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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문턱에서 – 옥돌봉,선달산,갈곶산,봉황산
부석사 안양루 앞에서 조망, 소백산 연릉, 왼쪽은 제2연화봉
平生未暇踏名區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이곳 못 오다가
白首今登安養樓 흰머리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네
江山似畵東南列 강산은 그림처럼 동남으로 벌려 있고
天地如萍日夜浮 천지는 부평초처럼 낮밤으로 물 위에 떠 있구나
風塵萬事忽忽馬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宇宙一身泛泛鳧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 되어 헤엄치네
百年幾得看勝景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빼어난 경치 구경할까
歲月無情老丈夫 세월은 무정히도 젊은 사내를 늙게 했구나
―― 난고 김병연((蘭皐 金炳淵, 1807~1863), 「浮石寺」
▶ 산행일시 : 2023년 9월 2일(토), 맑음
▶ 산행코스 : 도래기재,옥돌봉,박달령,선달산,늦은목이재,갈곶산,봉황산,부석사
▶ 산행거리 : 도상 18.5km(능선이 완만하여 도상거리와 실거리가 거의 같음, 갈곶산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간
거리 1.6km 포함)
▶ 산행시간 : 7시간 29분(10 : 43 ~ 18 : 12)
▶ 교 통 편 : 대성산악회(15명) 버스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15 – 복정역 1번 출구
07 : 30 – 죽전 간이정류장( ~ 07 : 33)
08 : 45 – 치악휴게소( ~ 09 : 10)
10 : 43 – 도래기재, 산행시작
11 : 42 – 옥돌봉(옥석산, 1,244m), 휴식( ~ 11 : 55)
12 : 36 – 1,006.5m봉
12 : 43 – 박달령(朴達嶺, 973m)
13 : 10 – 1,129m봉, 점심( ~ 13 : 30)
13 : 45 – 1,193m봉
14 : 10 – 1,216m봉
14 : 47 – 선달산(先達山, △1,239m), 휴식( ~ 14 : 57)
15 : 25 – 늦은목이재
15 : 50 – 갈곶산(955m), 올라온 길로 내려갔다가 다시 오름( ~ 16 : 20)
16 : 55 – 793m봉
17 : 04 – 봉황산(鳳凰山, △822m)
17 : 39 – 부석사 자인당, 무량수전
18 : 12 – 부석사 주차장, 산행종료
18 : 45 – 버스 출발
20 : 54 – 여주휴게소( ~ 21 : 04)
22 : 15 – 복정역
2.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예미 1/25,000)
▶ 옥돌봉(옥석산, 1,244m)
미리 말하자면, 오늘 산행은 재미없이 무척 따분했다. 도상 18km가 넘는 산행 내내 조망이 시원스레 트인 곳은 한
곳도 없었다. 하늘 가린 숲속만 거닐다 왔다. 이런 무망의 산행도 매우 드문 경우이다. 다만, 등로 약간 비킨 두 곳의
되똑한 암봉을 잡목 헤치고 기어올라 문수봉과 갈곶산을 보았을 뿐이다. 백두대간이라고 산림청에서는 조금이라도
가파를만하면 계단을 놓는 등 등로를 잘 다듬었다. 그 정성이라면 산 정상에 조망이 트이도록 주변 나무숲을 정리하
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도래기재(734m). 산행교통의 요충지이다. 대개 백두대간 구간산행의 날머리 또는 들머리로 애용된다. 화방재에서
태백산과 신선봉, 구룡산 넘어 이 도래기재에서 끊고, 그다음 구간으로 도래기재에서 옥돌봉과 선달산 넘어 늦은목
이재에서 끊곤 한다. 도래기재는 조선시대 역(驛)이 있던 도역리(道驛里) 마을에서 이름을 따왔는데, 과거 경북
동해안과 내륙을 거쳐 경기도와 서울 등지를 잇는 보부상의 길이었다고 한다.
