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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결국에는.. 작은시작 번외편 들고 찾아뵙습니다.
예정에는 없었지만 번외를 바라시는 분들이 계셔서요^^
번외편의 소재는 '고백'으로 넘어갑니다.
번외편은 결말이 확실해진 대신.. 분량이 늘어났네요^^;
시점은 우리 여선생님 시점으로 돌아갑니다.
과연 선생님을 향한 남주인공의 짝사랑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럼 전 좀 쉬러갑니다..^^ 요즘 날씨가 더운데 더위병 조심하세요.
더 나아진 실력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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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짝사랑 기간: 10달.
그녀의 짝사랑 기간:10년.
공통점:첫사랑.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
..........................
*9월 중순의 어느 날.
"우리..언제까지 어색하게 지낼 수는 없잖아. 소진이가 그러면 나 장가 편히 못 가..
이번주 토요일.. 꼭 와줬으면 해."
그렇게 말하며, 선배는 조심스럽게 '청첩장'을 내 손에 올려주었다.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틀어올린 채 핑크빛으로 빛나는 그 종이를 받아들었다.
눈망울에 차오른 눈물을 들킬까, 수업을 핑계대고서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
'댁의 가정에 언제나 행복이 넘치길 바랍니다.
다름이 아니오나 우리 두 사람이 오랜 사랑 끝에 그 결실을 맺게 되오니
부디 이 자리에 참석해주셔서 축복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신랑..김명배... 신부..양수나..."
-뚝.
결국 눈물 한방울이 빳빳한 청첩장 위에 둥그런 원을 그리며 떨어졌다.
손가락으로 얼른 그 흔적을 훔쳐버렸다.
이제 곧 수업 들어가야 하는데.. 자꾸만 차오르는 눈물이 말썽이다.
닦으면 닦을수록 오기를 부리는 듯 더 서럽게 쏟아지는 눈물.
"흐...흐우읍... 흐허엉..흐어어엉..."
단념해야 됬었는데.. 그 말을 듣고나서 바로 단념해야 됬었는데..
선배에게 실연을 당했던 십이월 이 후, 거의 열달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못 잊고 있었다.
결국 선배의 결혼식 날짜가 코앞에 들여지고 나서야, 나는 또 뒤늦게 체념의 고통을 만끽하고 있다.
마음 속의 응어리가 기어코 터져버렸다.
손아귀에 잡혀있던 청첩장은 구겨진지 오래다.
비참하게 학교 화장실에나 처박혀서 목놓아 울고 있다니.
"흐웁.. 수업 들어가야 되는데..헝헝... 눈물아.. 제발 멈춰줘...흐으엉.."
"그런다고 눈물이 멈춰져요? 나 참.."
순간,문 밖에서 들리는 낯익은 목소리에, 거짓말 처럼 흐느낌이 멈춘다.
"거기 계신거 다 아니까 빨리 나오세요."
자신의 존재를 한 번 더 깨우쳐주려는지 다시 문 밖에서 들려오는.. 준혁이의 목소리.
눈물로 멍해진 머릿속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건.. 준혁이는 남학생이고 여기는 여자화장실이라는 것.
"준혁아!!!"
나는 처참한 내 몰골을 잊은 채 얼른 화장실 문을 확 열었고,
양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삐딱한 포즈와 삐딱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준혁이가 보인다.
"주...주..준혁아!! 여긴 어떻게.. 여기 여자화장실이 잖아! "
"뭐 어때요. 지금은 질질 짜고 있는 우리 선생님 밖에 없는데."
능청스레 답하는 그 아이.
혹여라도 주위의 시선들이 보일까, 일단 그 아이의 손을 붙들고 이 민망한 곳을 빠져나왔다.
"그래도.. 이건.. 도덕성에 어긋나는 거잖아! 너도 어쩜.. 대담하게.."
"선생님이 수업도 빼먹고 이런 곳에서 엉엉 울고 있는건 도덕적인 일이겠네요?"
......
한방에 막혀버리는 말문.
멋쩍은 표정으로 괜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데, 그 아이의 손바닥이 내 얼굴을 잡고
방향을 틀었다. 나는 준혁이와 제대로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
잠시 내 얼굴을 무심한 눈빛으로 살피던 준혁이는, 바짓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 얼굴에 문대기 시작했다. 콧등을 스쳐가는 손수건에서 준혁이의 향기가 난다.
