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路從而後 遇丈人 以杖荷蓧 子路問曰 子見夫子乎 丈人曰 四體不勤 五穀不分 孰爲夫子 植其杖而芸 자로가 (공자를) 따라가다가 뒤에 쳐져 있었는데, 지팡이로 대바구니를 멘 노인을 만났다.
자로가 묻기를, “노인은 우리 선생님을 보셨습니까?” 하니 노인이 말하기를, “사지를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고 오곡을 분별하지 못하니, 누구를 선생님이라 하는가?” 하고 지팡이를 꽂아놓고 김을 매었다.
○ 丈人 亦隱者 蓧 竹器 分 辨也 五穀不分 猶言不辨菽麥爾 責其不事農業而從師遠遊也 植 立之也 芸 去草也 장인은 또한 은자였다. 삼태기는 대나무로 만든 기물이다. 分은 변별한다는 말이다. 오곡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은 콩과 보리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데, 자로가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스승을 따라 멀리 유세를 다닌다고 나무란 것이다. 植은 세운다는 말이다. 芸은 풀을 제거한다는 말이다. 左傳成公十八年 晉欒書中行偃使程滑弑厲公 使荀罃士魴逆周子于京師而立之(悼公周也) 生十四年矣 周子有兄 無慧不能辨菽麥 故不可立(菽大豆也 豆麥殊形易別 故以爲癡者之候 不慧蓋世所謂白癡) 춘추좌전에 따르면, 노나라 成公 18년에, 진나라 란서와 중행언이 정골을 시켜 여공을 시해하도록 하고서, 순앵과 사방으로 하여금 경사에서 주자를 맞이하(逆)여 그(悼公 周다)를 임금으로 옹립하도록 하였다. 태어난 지 14년이었다. 주자에게는 형이 있었지만, 지혜가 없어서 콩과 보리를 구분하지도 못하였고, 그래서 임금으로 세울 수가 없었다(菽은 대두다. 콩과 보리는 그 모습이 많이 달라서 구별하기 쉽다. 그래서 숙맥을 어리석은 사람의 징후로 삼았다. 지혜롭지 못함은 대체로 세상에서 말하는 백치다).
子路拱而立 자로가 손을 모으고 서 있자,
知其隱者 敬之也 그 사람이 은자인 것을 알고서 그 사람을 공경한 것이다. 止子路宿 殺雞爲黍而食之 見其二子焉 明日 子路行以告 子曰 隱者也 使子路反見之 至則行矣
자로를 머물러 자게 하고는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서 먹이고, 그의 두 아들에게 자로를 뵙도록 하였다.
그 다음날에 자로가 (그 집을) 떠나와서 (공자께) 아뢰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은자다.”라고 하시고는 자로로 하여금 돌아가 만나보게 하셨는데 도착하니 떠나가고 없었다. 孔子使子路反見之 蓋欲告之以君臣之義 而丈人意子路必將復來 故先去之以滅其跡 亦接輿之意也 공자께서 자로로 하여금 되돌아가서 그 사람을 만나 뵙도록 한 것은 아마도 군신의 의로움을 알려주고자 한 것이었지만, 장인은 자로가 반드시 장차 다시 올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먼저 그곳을 떠남으로써 그 자취를 없앴던 것인데, 이 역시 접여의 뜻이다. 子路曰 不仕無義 長幼之節 不可廢也 君臣之義 如之何其廢之 欲潔其身 而亂大倫 君子之仕也 行其義也 道之不行 已知之矣 자로가 말하기를, “벼슬하지 않는 것은 아무 의리가 없으니, 어른과 어린이의 예절을 폐할 수가 없듯이 임금과 신하의 의리를 어찌 폐할 수가 있겠는가? (벼슬하지 않는 것은) 자기 몸을 깨끗하게 하고자 하여 큰 인륜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군자가 벼슬하는 것은 그 의리를 실행하는 것이니 (선생님의) 도덕이 이 세상에 행해지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라고 했다.
