이곳으로 이사와 몇 년을 쉬었던 장담그기를 다시 하면서 새삼 어머니의 그리움이 온몸으로 솔솔 피어 오르니 70 나이에 이제야 철이 든 건가. 아니면 비로소 내가 치유되어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걸까.
이제 곧 햇볕 좋은날에 장을 떠서 된장으로 간장으로 숙성되게 해 내년의 밥상을 준비해야 한다. 벚꽃 향기로 오실 어머니와 함께 장 가르기를 할 때다. 또 한번 재래시장을 누벼서 고추씨와 멸치도 사고 올해엔 잎 넓은 다시마를 사서 된장을 덮어보자. 50대 젊음에 가셔야했던 내겐 영원히 젊은 엄마와 재잘대며 정갈한 채소와 무 장아찌 밥상도 차려 보리라.
베란다 장독대 옆에는 채송화를 대신해 동백화분과 한련화 꽃잎이 화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