도래기재에서 옥돌봉(산림청에서는 ‘옥돌봉’이라 하고, 봉화군에서는 ‘옥석산’이라 한다)까지 이정표 거리 2.68km
이다. 줄곧 오르막이다. 통상 산악회에서는 옥돌봉에서 도래기재로 내려오는 경우, 소요시간을 1시간으로 예상한
다. 일단은 첫걸음부터 가파른 데크계단을 오른다. 한 피치 바짝 오르면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오늘은 지난주
와는 전혀 딴판으로 바람이 불지 않아도 산기운이 선선하다. 성큼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느낌이다.
하늘 가린 숲속 길이 속도전 벌이기에 좋다. 일행들과 버섯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간다. 노루궁뎅이버섯과 싸리버섯
이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런 풀숲에 능이가 있다며 주위 사면을 둘러보기도 한다. 갑자기 눈에 부쩍 힘이
들어간다. 등로 옆에 활짝 핀 갓만큼 큼직한 큰갓버섯은 나 말고는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여 내가 냉큼 거둔다.
아울러 덕순이 소재까지 살피려니 걸음걸음이 바쁘다. 그러나 가도 가도 빈 눈이다.
능선은 금줄은 둘렀고 등로는 왼쪽 사면을 돌아간다. 뭇 산행표지기들은 금줄을 넘어 나뭇가지에 달려 있다. 우리도
금줄을 넘는다. 왜 능선을 막았을까? 능선이 가팔라 완만한 사면을 돌아 오르라는 뜻이다. 친절하다. 금방 두 등로가
만난다. 오르막이 한층 수그러들자 선두 일행은 쉬었다 간다 하고, 나는 길 저축도 할 겸 조망 찾아 막 간다. ┣자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사면 돌아 데크계단으로 간다. 직등한다. 얼마 안 가서 테크계단을 올라온 길과 만난다.
곰곰이 데크계단 길을 생각해보니 이유가 있었다. 도래기재에서 안내판에 소개한 ‘봉화 우구치 철쭉’을 보러가는 길
이었다. 산림청에서 보호수로 지정 ㆍ 관리하고 있는 수령이 550년으로 추정되는 철쭉이라고 한다. 뒤돌아서 보러
가기에는 이미 늦었다. 너무 많이 올라와버렸다. 아깝다. 정선 반론산의 철쭉이 그립다. 거기 철쭉은 수령이 200년
이라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철쭉이라고 하며, 그 지역 특산종인 분취류 자생지에 있어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
되었다.
조망 찾아 공제선을 쫓다보니 옥돌봉 정상이다. 사방에 키 큰 나무숲이 둘러 있어 아무런 조망도 할 수 없다. 정상
표지석은 봉화군에서 ‘옥석산 1,242m’이라고 세웠다. 봉화에서는 옥돌봉을 ‘옥석산(玉石山)’이라고 한다. 정상
표지석 바로 옆은 풀숲으로 변한 너른 헬기장이다. 숲 그늘에 배낭 벗고 첫 휴식한다. 입산주 탁주 독작한다.
이 옥돌봉에서 문수지맥이 시작된다. 옥돌봉에서 남진하면 주실령을 지나 문수산(文殊山, △1,207.6m)으로 가게
된다.
3. 집 나설 때 여명, 왼쪽이 천마산이다.
4. 차창 밖으로 바라본 치악산
5. 치악산 곰봉
6. 왼쪽이 영월 계족산(?)
7. 고고산, 신병산 주변일 듯한데 저런 멋진 연봉이 있었던가 싶다
8. 옥돌봉 정상 표지석
9. 문수봉
▶ 선달산(先達山, △1,239m)
옥돌봉에서 박달령까지 이정표 거리가 3.0km이다. 도래기재에서 오른 것처럼 그렇게 길게 내리면 되려니 하고
느긋했는데 그게 아니다. 봉봉을 오르내린다. 옥돌봉을 내리자마자 등로 살짝 비킨 왼쪽에 조망이 트일 것으로 보이
는 우뚝 솟은 바위가 있다. 당연히 배낭 벗어놓고 들른다. 하늘이 조금 열린다. 문수산이 가깝다.
