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는 “교우들이 모인 다음” 시작됩니다. 그것은 “(외적으로 약속된 시간에) 교우들이 (내적으로 하느님 백성으로) 모인 다음” 미사를 시작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말입니다. 준비를 다 마친 다음 이제 미사는 ‘어떻게’ 시작될까요?
「미사 통상문」의 서두에 다시 한번 주목합시다.
교우들이 모인 다음, 사제는 봉사자들과 함께 제대로 나아간다. 교우들은 그동안 입당 노래를 한다.
사제는 봉사자들과 함께 제대로 향하는 행렬을 시작합니다. 행렬을 이루는 이들의 의복과 그들의 손에 들린 도구들 – 높이 들린 십자가, 아름답게 장식된 복음집, 촛불 - 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향을 든 복사가 지나간 자리마다 향 냄새가 우리 코에 와 닿습니다. 교우들은 구경꾼이 아니고, 노래로 이 행렬에 참여합니다. 예식의 시작이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감각으로 꽉 채워져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평소에 미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 – 정적이고 지루하다 – 와는 사뭇 다릅니다. 전례 봉사자들의 움직임(행렬)과 교우들의 소리(노래)가 미사에서 맨 먼저 일어나는 사건이고, 이 둘은 하나를 이루어 우리를 미사의 신비로 안내합니다.
입당 행렬은 공원을 거니는 산책이나 대오를 정비하여 걸어가는 병사들의 행군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룩한 노래의 선율에 맞춰 하느님께 나아가는 순례자들의 발걸음입니다. 그리고 이 행렬은 우리 삶이 아직 나그넷길에 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하느님 나라로 가는 거룩한 여정에 있고, 예수님께서는 미사 안에서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여정을 앞장서 이끄십니다.
전례 봉사자들이 제대로 향하는 움직임은 입당 행렬의 최종 완결일 뿐, 그 시작은 매 주일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자신의 집과 침대를 떠나서 교회 혹은 하느님 백성이라고 불리게 될 그곳을 향해 길을 떠날 때부터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여드는 동안 우리의 이 ‘행렬’은 한층 더 분명해지고, 우리가 하느님 백성으로 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런 다음에라야 성품 사제가 모임을 주재하러 입당하게 되고, 그때 비로소 교회 제도 안에서 잘 정돈된 하느님 백성의 행렬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개인에서 공동체로 나아가는 행렬의 이 장엄한 완결이 이루어지는 동안 신자들은 입당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식에 음악을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성찬례 거행을 외적으로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고통이나 근심이나 상처가 우리 곁에 늘 머물러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인의 이 기쁨은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리라는(시편 126,5) 희망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성금요일의 수난이 있기에 우리가 부활절 아침의 기쁨을 고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안에 새겨진 슬픔과 비탄과 고통은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하여 계신 하느님 현존의 보증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당신과 맺는 친교로 부르시며 어떠한 환난에서도 우리를 위로해 주심으로써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게 하십니다(2코린 1,4 참조). 음악은 성체성사 안에서 발견한 기쁨을 우리만의 선물로 간직하지 말고 다른 이들과 함께 누리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성소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