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斷食)·단색(斷色)으로 자신의 주체와 욕망을 축소 삶·사유·욕망 규정한 정신세계의 아름다움
레오나르도 보프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립대의 명예교수는 종교의 자리를 상상력·감각·욕구라 말한다. 나에게 다석 류영모(1890∼1981)는 종교의 자리에서 주어지는 이 세 가지를 다양하고 창조적인 언어로 깊고 풍부하게 보여 준 한국의 사상가다. 이 책은 ‘영원한 저녁’이자 ‘하나(一)’라 표현되는 궁극적 실재를 향한 류영모의 종교적 상상력과 감수성 그리고 욕망에 관한 내용을 설명한 책이라 말할 수 있다.
류영모의 종교적 상상력은 동아시아의 무(無)와 공(空)의 사유에 기초한다. 종교는 이 세계를 넘어서 ‘또 다른’ 세계를 지향하는 상상력의 구성체다. 인간은 신을 본 적이 없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인간은 상상력을 통해 의미의 상징체계로 궁극적 실재라 할 신에 관한 개념을 구성한다. 류영모 역시 종교적 상상력을 통해 궁극적 실재의 의미를 구성한다. 그 상상력의 토대가 바로 지극히 텅 비어 있어 가없이 커다람으로 궁극적 실재의 창조성과 가능성 그리고 충만함을 설명하는 동아시아 종교 전통의 무와 공의 사유다.
류영모는 궁극적 실재를 절대무(絶對無), 절대공(絶對空),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 없이 계신 님 등으로 표현했다. 특히 류영모는 ‘하나(一)’라는 표현을 통해 개체 생명을 포함하면서 초월하는 전체 생명으로서 신을 말했다. 나는 절대무에서 나와 다시 절대무로 돌아가는 모든 개체 생명의 공통적 근원과 종착을 전체 생명인 ‘하나’로 상정한 류영모의 종교적 상상력이 분열된 인류를 하나로 모으는 ‘대동(大同)의 지혜’을 함의한다고 보았다.
류영모는 평생 하루에 저녁 한 끼만 먹는 일일일식(一日一食)과 일체 성관계를 거부한 금욕적 종교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이런 그의 삶과 정신은 식색(食色)을 초월한 금욕적 삶을 뜻하는 ‘고디(곧음, 貞)’라는 용어로 설명된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그의 금욕적 삶 자체보다 그를 금욕적 삶으로 이끈 원동력이었다.
나는 류영모의 금욕적 삶이 생명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 때문임을 발견했다. 류영모에게 인간의 식욕과 성욕은 타자의 생명을 대상화하고 착취하게 만드는 근원적 동인이었다. 류영모가 인간의 기본적 욕구조차 거부한 것은 종교적 수행의 차원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는 강한 생명에 의해 잡아먹히는 약한 생명이 처한 죽음의 현실성과, 진정한 생명은 식욕과 성욕에 기초한 몸의 생명과는 다른 정신적 생명이라는 각성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래서 류영모는 먹고 마시는 “우리 몸의 입이란 열린 무덤”이며 몸의 생명을 위한 “식사(食事)는 장사(將事)”라 말했다.
류영모의 예민한 생명 감수성은 인간의 밥이 되는 곡물조차도 예수처럼 이 세계의 전체 생명을 위해 희생하고 대속(代贖)하는 존재로 이해하게 했다. 생명 감수성에 기초한 고디의 금욕적 삶은 전체 생명을 위해 고난과 희생을 통해 “제 몸뚱이로 제사 지내는 것”이면서, 과잉된 자기 욕망의 긍정과 추구에 경도된 죽음의 문화에 저항하고 생명 살림을 추구하는 대항 문화적 삶의 방식이었다.
마지막으로 류영모는 무와 공에 자신의 욕망을 일치시키려 했다. 그는 단식(斷食)과 단색(斷色)을 통해 자신의 주체와 욕망을 축소해 하나의 점에 이르는 가온찍기()의 수행의 삶을 살았다. 류영모는 이런 수행이 “죽음의 연습”이고 철학이며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이라 보았다. 류영모는 몸을 부정하는 것이 얼 생명(정신)에 도달하는 길이라 보았다. 몸 생명과 얼 생명을 변증법적으로 이해한 그의 금욕적 수행은 무와 공의 진리에 자신의 욕망과 주체를 변형시켜 이를 아름다움으로 현실화하는 매개라 할 수 있다.
류영모가 수행한 ‘죽음의 연습’과 철학 함은 사라져 버릴 이 물질세계의 ‘광명’과 ‘낮’보다 그 배후에 있는 정신세계의 ‘어둠’과 ‘저녁’이 더 크고 근원적이며 인간이 그리워하는 대상 곧 아름다움임을 알려 준다. 자기를 비움이 곧 얼 생명의 충만함에 이른다는 것을 알았던 류영모의 삶과 사유 그리고 욕망을 규정한 것은 바로 이 아름다움이었다.
결국 이 책은 오늘날 참 인간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는 우리에게 물질세계의 ‘낮’이 아닌 정신세계의 ‘영원한 저녁’을 추구하는 새로운 인간학을 구상한 어느 사상가의 상상력과 감수성 그리고 욕망을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