박달령 가는 길 또한 완만하다. 한 피치 내리다 멈칫한 Y자 갈림길 왼쪽은 문수지맥 주실령(1.6km)으로 가는 길이다.
좌우사면에 노루궁뎅이와 덕순이 살피느라 고개 들었다가 고개 숙인다. 한갓진 산길이다. 혼자 가는 산행이다. 오는
이도 가는 이도 없다. 마라토너도 실은 혼자 달린다고 한다. 마라토너가 42,195m 그 먼 길을 달릴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자기의 지난 시절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고 한다. 달리는 도중 무엇이 가장 괴로운지 물었다.
용변, 갈증, 다리 통증? 아니다. 신발에 들어온 한 알갱이 모래라고 한다. 달리다 멈추고 신발을 털면 될 터인데,
그러면 여태의 페이스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한다. 산행도 그러하다.
봉봉을 오르내린다. 그중 표고점은 965m봉과 1,013m봉이다. 1,013m봉 내리다 도중에 개활지가 나오는가 싶었는
데 박달령이다. 임도가 지나는 안부다. 안내판의 내용이다. “봉화군 물야면과 영월군 김삿갓면을 잇는 보부상의
고개라고 한다. 해발고도 973m. 백두대간을 넘는 도래기재, 마구령, 미내치, 고치령 등 부근의 여러 고개 중 고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낙동강과 남한강의 분수계인 고갯마루에서 남쪽에 내린 비는 낙동강에 합수하고, 북쪽에 내린
비는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며 남한강에 합수된다.”
영월 김삿갓면은 종전의 하동면이 2009년에 개명되었다. 와석리에서 김삿갓의 묘가 발견되고 나서다. 나는 이럴 때
신이 내린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1756~1791)에 대한 생각과 겹친다. 오스트리아는 모차르트 생전에는 그에 대한
대접이 겸상도 허용치 않는 자기네 귀족들의 귀나 즐겁게 하는 딴따라 취급했거니와 모차르트가 죽어서는 자루에
담긴 채 부랑자들의 시체와 함께 도시 외곽의 구덩이에 버려졌다. 그래놓고는 지금에 와서야 모차르트를 국보로
대접하고 있다. 그의 외롭고 쓸쓸한 죽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김삿갓도 그러하다.
박달령 고갯마루에는 자전거 타는 여러 젊은이들이 쉬고 있다. 임도는 도래기재에서준령인 박달령을 넘어 주실령
아래 새마을 근처로 간다. 서벽초교에서 도래기재까지 업힐 거리 5km도 대단하고, 도래기재에서 박달령을 넘어
주실령까지는 물경 26km에 달한다. 나에게 라이딩은 딴 세계다. 그들과 수인사 나누고 곧장 선달산을 향한다. 너른
헬기장 지나 풀숲 헤치면 백두대간의 잘 다듬은 길이 나타난다. 선달산 5.0km. 다만, 묵언수행 한다.
그러고 보니 옥돌봉에서 잠깐 쉬고는 계속 걸어왔다. 조망 찾느라 그랬다. 저 공제선은 어떨까 하다 보니 마냥 봉봉
을 넘었다. 지쳤다. 긴 오르막 끝이 1,129m봉이다. 공터에 장의자가 놓였다. 늦은 점심밥 먹는다. 밥맛이 쓰다. 물에
말아 넘긴다. 탁주를 마저 비운다. 다시 따분한 산길은 계속된다. 1,193m봉을 다 내리고 암봉을 돌아 넘을 때다.
