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28. 고난주간 특별 큐티
이사야 52:1 ~ 10
예루살렘을 속량하시는 하나님
관찰 :
1)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 1절.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 “깰지어다”(עוּרִי, 우리)는 말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소망을 잃어버리고 혼수상태에 빠진 듯이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있는 유대인 포로들에게 이제는 돌아올 소망을 회복하고 준비하라는 말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은혜로 역사의 흐름이 그렇게 인도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와 점령하고 정복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라는 예언은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에도 예루살렘이 정복당한 일들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단지 그 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이 말은 메시야의 재림으로 말미암은 새 예루살렘 성에서 부정하고 불의한 세력의 그 어떠한 통치나 영향력이 없이 완전한 성결을 이루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2절.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 이제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벗어나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옥죄는 사슬을 그들이 스스로 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앉을지어다”(שְּׁבִי, 쉐비)는 보좌에 앉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이스라엘의 왕권이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장차 메시야를 통해서 성취될 일에 대한 예언입니다.
- 3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 이스라엘이 까닭없이 포로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이사야가 여러차례 거듭해서 강조했듯이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하나님 앞에 우상을 숭배하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죄로 말미암은 심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런 것이고, 바벨론과 페르시아에게 있어서는 그들이 댓가를 치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값 없이 그들을 포로로 데려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이 돈 없이 거저 속량될 것이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서 유다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 4절.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애굽에서 포로되었던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셨습니다. 또한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살만에셀, 산헤립 왕 등의 앗수르 군대에 여러 차례 공격을 받고 포로로 끌려간 일들이 있었던 것을 상기하게 하고 있습니다. 앗수르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것임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압제했을 때 그들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과거를 상기하게 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값없이 속량하시겠다는 말이 터무니없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 5절.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 =>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히게 된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습니다. 고대의 전쟁은 신들의 전쟁으로 여겨졌었고, 다른 나라가 이스라엘과 싸워 승리하고, 이스라엘의 왕들을 포로로 끌고 가게 되면 여호와가 전쟁에서 진 것으로 여겨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일을 개의하지 않고, 유다가 정신 차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기를 바라시며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힘을 당하는 것까지 감수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로 하나님이 전쟁에서 진 것이 아니었고, 그들이 떠들 듯이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셔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 이름이 더럽힘을 받는 것을 내버려두실 이유가 없으셨습니다.
2) 좋은 소식
- 6절.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 =>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듯 미리 예언하심과 같이 유대인들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경험적으로 알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여호와, 즉 ‘I will be who I will be’로서 자신을 지속적으로 계시하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증명하신다는 바로 그 이름의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 7절.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 “좋은 소식”은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유대민족이 해방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 소식을 바벨론의 방방곡곡에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증거하는 그 발걸음이 얼마나 벅차고 아름다울 것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이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죄와 사망과 사탄의 포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놓임을 얻게 되었다는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들의 발걸음이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 8절.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 여기서 “파수꾼”은 선지자들의 예언입니다. 그들이 소리높여 선포한 내용들이 모두 성취되는 것이 바로 “좋은 소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포로에서 귀환하는 예언의 성취가 이루어질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는 말은 직역하면 ‘눈이 눈을 보기 때문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는, 즉 임마누엘 하시는 일을 보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예언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과 성령의 이 땅에 오심으로 성취되는 좋은 소식입니다.
- 9절.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 여기서의 구속은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을 의미합니다. 이차적으로는 메시야를 통한 온 열방의 구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확실한 이유는 10절에 땅 끝까지도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되는 것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10절.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 하나님의 팔은 통치와 도우심과 섭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열방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보여 하나님의 백성을 도우시는 일을 목도하게 하심으로 땅 끝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모든 민족들이 여호와를 인정하게 하는 근거가 되며, 그들 역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좋은 소식을 소유하게 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위해서 이스라엘이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얻어맞고, 포로가 되어 박살이 나는 것을 통해서 회개에 이르는 것 외에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구원은 철저히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순종하고 따를 따름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부끄러워질지라도 하나님이 그것을 회복시키심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리시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때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박살이 나고, 포로가 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약해서가 아니라 교회가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별되어 하나님의 교회가 되어야 하는데, 사람의 교회가 되면 하나님이 그것을 교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시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부정하는 것은 가장 미련한 일입니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고귀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그 이름이 더럽힘을 받는 것을 간과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맞아서 정신차리도록 하실 때는 그 이름이 다른 이방인들에 의해서 더럽혀질 지라도 개의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그 이름의 영광을 되찾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일들을 너무나 당당하게 이루시는 오직 유일하신 여호와이십니다.
3) 하나님은 여호와, 자기 스스로 자신을 계속해서 드러내시는 것을 통해서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알리시는 분으로서의 존재증명을 이루시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바벨론 포로귀환을 통해서, 그리고 주님의 몸 된 교회의 회복과 새 예루살렘 성의 도래를 통해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해 내시게 될 것입니다.
4) 이 땅에 하나님의 이름이 바르게 증거되고,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드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워져가게 되는 것이 좋은 소식입니다. 주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이 우리를 통해서 올려 지게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좋은 소식, 복음(福音)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깨어있는 소수가, 어떤 특정한 공동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그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다만 따르는 것입니다. 고레스의 칙령은 하나님이 내리시도록 인도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따름인 것입니다. 개인과 공동체가 주님을 따르고자 할 때, 이 원리는 언제나 중요합니다.
2) 좋은 소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계획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지고 계시는지를 드러내고 나누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참으로 여호와이십니다.
3)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은혜로 좋은 소식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고난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참으로 복음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 과정을 통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얻으셨고, 그 권세를 주님의 자녀들을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주님의 권세는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통해서 주어진 것임을 찬양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메시지입니다. 고난주간을 지나 부활절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참으로 좋으신 우리 주님을 전심으로 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