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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개국서 선별된 글로벌 20인… 종소리의 울림을 ‘빛의 언어’로 풀어낸 신작 공개 ‘Silent Song 5’ 미켈란젤로 재단 영구 컬렉션 편입… 대표 연작 ‘THE MOON’과 함께 두 기획전 동시 참여 |
[미술여행=윤장섭 기자]자개를 독창적인 현대미술의 조형 언어로 확장해 온 류지안 작가가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 비엔날레 ‘호모 파베르 2026(Homo Faber 2026)’의 주요 기획전 ‘Twenty Silent Songs’에 참여하는 20인 중 유일한 한국 작가로 초청됐다.
사진: 류지안 Jian Yoo, Silent Song 5, 2026, 120 cm. Courtesy of the artist
사진: 류지안(Jian Yoo)(네이트 자료사진 참조)
류지안(Jian Yoo)은 한국 전통 재료인 ‘자개’를 현대미술의 조형언어로 확장하는 작가다. 전통 나전칠기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개의 빛·반사·시간성을 이용해 회화, 오브제, 아트퍼니처, 설치 작업까지 영역을 넓혀온 것이 특징이다.
류지안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핵심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알아낸 것이 바로 ‘자개와 빛’이다. 류지안에게 자개는 단순히 한국적인 장식재가 아니다. 시간과 감정, 기억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빛으로 보여주는 재료에 가깝다. 수천~수만 개의 작은 자개 조각을 겹겹이 붙이면 관람자가 움직이거나 조명이 달라질 때 색과 빛이 계속 변한다. 그래서 작품 자체는 정지해 있는데도 파도나 물결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생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순환을 표현한다. 특히 최근 작품에서는 바다 → 파도 → 달빛 → 우주 → 시간으로 이미지가 확장되고 있다. 이미지는 류지안의 대표 연작을 통해 확장되는 이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①파도와 에너지의 움직임인 'WAVE', ②끊임없이 이어지는 흐름과 순환의 'ETERNAL FLOW', ③밤바다에 비치는 달빛과 시간인 'MOONLIGHT', ④달항아리 형태를 이용한 입체 작품인 'THE MOON', 그리고 ⑤매화·모란 등을 통해 순간과 기억을 표현한 'BLOSSOMS'가 대표적이다. 류지안은 2026년 선화랑 개인전: "Where Time Settles into Light"에서 이 다섯 계열의 작업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한국 전통 재료 ‘자개’로 현대미술의 조형언어를 확장한 류지안(Jian Yoo)의 ‘자개와 빛’
류지안은 전형적인 서양화·조각 전공 작가라기보다 디자인과 공예에서 현대미술로 확장된 작가에 가깝다. 류지안은 미국 뉴욕 Pratt Institute에서 Interior Design BFA를 공부했다. 또한 나전칠기 명장 류철현의 딸로,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공방에서 자연스럽게 자개를 접했다. 뉴욕 유학 당시 일본 전통공예가 현대적으로 해석된 전시를 본 뒤 한국의 전통재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대화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류지안의 작품은 디자인적인 완성도와 공예적인 재료 처리, 현대미술적인 개념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사건이 2023년 한미 정상회담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에게 증정한 국빈 선물이 류지안이 제작한 자개 달항아리 ‘The Moon White’였다. 류지안은 이 작품으로 유명세를 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리고 류지안이라는 이름이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진 것은 The Moon 시리즈를 통해서다.
