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가져온 『시와산문』의 비전을 보다
김양숙
문학지가 창간된 지 30년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내포할까? 한 그루의 나무와 비교해 본다면 30년이란 시간은 나무가 어느 한 곳에 뿌리내리고 자라는 동안 많은 것들을 아우르고 품어 커다란 그늘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며, 그늘은 많은 생명체에게 비바람을 피하게 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만큼 자랐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시와산문』은 30년 전 광화문에 뿌리를 내리고 현재 광화문에 우뚝 서 있으며 광화문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모든 회원이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랐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문학에서 소통의 문제는 중요하다. 독자와 저자의 소통에 근거를 둔 교감交感의 장으로 문학지의 역할을 본다면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하이데거의 철학적 명제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문학지는 ‘시와 산문의 집이다’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시와 산문은 문학적 장르를 말한다. 그리고 독자와 저자의 소통에 근거를 둔 문학지와 문학지 발행인으로서의 역할을 나누어 본다면 전자의 한 번의 휴간 없이 30년 동안 발행되었다는 것은 한국 문단사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그리고 후자의 30년을 견뎌왔다는 것은 온갖 비바람을 온전히 몸으로 받아내어 몸 안에 30개의 나이테를 새겨 넣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30년을 견뎌온 문학지와 그 문학지의 발행인은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다.
한국 문단사를 살펴보면 과거나 현재 모두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떤 문학지는 새로 태어나기도 하지만 유수의 문학지는 폐간이라는 상황을 맞기도 한다. 특히 발행인이 작고하거나 발행인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문학지는 발행을 이어가지 못하고 아예 폐간되는 안타까운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계간 『시와산문』은 발행인인 이충이 선생님의 작고에도 불구하고 『시와산문』을 이어받은 장병환 이사장님은 이충이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이충이 선생님의 유지를 받들어 좋은 작품을 쓰면서도 지면을 할애받지 못하는 문학인들을 위한 문학지로 거듭나고 있으며, 희생과 열정으로 『시와산문』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 한국 문단에 우뚝 서는 문학지가 되었다. 그리고 우수한 작품을 쓰는 후배들의 등용문인 시와산문 문학상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신인 발굴에 힘쓰고 있으며 바람대로 신인들이 대거 진입하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즉 시와산문 신인문학상 또한 문학상으로서 명실공히 한국 문단에 신인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시와산문』을 창간하신 이충이 선생님의 업적과 문학정신을 기리고자 이충이문학상을 제정하여 현재 시행되고 있음은 우리 모두에게 뜻깊은 일이다.
『시와산문』의 비전은 변화에 있다고 본다. 오늘날의 『시와산문』이 있기까지 우여곡절의 고비를 넘어오면서도 열정을 가지고 물적 또는 심적 고통을 견뎌낸 장병환 이사장님을 뵈면 오래전 품질 좋은 귤을 만들려고 접붙이기하면서 밤을 꼬박 새우던 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아버지는 한 뼘 정도 키운 탱자나무에 생채기를 내어 다른 귤나무를 접목하고 상처가 아무는 동안 모든 고통을 감내하며 기다리셨다. 그리고 접목한 나무의 친화된 접목 부위에서 유합癒合조직 세포들이 한 덩이로 자라날 때까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노심초사勞心焦思 하시며 원하던 한라산을 닮은 한라봉이라는 귤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시와산문』을 맡아 여러 식구를 아우르며 인내와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비전을 위한 변화로 접목 작업을 감당해 내신 장병환 이사장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리고 장병환 이사장님께서 시와산문을 맡지 않았다면 지금의 『시와산문』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어느 시대나 힘에 의한 압제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항상 존재해 왔다. 그러나 문학인들은 굴복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부여된 책무인 작품을 빚어내어 발표함으로써 문학인들의 존재론적 의무를 해왔다. 특히 현시대는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문학의 힘이 더욱 중요한 시대이다. 그리고 그 소리를 담아내는 발표의 장으로서의 문학지가 절실한 시대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와산문』은 사명감을 가지고 제 본분을 다하고 있다. 즉 『시와산문』은 성공적으로 접목이 되었고 원하는 과실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는 장병환 이사장님의 사랑과 열정 그리고 인내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어디에 내놓아도 당당한 문학지로 대형서점의 맨 앞줄에서 만나는 『시와산문』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한 인연으로 인해 한 지역이 또는 하나의 잡지가 삶의 상징이 되는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는 광화문에서 『시와산문』을 발행하시는 이충이 선생님을 만나면서 광화문은 문학의 고향 같은 의미가 있으며 『시와산문』이라는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진심으로 30주년을 축하드리며 계속하여 변화와 비전으로 문학지를 주도하는 문학지로서 50주년이 되어도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작품들을 담아내는 소통의 장이 되길 바란다. 100주년이 되어도 사람 냄새나는 『시와산문』이라는 커다란 나무가 되어 우뚝 서 있기를 희망한다.