○ 子路述夫子之意如此 蓋丈人之接子路甚倨 而子路益恭 丈人因見其二子焉 則於長幼之節 固知其不可廢矣 故因其所明以曉之 倫 序也 人之大倫有五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 是也 仕所以行君臣之義 故雖知道之不行 而不可廢 然謂之義 則事之可否 身之去就 亦自有不可苟者 是以雖不潔身以亂倫 亦非忘義以殉祿也 福州有國初時寫本 路下有反子二字 以此爲子路反而夫子言之也 未知是否 자로가 부자의 뜻을 전술한 것이 이와 같았다. 아마도 장인이 자로를 대한 것이 심히 거만하였지만, 자로는 더욱 공손히 하였기에, 장인은 이 때문에 그 두 아들을 자로에게 알현시켰을 것이다. 장인이 장유의 예절에 있어서 본래 그것을 폐지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밝게 알고 있는 바로써 그를 일깨워준 것이다. 倫이란 질서다. 사람의 대륜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이 그것이다. 벼슬을 하는 것은 군신의 의로움을 행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비록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폐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일컬어 의로움이라고 한다면, 일의 가부(해도 되고 안 됨)와 내 몸의 벼슬에서 떠남과 벼슬로 나아감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저절로 있게 된다. 이런 까닭으로 비록 몸을 깨끗이 함으로써 대륜을 어지럽히는 짓을 하지 않지만, 또한 의로움을 잊고서 녹봉을 따르는 것도 아니다. 복주에 국초 때 필사본이 있었는데, 자로 아래에 ‘反子’라는 두 글자가 있었다. 이로써 자로가 돌아오자 부자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여기는데, 아직 옳고 그름을 알 수 없다.
慶源輔氏曰 夫子所以使子路反見之 豈徒然哉 必有以也而丈人絶人逃世藐然不復知有君臣之義 則夫子之欲告之 宜莫先於此也 觀子路所述夫子之意 固可見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공자께서 자로로 하여금 돌아가서 그를 만나보게 한 것은 어찌 그냥 그렇게 했겠는가? 반드시 이유가 있었을 것이나, 장인이 사람을 끊어내고 세상을 회피하여 다시 군신의 의가 더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 그러한즉 공자께서 그에게 알려주고자 한 것 중에 이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었음은 당연한 것이니, 자로가 서술한 공자님의 뜻을 살펴보아도, 진실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趙氏曰 子路所言 雖未可卽以爲夫子之語 然使之反見 則必授以見之之意矣 故知其述夫子之意無疑也 조씨가 말하길, “자로가 말한 바는, 비록 곧바로 공자님의 말씀이라고 여길 수는 없지만, 자로로 하여금 돌아가서 만나보게 하였다면, 반드시 그를 만나는 뜻을 말해주었을 것이기 때문에, 자로가 공자님의 뜻을 서술한 것임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此亦子路學力之所至 경원보씨가 말하길, “이것 역시 자로의 배움의 역량이 이르러 미친 바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大倫備於五者 此所謂潔身而亂大倫 只是說廢君臣之大倫 신안진씨가 말하길, “대륜은 다섯 가지에 구비되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제 몸을 깨끗이 해서 대륜을 폐한다’는 것은 단지 君臣의 大倫을 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潔身亂倫 沮溺丈人之儔 過乎中庸者也 忘義徇祿 苟仕饕富貴之徒 不及乎中庸者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제 몸을 깨끗이 하여 대륜을 어지럽히는 것은 장저, 걸닉, 장인의 무리인데, 중용을 지나쳐 넘어간 자들이다. 義를 잊고서 녹봉만 따르는 것은 구차하게 벼슬하고 부귀를 탐하는 무리인데, 중용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朱子嘗爲福之同安簿 意必自見此寫本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주자는 일찍이 福建省 同安縣의 主簿가 된 적이 있었는데, 틀림없이 그 스스로 이 필사본을 보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하였다.
