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치렌(日蓮) 가로되, 일체중생의 동일고(同一苦)는 남김없이
이는 모두 니치렌 한 사람의 고(苦)라고 말하느니라. (어서 587쪽)
올해도(2009년) 학회 본부 앞 '청년벚나무'에 꽃이 피어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창립 80주년을 향해 전진하는 우리 학회와 거의 같은
연륜을 새겨온 거목입니다.
벚꽃과 함께 찾아온 '4월 2일'은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의 기일입니다.
은사가 돌아가신 지 51성상. 나는(이케다 선생님) 상주불멸(常住不滅)한
사제(師弟)의 대화를 거듭하며 생사를 초월한 제자의 투쟁을 관철했습니다.
"우리가 신심을 하는 목적은 영원한 생명 속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다."
어느 날 (도다)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대우주의 운행이 바로 자비행(慈悲行)이다.
우리가 절복을 행하는 것이 자비행이다.
자비행은 부처의 일이며 진정으로 존귀한 일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영원한 행복을 붙잡고 동시에 다른 빈궁한 중생에게도
그 행복을 나누려고 하기 때문에 이보다 더 존귀한 일은 없다."
생로병사의 고뇌에 빠진 벗에게 묘법의 세계를 제시하고 인도하는 신념 어린
대화는 최고로 존귀한 '자비행'입니다. 어본불 니치렌(日蓮) 대성인의 사자로서
소리의 힘으로 '불사(佛事: 부처의 일)'를 하는 가장 존귀한 행동입니다.
대성인은 <간효팔번초>에서 "열반경에 가로되
'일체중생이 이(異)의 고(苦)를 받음은 모두 이는 여래 한 사람의 고이니라.' 등 운운.
니치렌 가로되, 일체중생의 동일고는 남김없이 이는 모두 니치렌 한 사람의 고라고 말하느니라."
(어서 587쪽)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인용한 열반경의 글은 고뇌에 빠진 사람들을 보고 자기의 일처럼 고뇌하는
여래(부처)의 자비가 지닌 위대한 힘을 찬탄한 구절입니다.
'일체중생이 이의 고'는 사람들이 받는 갖가지 다른 고통을 말합니다.
부처는 다종다양한 '이의 고'를 모두 자기 문제로 받아들여 그 해결을 기원했습니다.
대성인은 열반경의 글에 입각하면서도 굳이 '동일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일체중생이 당면한 여러 가지 고뇌가 동일한 원인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명쾌하게 나타내고,
그 일체를 짊어지고 일어서신 대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말법의 사람들이 동일하게 괴로워하는 '동일고'는 방법(謗法)에 따른 본원적인 괴로움입니다.
탐(탐욕), 진(노여움), 치(어리석음)라는 생명의 '삼독(三毒)'이 번성하는 말법에서,
이 '동일고'에 맞서 자타 함께 행복한 길을 여는 실천이 우리가 하는 절복행입니다.
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갈(飢渴)은 대탐(大貪)에서 일어나고 역병(疫病)은 우치(愚癡)에서 일어나고
합전(合戰)은 진에(瞋恚)에서 일어남이라. 지금 일본국의 사람들은 사십구억구만사천팔백이십팔인의
남녀, 사람마다 다르지만 다같이 하나의 삼독이니라." (어서 1064쪽)
인간생명과 사회현상의 깊은 관련성을 역동적으로 파악한 글입니다.
기갈이나 역병, 전쟁은 '삼독'이 강성하기에 일어난다고 갈파하셨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일차원에서 보면 이 '삼독'으로 인해 서로 미워하며 상처를 입혀온
업인(業因), 업과(業果)가 유전하는 드라마였습니다. 이 비극에 종지부를 찍어 지구를 평화와 공생의
낙토로 만들기 위해서는 '생명'을 변혁하는 대철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부르는 남묘호렌게쿄라는 대백법(大白法)입니다.
'여래 한 사람의 고'
'니치렌 한 사람의 고'
석존도, 니치렌 대성인도 철두철미하게 오직 홀로 일체중생의 고뇌를 자기것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대법을 끝까지 넓히셨습니다.
오직 '한 사람'입니다. 위대한 역사는 늘 위대한 한 사람이 창조합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의 뒤를 이은 불이(不二)의 제자로 계승되어 넓혀집니다.
"한 사람의 위대한 인간혁명은 이윽고 한 나라의 숙명전환도 이루고, 나아가 전 인류의
숙명전환도 가능케 한다." 이 소설 '인간혁명'의 주제도 대성인의 성훈을
현대에 실천하는 사제의 서원입니다.
원래 부처의 '자비'는 무엇인가.
