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전기사용 폭증’ 1800가구 정전… “호텔-카페로 피신”
열대야에 전국서 ‘잠 못드는 밤’
아파트단지 전력사용량 넘어 정전
일부 주민 車에어컨 틀고 지내기도
잼버리대원 400명 온열질환 호소
시민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분수대에서 열대야 더위를 식히고 있다. 2023.08.01. 뉴시스
“밤에 더위를 피해 호텔로 피신했어요. 아홉 살 아들이 아직 어려 더위를 잘 못 견디는데 정전이 길어질 것 같더라고요.”
서울 강서구 우장산숲아이파크 아파트에 사는 임모 씨(48)는 1일 밤 아파트 전력 공급에 문제가 생겨 정전이 되자 김포공항 인근 호텔로 가서 하룻밤을 보냈다. 임 씨는 “숙박비로 20만 원이나 냈지만 열대야가 심각한데 에어컨, 선풍기 없이는 도저히 못 버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단지는 1일 오후 10시 반경 단전돼 2일 오전 6시경에야 한국전력공사가 복구를 완료했다. 이날 밤 강서구 기온은 29도까지 올랐고 체감기온은 30도를 넘어 정전을 겪은 약 280가구 중 상당수가 잠 못드는 밤을 겪어야 했다. 일부는 자동차로 대피해 에어컨을 튼 채 밤을 보내기도 했다.
● “서울 청주 등에서 1810가구 정전”
정부가 4년 만에 폭염 위기경보를 4단계 중 가장 높은 ‘심각’ 단계로 올리고 중앙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한 1일 전국 대부분 지역에선 밤새 찜통더위가 이어졌다. 에어컨 가동률이 높아지며 전기 사용량이 늘어 전국 곳곳에서 정전 사태도 빚어졌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아파트에서도 같은 날 오후 10시경 전력 사용량이 허용 가능한 범위를 초과하며 정전이 발생해 약 590가구가 불편을 겪었다. 오후 8시경 충북 청주시에서도 정전이 돼 약 940가구가 3시간가량 힘들어했다.
열대야 때문에 인근 공원이나 개천, 카페 등으로 나와 더위를 식히는 시민도 많았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대학생 현모 씨(24)는 “혼자 사는 자취생이라 밤새 에어컨을 틀기에는 전기요금이 부담스러웠다”며 “취업 면접을 앞두고 있어 오후 10시부터 오전 1시까지 무인카페에서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전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쪽방촌에서 더위를 식혀주는 쿨링포그가 나오고 있다. 2023.08.02. 뉴시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일 전력 수요가 가장 높았던 시간은 오후 6시(82.4GW·기가와트)였고, 오후 9시(79.1GW)가 뒤를 이었다. 산업부는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이달 10일 전력 수요가 올여름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 중이다. 다만 전력 수급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온열질환 사망자 지난해 같은 기간 3배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열리고 있는 전북 부안군 새만금 일대에도 1일 밤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으로 유지되는 열대야가 나타났다. 온열환자도 속출했다. 개막 당일인 1일 하루 동안에만 참석자 4만3000여 명 중 400명 이상이 온열질환을 호소했다. 준비 기간을 포함해 지난달 29일부터 2일 오후 6시까지 119 구급차로 이송한 사람이 72명에 달했다. 잼버리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2일부터 냉방을 강화했고 야영지 내 병상을 추가 설치했다”고 밝혔다.
소방청과 질병관리청 등에 따르면 올 5월 20일부터 이달 2일까지 전국에서 집계된 온열질환 사망자는 24명이었다. 질병관리청 집계상 지난해 같은 기간(7명)의 3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2일에는 전국 180개 기상특보 지점 중 제주산지 한 곳을 제외한 179곳에 폭염특보가 발효됐고, 이 중 93%에는 폭염주의보보다 한 단계 높은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이날 경기 여주시 금사면은 38.8도까지 치솟았다.
중대본은 2일 “당분간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일일 체감온도가 35도 내외까지 오르며 매우 무덥겠다. 도심과 해안을 중심으로 열대야가 나타나니 더위에 각별히 주의해 달라”고 밝혔다.
최원영 기자, 세종=조응형 기자, 부안=박영민 기자
가축 15만 마리 폐사… 양식장 고수온 경보
철도 47곳 열차 운행속도 줄여
폭염대비 선로 작업 코레일 직원들이 시설 유지보수 장비인 ‘멀티플 타이 템퍼(MTT)’를 이용해 야간 선로 작업을 하고 있다. 2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전국 여름철 선로 집중관리 구간을 대상으로 폭염 대비 특별관리 작업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MTT는 궤도의 틀어짐을 바로잡는 장비로 선로 자갈을 다져 선로의 높낮이, 방향 등을 동시에 보수할 수 있다. 코레일 제공
전남 무안군에서 닭 4만7000여 마리를 기르던 A 씨는 최근 폭염으로 닭 1000여 마리를 잃었다. 말복(10일) 등 성수기를 앞두고 더위에 약한 닭들이 집단 폐사한 것이다. A 씨는 “정성스럽게 키운 닭을 퇴비업체에 넘기면서 속상해 울었다. 금전적으로도 1000만 원 이상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폭염이 계속되면서 이 같은 피해가 전국 각지에서 확산되는 모습이다.
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전날(1일)까지 폭염으로 가축 15만3307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돼지 9288마리, 닭 등 가금류 14만4079마리 등이었다. 닭 등 더위에 약한 가축들은 30도 이상 고온이 이어지면 스트레스를 받아 면역력과 생산성이 줄어드는데, 장기화할 경우 집단 폐사로 이어진다.
폭염으로 인한 양식장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은 지난달 31일 수온이 28도가 넘은 충남 천수만, 전남 득량만·여자만, 경남 진해만 등 4개 만에 고수온 경보를 내렸다. 수온이 오르면 바닷물 속 산소량이 줄어들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물고기들의 집단 폐사로 이어질 수 있다. 지자체들은 양식장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양식장에 액화산소를 공급하고, 물 위에 차광막 등을 설치하며 수온을 낮추도록 독려하고 있다.
철도 운행도 차질을 빚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일 폭염으로 레일 온도가 올라간 고속철도 5곳, 일반철도 42곳 등 철도 47곳에 대해 열차 운행 속도를 제한했다고 밝혔다. 철도 당국은 고속철도의 레일 온도가 55도 이상, 일반철도는 60도 이상일 때 열차를 서행 운행하도록 하고 있다.
사지원 기자, 무안=정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