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신용등급 강등, ‘최대 안전자산 美국채’ 향한 경고
[미 신용등급 강등]
“시장 영향 적을것” 의견 많지만
4% 안팎 국채 금리 부담 요소
주요 채권국 日-中 매도 압박 커져
뉴욕=AP뉴시스
1일(현지 시간)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피치가 29년 만에 미국의 신용등급을 내린 것은 미 부채 규모가 매우 큰 데다 관리 능력까지 악화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부채는 31조 달러(약 4경126조4000억 원)를 넘겼고, 매년 부채한도 상향을 두고 디폴트(채무불이행) 직전까지 의회 대치가 반복되고 있다.
2011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 신용등급을 강등한 지 12년 만에 피치도 등급을 내림에 따라 3대 신용평가사 중 무디스만 미국에 대해 최고등급을 유지하게 됐다.
앞서 피치는 미국의 디폴트 우려가 커지던 5월 말 강등 가능성을 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6월 초 백악관과 공화당이 부채한도 상향에 합의한 지 두 달이 지났고, 미 경제 연착륙 기대감이 커지고 있던 터라 이번 등급 조정은 갑작스럽다는 분위기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미 경제가 예상보다 강한 현 시점에 신용등급을 내린 것은 기이하고(bizarre) 무능하다(inept)”고 밝혔다.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은 신용등급에 따라 채권 가격을 책정하는데 최대 안전자산 미 국채는 세계 주요 자산 가격의 기준이 된다. 신용등급 강등으로 미 국채의 변동성이 커지면 세계 금융시장에 폭풍이 몰아칠 수밖에 없다. 2011년 미 신용등급 강등 당시 일주일여 동안 미 증시는 15% 폭락했고 코스피도 17% 떨어졌다. 당시 세계경제 혼란으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커져 오히려 미 국채 금리가 떨어지고 달러는 강세를 보였다.
다만 이번 미 신용등급 하향은 첫 강등이 아니고, 미 경제도 회복세라 시장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전 핌코 최고경영자(CEO)는 “미 경제나 시장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신용등급 발표 이후 아시아 증시는 줄줄이 하락했지만 달러 가치나 국채 금리는 변동 폭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반면 이번 신용등급 강등을 미 국채에 대한 경고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많다. 2011년에는 사실상 제로금리 수준이었지만 현재 미 국채 금리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4% 안팎까지 올라와 있어 부담이 더 커졌다. 국채 공급 과잉에 대한 시장의 피로감도 높다. 전날 미 재무부가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1조 달러(약 1288조 원) 추가 부채 계획을 발표하자 영국계 은행 바클레이스는 “국채 쓰나미가 몰려온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주요 채권국인 일본은 금리 인상 가능성 탓에, 중국은 미중 갈등으로 국채 매도 압박이 커지고 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