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642) - 한 여름에 떠난 사람
24절기 중 가장 덥다는 대서(大暑)인 23일, 전국 곳곳이 불볕더위를 기록하였다. 이날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은 29.2도로 1907년 기상관측 이래 111년 만에 서울에서 가장 높은 하루 최저기온을 기록했다. 그 하루 전 안부를 전해온 일본의 지인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서울이 오늘 38도까지 오르는 등 무척 더운 날입니다. 일본도 한국보다 덥다는데 건강하게 여름 이겨냅시다.’ 이를 확인하듯 그 다음날 경북 경산시 하양읍은 39.9도를 기록해 올해 들어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고 일본의 지인이 살고 있는 사이타마(埼玉)현의 낮 최고기온은 41.1도를 나타내 일본 기상관측사상 최고온도를 기록했다. 미국남부는 48도, 북극권도 30도를 넘는 등 북반구 전체가 가마솥이다.
한 달 가량 이어질 것이라는 불볕더위를 에어컨 없이 견디느라 힘이 든다. 서울시장은 선풍기 두 대로 옥탑 방에서 한 달을 지내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중이고 땡볕 현장에서 일하는 교우는 뜨거운 열기를 견디며 작업 중이라니 각기 적절한 방법으로 무더운 한여름을 이겨내자.
친구가 일간지에 제보한 폭염 속 피서 아이디어, 손풍기 동반
혹심한 더위에도 일상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그 중에는 아까운 이웃의 죽음도 들어 있다. 한여름에 떠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하여 삶의 교훈을 새긴다.
1. 무명초처럼 살다간 복순 할머니
지난 일요일, 20여 년 간 사회복지시설 천혜경로원에 노년을 의탁한 이복순(84세)할머니가 세상을 떴다. 평생을 외롭게 살아온 그녀의 삶을 ‘천혜경로원 이야기’(2015년 12월)에서 살펴보자.
‘지금까지 일가친척 하나 찾아온 적이 없는 그야말로 외로운 목순(81)할머니가 이곳에 온지도 벌써 15년이 지났다. 걸핏하면 “나 밥 안묵어라우!”하면서 고집을 부리고 떼론 눈물을 짜곤 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한턱을 내곤 하는걸 보면 마음씨만은 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번 프로그램실에서 영화감상을 할 때 할머니는 관람객 모두에게 500원짜리 아이스케키 한 개씩을 사주었다. 그런가하면 할머니는 새 식구가 들어오면 텃새를 한다. 또 기분이 좋을 때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쓰레기통을 제 자리에 갖다 놓기도 하고 직원들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어서 가서 밥 묵어라”하며 활짝 웃기도 한다.
엊그제 복순 할머니를 위해 반지와 팔찌, 목걸이를 사다드렸다. 할머니가 기분이 좋으면 스스로 그렇게 하듯이 오늘은 머리에 꽃핀을 꼽고 맆스틱 짙게 바르고 게다가 보석(?)으로 몸치장까지 하고 마당으로 나왔다. 새해엔 부디 복순 할머니가 오늘처럼 우리 식구들과 더불어 화평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복순 할머니는 올 때부터 지각이 약간 뒤지고 정신도 온전하지 못한데다가 경로원 생활 중 허리를 다쳐 각별한 보호와 도움을 받으며 22년의 세월을 우리와 함께 보낸 사이, 한 때는 무단외출로 행방이 묘연한 것을 아내가 우연히 광주역에서 발견하여 모셔오기도 한 인연이 있다. 교회의 단골행사인 윷놀이대회에서는 한편이 되어 승패의 애환을 함께 하기도.
한 달 전쯤 뇌경색상태로 입원하였다가 끝내 우리 곁을 떠난 복순 할머니의 장례식을 어제(7월 24일) 오후에 천혜경로원에서 동료 및 직원들과 교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치렀다. 삼배 옷차림으로 상주노릇을 한 강은수 원장은 장례예배를 주관하며 어린아이처럼 순수하였던 그의 명복을 빌고 정성껏 보살핀 임직원의 노고를 치하하였다. 영상으로 그의 생전의 모습을 전하던 박영숙 부원장은 작별의 인사를 나누듯 손을 흔들며 화사하게 웃는 모습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직원과 교우들은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라고 찬송하였다. 그의 별세소식을 듣고 자연스럽게 나온 기도, 하나님! 무명초처럼 살다간 영혼을 소중히 받아주소서.