은근히 섬세한 구석이 있네..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다니.
정성스럽게 손을 놀리며, 그 아이가 퉁명스레 입을 떼었다.
"이번에 우리반 수업인데 하도 안 오시길래 교무실 가려고 했더니 여자 화장실에서 왠 곡소리가 들리는거에요.
선생님일 줄 알았죠. 그건 그렇고..
울려면 마스카라나 지우고 우세요. 맨날 검은눈물이나 흘리고 앉아있네.."
"매...맨날? 선생님이 언제 그랬니?!"
"...몰라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전부터 생각해왔던 거지만, 이 아이의 체취는 남다르다. 인위적이지 않지만
굉장히 향기롭다고 해야 할까나. 꼭 꽃밭에 파묻히다가 온 것 같은 그런 향기.
남사스럽게도 그 향기에 넋을 놓고 있던 도중, 유난히 이 아이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준혁이 너, 여자친구한테도 이렇게 해 주지?"
내가 농담조가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준혁이는 단번에 표정부터 구긴다.
"그딴 거 안키워요."
"...얘 말하는 것좀 봐. 여자친구가 애완동물도 아니고.."
"다 됐다. 이제 화장만 고치시면 되요."
내 말을 잘라먹고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손수건을 도로 집어넣는다.
손거울을 꺼내서 얼굴을 비춰보니, 검은색 눈물은 말끔하게 닦여져 있었다.
그 기특함에 나는 준혁이의 어깨를 대견스럽게 쳐주며 말했다.
"고맙다~ 아, 얼른 들어가. 선생님 교무실에 들러서 화장 좀 고치고 갈게."
"얼른 오세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에게 등을 보인 채 복도쪽을 향해 걸어가는 그 아이.
...좀... 속을 알 수 없는 아이다. 아무리 봐도...
나도 모르게 그 아이의 손수건이 스치고 지나간 얼굴을 매만졌다.
아직까지 향기가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나.. 엄청 추태 부렸네...제자한테 얼굴이나 닦이고...
"..차...창피해.."
열이 올라오는 얼굴에 손 부채질을 하며 나도 발걸음을 떼려는 데,
"...왜... 물어보지 않았을까? 내가 그렇게까지 운 이유를."
...................................
.................
다음 날 아침.
동료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며 들어선 교무실.
내 자리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방수 마스카라를 보고, 나는 풉,하고 웃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
....................................
조례를 끝내고,
아침부터 책상에 모른 척 엎드려 있는 준혁이에게 다가갔다.
"하.준.혁.학.생?"
그 아이의 등을 콕콕 찌르자, 살짝 붉어진 그 아이의 얼굴이 일어나고,
"...뭐에요? 그 말투는."
"마스카라 잘 받았어~ 아주 잘 발려지던걸?"
슬며시 흔들어 보인 마스카라에,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멋드러지게 미소짓는다.
나와 이 아이는 이런 관계이다. 나는 이런 준혁이가 좋다.
언제나 내 뒤에서, 모른척 챙겨줄 건 다 챙겨주는 아이.
그래서 더 각별하다.
이런 관계를, 계속 지속하고 싶다.
..............................
.............
나이를 먹으면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진다.
특히, 피하고 싶은 날이 다가오면 다가올 수록, 그 흐름이 더욱 더 빠르게 느껴진다.
그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동안, 와 버리고 말았다.
절대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그 날이.
.......
해는 중천에 떠오른지 오래건만, 아직 세수조차 안 하고 침대에만 처 박혀 있는 폐인녀 하나.
그게 바로 나 다. 오늘의 태양은 보고 싶지 않았는데 날씨는 짖굿게도 화창하기 그지 없다.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 액정에 떠오르는 D-day.
'명배선배 결혼식 날'
...이렇게 눈물겨운 D-day가 또 있을까.
나는 애꿎은 핸드폰을 침대 밑으로 떨어뜨려 버리고 이불 속에 단단히 파고 들었다.
오늘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어. 어서 해가 져 버렸으면 좋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졸리지도 않은 데 억지로 눈을 감았다. 자고 일어나면 내일이 되어있기 만을 바라면서.