뒤돌아보니 저 위에 오르면 조망이 트일 것 같다. 배낭 벗어 놓고 간다. 달달 긴다. 잡목 헤치고 절벽 위에 선다.
갈곳산과 봉화산이 보인다.
1,170m봉 장의자가 반갑다. 3년 전에 일월비비추가 한창이던 한 여름날 오지산행에서 쉬었던 곳이다. 그때는 새벽
에 조제 마을에서 올랐다.
준봉으로 보이던 1,216m봉을 선달산으로 잘못 알았다. 아직 1.7km나 남았다. 30분 남짓 거리다. 3년 전 그때도
덕순이를 찾지 못했다. 눈에 힘 뺀다. 선달산. 너른 풀밭에 아담한 정상 표지석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 뒤쪽에
삼각점이 있다. 예미 25, 1995 재설. 선달산 정상 또한 사방 키 큰 나무숲으로 조망이 가렸다. 30년 전에는 선달산에
산불감시탑이 있었다고 한다. 그 감시탑에 오르면 두위봉, 백운산, 장산, 함백산, 태백산, 청옥산, 소백산 비로봉,
국망봉, 연화봉, 형제봉, 어래산 등이 보였다고 한다. 오늘은 가망 없는 일이다.
국토정보플랫폼 지명사전의 선달산(先達山) 지명유래가 요령부득이다. 산세가 너무 웅장하여 속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로 신선들만 거처한다 하여 선달산이라 한다고도 하고, 향토지에 산 남쪽 기슭에 있는 신선굴에서 유래
하였다는 설이 있다고 하고, 산 남쪽의 곡저에는 산 이름에서 유래한 생달이란 자연마을이 있는데, 선달(先達)의
음이 변한 지명이라고 한다.
내 나름의 해석은 그와 다르다. 선달산은 생달 마을에서 가깝다. “생달 마을은 선달산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의 형세
가 마치 두 개의 달과 같아 쌍달이라 부르는 것이 지금에 와서 생달이라 부르게 되었다.”(월간, 『사람과 산』
2001.12)고 한다. 흔히 마을이 생기고 나서 그 마을의 이름을 따서 산 이름을 정하기 마련이다. 생달이 변하여 선달
이 되었지 않았을까? ‘생’은 ‘익지 아니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다. ‘선’ 또한 ‘익지 아니한’의 뜻인 ‘설다’의 변형이
다. ‘생달산’이 ‘선달산’으로 변했을 것 같다.
11. 싸리버섯
12. 박달령 표지석
13. 멀리가 옥돌봉
14. 앞은 갈곶산, 뒤는 봉화산
15. 선달산 오르면서 뒤돌아 바라본 옥돌봉
16. 선달산 정상
17. 늦은목이재 가는 길
▶ 갈곶산(955m), 봉황산(鳳凰山, △822m)
선달산에서 늦은목이재까지 1.9km이다. 내리막이다. 선달산에서 천천히 몇 미터 내려 오른쪽으로 어래산 가는 ┣
자 갈림길 지나고부터 쭉쭉 내린다. 전후좌우 상하고저 보이는 것이 없으니 그저 줄달음한다. 평지에서보다 더 속보
다. 꺼낼 일 없는 어깨에 둘러멘 카메라가 무겁다. 쭉쭉 뻗어 오른 울창한 낙엽송 숲 지나고 늦은목이재이다. 바닥
친 안부이기도 한다. ┫자 갈림길 왼쪽은 생달 마을로 간다. 고갯마루의 안내판이 자세하다.
“늦은목이는 영주시 부석면과 봉화군 물야면의 경계에 위치한 고갯마루이지만 봉화군에서 충청북도 단양군으로
가기 위한 길목이다. 현재는 소백산국립공원의 경계이기도 하다. (…) 늦은목이의 ‘늦은’은 ‘느슨하다’는 뜻이며,
‘목이’는 노루목이나 허리목 같이 ‘고개’를 뜻하는 말로 ‘느슨한 고개’ 또는 낮은 고개‘로 볼 수 있다.”