問集註云 仕所以行義 末云亦非忘義以徇祿 似是兩意 朱子曰 只是一意 纔說義便是總去就都說 道合則從 不合則去 卽是此意 惟是出仕 方見得不仕便無了這義 聖人憂世之心 固是急欲得君行道 到靈公問陳遂行 景公不能用又行 桓子受女樂又行 無一而非義 누군가 묻기를, “집주에서 벼슬하는 것은 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말하였고, 또한 끝에서는 의를 잊고서 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마치 서로 다른 뜻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단지 하나의 뜻이다. 조금이라도 義라고 말한다면, 곧바로 벼슬에 나아감과 떠남을 총괄하여 모두 말하는 것이다. 道에 부합하면 따르고, 부합하지 않으면 떠나는 것이니, 곧바로 이러한 뜻이다. 오직 出仕해야만, 바야흐로 벼슬하지 않으면 곧 이러한 義도 없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성인께서 세상을 근심하는 마음은 본래부터 임금을 얻어 도를 행하고자 조급해하셨다. 위령공이 진법을 묻기에 이르자, 마침내 떠났고, 제경공이 기용하지 못하게 되자, 다시 떠났으며, 계환자가 여악대를 받아들이자, 다시 떠났는데, 하나라도 義가 아닌 것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或問道之不行矣而徒仕 可乎 曰 仕所以行義也 義則有可不可矣 義合而從 則道固不患於不行 不合而去 則道雖不行而義亦未嘗廢也 是以君子雖知道之不行而未嘗不仕 然亦未嘗懷私徇祿而苟於仕也 由此觀之 道義之未嘗相離 亦可見矣 혹자가 묻기를, “道가 행해지지 않음에도 그냥 벼슬을 하는 것이 가능합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벼슬이란 義를 행하는 수단이다. 義에는 곧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의에 부합하여 따른다면, 본래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걱정하지 않는다. 의에 부합하지 않아 떠나간다면, 도가 비록 행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역시 일찍이 義를 폐한 적이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비록 도가 행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일찍이 벼슬을 하지 않은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사사로움을 품고 녹봉을 쫓아서 구차하게 벼슬하는 것도 일찍이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건대, 道와 義가 일찍이 서로 떨어진 적이 없음을 역시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君子之仕也 行其義也 義便有進退去就在裏 如丈人直是截斷只見一邊 군자가 벼슬을 하는 것은 그 義를 행하는 것이다. 義에는 곧바로 進退와 去就가 그 안에 있으니, 예컨대 丈人의 경우는 곧이곧대로 잘라내어 그저 한 쪽 측면만 보았던 것이다.
南軒張氏曰 丈人見二子是長幼之節 不可得而廢也 旣不可廢 則夫君臣之義 又烏得而廢之乎 彼蓋欲潔其身而不知亂倫之害於人道爲大也 君子之仕 豈爲他哉 行吾義而已 道之不行 君子豈不知乎 而汲汲於斯世者 固有不可已者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장인이 두 아들을 자로에게 보인 것은 장유의 예절로서, 폐할 수 없는 것이다. 기왕에 이를 폐할 수 없다면, 저 군신의 義는 또 어찌 폐할 수 있단 말인가? 저들은 대체로 자기 몸을 깨끗하게 하고자 하였을 뿐, 인륜을 어지럽히는 것이 人道에 해가 됨이 크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군자가 벼슬을 하는 것이 어찌 다른 것을 위함이겠는가? 그저 나의 義를 행할 따름이다.