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로지 뭉치면 살고 길이 열릴 것이요,
흩어지면 멸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는 1919년, 임시의정원 초대 의장으로
상해임시정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면서
나라 밖 독립운동을 이끄신 이동녕 선생이 하신 말씀입니다.
선생은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초대 의장에 선출되어
첫 회의를 주재하면서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결정하고
이어 정부의 관제와 국무총리 그리고 각 구성원을 뽑았습니다.
또 헌법으로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제정ㆍ통과시켰으며,
임시의정원 의장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나라 안팎에 선포함으로써
한국 역사상 첫 민주공화제 정부 수립을 이끌었지요.
▲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초대 의장으로 상해임시정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이동녕 선생
선생은 이후로도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고난을 함께하며
나라 밖 독립운동을 끌어나가는데 온 몸을 던졌습니다.
선생은 또 1939년 10월 25일 국무회의에서 주석으로 다시 선출되어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의 체제를 확대ㆍ강화하고
일제에 대항할 무장 세력으로 한국광복군 창설을 추진하다가
1940년 3월 13일 치장에서 지병이었던 폐렴으로 72살을 나이에 세상을 떴습니다.
임시정부는 치장 산기슭에 터를 마련하고 국장(國葬)으로 장례를 치렀지요.
99년 전인 1924년 오늘(4월 23일)은 이동녕 선생이 국무총리에 취임하여
임시정부의 쇄신을 주도하기 시작한 날입니다.
나라 밖에서 풍찬노숙하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던졌고,
결국 남의 나라에서 숨을 거두신 선생에게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
김구 선생도 선생의 국장에서 “창해파도 중에 돛대가 부러졌도다.”라고
슬퍼하셨는데 지금 건국서훈 2등급(건국훈장 대통령장)은
선생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며 서훈등급 상향 운동이 펼쳐지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