그래도 늦은목이재의 고도는 760m 정도 된다.
곧바로 갈곶산을 향한다. 산행 전에 방대장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생달 마을로 하산하더라도 갈곳산은 꼭 들렀다
오라고 했다. 다시 올 기회가 없을지 모르므로. 1km. 가파른 오르막이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이다. 정상
0.5km를 남겨두고는 곧추선 오르막이다. 숫제 엎드려 긴다. 이때는 진땀난다. 목도 탄다. 갈곳산 정상에 올라서는
널브러진다. 봉화산 넘어 부석사로 갈까, 아니면 온 길 뒤돌아가서 생달 마을로 갈까. 내 앞서 갔던 또보아 님의
행방은 묘연하다.
산행마감시간 17시가 빠듯하다. 하산주 타임 30분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그래, 생달 마을로 가자 하고 온 길 뒤돌
아 내린다. 그런데 826m봉 넘고 늦은목이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내리막에서 갈곳산을 간다는 일행을 만난다.
아예 봉황산 넘어 부석사로 갈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도 가야지 하고 뒤돌아선다. 난리는 혼자 겪을 때 난리인
것, 여럿이 당하면 난리가 아니다. 산행마감시간을 나 혼자가 아니라 떼로 넘기면 양해가 될 것. 나까지 6명이 부석
사로 간다.
갈곳산을 다시 오른다.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니라 꼬꼬 님, 그 뒤로 4명이 뒤따르니 그리 힘든 줄을 모르겠다. 봉황산
쪽은 금줄을 둘렀다. 생태보호구역이라며 적발 시 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한다. 금줄 넘는다. 인적이 흐릿하
다. 나침반을 꺼내 수시로 들여다보며 남진하는 능선을 꼭 붙든다. 봉황산 직전 780m봉이 길을 잘못 들기 쉽다. Y
자 갈림길로 왼쪽이 더 잘났다. 왼쪽으로 몇 걸음 가다가 봉황산을 바라보니 오른쪽 능선길이 그에 이어질 것 같다.
방향 튼다. 꼬꼬 님은 뒤에 오시는 전채성 님이 길을 잘못 들까봐 전화로 알려준다.
잠시 내렸다가 길게 오르면 봉황산이다. 이정표나 정상 표지석이나 그 흔하던 뭇 산행표지기도 없다. 풀숲에 묻힌
삼각점은 2등이다. 예미 24, 2004 재설. 부석사가 가깝다. 거기도 금줄을 넘어야 할 것.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려
함께 내리기로 한다. 곧 맨 뒤의 두 분(전채성 님과 오히려 좋군 님)이 오고, 중간에 오던 두 분(교주 님과 삼다도 님)
은 길을 잘못 들었다. 780m봉에서 잘난 왼쪽 길로 가버렸다. 부석사로 내리는 길은 급전직하다. 뚝뚝 떨어진다.
먼 데서 개 짖는 소리가 반갑다. 부석사가 가까워지고 오른쪽 계류는 보이지 않지만 물소리가 우렁차다. 금줄 넘는
다. 자인당 앞마당으로 들어선다. 자인당은 보물인 ‘북지리 석조여래좌상’을 모셨다. 자인당 지나면 대로가 이어지
고 그 왼쪽 소로를 약간 오르면 조사당이다. 조사당 앞에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아 자랐다는 고목인 골담초가 있
다. 조사당을 나와 대로 따라 왼쪽으로 길게 돌아내리면 부석사의 본전인 무량수전과 그 앞에 안양루가 있다. 마당
서쪽에 부석이 있다. 무량수전은 천막 치고 보수공사 중이다.
이중환(李重煥, 1690~1756)은 『택리지(擇里志)』의 복거총론 ‘산수’에서 특히 부석사에 대해 길게 언급하고 있는데,
그중 부석(浮石)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다.
