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지리산”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국가명승지 지정을 앞둔 경남 함양군 지리산의 ‘용유담’(龍遊潭)에 이른바 지리산댐(문정댐)이 건설될 위기에 봉착해 있기 때문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과 휴천면 경계지역에 놓인 용유담 인근에 지리산 홍수조절용댐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리산댐은 9898억원을 들여 높이 141m, 길이 896m, 총저수량 1억7000만t의 규모로 연간 1억2100만t의 홍수를 조절하는 댐으로 밝혀져 경남환경운동연합, 지리산댐 백지화 함양군·마천면 대책위원회, 지리산종교연대, 지리산생명연대 등이 댐 건설 반대운동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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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유담은 지리산 칠선계곡, 한신계곡, 백무동, 전북 남원 만수천 등지에서 흘러온 물이 합류되어 흐르는 함양 엄천강 상류의 계곡 속 연못이다. 지리산댐이 들어서면 용유담은 물론 백무동, 한신계곡 등의 길목이 가로막혀 지리산 북부지역에서 천왕봉으로 향하는 길목이 모두 댐으로 가로 막히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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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면과 마천면 인근 주민들은 용유담 인근 송문교에서 매일 낮에 댐을 반대하는 1인시위와 매일 저녁 촛불문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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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유담 상류는 지리산 반달곰의 주요 생태통로의 하나이며, 멸종위기종 1급인 수달의 서식지다. 이곳이 댐 건설시 수몰된다. |
이들은 지난 4월 4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지리산댐의 실체는 높이 50층 빌딩 높이와 비슷한 국내 최고 높이며, 길이도 896m나 돼 진주 남강댐(1126m)에 이어 국내 두 번째”라며 “지리산의 지형적 특성을 고려하면 홍수조절용이 아닌 다목적댐”이라고 말했다. 수자원공사가 부산지역에 식수를 제공하기 위해 건설하고 잇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댐 공사가 ‘홍수조절용’으로 둔갑한 이유는 ‘환경영향평가’를 피하기 위함이라고 환경단체들은 판단하고 있다.
지리산댐은 1999년부터 추진되다가 전국적 반대운동으로 2001년 말 댐건설장기계획에서 제외되었으나, 2002년 이후 함양군수가 주민숙원사업으로 지리산댐 건설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지리산댐 건설논란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2011년 12월 댐 예정지역인 함양 마천의 용유담을 명승으로 지정하겠다고 예고해 댐 건설계획에 차질이 생겼으나, 함양군이 다시 ‘댐 건설’을 이유로 명승지정 철회를 요구해, 문화재청은 용유담을 일단 명승지정에서 제외하고 재조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댐이 완성되면 구산선문의 최초사찰인 실상사에서 약 1Km지점까지 수몰되며, 이 때문에 안개로 인한 습기로 철불 등 성보 훼손의 우려가 있다. 또한 벽송사, 서암, 금대암, 영선사등의 진입도로인 남원~산청구간의 60번 국도가 수몰되어 사찰이 고립될 가능성도 높다. 게다가 각 사찰의 목조 건축물과 벽송사의 목장승도 훼손되고, 인근 15개 사찰의 부도, 탑 등의 피해가 예상되어 불교계의 반발도 거세다.
한편 용유담은 마적도사와 9마리 용에 관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계곡이 비경을 이룬 곳이며, 남명 조식 일두 정여창 선생 등 조선시대 대유학자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문화유적지이기도 하다.
용유담의 이러한 가치는 지난 2006~2008년 경상대 경남문화연구원에서 실시한 ‘전통명승 동천구곡(洞天九曲) 학술조사’를 통해 확인되었고, 이 학술조사보고서는 “지리산 용유담이 명승 및 천연기념물로서의 학술적 가치가 매우 커 명승지정을 통한 보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지리산댐 문제와 관련해 많은 단체들이 결집되고 있으며, ‘위기의 지리산 지역대책위’를 구성해 전국적 차원에서 지리산을 구하기 위한 ‘국민행동’을 모색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용유담 인근 송문교에서 1인시위와 촛불문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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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염 전 대사 |
현재 남원 실상사의 연관 스님과 가톨릭농민회 회장이었던 임봉재 씨와 더불어 ‘지리산 생명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성염 (돈보스꼬)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의 자택 역시 문정댐 예정구역이다. 성염 전 대사는 1995년에 경남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에 집을 마련하고, 퇴직 후 2007년부터 ‘귀촌’해서 지리산에 자리잡았다.
성염 전 대사는 지리산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을 번역하는데 몰두하고 있는데, “지리산이 민족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이 산 가까이 있고 싶었다”고 전했다. ‘지리산을 지키려는 모임’ 회원이기도 한 성염 전 대사는 그동안 지리산 올레길을 걷고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운동 등 생태계 보존운동에 참여해 왔으며, 특히 2002년에 이념상으로 서로 달랐던 토벌군과 산사람(빨치산)에 대한 뱀사골 합동위령제에서 가톨릭교회를 대표해 기도하면서 좌우통합을 빌기도 했다.
‘지리산종교연대’에도 참여하면서, 지리산 천일순례를 하면서 생태계 보존과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앞장서기도 한 성염 전 대사는 “지리산은 동학과 한국전쟁을 전후한 민족의 아픔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어머니 품 같은 이 산자락으로 피해 왔다가 대학살을 당한 산”이라며, 이곳에 문정댐이 만들어지면 “산자락의 다랑이 논에 기대 살던 약자들이 다시금 이 땅에서 쫓겨나야 한다”면서 안타까와 했다.
한편 지리산 지역에는 한봉을 치는 사람들이 많은 데, 최근 벌들이 전멸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가을이면 수없이 날아다니던 고추잠자리도 예년에 비해 1/10밖에 볼 수 없고, 이미 개구리 소리도 예년에 비해 절반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생태계 파괴를 우려했다. “지천이던 나비를 볼 수 없는 지리산이다. 그런데 다른 지역은 어떻겠느냐”며, “이 마당에 50층 빌딩의 높이의 댐이 들어선다면 지리산의 생태파괴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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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상사 철불 |
특히 턱밑까지 수몰될 위기에 몰린 실상사의 철불을 가리키며 “이 철불은 백두대간의 기운이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을 바라보고 세워졌다”며 “그동안 홍수도 없었던 이곳에 홍수조절용으로 댐을 만든다고 하는데, 이는 재해방지를 위한 건설사업은 법적으로 환경영향평가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수자원공사가 꼼수를 부리는 것”이라며 한탄했다.
그러나 이 지역 원주민들은 대부분 댐건설에 반대하지 못하는데 “이들은 6.25의 경험 때문에, 감히 관에서 하는 일을 반대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수자원 공사가 ‘인공호수’를 만드는 이 공사를 강행하려는 것은 “국민복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토건업자들을 위해 산에서 4대강 사업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성염 전 대사는 “이제 당신의 내신 한 줌 피조물, 이 인간이 당신을 찬미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나오는 첫 구절을 인용하며 “이 세계가 우연의 산물이 아니고 하느님의 소중한 말씀과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인간이 못하는 짓이 없다”고 전했다.
이어 “숱한 시인들이 시에 대한 영감을 얻고 있는 이 지리산에 댐이 만들어지고, 그 삶의 흔적들이 물속에 들어가고, 실상사가 폐사가 될 것 같아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 이 지리산은 둘레길을 걷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 탐욕스런 정권이 자연를 파괴하려고 드니, 지리산을 아끼는 우리 모두가 나서서 댐 공사를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를 위해 먼저 문화재청의 용유담 명승지정을 주장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