영상으로 비춰준 이복순 할머니의 어린아이처험 순수한 웃음
오후 2시, 장례식을 마치고 광주시립 영락공원 화잦장으로 향하였다. 직원과 교우 몇이 외로운 곁을 지켰다. 오전에 붐비던 화장장이 오후에는 한산, 오후 3시가 지나자 우리 일행만 덩그러니 남았다. 대기실에서 드린 찬송, 주의 공로 의지하여 주께 가오니 상한 맘을 고치시고 구원하소서. 이어 읽은 말씀,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수골함이 아담하고 예쁘다. 다른 때보다 좋은 것 같다고 말하니 외로운 복순 할머니를 위하여 특별히 예쁜 것을 골랐다는 경로원측의 설명이다. 들풀처럼 이름 없이 살다 가는 이여, 장례식장의 화사한 꽃 장식처럼 산뜻한 수골함의 외양처럼 영원한 나라에서 평화와 안식을 누리소서.
2. 거친 세파에 웃음과 품격을 선물한 노회찬 의원
지난 월요일 오전, 인터넷에 노회찬 의원이 어느 아파트에서 투신했다는 자막이 떠 깜짝 놀랐다. 그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드루킹으로부터 불법자금을 수수하였다는 뉴스를 접하여 다소 안타까운 마음이었지만 여러 의원들과 미국행에 오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언제 돌아와서 그런 충격을 안겨주다니. 언론과 세간의 여론 역시 비탄과 애도의 물결이다. 혼탁하기 이를 데 없는 한국의 정치풍토에서 여유 있는 위트와 촌철살인의 기지를 발휘하며 한 가닥 청량제 역할을 한 그를 향하여 언론에서는 ‘노동자·서민의 대변자’ ‘진보정치의 아이콘’ ‘울림이 컸던 말의 품격’ 등 생전의 활동을 기리는 보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노회찬 의원의 비보를 다룬 한 칼럼을 소개한다.
‘어제 아침 '촌철살인'이란 말이 난데없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 1위에 떠올랐다. 노 의원 부고(訃告)를 다룬 신문기사들이 그에 대한 인물평에서 한결같이 이 말을 썼기 때문이다. 그는 대중이 듣고 싶은 말, 특히 권력형 부패를 예리한 비유로 비판하는 데 남달랐다. 그런 그가 최근 특검에서 불법 자금 수수 혐의가 포착된 이후 "돈 받은 일이 없다"고 부인해왔다. 정의를 외쳤던 그로선 이 말을 뒤집고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에 누구보다 가책을 느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한 정치인은 "노회찬은 염치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했다"고 했다. 노 의원 빈소에는 이틀 새 수천 명의 시민들이 조문을 다녀갔다. 대부분 방명록에 애도의 뜻과 함께 미안하다, 슬프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노회찬 같은 사람도 깨끗할 수 없는 정치자금의 현실, 자신이 진 말빚에 고민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 사람들의 연민을 샀을 것이다. 노 의원이 잘못을 깨끗하게 시인하고 사과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합당한 처벌을 받은 뒤에 그 법의 현실적 개선에 앞장설 수는 없었던 것일까. 한때의 비난은 있었겠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와 한국 정치에 더 큰 기여를 하는 길은 아니었을까. 이제는 노 의원의 명복을 빌 뿐이다.’(조선일보 2018. 7. 24 만물상에서)
빈소에서도 환하게 웃는 모습의 노회찬 의원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접하며 여러 가지 상념이 떠오른다. 평생을 정직하게 의롭게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남은 때를 정정당당하게 살아가리라고 다짐할 수 있을까를 자문하며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옷깃을 여민다.
첫댓글 따뜻한 글..고맙습니다.
뒷모습이 예쁜 삶이기를 꿈꾸지만 마음먹은대로 살아지지 않아 고민입니다.
저는 언제 철들죠?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