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사란 사악(邪惡)한 기운을 막고 잡귀(雜鬼)나 마귀(魔鬼) 등을 쫓는 것으로 벽사 관념과 현세에 온갖 복(福)을 누리고자하는 복락(福樂)주의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의식(意識) 속에 뿌리깊게 자리 잡아왔다. 또한 불교나 도교 등과도 융합하여 독특한 민간 신앙을 형성하였으며 이런 사상적 배경 속에서 조상들은 신령스러운 힘이 있다고 생각되는 물건을 몸에 지니거나 부적(符籍)을 써서 집안에 붙여 놓기도 하고, 벽사용 그림을 집안에 걸어 놓아 액을 막고 복을 누리고자 하였던 것이다.
민화 중에는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주술적인 의미가 부여된 것들이 상당수 있는데, 세화(歲畵)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세화(歲畵)는 조선시대에 새해를 맞이하여 궁중은 물론이고 사대부들의 저택과 일반 서민의 집에 귀신을 쫓거나[축귀(逐鬼)] 복을 구하는[구복(求福)] 의미로 그려 대문에 건 그림으로 대표적인 벽사 그림이다.
벽사 상징의 대표적인 민화로 호랑이와 용을 들 수 있으며, 이 외에도 해태도 · 신구도(神狗圖) · 사신도(四神圖) · 사령도(四靈圖) · 천계도(天鷄圖) · 치우도(蚩尤圖) · 처용도(處容圖) · 종규도 등이 대표적인 벽사용 민화로 꼽힌다. 우리 나라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매년 정초가 되면 해태 · 개 · 닭 · 호랑이를 그려 붙였다는 기록이 있다. 해태는 화재를 막기 위해 부엌문, 개는 도둑을 지키기 위해 광문, 닭은 어둠을 밝히고 잡귀를 쫓기 위해 중문, 호랑이는 대문에서 각각 악귀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을 가진 벽사용 그림이다. 때로는 네가지 동물을 그려서 붙이기도 하고 목판으로 제작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벽사용 그림들이 대중적인 민속신앙의 한 방편으로 사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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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 그림 |
닭 그림은 전통적으로 호랑이 그림과 함께 정초에 벽사초복의 뜻을 담아 대문이나 집안에 붙였던 세화의 일종으로 직접 그리거나 목판으로 찍어서 사용하였다. 닭은 새벽을 알리는 길조로 대접을 받아왔으며 수탉이 울면 동이 트고 동이 트면 광명을 두려워하는 잡귀가 모두 도망친다는 뜻에서 벽사의 뜻이 담겨져 있는 가금(家禽)으로서도 소중히 여겼다. 또한, 수탉의 붉은 볏은 그 이름이나 생김새에 있어서 벼슬과 통하므로 벼슬을 얻는다는 뜻이 있고 암탉은 매일 알을 낳으므로 자손의 번창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닭 그림 가운데는 맨드라미가 함께 그려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닭과 맨드라미가 서로 어울려 '관상가관(冠上加冠)' 이라는 길상적 문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관상가관이란 '관 위에 또 관을 더한다'는 뜻으로 입신출세의 최고 경지에 이름을 말한다. 이밖에 수탉이 하늘을 보고 크게 우는 모습과 모란을 함께 그려 부귀공명을 뜻하는 벽사그림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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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 그림 |
호랑이가 미술의 소재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은 선사시대부터였다. 경남 울주군(蔚州郡)의 반구대(盤龜臺) 암각화(岩刻畵)에 보이는 호랑이는 현재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오랜 것이다. 이처럼 호랑이가 선사시대부터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은 단순히 수렵의 대상이었다기 보다는 주술적인 의미를 지니거나 신앙의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호랑이는 원래 병귀(病鬼)나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힘이 있는 것으로 믿었다. 때문에 말라리아에는 호랑이 고기를 삶아 먹거나 호랑이 그림을 환자의 등에 붙였으며 독감에는 '범 왔다'라는 소리를 3번 외쳐 도망가게 했다고 한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매년 정초가 되면 궁궐과 여염집에서 벽사의 수호신으로 호랑이를 그려 대문이나 집안 곳곳에 붙였다. 호랑이 그림이 가진 의미를 호축삼재(虎逐三災)라 하는데, 호랑이는 영험스러운 짐승이라서 사람에게 가져오는 화재(火災), 수재(水災), 풍재(風災)를 막아주고 병난(兵難), 질병, 기근의 세 가지 고통에서 지켜주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벽사의 뜻으로 그려지는 호랑이 그림 중에 대나무 숲을 배경(竹林出虎)으로 그려지는 것이 있다. 이 그림 속의 호랑이는 대개 포효하는 모습이거나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악귀를 향해 정면으로 도전하여 물리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배경이 되는 대나무도 벽사의 의미를 지니는데 대나무가 타면서 터지는 소리에 귀신이 놀라 달아났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처럼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한 호랑이 그림을 '호랑이는 죽을 때가 되어서만이 대나무 숲을 찾는다'는 통설이 아닌, 벽사의 의미로 해석되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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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구도(神狗圖) |
도둑을 막는 그림으로 개를 그린 그림을 신구도라고 한다. 신구도에서 개는 용맹스럽고 다소 과장된 모습을 하고 있다. 도둑을 지키는 축도(逐盜)의 부적 같은 일종의 벽사 그림이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네 눈·네 귀를 가진 모습으로 표현되는 예가 대부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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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그림(龍圖) |
상상의 동물인 용(龍)은 호랑이와 함께 우리 민족의 신앙화된 영물로 하늘과 바다를 관장하며 인간을 수호하는 무한한 힘을 가진 대표적인 벽사의 동물이다. 특히 용호오복(龍虎五福)이라 하여 용호도(龍虎圖)를 대문에 붙이면 집안에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는데, 이러한 용호도를 문배그림이라 하였다.