-딩동.
갑자기 울려대는 현관 벨소리.
지나가는 잡상인 밖에 더 되겠냐는 생각으로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딩동,딩동,딩동.
-쾅쾅쾅!!!
....하지만 인내심을 쿡쿡 찌른다.
벨을 연속적으로 누르다 못해 문까지 쾅쾅 두들겨 대는 저 심보가.
어떤 지독한 집념의 잡상인이길래 저렇게 끈질긴거야?!
결국 이불을 차 버리고 현관문으로 향했다.
인터폰으로 확인도 안 해보고, 벌컥 문 부터 열어보니,
".. 조금만 더 늦었으면 문 부수고 들어갈 뻔했어요."
현관문 밖에는 잡상인 대신, 어떻게 여기 있을 수 있는 지 의문부터 드는 사람이 서 있었다.
"..주..주...준혁이?!"
"실례하겠습니다."
무차별하게 자신을 찔러대는 내 손가락질을 무시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신발을 벗어 던지고 우리 집에 발 을 들여놓는다.
"너...너...너.. 어떻게.. 우리 집 어떻게 안 거야?!아니, 것보다 어쩐 일이야!!"
나는 너무 놀라 다짜고짜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캐 물었지만, 준혁이의 귀는
내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평소처럼 무심한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더니, 중얼거린다.
"이럴 줄 알았어.."
"...어?"
"오늘 수학선생님 결혼식 있는 날이 잖아요.이게 뭐에요. 준비도 안하고."
태연스레 옆구리에 끼고 있던 헬멧을 바닥에 내려놓는 그 아이와는 달리,
충격스러운 말을 건너들은 내 몸은 평정심을 잃어버리고 마구 날뛰고 있었다.
"너...너... 어떻게!!!"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일단 준비하고 나오세요. 빨리요, 시간 없어요."
"뭐?!"
황당함에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나에게, 험악한 표정을 들이밀며 말하는 그 아이.
"빨리 옷 안 갈아입으시면 제가 갈아입혀 드립니다."
"...네."
..................
...................................
별다른 반항 한 번 못해보고,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모른 채로 옷을 갈아입었다.
왜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거지?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가 가지않아.
왜 저 아이가 여기까지 온 걸까.. 설마.. 설마... 선배가 보내서?
별별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려가면서 화장까지 끝마치고, 방을 나오자
느긋히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 열쇠고리로 장난하던 준혁이가 못마땅한 반응을 보이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게 뭐에요. 결혼식 장 가는데 좀 더 화사한 옷 없어요?"
"왜..왜애~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나름 매혹적인 표정으로 한바퀴 돌려는 나를 제치고, 준혁이는 거침없이 내 방에 발을 들이밀었고,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침대 위에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옷가지들 중에, 내가 가장 아끼는 원피스를 들었다.
"이 옷이 괜찮네. 이거 입으세요."
"어엇!! 안돼안돼! 그거 내가 가장 아끼는 옷이란 말야~!!"
"..진짜 옷을 확 벗겨버릴까보다."
정말 옷을 벗길 기세로 양 손가락을 꿈틀대며 걸어오는 준혁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우, 알았어!! 이걸로 입을테니까 빨랑 나가있어!!"
준혁이에게 그 옷을 건네받을 수 밖에 없었다.
...................
이제 정말로 됬겠지, 생각하고서 비장한 마음으로 방문을 열자마자,
바로 앞에 서 있었던 준혁이가 성급하게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렇게 신발장 까지 끌고가더니, 들고 있던 헬멧을 다시 옆구리에 끼며 말한다.
"신발 신고 밖에 나와계세요."
그리고 부리나케 뛰어가는 그 아이.
눈물을 삼키고 아끼는 구두까지 낑겨신고 나온 나를 반겨주는 건,
요란한 엔진소리를 일으키며 저 멀리서 달려오는 검은색 오토바이였다.
-끼이익.
입을 쩌억 벌린 내 앞에 제법 폼나게 급정거 한다.
그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있는.. 나의 제자 준혁이.
"이봐이봐,준혁학생..선생님 앞에서 오토바이 모는 학생은 너 밖에 없을거야.."