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군자가 어찌 알지 못하겠는가마는, 그래도 이 세상에 조급해하는 것은 본디 그만두지 못함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丈人之接子路 雖倨而子路益恭 丈人因見其二子 蓋因子路之敬長有以感發其心 而知長幼之節不可廢耳 夫長幼之節 君臣之義 皆天敍之典 人之所不能無也 丈人知長幼之節不可廢 而不知君臣之義不可廢 是其心必有所蔽 故一得一失 或明或暗而不自知其然也 聖人於此因其所明而曉之 경원보씨가 말하길, “丈人이 자로를 접대할 적에 비록 거만하였지만, 자로는 더욱 공손히 하였다. 丈人은 이 때문에 그 두 아들을 보여준 것이다. 대체로 자로가 어른을 공경하는 것으로 인해 그 마음이 감화되어 피어나는 바가 있어서, 장유의 예절을 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무릇 장유의 예절과 군신의 義는 모두 하늘이 정해준 법으로서 사람이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丈人이 장유의 예절을 폐할 수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군신의 義를 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은, 그 마음에 반드시 가려진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는 얻고 하나는 잃거나 혹은 밝거나 혹은 어두워서, 그것이 그러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이다. 성인께서는 여기에서 그가 잘 알고 있는 바를 바탕으로 그를 깨우쳐주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君臣之義 雖本乎天而具乎我者也 道雖存乎我 而其行止則繫乎天者也 具乎我者不可廢 而繫乎天者則非敢必也 故孔子雖卒老于行而終不敢深藏固閉以自潔而廢君臣之義 然義之爲言 宜也 旣曰義 則事便有可否 身便有去就 可則就之 否則去之 固有截然不可移易者 故聖人之法 君子之行 旣不可以潔身而亂倫 如隱者之爲 亦不可以忘義而徇祿 如世俗之仕者也 君臣之義는 비록 하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나에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道는 비록 나에게 보전되어 있지만, 그것이 행하고 그침은 하늘에 매여 있는 것이다. 나에게 갖추어져 있는 것은 폐할 수 없지만, 하늘에 매여 있는 것이라면, 감히 기필(장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공자께서는 비록 결국 길을 다니다가 늙었을지라도, 끝내 감히 깊이 숨어서 굳게 걸어 잠금으로써 자신을 깨끗이 하면서 군신의 의를 폐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義로 말할 것 같으면, 합당함이다. 기왕에 義라고 말하였다면, 일에는 곧 可否가 있게 되고, 몸에는 곧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남이 있게 되는데, 可하면 벼슬에 나아가고, 不可하면 벼슬에서 떠나는 것이니, 원래부터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원칙이 있다. 그러므로 성인의 법과 군자의 행실은 이미 은자들이 하는 것처럼 제 몸을 깨끗이 한다는 이유로 윤리를 어지럽혀서는 아니 될 뿐 아니라, 세속의 벼슬아치들처럼 義를 잊고서 녹봉만 쫒아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雙峯饒氏曰 前章說 天下有道不與易 可見聖人救世之仁 此章說 君臣之倫不可廢 可見聖人出仕之義 問行其義與道之不行 道義如何分 曰 只一般 道指全體言 義指一事言 如父子親君臣義 至朋友信總言 皆道也 聖人之道行於天下 則人人共由此道 如義只是君臣有義一件而已 然道必遇賢君而後行 義則是我自家行底 孔子雖知當時道之不行而自家却不可不行其義 쌍봉요씨가 말하길, “앞장에서 ‘천하에 도가 있었다면 내가 더불어 바꾸고자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것에서 성인께서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仁을 알아볼 수 있고, 이 장에서 ‘군신의 윤리는 폐할 수 없다’고 말한 것에서 성인께서 出仕하신 義를 알아볼 수 있다.”