류지안이라는 이름이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진 것은 The Moon 시리즈를 통해서다.(사진: The Moon 시리즈)
류지안은 처음부터 ‘한국적인 달항아리’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다. 류지안의 작업일지를 보면 류지안 작업의 시작은 바다였다. 밤바다의 윤슬과 파도, 달빛을 자개로 표현하다가 달의 이미지와 연결됐고, 그것이 달항아리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자개 → 바다의 빛 → 달빛 → 달 → 달항아리의 흐름이다. 그래서 작가의 달항아리는 단순하게 전통적인 달항아리를 자개로 장식한 작품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류지안의 포지션... ‘럭셔리와 미술의 경계’
또 하나의 특징은 ‘럭셔리와 미술의 경계’다. 류지안은 미술관·갤러리 전시뿐 아니라 롤스로이스,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등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와의 협업도 활발하다. 까르띠에 메종 청담에는 작품이 소장되어 있고, 롤스로이스의 글로벌 프로젝트 ‘Inspiring Greatness’에 참여한 첫 한국 작가로도 소개됐다. 이 부분은 류지안을 이해할 때 상당히 중요하다. 그의 작품은 전통공예에서 출발했지만, 공예 → 디자인 → 현대미술 → 럭셔리 → 컬렉팅이라는 영역을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총괄을 지낸 이지윤 아트 디렉터가 걸작은 스튜디오에서, 미술시장에서, 컬렉터의 손에서 세 번 태어난다고 밝힌 책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라는 관점으로 보면 류지안은 상당히 흥미로운 사례다. 작품 자체뿐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국가 선물·해외 전시·컬렉터 시장이 동시에 작가의 인지도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적으로 볼 때 류지안의 포지션은 단순히 ‘자개 공예작가’라고 부르기 보다 “전통적인 나전의 물성을 이용해 빛과 시간, 자연의 흐름을 표현하는 동시대 미술작가”로 보는 것이 맞는 답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최근 작업을 보면 자개로 특정 형상을 묘사하는 것보다 빛 자체를 경험하게 만드는 추상 작업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2026년 선화랑 개인전의 대형 작품들을 보면 파도와 소용돌이, 은하나 블랙홀처럼 보이는 이미지가 나타난다. 보는 위치에 따라 표면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사진보다 실제 작품에서 효과가 훨씬 강한 계열이다.
한편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 비엔날레 ‘호모 파베르 2026(Homo Faber 2026)’의 주요 기획전 ‘Twenty Silent Songs’에 초청된 류지안은 20인 중 유일한 한국 작가다.
‘Twenty Silent Songs’...5개 대륙 20인 창작자에게 신작 제작 의뢰한 커미션 프로젝트
‘Twenty Silent Songs’은 5개 대륙에서 선별된 20인의 창작자에게 신작 제작을 의뢰한 커미션 프로젝트다. ‘Twenty Silent Songs’는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종소리와 사이프러스 회랑(Cypress Cloister)에 얽힌 역사에서 출발한다. 예술감독 에스 데블린(Es Devlin)이 종의 울림과 진동에서 착안해 제시한 시각적 모티브를 바탕으로, 참여 작가들은 각자의 매체와 독자적인 예술 언어로 신작을 완성했다. 20점의 작품은 사이프러스 회랑을 따라 설치됐다.
류지안은 종소리의 울림과 진동을 자신이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빛의 언어’로 풀어낸 신작 ‘Silent Song 5’를 선보였다. 중심에서 외곽으로 확산되는 자개의 배열과 변화하는 빛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울림과 진동의 흐름을 시각화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특별 제작된 작품은 전시 종료 후 미켈란젤로 재단의 영구 컬렉션에 편입된다.
류 작가는 ‘Twenty Silent Songs’와 함께 또 다른 기획전 ‘A Full Moon Rising’에도 대표 연작 ‘THE MOON’ 두 점으로 참여해 두 기획전에 동시에 이름을 올렸다. 폰다치오네 조르조 치니(Fondazione Giorgio Cini)의 옛 수영장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 전시는 세계 각국의 창작자들이 다양한 재료로 구현한 작품들을 빛과 물이 어우러진 공간 속에 소개한다.
류지안 작가는 “산 조르조 대성당의 종소리가 이어져 온 역사적인 공간에서 그 울림을 자개의 빛으로 풀어낼 수 있어 특별했다”며 “작품이 관람객 각자의 감각 속에 오래 남는 울림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베니스 ‘호모 파베르 2026’ 글로벌 20인 특별전은 스위스 제네바에 기반을 둔 미켈란젤로 재단(Michelangelo Foundation for Creativity and Craftsmanship)이 큐레이션하는 국제 비엔날레다. 세계 각국에서 선별된 창작자들의 재료에 대한 탐구와 창의적 비전을 조명한다. 제4회를 맞은 올해 행사에는 ‘빛의 섬(An Island of Light)’을 주제로 70개국 이상에서 500여 명의 창작자가 참여하며, 700점이 넘는 작품이 전시된다.
미켈란젤로 재단은 글로벌 럭셔리 그룹 리치몬트(Richemont)의 회장 요한 루퍼트(Johann Rupert)와 프랑코 콜로니(Franco Cologni)가 공동 설립한 비영리 국제 재단이다. ‘호모 파베르 2026: An Island of Light’는 9월 30일까지 이탈리아 베니스 산 조르조 마조레 섬 폰다치오네 조르조 치니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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