'대지도론'에는 일체중생에게 낙을 주는 일(=여락<與樂>)이 '자(慈)'이고,
일체중생의 고를 뽑는 일(=발고<拔苦>)이 '비(悲)라고 씌어 있습니다.
만인을 구제하기 위해 '발고' 그리고 '여락'의 길을 여는 일이 부처의 자비입니다.
'동고'는 '동정'이 아닙니다. 괴로움을 극복하려면 그 사람 자신이 생명의 저력을 발휘해
스스로 강하게 일어서는 수 밖에 없습니다.도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불쌍하다고만 생각해서는 사람을 구제할 수 없다.
신심의 지도, 격려를 할 수 있는 리더가 되어라.
해야 할 말은 정확하게 지도하고 어본존에게 함께 기원해야 한다."
불법에서 설하는 진정한 자비는 감상이나 싸구려 동정과는 무연합니다.
그것은 결국 인생을 승리하는 가치를 낳지 못합니다.
근본의 '동일고'를 물리치지 않고는 발고여락이 될 수 없습니다.
(도다)선생님은 "자비는 곧 지혜로 이어진다.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그 자비에서 하나하나 구체적인 지혜가 생긴다."라고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불법은 승부입니다. 인생도 사회도 승부입니다.부처의 자비는 사람들의 혼을 뒤흔들어 '절대 승리의 생명'을 용현시키는
불타오르는 위대한 감정이라 해도 좋습니다.
오직 홀로 파사현정의 대법전을 개시한 대성인은 일본국의 모든 사람에게서 원망과 질투를 받으며
모든 대난을 인내하고 인류 구제를 향한 대도를 여셨습니다.
"대비(大悲)란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자비와 같으며" (어서 721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자비의 스승에게 마음을 맞추기에 발고여락의 힘이 솟습니다.
'사제'가 바로 자비의 원동력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성인만큼 자비로운 부처님은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이 대성인의 대자대비를 전 세계에 선양해야 합니다."
이 사명을 완수하는 지름길이 바로 여러분이 나날이 생기발랄하게 행하는 정의로운 대화입니다.
우리 학회 동지는 초창기 이래, 고뇌하는 벗과 동고하며 성장과 행복을 기원하고,
불법을 확신하고 끝까지 말해 많은 사람을 구제했습니다.
아무리 냉소를 당하고 매도 당해도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달려가
고뇌하는 사람을 보살폈습니다. "이 신심으로 행복해집시다!"
"반드시 극복할 수 있습니다!"하고 계속해서 힘차게 격려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용감하고 인내 강한 부처의 행동인지 모릅니다.도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범부에게는 자비가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비를 대신하는 것이 '용기'입니다.
'용기'를 갖고 올바른 것은 올바르다고 말하는 것이 '자비'에 통합니다.
표리일체입니다. 표면은 용기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상대를 절복한다면 상대가 듣지 않을 리 없습니다.
아무리 말안 듣는 아이라도 어머니의 애정에는 당할 수 없습니다.
이 '용기' 즉 '자비'의 연대는 지금 세계 192개국으로 넓혀졌습니다.
이렇게까지 사람들을 따뜻하게 격려하며 희망을 보내온 숭고한 단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나와(이케다 선생님)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눈 인도 철인 라다크리슈난 박사가
SGI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타인의 괴로움과 슬픔을 없애고
기쁨을 선사하는 즉 '발고여락'의 투쟁을 할 수 있었을 때 그곳에서 '인간혁명'이 시작됩니다."
청춘 시절은 괴로움과 고뇌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큰 고난을 극복해야 강해집니다.
순조로운 생활에 안주해버리면 확고한 인생의 토대를 구축할 수 없습니다.
괴로워한 만큼 타인의 괴로움을 이해하게 되어 자비심이 깊어집니다.광선유포라는 사명의 투쟁으로 남보다 몇 배나 고생하는 일은 '동일고'에
도전하는 영예로운 격투입니다. 자기자신의 승리가 많은 벗에게
격려가 되고 뒤를 잇는 후배들에게 희망이 됩니다.
리더가 난(難)을 만나고 난을 극복해 승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비행'입니다. 절복 정신으로 전진하는 우리 창가의 청년이 바로
전 인류의 '동일고'에 도전하는 '발고여락의 위대한 영웅'입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이렇게 엄연히 훈계하셨습니다.
"법에 저촉되지만 않으면 불선(不善: 선을 행하지 않는 것)도 괜찮다는 오해가
현대 병의 근원이고 독선, 위선자가 횡행하는 결과가 되고 있다."
'나만 좋으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
'들키지 않으면 뭘 해도 괜찮다.' 이러한 이기주의와 부정이 소용돌이치는
사회에서 창가의 벗이 실천하는 불보살과 같은 행동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숭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투와 중상을 당합니다.