특히 용은 왕권의 핵심인 임금을 상징하여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 덕을 용덕(龍德), 지위를 용위(龍位), 앉는 의자를 용상(龍床), 의복을 용포(龍袍)라 하였다. 절대권자인 임금을 용으로 비유하게 된 사연은 용에게는 인간과 국가를 보호하고, 바다의 풍랑과 비를 다스리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또한 창용교자(蒼龍敎子)라 하여 부모들은 자식을 잘 교육시켜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하기를 기원하였고, 용이 승천하는 곳으로 알려진 등용문(登龍門)은 인간들의 출세를 의미하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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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도(靑龍圖) |
용은 오방(五方), 오색(五色)으로 동의 청룡, 남의 적룡, 서의 백룡, 북의 흑룡과 중앙에 황룡을 나타내고 있어 모두 다섯 용, 즉 오룡이 등장한다. 이 가운데 청룡이 가장 많이 그려지는데 구름 속에서 얼굴과 반신을 나타내기도 하고 때로는 S'字'形의 전신이나 한 쌍의 S'字'形 쌍룡이 그려지기도 하였다. 청룡은 기우제의 상징이므로 사계절 가운데 봄을 관장하여 비를 내려 풍년을 기원하는 농악의 선두 깃발이기도 하였다. 또한 무속이나 설화 등에서 용왕의 상징으로 청룡을 자주 그렸으며 무관들의 칼이나 도자기와 같은 공예품 등에서도 청룡도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어 인간에게 복록과 같은 상징을 가진 친숙한 그림으로 변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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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도(黃龍圖) |
무한한 능력을 가진 용은 천후(天候)를 다스리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농경문화권에서 군왕과 용으로 자연스럽게 결합되었다. 용은 권위와 조화의 초능력을 가진 신령스런 동물로 임금을 상징하였다. 특히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향 가운데 중앙을 의미하는 황룡에게는 임금과 같은 상징성이 부여되었다. 불교에서도 수많은 수호신으로 다양한 용이 등장하는데 석가모니에 상응하는 용으로는 반드시 황룡을 그리고 있다. 또 용의 발톱의 수가 중국은 다섯 개인 오조룡(五爪龍), 조선에는 네 개인 사조룡(四爪龍), 일본은 세 개인 삼조룡(三爪龍)으로 그려지기도 하는데 종교화나 기우제, 민화 등에 나타나는 황룡은 오조(五爪)로 그려 용 가운데 절대적인 으뜸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한편, 벽사용 민화 가운데 사신도(四神圖)와 사령도(四靈圖)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신도는 청룡 . 백호 . 주작 . 현무를 말하고, 사령도는 용 . 기린 . 봉황 . 거북과 같이 신령스러운 네가지 상징물을 말한다. 사신도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동 . 서 . 남 . 북 네 방향을 수호하는 방위신으로 나타나지만, 중국에서는 4계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주작은 봉황을, 현무는 거북을 말하며 사령과 사신도의 차이는 기린과 백호의 등장이 각기 다른 차이점이다. 여기에서 기린이란 동물원의 목이 긴 초식동물이 아니라, 도교(道敎)의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신령스러운 영물의 하나이다. 기린의 수컷을 기(麒)라 하고 암컷을 린(麟)이라 하는데 몸은 큰 사슴 같으며 황색을 띠고 있다. 꼬리는 소와 같으며 머리는 이리의 모습이며 뿔은 한 뿌리에서 돋아나고 발은 말의 다리와 같다고 하여, 사불상(四不相) 동물이라고 한다. ≪시경(詩經)≫의 역주에서는 '발이 있는 것은 차기 마련이며, 이마가 있는 것은 들이받기 십상이고, 뿔이 있는 것은 부딪치고자 하는데, 유독 기린만은 그렇지 아니하니 어진 성품의 동물이라 할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기린은 인(仁)을 머금고 의(義)를 품고 있어 소리는 종려(鐘呂)에 들어 맞고, 걸음걸이는 법도에 맞으며 살아있는 벌레는 밟지 않고, 돋아나는 풀은 꺾지 않으며, 함정에 빠지지 않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어진 임금이 나타나 태평성대가 오면 스스로 나타난다는 기린은 털달린 360여 짐승 가운데 우두머리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벽사용 민화류에는 종규, 치우, 처용 등의 인물이 등장한다. 종규는 중국의 역귀(疫鬼) 가운데 하나로 당나라 현종이 꿈에 본 형상을 오도자(吳道子)를 시켜 그렸다고 한다. 검붉은 얼굴에 검은 모자, 검은 수염이 있고 검은 관복에 군화를 신었다. 왕방울 만한 눈이 툭 튀어 나와 있는데 출입문에 붙여 악귀를 방비하고 눈이 아픈 어린이는 눈을 마주치면 눈병이 낫는다는 풍습도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오월 단오때 치우(蚩尤)부적을 사용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치우는 군신(軍神)의 일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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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히 배우고 갑니다...
늘~~평안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