위험한 첫걸음이 있었다
김명아
모든 것의 시작은 위험하다. 그러나 무엇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니체-
2024년 3월, 30주년을 맞이하는 계간 『시와산문』. 그 위험한 첫걸음을 고 이충이 선생님께서 내딛으셨다. 1994년 3월, 창간호를 시작으로 2020년 6월, 지병으로 소천하실 때까지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서 인간 삶의 조화로움을 지향하는 문학전문지를 한 호도 빠짐없이 가꾸어 주심으로 ‘먼저 가는 자 빛으로 남’으심을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2대 발행인이신 장병환 이사장님께서는 『시와산문』의 발전을 위해 2016년부터 ‘제1회 계간 『시와산문』 신인문학상’을 후원해주심으로 신인들에게 등단의 기회와 함께 계간지의 지면을 할애해 주시고 계신다. 많은 어려움이 코로나 시국에 있었지만 『시와산문』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헌신해주심으로 6월이면 ‘제9회 신인문학상’ 시상식을 갖게 된다. 또한 이충이 선생님을 기리기 위해 2022년 『이충이 전집Ⅰ•Ⅱ』권을 발행해 주셨으며 ‘이충이 문학상’을 제정하셔서 오늘에 이르렀다. 2024년 12월에 제3회 이충이문학상 시상식은 진행하게 될 것이며 앞으로도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이끌어 주시리라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와산문』은 그동안 함께해주신 ‘시와산문문학회’ 선생님들의 수고와 헌신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함께 붙잡아 주신 손길들이 『시와산문』을 지켜주셨음에 마음 깊이 감사드리며 오래 기억할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시와산문』의 기둥이 되어 주셨으며 앞으로 나아갈 힘의 근원과 미래가 되어 주셨음을 30걸음으로 청년이 된 『시와산문』은 벅찬 기쁨으로 행복한 인사를 전한다.
과거를 알려거든 지금 일어나는 내 모습을 보고 미래를 알려거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을 보라고 했듯이 우리의 삶은 무의식적으로 반복되고 저항값 없이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다. 삶의 모든 것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라고 했듯이 글을 쓰며 승화시킴으로써 오는 기쁨으로 절제된 언어와 몸짓으로 우리는 『시와산문』에 모여 있음을 안다.
‘모든 일은 계속하면 과정이 되고 그만둔다면 실패로 남는다’는 것을 기억하며 삶이 힘들 때 시간은 천천히 가고 길다고 했으니 긴 터널을 지나가는 동안 드러내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둘 표출될 때마다 사유와 의미의 다중성은 모두 발현되는 지점도 다르고 시적 풍크툼처럼 자신의 경험(환경)에 의해서 받아들임 또한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난청이 없기를 기도하며 서로의 자리에서 『시와산문』을 응원해주시고 지지해주시길 간절히 바라며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앞으로도 ‘계간 『시와산문』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할 신인들과 ‘이충이문학상’ 공모전을 통해 만나 뵐 원로작가분들의 많은 응모를 기대하며 들숨과 날숨 사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도약의 2024년이 되기를 희망한다. 선생님들께서 『시와산문』을 밝혀주시는 빛으로서 앞으로도 건안 건필하시길 기원하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광화문 애가愛歌
- 『시와산문』 창간 30주년을 축하하며
정승화
좁고 어두운 집에 맨발로 불을 켜는 이, 어떤 체온은 봄의 날개 같아라
1994년 3월, 휘파람을 품은 광화문의 살갗이 환했다
한 번도 등을 보인 적 없다는 듯 소년의 첫 고백이
미끈한 얼굴로 삼월의 그 환한 통로로 돌아오자
프로메테우스의 첫 불이 타올랐다
태초의 겨울 모서리로 마른 문장을 풀어내며
그믐이 잃어버린 자정의 눈동자로 수사를 좇을 때
밀도가 다른 말을 끌어안고 뜨거운 내면을 새기며
30번의 태몽을 꾸었다
쌓인 시간 위로 시인들이 모여든 내수동의 낮과 밤
인문의 길을 열며 말의 봉인을 풀었다
실명한 손가락이 눈을 뜨고 어둠의 상처를 핥으며
허기진 봄바람과 몸을 섞는 문장 안으로 들어가면
언제나 북극성이 떴다
빛을 품고 빠져나올 수 없는 문을 여는, 깨끗한 손*으로 불을 켜는 이
복화술을 겹쳐 물음표로 던져진
광화문의 유일한 섬에 떠 있는 30개의 눈부심
계절마다 세상을 편식하며 첫 맨발의 섬,
어둠을 삼킨 빛으로 오래 떠 있다
*고 이충이 시인의 시 깨끗한 손 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