벙찐 투로 주절대는 나에게, 무심코 헬멧을 던져준 준혁이가 고개를 한 번 까딱하며 말했다.
"타세요."
"...에?"
"타시라구요."
....그...그 괴물같은 속도로 달리는 오토바이에.. 몸을 실으라는 거니?
-또각.
발걸음은 저절로 뒤로 향한다.
"...아니.. 왜...왜... 그냥 택시 타고 가면 되잖아!"
"후우.."
준혁이는 상당히 성질난다는 표정으로 오토바이에서 내려와 점점 뒷걸음질 치고 있는
나를 기어코 잡았다. 그리고 눈깜짝할 새에 괴력으로 나를 들어올려 오토바이에 앉혔다.
땀이 배인 내 손에 들려져 있던 헬멧을 뺏어 손수 내 머리 위에 씌워주고 다시 자리를 잡아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다. 공포스러운 소리와 오토바이가 덜컹덜컹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준혁아!! 싫어!! 택시타고 가자!! 나 진짜 못 타겠어!!"
내가 아주 울부짖는데도, 그 아이는 태평했고 말없이 내 손을 잡아 자기 허리에 두르게 하며 입을 떼었다.
"그만 징징거리고 제 허리나 꽉 잡으세요. 도중에 떨어져 나가고 싶지 않으시다면."
제대로 약효를 받은 내 팔이 그 아이의 허리를 꽈악 붙든다.
동시에 예고없이 오토바이도 출발.
"꺄아아아아악!!!!"
한산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갑작스러운 속도변화에 놀란 내 목소리만 울려퍼질 뿐이였다.
...........................
.......
-부아아아앙~
쉴새없이 귓가에 부딪혀대는 오토바이 엔진소리.
준혁이의 허리에 간신히 매달려 거의 정신을 잃고 있다가, 어느정도 적응이 되서
머릿속의 사고능력도 되살아 났다.
나는 말없이 질주하고 있는 그 아이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아니, 시끄러운 엔진소리 때문에 목소리를 높일 수 밖에 없었지만.
"그런데 준혁아!!!들리니!!"
"네!!!"
"진짜.. 너 어떻게 안 건데?! 우리집이랑.. 내가 선배.. 아니, 김명배선생님 결혼식장에 안간거랑 어떻게 안거야?!"
"다 알았었어요!! 선생님 집이랑 선생님이 십년동안 수학선생님 짝사랑 하신 것도요!!
지독하게 좋아한만큼 결혼식 가는 것도 고통스러우셨겠죠. 절대 선생님 스스로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을거라고 생각했어요!!"
망설임 없이 좔좔좔 시원스럽게 흘러 나오는 대답에, 가슴이 철컹 내려앉았다.
어떻게..어떻게.. 지금 내 마음 속에서 계속 되뇌이고 있는 한 마디. '도대체 어떻게'
"억..... 아..아니.. 얘..얘가 지금 무슨 소리래? 내가 .. 내가 왜 수학선생님을 좋아해!!"
어쨌든 당황한 입술은 서둘러 발뺌부터 내뱉놓았지만,
"거짓말은 저한테 안 통해요!!! 나중에 다 말씀드릴테니까 일단 오늘은 결판 지으세요!!"
엔진소리를 뚫고 귓구멍에 꽃히는 그 아이의 말은 다시 한번 가슴을 내려앉게 한다.
"무슨 말이야!!"
"십년간의 짝사랑,첫사랑! 모두 정리하시라구요!!"
"..너!! 대체..."
-부아아아아앙~
나는 그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오토바이 엔진소리가 더 괴팍해졌을 뿐더러, 어짜피 말문은 막혀버렸기 때문에.
.............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지옥의 드라이브가 끝나고,드디어 오토바이가 거대한 예식장 앞에 세워졌다.
여기까지... 와 버렸구나. 정말.. 정말 어처구니가 없게 끌려와 버리고 말았어..
벌써부터 귓가에 결혼식 축가가 떠다니는 것 같다.
이미 손목은 준혁이에게 잡혀, 나는 지옥의 구렁텅이로 발을 들이밀고 있는 중이다.
예복을 입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커플들. 환호성을 지르며 풋내기 신혼부부를
축복해 주는 하객들.
