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훌륭한 화가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도 조선시대 중국의 화풍에서 벗어나 한국의 산하를 소재로
진경산수화를 그려냄으로써 우리들의 자존심을 되찾아준 겸재 정선이란 화가가 있었지요.
그분은 당시 대부분의 화가들이 중국대륙풍의 산수화를 따라 그리고
있을 때 한국의 산천을 발이 부르트도록 두루 찾아다니며 우리의 정서가 담긴 줏대있는 그림을 그렸던 훌륭한 화가였습니다.
*** 25년전에 그린 일출광경 그런데도 유감스럽게 동해바다에 해돋이땅 독도 그림은 단 한 점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다른 화가들도 누구 한 사람 독도를 찾아가 작품의 소재로 삼은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몹시 가슴이 아팠습니다.
늦었지만 나부터라도 독도를 소재로 한 작품을 그려 일본에 비싼 값에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각국으로 다니면서 전시회를 통해서 독도가 우리문화의
소재임을 확인시켜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77년, 당시 누구도 관심이 없었고 민간인은 접근이 불가능했던 독도를 천신만고 끝에 기어코 찾아가 독도에서 해돋이의 장엄한 광경을
목도하고 그 벅찬 감격을 담아 진경전시를 했습니다.
그후로 세 번이나 더 찾아가 독도 그림을 많이 그려 전시도 하고 글도
발표함으로써 독도가 더 이상 외로운 돌섬이 아니라 우리 가슴에 살아 숨쉬는 문화의 소재가 됐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데 작은 보탬이
되었지요.
오늘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처럼 역사의식이 뚜렷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니 어찌나 흐뭇하고 마음이 놓이는지 기쁜마음으로
당시 월간중앙에 실었던 독도기행문을 함께 소개합니다.
" 인터넷 사이트에 독도 관련 홈페이지가 그렇게 많은 줄은 정말 몰랐다.
이 글은 당시 독도를 사랑하는 매니어들에게 보냈던 글 중의 하나다.
처음으로 독도 그림을 그린 지 25년 만에 서울대박물관에서는 역사와
의식, 독도라는 명제 아래 8명의 중견작가들을 초대해 현대미술특별전을 열고 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이 전시의 기획의도는 독도에 생명, 즉 문화를 불어넣고자 기획된 전시임이 분명하다.
그동안 정치.외교적 현안으로만 인식돼 왔던 독도를 학술적.예술적
측면에서 다시 조명해보고, 문화적 시각에서 검증하면서 이것이 계기가 돼 점차 문학.무용 등 다른 매체로까지 이어져 독도에 대한 관심을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특별전은 작가들이 독도를 직접 탐방하고 거기서 얻은 체험을
통해 자아발견의 계기가 되는 한국미술의 진경(眞景)정신이 그 안에
담겨져 있다.
조선 후기 겸재 정선과 더불어 꽃피운 진경산수는 우리 영토와 문화에 대한 자각의식이며 역사의식일 뿐만 아니라 그런 자기발견의 문화적 자각이 다방면으로 창작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문화적 자각은 지나칠 정도로 서구화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한국미술사의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를 더는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볼 때가 많다.
왜냐하면 너무도 당연한 가사내용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독도의 아름다움을 노래해주는 것이 주인으로서의 당당한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일본의 정치가들이 심심하면 내뱉는 망언에 지나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온 것이 아닌가 싶다.
독도문제에 관한 한 감정이나 감상을 앞세우는 것처럼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은 없다.
*** 자연생태계 무시에 실망 역사적으로 너무도 뚜렷한 우리의 영토이기에 의당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땅에 문화를 만들어 가슴에 심는
일이다.
심심하면 독도를 정치하는 사람들의 완구쯤으로 희롱을 일삼게 내버려두고 뒷짐이나 끼고 방관해 왔던 우리 문화예술인들의 책임도 결코
작다 할 수 없는 일이다.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다만 그 표현과 방법이 다를 뿐이다.
독도의 자연생태계를 무시한 감상적인 조치는 절대로 금해야 한다.
육지의 나무를 옮겨 심는다든지 육지의 동물을 방사하는 일 등은 독도를 위하기보다 오히려 독도의 생태계를 교란하는 결과를 초래했던
전례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인들이 더 늦기 전에 독도에 문화를 심어 생명을 불어넣는 독도의 해돋이문화 만들기에 함께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李鍾祥(서울대학교 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