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64] 절규
저렇게 떨어지는 노을이 시뻘건 피라면
너는 믿을 수 있을까
네가 늘 걷던 길이
어느 날 검은 폭풍 속에
소용돌이쳐
네 집과 누이들과 어머니를
휘감아버린다면
너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네가 내지르는 비명을
어둠 속에 혼자서
네가 듣는다면
아, 푸른 하늘은 어디에 있을까
작은 새의 둥지도
-박영근 (1958~2006)
(원시와 다르게 행을 배열함)
박영근 시인의 유고 시집에 실린 ‘절규’는 화가 뭉크(Munch)의 그림 ‘비명’에서 영감을 얻어 쓴 시다. ‘비명’의 탄생 배경에 대해 뭉크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도시와 피요르드 해안 사이에 펼쳐진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피곤했고 아팠다. 나는 멈추어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태양이 지고 있었고 구름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자연이 내지르는 비명을 느꼈다.”
뭉크의 설명보다 박영근 시인의 ‘절규’가 지금의 내게 더 가깝게 느껴진다. “네가 늘 걷던 길이 어느 날 검은 폭풍 속에 소용돌이쳐” 길을 잃은 새 한 마리. 푸른 하늘은 어디에도 없다. 안치환이 부른 노래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자인 박영근 시인을 술자리에서 한두 번 본 적이 있다. 그는 맑고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최영미의 어떤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