오늘 이곳에서 결혼하는 커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우리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오층까지 올라갔다.
정말 어지간히도 큰 예식장이다. 라고 경악하고 있는데,
-5층입니다.
"다 왔어요."
비장한 준혁이의 목소리, 스르륵.. 열려버리는 엘레베이터 문.
그리고... 바로 눈 앞에서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턱시도 차림의 명배선배와 제대로 마주쳐버렸다.
환해지는 선배의 표정.
나를 앞장 세운 준혁이가 빨리 가보라는 듯 내 등을 툭툭 떠 밀었다.
나는 선배에게 다가서며 엉거주춤 핸드백 안에서 미리 챙겨놨던 축의금이 든 봉투를 꺼냈고,
완전히 선배와 맞닥뜨리게 됬을 때, 그것을 살며시 내 밀었다.
하지만 선배는 봉투대신 내 손을 꽈악 부여잡았다.
"와 줬구나. 안 오는 줄 알았어."
선배의 얼굴에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맞잡은 두 손이 따뜻한 온기를 공유한다. 그 눈물 나도록 애틋한 느낌에, 얼른 선배의 손에서
벗어나 축의금을 내밀었다. 선배는 이러지 않아도 된다고 멋쩍게 웃어보였다.
한껏 부풀어오른 심장을 억누르며, 나는 목구멍에 대롱대롱 걸려있던 말 을,
십년 이라는 긴 세월을 한꺼번에 정리하는 그말 을. 입 밖으로 내보냈다.
"축...하해요. 선배.. 아니... 김선생님."
그 말에, 선배도 조용히 모든 것을 정리했다.
"...고마워요. 은선생님."
...........................
축의금만 내고 빨리 이 곳을 떠나고 싶었건만, 내 손목을 잡고 식장까지 들어온 준혁이 때문에..
정말 보고 싶지 않았던 선배의 결혼식까지 보게 되었다.
주례사의 진행 속에 언약을 하고, 반지를 교환한 다음,
하객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맹세의 입맞춤을 하는 두사람.
지금까지 봐 왔던 미소들 과는 차원이 다르게, 가장 행복하고,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선배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저 사람은 내 사람이 아니라고.
가슴이 아려왔다.
그것은, 선배만을 바라보고 있던 내 가슴이 마지막으로 느끼는 통증이였다.
...............
.............................
"그만 좀 우세요. 운다고 수학선생님이 선생님한테 올 것도 아니고.. 그만 우시라니까요?"
"흐...흐어어엉..."
예식장 앞에 세워져 있던 준혁이의 오토바이에 걸터앉아 정신없이 눈물을 쏟고 있는 나.
그런 내 앞에 서서 오토바이에 양 손을 기댄 채 허리를 굽히고 나와 눈높이를 맞추는 준혁이.
"..그래도, 오늘은 검은눈물이 안 나오네. 방수 마스카라 썻죠?"
장난어린 그 아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흐느낌 속에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풉, ...응."
다시 심각해진 그 아이의 표정.
"울다가 웃으면 뭐에 뭐 난다는데."
".....흐웁...흐웁....흐어어어엉~!"
그 말이 이상스럽게 서러워져와서 다시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까보다 더 심하게 흐느끼며 울던 중,
"...진짜,우는게 애기가 따로 없네."
낮은 준혁이의 목소리와 함께, 진하게 다가오는 그 아이의 향기.
어느덧 그 아이의 품속에 들어가 있는 내 몸.
그런데.. 전에도 준혁이한테 덥썩 안긴 적이 있었나...? 이렇게 제대로 안겨보는거 처음이 아닌 것 같아.
좀 더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이 아이의 향기를, 전에도 .. ...?
어쨌든 꽤 당황스러운 상황인데도, 어쩐지 계속 이 아이에게 몸을 맡기고 싶었다.
이왕 울 거 다 울어버리자, 하고 아예 그 품에 얼굴을 묻어버리려는 데,
"앞으로 울려면 저한테 안겨서 우세요."
"....크읍. 응... ......아니... 응?"
무심코 긍정을 말했다가 나도 깜짝놀라서, 바로 고개를 들었다.
흔들리고 있는 그 아이의 눈동자.
