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인 막는 펜스가 불법? 잘못 펜스 쳤다가 벌금까지 낸 사연
[Remark] 불법 펜스 친 강남 아파트… 왜?
서울 강남권 신축 아파트들이 공공보행통로에 외부인 출입을 못하도록 펜스를 치고 있어 지역 내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공공보행통로는 지구단위계획에서 대지 안에 일반인이 보행에 이용할 수 있도록 조성해 24시간 개방된 통로를 말합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 들어서는 공공보행통로는 인근에 있는 공원이나 학교 등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입주민뿐 아니라 공공성을 위해 외부인에게도 개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남의 한 신축 아파트가 공공보행통로를 이용하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무단으로 펜스를 설치한 것이 적발돼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해당 아파트는 2020년 5월 철제 담장 759m가 무단 증설된 사실이 발견돼 위반건축물로 등록됐으며, 지자체에서 시정을 촉구했으나 위반사항이 계속되면서 무단 증축을 주도한 당시 조합장은 공동주택관리법 위반으로 벌금을 100만원까지 선고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해당 아파트 측은 공공보행통로를 이용하는 외부인들로 인해 입주민의 사적 영역이 심각하게 침해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는 해명인데요. 특히 단지 인근에 대모산이 있어 등산객의 잦은 출입으로 몸살을 앓았다는 변입니다. 이 외에도 강남 신축 아파트 몇몇 단지에서도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펜스 무단 증축을 한 사례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Remark] 공공시설에서도 통행로 차단 갈등 불거져
하지만, 통행로와 연관된 갈등은 비단 주거시설뿐만은 아닙니다. 최근에는 서울시 중구청이 서소문동 공영주차장 부지에 소공동 행정복합청사를 신축하고자 후문 부출입구인 공공보행통로를 폐쇄하기로 하면서 일대 주민 및 상인들과의 갈등이 불거졌습니다. 특히 해당 부지와 맞닿아 있는 부영빌딩 입주 상인회의 반발이 컸는데요. 이 보행로를 폐쇄하면 부영빌딩으로의 접근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면서 매출에도 심각한 타격이 생길 것이란 우려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부영빌딩 내 6000여 명에 달하는 입주사 및 임직원들의 불편함과 안전 문제도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부출입구가 사실상 주출입구 역할을 하고 있던 터라 화재 등과 같은 갑작스러운 재난이 발상하게 되면 대피로나 소방차 진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안전사고 대비도 어렵다는 의견입니다.
이에 대해 중구청은 총 공사기간 28개월 중 10개월은 안전상의 이유로 통로를 막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인데요. 다만 공사 기간 중 통행로 확보가 가능하면 유동적으로 펜스 위치를 조정해 통행로를 확보하고, 상가 및 우회 진입로 안내판을 추가로 설치해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Remark] 공공보행통로 막는 행위… 법적 제재 가능할까?
사유재산 침범 등의 이유로 아파트 단지 내 공공보행통로 이용을 차단하는 현 상황에 대해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여론조사 애플리케이션 ‘서치통’이 국민 31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62.94%는 외부인의 아파트 통행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경우에 따라 통행로를 막을 수 있다는 답변은 37.06%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현 공동주택관리법상 아파트 내 공공보행통로에 대한 규제가 마련돼 있지 않고, 공공보행도로가 사유재산으로 분류돼 있어 통제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앞서 강남 아파트에서 설치한 불법 펜스 또한 위반 건축물로 등록돼 있으나, 꽤 오랜 시간 시정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에 최근 정치권에서는 이행강제금 카드를 꺼내 들었는데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르면, 지구단위계획을 위반한 건축물에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향후 이 법이 통과되면 펜스 설치와 같은 지구단위계획에 따른 조치 명령을 위반할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난해 초 건물 사이 통행로 차단은 권리 남용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해당 사례는 A씨가 자신의 대지와 건물이 B씨 건물 사이에서 오랫동안 통행로로 사용돼 왔으나, 어느 날 갑자기 펜스를 설치하고 통행료를 요구한 사건이었는데요. 대법원은 A씨가 토지 매입 당시 이전 소유자가 토지 일부를 통행로로 무상 사용하도록 했다는 점을 알고 샀다는 측면에서 사용료는 받되, 통행금지는 하면 불가하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Remark] 통행권 VS 재산권 논쟁… 해결 방법은?
공공보행통로의 갈등은 사실 살펴보면 공공 통행권과 사유 재산권 보장 간의 충돌이라고 보여집니다. 아파트 주민 입장에서 보면 외부인이 단지 내 시설을 아무렇게나 사용하거나 소음을 일으키고, 쓰레기를 투척하는 등의 행동으로부터 사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펜스를 설치한다고 하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보통 아파트라면 공공보행통로의 설치로 용적률 증가 등의 이익을 얻게 되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재산권 보호만 강조하는 것은 배타주의, 이기주의를 야기한다는 비판도 피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실제로 공공보행통로를 막아 놓으면 단지를 우회해서 통행해야 하므로 불편이 가중된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일선에서는 공공보행통로와 관련한 문제는 법적 근거 등 제도 정비를 통해 조율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데요. 명색이 그 취지는 좋지만, 공공보행통로가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공공보행통로를 사용하는 외부인은 사유재산을 침범하지 않는 면에서 통행에만 집중하고, 아파트 입주민 역시 공공 통행권을 지켜주는 등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문제 해결은 물론, 훨씬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KT에스테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