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 성호를 그으며 교우들과 함께 성호경을 바친 다음 사제는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향해 인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같은 일상의 인사 대신에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면서 성경에서 가져온 세 가지 표현 가운데 하나를 골라 말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2코린 13,14)
·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로마 1,7 등)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판관 6,12; 룻 2,4; 루카 1,28 등)
주교님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대신에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라고 합니다. 이 인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건네신 말씀입니다(요한 20,19 등). 12세기 인노첸시오 3세 교황께서 주교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임을 분명히 하고자 주교와 주교 아닌 사제의 인사를 구별하였습니다.
사제의 인사에 교우들은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라고 응답합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여러 공동체에 보낸 편지의 끄트머리에 이 표현을 많이 사용했는데(2티모 4,22, 갈라 6,18, 필리 4,23, 필레 25), 거기서 사도는 주님께서 자신의 편지를 받는 이들과 함께해 주시도록(감상적인 호소가 아닌) 영적인 호소를 하였습니다.
성경의 문맥으로 보건대, 사제가 건네는 인사말과 교우들의 응답은 그 의미가 똑같습니다. 둘 다 “주님께서 당신/여러분의 영과 함께.”라는 뜻을 품고 있지만, 인사와 응답 사이에 대칭과 변화를 주고자 둘로 갈라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 한국어 「미사 통상문」은 “영”을 생략해서 단순히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영”(靈, spiritus)이라는 단어는, 이 인사가 성서적 뿌리를 지니고 있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영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말고도, 그리스도교 전례 역사에서 뚜렷한 용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5세기 어느 저술가에 따르면, 백성의 응답에 나오는 “영”은 사제 개인의 영혼(anima)이 아니라 사제가 안수를 통해 받은 성령(Spiritus)입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서품받은 부제나 사제를 향한 대화에만 쓰도록 한정되었고, 「미사 통상문」을 우리말로 새로 번역하면서 이 단어를 그대로 살려 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오로가 언제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모든 믿는 이들의 “영”과 함께 있기를 빌어 주었고, 라틴어 「미사 통상문」도 이 단어를 늘 소문자로(spiritus) 표기해 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해석과 번역에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는 보통 하느님께서 마치 천둥과 번개, 지진이나 폭풍처럼 화려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 삶 속에 ‘침입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엘리야 예언자가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 속에서 하느님을 만났던 것처럼(1열왕 19,11-12), 우리는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우리 가운데 계신 하느님을 발견합니다. 이와 더불어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어 함께 모이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을 넘치도록 가득 채워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다고 말할 때, 우리는 또한 예수님께서 당신께서 계신 곳, 곧 하느님의 마음 바로 그 안에 우리도 함께 있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이 인사로 회중의 진정한 정체성이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자 주님께서 거처하시는 곳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성소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