라고 하였다. 누군가 묻기를, “그 義를 행하는 것과 道가 행해지지 않는 것에서 道와 義를 어떻게 구분합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그저 같은 종류일 뿐이다. 道는 전체를 가리켜 말한 것이고, 義는 하나의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예컨대 父子有親과 君臣有義에서부터 朋友有信에 이르기까지 총괄적으로 말하면 모두 道인 것이다. 성인의 道가 천하에 행해지면, 사람마다 모두 함께 이 도를 말미암을 것이지만, 義의 경우에는 그저 君臣有義 한 건일 따름이다. 그러나 道는 반드시 현명한 임금을 만난 이후에야 행해지는 것이지만, 義는 곧 나 자신이 행하는 것이다. 공자께서는 비록 그 당시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것임을 알았지만, 스스로는 오히려 그 義를 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 范氏曰 隱者爲高 故往而不反 仕者爲通 故溺而不止 不與鳥獸同群 則決性命之情以饕富貴 此二者皆惑也 是以依乎中庸者爲難 惟聖人不廢君臣之義 而必以其正 所以或出或處而終不離於道也 범씨가 말하길, “은자는 (자신을) 고상한 사람으로 여기기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벼슬하는 사람은 스스로 통달했다고 여기기에, 빠져서 그만두지 않는다. 새나 짐승과 더불어 같이 무리 짓지 않으면, 곧 성명의 정을 해쳐서 부귀를 탐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미혹된 것이니, 이런 까닭에 중용에 의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오직 성인만이 군신의 의로움을 폐하지 않으면서도 반드시 그 옳음으로써 하는데, 이것이 혹은 벼슬에 나아가고 혹은 강호에 머물면서도 종래 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莊子騈拇篇 不仁之人 決性命之情而饕富貴(決破壞也 貪財曰饕) 장자 병무편에 이르길, 어질지 못한 사람은 性命의 情을 결딴내면서 부귀를 탐한다고 하였다(決은 파괴한다는 말이고, 재물을 탐내는 것을 饕[도]라고 한다). 雙峯饒氏曰 爲是作爲之爲 隱者專要做那高尙底事 所以甘於長往而不返 仕者專要做那通達底事 所以溺於下流而不止也 爲高者絶物忘世 爲通者患得患失 二者皆非中道 決如決水 壞了隄防 便走了水 性原於命發爲情 皆天理發見出來者 所以謂之性命之情 若心貪溺於富貴 必壞了性所發爲四端之情 如決去水之隄防 如何留得水住 쌍봉요씨가 말하길, “爲는 作爲(삼다, 여기다)의 爲다. 은자는 오로지 저 고상한 일을 하고자 하므로, 이 때문에 오랫동안 떠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을 달게 여긴다. 벼슬아치는 오로지 저 통달한 일을 하고자 하므로, 따라서 하류에 빠져서 그치지 못하는 것이다. 은거를 고상한 것으로 여기는 자는 외물을 끊어버리고 세상을 잊으며, 통달했다고 여기는 자는 얻고 잃는 것을 근심하고 걱정하는데, 이 두 가지 모두 中道가 아니다. 決은 물을 터뜨리는 것과 같으니, 제방을 무너뜨리면, 물이 모두 흘러가 버린다. 性은 命에서 근원하고 발현하여 情이 되는데, 모두가 天理가 발현되어 나온 것들이다. 따라서 이를 일컬어 性命의 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만약 마음이 부귀에 탐닉한다면, 반드시 性이 발현되어 만들어진 四端의 情을 파괴할 것이다. 이는 마치 터뜨려서 물을 제거한 제방과 같으니, 어떻게 물을 머물러 있게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不潔身而亂倫, 不忘義而徇祿 제 몸을 깨끗이 하여 윤리를 어지럽히는 것을 하지 않고, 의를 잊고서 녹봉을 쫓는 짓을 하지 않는다.
