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장 1 - 8절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마가복음은 마가라는 사람이 기록한 성경입니다. 성경을 찾아보면 의외로 마가에 대한 정보가 꽤 많은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우리는 120명의 사람들이 오순절에 성령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 그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했던 곳이 마가의 다락방이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과 함께 승천 하신 후에 제자들이 모여 합숙을 했던 곳도 바로 마가의 집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20명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도할 정도였기 때문에 엄청난 대저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집을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마가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강직한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이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1차 전도 여행을 갔다가 도중에 낙오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일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크게 다퉈서 결국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마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 개의 복음서 중에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기록되었기 때문에 다른 복음서들은 마가복음의 내용을 참고한 흔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태나 요한은 예수님의 12제자에 들어갔던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가의 글을 참고했을 정도로 마가는 예수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마가는 베드로의 친척이었고 베드로와 함께 사역을 했던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베드로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고 들은 내용을 마가는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가복음을 베드로 복음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특별히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위해서 기록한 성경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복음서와 큰 차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에 있는 예수님의 족보도 마가복음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데 유대의 역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로마인들에게 그런 말씀들이 크게 유익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생략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유년 시절에 있었던 사건들도 과감하게 생략이 되어 있고 예수님의 출생에 대한 기록도 이런 이유 때문에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로마에 있던 성도들은 네로 황제의 기독교 탄압으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에게 진리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할 필요성이 시급했고, 어떤 고통 속에서도 믿음의 도를 버리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신 종의 모습을 보여 주신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한 복음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에 대한 기록도 그런 상황들 때문에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제사장 가문의 사람이기 때문에 목수의 자녀였던 예수님보다는 세상적 기준으로 보면 금수저에 가까운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신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살아갔던 것입니다. 복음은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이기 때문에 그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고통에 주눅이 들고, 핍박에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사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우리의 삶이 메뚜기나 석청을 먹어야 하는 형편일지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복음이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마가는 세례 요한에 관한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 사람들이나 지금 우리도 이런 과정들을 통해 복음을 듣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큰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절대 우리가 당하게 될 고통이나 핍박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모든 고통과 핍박 중에서도 우리가 굳건히 이기는 사람이 되려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 세례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까지 내려 오셨는데 성령 세례를 안 받고 있다면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물로 세례를 주는 것으로 끝날 문제였다면 세례 요한이 있는데 무엇 하러 예수님까지 이 땅에 내려 오셨겠습니까?
이 세상에 수많은 세례 교인들이 있지만 기독교가 세상에서 빛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보면 성령 세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도 깨달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는 능력이 되고, 소망이 되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인데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유익들을 받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바람 한 번 불면 날아가 버리는 쭉정이 같은 믿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성령 세례를 받은 사도들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면 성령 세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100%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인들 앞에서 쩔쩔 매던 베드로가 공회원들 앞에서 설교를 하고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이렇게까지 말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게 되면 더 이상 예수님 때문에 당하게 되는 고통은 고통이 되지 않고 오히려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례 교인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고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신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서 깨어 근신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생각을 주장하고, 내 마음을 주장하고, 내 삶을 주장하고, 내 몸을 주장하는 것이 성령 세례를 받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계획이나 뜻보다 하나님의 계획이나 뜻을 더욱 귀하게 여기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 시키는 모습! 이런 모습이 성령 세례를 받는 사람의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아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고, 심지어는 고통 중에도 기뻐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성령 세례를 받는 복된 하루가 되시고 우리를 주관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해서 승리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