도다 선생님은 이렇게 엄명하셨습니다.
"우리 학회는 우주에서 최고로 화락한 세계다. 절대로 마에게 무너져서는 안 된다."
도다 선생님이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셨던 창가학회는 지금 일본 그리고
세계의 뜻있는 식자와 지도자에게서 전폭적인 신뢰와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시대는 크게 변했습니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철학연구소 동양철학센터의 M.스테파니안츠 센터장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불교는 폭력이나 군사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구상에 사상을 넓혀 세계종교가 된 유일한 예입니다. 넓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입니다. 말(부처의 가르침)과 행동(불교도의 행동)입니다."
참으로 날카로운 통찰입니다.
'말'과 '행동'이라는 소프트파워를 무기로 한 불교 흥륭의 역사는
인간정신이 승리한 빛나는 궤적입니다.
무력에 맞선 대화의 승리!
권력에 맞선 민중의 승리!
불신에 맞선 신념의 승리!
증오에 맞선 자비의 승리!
사지(邪知)에 맞선 지혜의 승리!
니치렌 불법이 그 최첨단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진하는 세계적인 평화, 문화, 교육 운동은 불법의 '대자비'와 '대영지'의
결정입니다. 우리가 추진하는 운동이 생명철학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여러 운동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깊이를 띠고 있습니다.
아무리 고매한 이상을 내건 운동도 명확한 생명관이나 생사관이 없으면
인간에 대한 불신이나 질투, 증오 등의 감정에 발목이 잡혀 결국 분열하고 쇠망합니다.
이것은 고금의 역사가 보여주는 통절한 교훈입니다.
불법은 인간의 '일념'에 빛을 비춥니다.
상대의 '경애'를 응시합니다.
인종이나 민족, 학력이나 직함 등 모든 차이를 초월해 '생명'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대지에 의거해 성립합니다. 그러므로 좁은 통념이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대담하고 솔직하게 마음과 마음, 생명과 생명을 서로 이으면서
인류의 새로운 가치창조의 활로를 열 수 있습니다.
은사는 "불법에 국경은 없다."고 외쳤습니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그 직제자로서 세계를 무대로 인간주의 대화의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말해야 합니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끊임없이 이는 파문 하나하나가 '분단'에서 '결합'으로,
'대립'에서 '융화'로, '전쟁'에서 '평화'로 인류사를 전환하는 조류가 된다고 믿고
투쟁했습니다.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말년에는 소카대학교에서 청년을 훈도한 고(故) 오쿠마 노부유키 교수님은
이렇게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평화 국가에서는 정치 만능의 사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미 정치를 초월한 것이 정치를 지도하는 관계에 있다."
"대개 평화주의의 원점이라고 하면 동양이나 서양에서나 실은 종교였다."
평화로운 국가를 구축하려면, 인간이 영위하는 모든 것의 근저에 있으면서
정신성을 개화시키는 '철학' '종교'의 힘이 절대 불가결합니다.
따라서 오쿠마 교수도 전진하는 창가학회에 미래의 희망을 의탁하셨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청년부에게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근본 철학은 생명철학이다. 우리는 위대한 철학으로 세계를 리드할 것이다.
여러분은 이미 세계적인 지도자다."
젊은 나이에 이 최고 철학을 실천하는 우리 청년부원과 미래부원은
민중을 위해, 광포를 위해 강력한 지도자로 속속 성장해주기 바랍니다.광선유포를 전진시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광선유포를 방해하고 발목을 잡는 마의 준동을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도다 선생님은 "불도수행을 관철하면 모든 중생에게 신뢰 받고
모든 중생을 당당하게 지도하는 대경애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리더는 모두의 괴로움을 자기의 괴로움으로 여기고, 모두의 기쁨을 자기의 기쁨으로 여기며
부모형제처럼 헌신적으로 힘써야 합니다.
함께 근행하고 제목을 부르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스승처럼 자기가 선두에 서서 승리의 길을 단호히 개척해야 합니다.
여기에 진실한 인간지도자의 왕도가 있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의 마음 그대로 "일체중생의 동일고"를 이겨내는 창가의 스크럼,
이 학회를 지키고 학회와 함께 걷는 인생이 "자비 중의 대자비" (어서 1467쪽)의 전진입니다.
가장 존귀한 정의의 연대를 한층 강화하고 넓히며 명랑하게 승리해 나아갑시다!
환희와 행복의 '사제의 벚꽃' '승리의 벚꽃'을 유유하게 피웁시다!
신세기
우리의 무대
화려하게
오른손에 철학
왼손에 자비를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