道卽中庸之道 道는 곧 중용의 道다. 問接輿歌而過孔子蓋欲以諷切孔子 孔子欲與言之 則趨而避之 孔子使子路問津於長沮桀溺 固將有以發之而二人不答所問 傲然有非笑孔子之意 至於荷蓧丈人知子路之賢 則止子路宿殺谿爲黍而食之 見其二子焉 其親之厚之如此 孔子使子路反見之 則先去而不願見矣 數子者 若謂其無德而隱 則佯狂耕耘以避亂世 澹然不以富貴利達動其心而確然自信不移 若有所得者 若謂其無故而隱 則危邦濁世 道旣不行亦未見 其必可以仕也 特其道止於歸潔其身而不知聖人所謂仕止久速者 知所謂無可者矣 而未知所謂無不可者也 故其規模氣象不若聖人之正大 若以索隱行怪視之 愚意未知是否 朱子曰 無道而隱 如遽伯玉柳下惠 可也 被髮佯狂 則行怪矣 沮溺荷蓧 亦非中行之士也 누군가 묻기를, “접여가 노래를 부르며 공자님 곁을 지나간 것은 대체로 공자님을 풍자하고자 한 것이고, 공자님께서 그와 더불어 말하고자 하였지만, 총총히 떠나가 공자님을 피하였던 것입니다. 공자님께서 자로로 하여금 장저와 걸닉에게 나루를 묻게 할 적에 본래 장차 그들을 感發시킬 수 있었지만, 두 사람은 묻는 바에 대답하지 않고서 오만하게도 공자를 비난하고 비웃는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삼태기를 멘 장인에 이르자 자로의 현명함을 알았으니 자로를 붙잡아 하룻밤 자게하고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먹였으며, 그 두 아들을 자로에게 만나보도록 하였습니다. 그가 자로를 친밀히 대하고 후대한 것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공자님께서 자로로 하여금 되돌아가서 丈人을 만나게 하였지만, 먼저 떠나버려서 만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여러 사람들에 대하여, 만약 그들이 덕이 없어서 숨었다고 말한다면, 거짓으로 미친 체하며 밭을 갈고 김을 매며 난세를 피하고, 담담하게 부귀나 잇속과 영달로 인해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서, 확실히 뜻을 바꾸지 않는다고 스스로 믿었을 것이니, 마치 터득한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이유도 없이 숨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세상을 흐리게 하는 것으로서, 道가 이미 행해지지 않는 것도 역시 아직 볼 수 없으니, 그들은 반드시 벼슬을 해도 괜찮았을 것입니다. 단지 그 道가 제 몸을 깨끗이 할 뿐 성인께서 말씀하신 ‘벼슬하고 물러나고 오래 머물고 빨리 떠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에 귀결됨에 그친다면, 이는 이른바 가한 것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른바 불가한 것도 없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규모와 기상이 성인의 정대함만 같지 못하고, 마치 은미한 것을 찾고 괴이한 것을 행하는 것으로써 그것에 견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제 생각이 옳은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세상에 도가 없어서 숨는 사람의 경우, 거백옥이나 유하혜와 같다고 한다면 가능하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거짓으로 미친 체한다면, 괴이한 짓을 행하는 것이니, 장저나 걸닉, 하조장인은 역시 중행지사는 아니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列接輿以下三章於孔子行之後 以明夫子雖不合而去 然亦未嘗恝然忘世 所以爲聖人之出處也 然卽三章讀之 見此四子者 律以聖人之中道 則誠不爲無病 然味其言觀其容止 以想見其爲人 其淸風高節 猶使人起敬起慕 彼於聖人猶有所不滿於心如此 則其視世之貪利祿而不知止者 不啻若犬彘耳 是豈非當世之賢而特立者歟 以子路之行行 而拱立丈人之側 若子弟然 豈非其眞可敬故歟 嘗謂若四人者 惟夫子然後可以議其不合於中道 未至於夫子者 未可以妄議也 貪祿嗜利之徒 