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브리지 위의 두 깃발
2026년 10월 12일, 시드니의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은퇴 후 한결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올림픽 파크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오페라하우스를 향했다. 파라마타강을 가르며 달리는 페리 뒤로 하얀 포말이 길게 이어졌다. 강바람을 맞으며 바라보는 풍경에는 오랫동안 이 도시에서 살아온 나의 기억이 겹쳐졌다.
하버브리지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철골이 항구의 양쪽을 잇고 있었고, 그 꼭대기에서는 두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하나는 푸른 바탕에 하얀 별들이 놓인 호주 국기였고, 다른 하나는 검은색과 붉은색 사이에 노란 원이 있는 애버리지널 깃발이었다. 수없이 보았을 다리였지만, 이날은 그 위의 두 깃발에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문득 그 풍경을 조금 더 깊이 바라보고 싶어졌다. 하나의 깃발에는 내가 이민자로 살아온 나라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다른 깃발에는 내가 이곳에 오기 훨씬 전부터 이어져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1. 호주 국기 —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상징
푸른 바탕에 영국 국기와 하얀 별들이 그려진 깃발이 호주 국기이다. 오늘날 호주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이며, 현재 국기의 바탕이 된 디자인은 호주가 연방국가로 출범한 1901년에 선정되었다. 같은 해 9월 3일 멜버른에서 처음 게양되었다.
국기 왼쪽 위의 유니언 잭(Union Jack)은 호주와 영국의 역사적 관계를 보여준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역사와 그 과정에서 형성된 제도적 유산이 국기 안에 담겨 있다.
유니언 잭 아래의 큰 별은 연방의 별(Commonwealth Star)이다. 일곱 개의 뾰족한 끝 가운데 여섯은 호주의 여섯 주를, 나머지 하나는 준주들을 나타낸다. 오른쪽의 다섯 별은 남반구의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남십자성(Southern Cross)을 표현한다. 국가의 정치적 연합과 남반구에 자리한 지리적 정체성이 한 깃발 안에 함께 담긴 것이다.
따라서 호주 국기는 영국계 주민만의 깃발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원주민과 여러 나라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을 포함하여 호주라는 국가를 함께 이루는 국민 전체의 깃발이다. 하버브리지 위에서 날리는 호주 국기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의 사회를 이루어 살아간다는 의미로 바라볼 수 있다.
2. 애버리지널 깃발 — 이 땅의 첫 사람들과 지금도 이어지는 문화의 상징
검은색과 붉은색 바탕 가운데 노란 원이 있는 깃발은 애버리지널 깃발(Australian Aboriginal Flag)이다. 원주민 예술가 해럴드 토머스(Harold Thomas)가 디자인했으며, 1971년 애들레이드에서 처음 게양되었다.
이 깃발은 세 가지 색과 형태로 깊은 의미를 전한다. 위쪽의 검은색은 애버리지널 사람들을 상징한다. 아래쪽의 붉은색은 대지와 의식에 사용되는 붉은 황토를 상징한다. 가운데의 노란 원은 생명을 새롭게 하는 태양을 상징한다.
이 상징들을 함께 읽으면 ‘사람과 땅과 생명의 연결’이라는 의미가 드러난다. 사람은 땅과 떨어져 존재하지 않고, 대지는 삶과 문화가 이어지는 터전이며, 태양은 그 위의 생명을 지속시킨다. 이는 깃발의 공식 색상 설명을 바탕으로 풀어 본 해석이다.
또한 이 깃발은 원주민을 지나간 역사의 한 부분으로만 기억하지 않게 한다. 그들은 오늘도 이 땅에서 살아가며 문화와 정체성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애버리지널 깃발은 1995년 호주의 공식 깃발 가운데 하나로 인정되었다.
다만 토레스 해협 도서민에게는 별도의 깃발이 있으므로, 이 깃발 하나가 호주의 모든 원주민 집단을 동일하게 대표한다고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3. 두 깃발의 동행 — 역사를 인정하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상징
하버브리지에는 원래 호주 국기와 뉴사우스웨일스주 깃발이 게양되어 있었다. 그러나 2022년 7월, 애버리지널 깃발이 주 깃발을 대신하여 상시 게양되도록 결정되었다. 특별한 기념일에만 원주민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서 나아가, 시드니를 대표하는 장소에서 매일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당시 발표에서도 이를 원주민과 호주의 오랜 역사를 기리고 인정하는 조치로 설명했다.
두 깃발이 함께 있는 모습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먼저, 호주의 역사를 더 넓고 온전하게 바라보게 한다. 호주의 이야기는 영국인의 도착이나 연방국가의 성립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이전부터 이어져 온 원주민의 역사도 오늘의 호주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서로 다른 정체성을 존중하는 공존을 보여준다. 같은 국가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이 각자의 역사와 문화를 지워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두 깃발은 각자의 모양과 색을 유지하면서 같은 하늘 아래에서 날린다. 그 모습은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공동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화해를 계속 실천해야 한다는 과제를 떠올리게 한다. 깃발을 함께 게양했다고 모든 상처와 불평등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상징적 인정이 경청과 존중, 생활 속의 공정한 기회로 이어질 때 그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버브리지는 더욱 인상적인 장소가 된다. 다리가 항구의 양쪽을 연결하듯, 그 위의 두 깃발은 서로 다른 역사와 사람들이 관계를 이어 가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오늘도 다리 아래로는 사람들이 오가고, 다리 위에서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두 깃발이 함께 바람에 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