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란,
자신의 삶에 대한 감사함을
중생에게 돌려주는 회향의 한 모습
'상에 머물지 말라!'
부처님은
주는 것에도, 받는 것에도
관심을 갖지 말라고 말합니다.
아난아, 어떤 것이
'보시하는 이가 청정하면
받는 이가 없다.' 는 것인가?
이른바 보시하는 이가
그 상(相)을 취하지 않는 것이니,
즉 몸의 업이 청정하고,
입의 업이 청정하며,
뜻의 업이 청정하고,
바른 생활이 청정하며,
그 소견도 청정한 것이다.
이런 것을 완전히 갖추면
곧 보시한다는 상(相)이 없게 되고
보시한다는 상이 없으므로
곧 받는 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보시하는 이가
어떤 상을 가지고 있으면
곧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업이
청정하지 않고
생활도 청정하지 않으며
소견도 또한 청정하지 않게 된다.
만일 이런 상을 떠나면
곧 보시하는 이와 받는 이가
둘 다 청정하느니라.
『불설분별보시경』
부처님은
청정한 보시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주는 사람이 청정하며,
내 것 네 것의 집착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보시물이 청정하며,
나와 너라는 집착이 없으므로
받는 사람이 청정할 때
청정한 보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지요.
이를 보시의 3청정이라고
말합니다.
더러움이란 달리 말하면
자아에 대한 취착으로 인해
탐욕이 스며드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아상을 버린 보시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
즉 나와 남이라는 집착을 떠난
무주상(無住相)보시를
강조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를 지어 바친
수닷타 장자에게 물었습니다.
"집에서도 항상 보시를 하는가?"
수닷타는, 보시를 항상 하기는 하나
음식이 거칠어서 걱정이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말합니다.
거사여, 거친 음식을 보시하거나
오묘한 음식을 보시하거나
다 같은 결과를 받느니라...
거사여,
만일 거친 보시를 행하되
믿고서 보시하고,
일부러 보시하며,
손수 보시하고,
스스로 가서 보시하며,
생각하면서 보시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보시하며,
업의 과보를 관찰하여 보시하면
마땅히 이러한 과보를 받는다고 관찰하라......
무슨 까닭인가?
지극한 마음으로
보시를 행하였기 때문이니
거사여, 마땅히 이와 같은
과보를 받는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중아함 제39권 155 『수달다경』
믿음을 바탕으로 정성을 다해
보시를 했느냐가 중요하지
보시물의 질은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보시란 무엇입니까?
물질적인 보시가 되었든
아니면 정신적인 보시가 되었든,
그것은 이제까지 이룩해놓은
자신의 삶에 대한 감사함을
중생에게 돌려주는
회향의 한 모습입니다.
내 삶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모든 인연이 나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회향심이 없는 보시는
단순한 기부행위일 뿐
불교신앙인의 보시가 될 수 없습니다.
'업의 과보를 관찰하여 보시하라'
는 말씀엔
내가 지금까지 선과를 받아
삶을 영위해왔기에
이를 다시 선업으로 회향한다는
의미도 들어 있지만,
미래에 이루어야 할 해탈이라는
선과를 위해
선업을 쌓는다는 의미가
더욱 크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불교신앙인의 보시는
그 스스로도 해탈을 하며,
보시 받는 이 또한 해탈로 이끌어줌을
목표로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신용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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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19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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