求以自便其私 亦借四子而詆之 欲以見其不可不仕 多見其不知量也 면재황씨가 말하길, “접여 이하의 3장을 ‘공자님께서 떠나셨다’는 구절 뒤에 열거함으로써, 공자께서 비록 부합되지 않아 떠났지만, 그러나 또한 일찍이 무심(恝然)하게 세상을 잊은 적은 없었으니, 이 때문에 성인께서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남이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 3장에 나아가 그것을 읽어보면, 이 네 분을 성인의 中道로써 규율한다면 진실로 병폐가 없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을 음미하고 그 용모와 행동거지를 관찰함으로써 그 사람됨을 알고자 생각한다면, 그 맑은 풍모와 고상한 절개가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공경하고 사모하게 만들 것이다. 저들은 성인에 대하여 오히려 마음에 불만을 가진 바가 있었는데, 이와 같다면, 그들이 세상의 잇속과 녹봉을 탐하면서도 이를 그칠 줄 모르는 자를 보는 것이 단지 개와 돼지와 같을 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들이 어찌 당시 세상의 현자로서 특별히 일어선 사람이 아니겠는가? 자로의 굳셈으로도 장인의 곁에서 손을 모으고 서서, 마치 자제인 것처럼 하였으니, 어찌 그가 정말로 공경할만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일찍이 말하길, 이 네 분 같은 사람은 오직 공자님 같은 경지가 된 연후에 그들이 中道에 합치되지 않았다고 논할 수 있는 것이지, 공자님의 경지에 이르지 않은 자는 함부로 논할 수 없다고 하였다. 녹봉을 탐하고 잇속을 좋아하는 무리들은 스스로 사적 편의를 도모하기를 추구하면서도, 또한 이 네 분을 구실로 하여 그들을 꾸짖는데, 이는 자기가 벼슬하지 않을 수 없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지만, 대부분 자신의 헤아릴 줄 모름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勉齋此段 發集註之未發 四子皆賢人 他纔見世亂 便以避世爲高 是甚次第 但孔子之意 則又謂當此世若人人如此避世 天下誰與治者 故不得不行其義 勉齋又嘗云 在今日救世之道正當扶起沮溺等人 此眞名言 쌍봉요씨가 말하길, “면재황씨는 이 단락에서 집주가 드러내어 밝히지 않은 것을 發明하였다. 이 네 분은 모두 현인이었는데, 그들은 세상이 어지러운 것을 조금이라도 보기만 하면, 곧바로 세상을 피하는 것을 고상한 것으로 여겼으니, 이는 무슨 단계란 말인가?(이는 너무 심한 단계다) 다만 공자의 뜻은 곧 ‘이 세상에 당하여 만약 사람마다 모두 이와 같이 세상을 피한다면, 천하는 누구와 더불어 다스릴 것인가? 그러므로 자기의 義를 행할 수밖에 없다’고 또 말한 것이다. 면재황씨는 또한 일찍이 말하길, ‘오늘날 세상을 구하는 도는 바로 마땅히 장저와 걸닉 등과 같은 사람을 부축하여 일으키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 참 명언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接輿沮溺丈人 章首冠以楚狂二字 皆楚之狂者也 狂者志行之過 集註此篇之末 謂夫子於此四人 有惓惓接引之意 在陳之歎 蓋亦如此 然魯之狂士 何幸而得在聖人陶冶之中 楚之狂者 又何不幸而自棄於聖人造化之外也哉 운봉호씨가 말하길, “접여와 장저, 걸닉 그리고 장인은 장의 처음에 楚狂이라는 두 글자로 꾸몄으니, 모두 초나라의 미치광이라는 것이다. 狂이라는 것은 뜻과 행실이 지나치다는 말이다. 집주는 이 편의 끝에서 말하길, 공자께서는 이 네 사람에 대하여 정성스럽게 대접하여 인도하려는 뜻이 있었다고 말하였다. 陳나라에서의 탄식도 대체로 또한 이와 같다. 그러나 노나라의 狂士들은 어찌하여 다행스럽게도 성인의 陶冶 안에서 터득할 수 있었고, 초나라의 狂者들은 또한 어찌하여 불행하게도 성인의 교화 밖에서 스스로를 저버리게 되었는가?”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