“기이한 흔적과 이상한 경치가 있는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부석사가 있는데 신라 때의 절이다. 불전 뒤에 큰 바위
하나가 옆으로 섰고, 그 위에 큰 돌 하나가 지붕을 덮어놓은 듯하다. 얼른 보면 위아래가 서로 이어진 듯하나, 자세
히 살피면 두 돌 사이가 서로 눌려져 있지 않다. 약간의 빈틈이 있어, 새끼줄을 건너 넘기면 나고 드는 데 걸림이 없
어, 그제야 비로소 떠 있는 돌인 줄 알게 된다. 절이 이 돌 때문에 이름을 얻었으나 이치는 알 수 없다.”
(有奇跡異景者大小二白之間有浮石寺即新羅時古刹也佛殿後一巨巖橫而堅上有一巨石如屋下覆驟看似上下相承接
細察二石間不相連壓而有些空隙以繩度之出入無碍始知其浮石也寺以此得名此理殊不可曉也)
해거름이다. 그래도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참으로 장관이다. 고래로 많은 시인묵객이 여기에 올라 감탄했다.
안양루 중수기(重修記)의 내용이라고 한다. “몸을 바람난간에 의지하니 무한강산(無限江山)이 발 아래 다투어 달리
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르니 넓고 넓은 건곤(乾坤)이 가슴속으로 거두어 들어온다. 가람의 승경(勝景)이 이와 같
음은 없더라.”
과연 그러하다. 산행 내내 숲속 길 오느라 답답했던 눈을 비로소 씻는다.
부석사 주차장. 먼저 내린 일행들은 버스로 가림막하여 하산주를 즐기고 있다. 합세한다. 하산 길을 잘못 든 교주 님
과 삼다도 님이 여럿 살린다. 그 두 분은 아직 오지 않았다.
18. 부석사 안영루 앞에서 조망, 멀리 가운데가 소백산 제2연화봉
20. 멀리 왼쪽은 도솔봉
21. 부석사 안영루 앞에서 조망
23. 멀리 가운데는 도솔봉
24. 부석
25. 안양루 현판
영주 출신 명필인 소남 김종호(小南 金宗鎬, 1901~1985)의 글씨다. 갑신년(1944년) 가을에 썼다.
26. 부석사 일주문 현판
효남 박병규(曉楠 朴秉圭, 1925~1994)의 글씨다. 경북 달성 출신으로 한때 박정희 대통령의 서예를 지도하였다고
한다.
첫댓글 조망이 터지지 않는 산은 그저 혼자 산책하기에 좋은 곳일 듯. 하염없이 먼 길을 걷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런 데는 비가 내린던지, 안개가 자욱하면 운치가 있어서 더 좋을 것 같더군요.
백두대간의 가장 지루한 코스를 가셨군요.
저도 백두대간 종주하면서 저기가 무척 지루했던 기억이 나네요.
산은 역시 볼거리와 탈거리가 있어야 제맛인데... ㅎㅎㅎ
고생하셨습니다.
위 한시의
風塵萬事忽忽馬
宇宙一身泛泛鳧
이 부분이 참 좋네요.
힘든 구간입니다.
저는 歲月無情老丈夫(세월은 무정히도 젊은 사내를 늙게 했구나)가 절창으로 보입니다. ㅋㅋ
홀로 득도하듯 걸으셨네요..어제 속초 다녀오다가 오대산 전나무숲길을 맨발로 걸었는데, 걸을 때는 말을 참고 묵언을 하라고 씌어 있더라구요...무박산행의 거리를 당일로 달리셨네요. 수고많으셨습니다.^^
영화 '더 리벤지'에서도 말을 하지 않으면 청각이 예민해진다고 하더군요.
평소에 들리지 않은 것도 들리게 된다고 하데요.
좋은 데 다녀오셨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