"...준혁이 너, 서비스정신이 너무 특출난거 아니니?
에이그. 이 품에서 울다지친 여자들이 대체 몇명이나 될까~"
결국 그 눈동자는 무시하고, 베시시 웃으며 장난식으로 말했다.
역시 장난식으로 반응해 올 준혁이를 기다렸지만, 그 아이의 반응은..
"제가 안아주고 싶은 여자는 선생님 뿐이에요."
그렇게 말하고서 입술을 굳게 다물어버린다.
'왜..?'라고 물어볼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테니까. 나는 단번에 알아버렸으니까.
..이 아이의..마음을.
.................
이 아이에게 어떤 말부터, 건네야 할까.
이내, 어색한 침묵을 몰아내는 준혁이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내 귓가를 무겁게 짓눌렀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
덜컹. 심장이 기분나쁘게 꿈틀댄다.
마치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은 것 처럼 불안해져온다.
머릿속은 시커멓게 물들여버려서.. 무슨 말이든 해야 하는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한 말이란,
"..준....혁....아...."
그 아이의 이름을 되뇌였을 뿐.
그러다가,
"이...이러면.. 안되는 거잖아. 이건... 좀 아니잖아."
횡설수설 성의없이 늘어놓은 말을 단번에 받아치는 그 아이.
"왜 요?"
"...왜...라니... 그건..."
"넌 제자고 난 선생이라서 안된다는 말, 하지 마세요."
내 마음을 읽은 듯한 그 아이의 말에 다시 입술이 닫혀버리고,
"우린 나이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안된다는 말, 하지마세요.
넌 단지 사춘기의 열병을 앓고 있을 뿐이라는 말도 하지마세요.
제 마음은 그런 식상한 상식같은거 뛰어넘은지 오래에요."
애꿎은 입술을 물어뜯으며 그 아이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진심이에요. 선생님이 여자로 보여서 미치겠다구요.
하루에도 수십번 선생님이랑 마주칠 때마다 감정을 억누를 수 밖에 없었어요.
선생님을 정말.. ...정말 사랑해요. 사랑이라는 말 함부로 지껄일수 말 아니잖아요.
처음이에요.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해서 안타까워하고, 애태우고,
어떻게든 그 사람을 계속 내 옆에 두고 싶고, 다른 사람이 건들지 못하게 하고 싶고,
내거로만 만들고 싶고.
선생님한테는 그냥 제자가 아니라, 학생이 아니라, 어엿한 남자로 보이고 싶어요.
선생님을 사랑하고 있는 남자로 보이고 싶어요.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똑같이 사랑해본적 있으니까.. 아시잖아요.
...그 느낌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선생님이 말해주셨잖아요."
...
"내가... 말해줬다구?"
그제서야 트인 목구멍. 나는 몽롱한 음성으로 말을 흘렸고, 준혁이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여보였다.
그리고 간절히 내 어깨를 잡는다.
"정말 기억 안나세요? 반년 전, 12월 21일에 선생님 실연당하고 술에 잔뜩 취하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계속 옆에 있어드렸잖아요. 집에도 데려다 드렸잖아요.
그 때 말해주셨잖아요. 짝사랑이 얼마나 아픈건지.
저 그 때부터 선생님 좋아했어요. 지금까지.
제가 겪었어요. 그놈의 아픈 짝사랑을."
....어깨를 죄여드는 그 아이의 손가락.
낯설지 않은 그 느낌을 따라 어깨에 남아있는 희미한 기억들이 어렴풋이 머릿속으로 전해져 온다.
'왜요? 그 새끼가 뭔 짓 했어요?'
'...결혼? 선생님, 그 새끼랑 사귀셨어요? 그 새끼가 바람핀거에요?'
'그렇게, 수학선생님이 좋으셨냐구요.'
......
혹독한 추위에 잔뜩 얼어 벌게진 볼, 날카로운 눈매,차가운 손 끝, 거친 말투, 유난히 낮은 목소리,
따뜻한 캔커피, 시린 향기,
희미하게 형체만 이루고 있었던 기억의 조각들이 눈앞에 맞춰져 있다.
"...너 였니..? 너 였어?"
"이제야 기억..하시네요."
힘없이 입가에 걸리는 그 아이의 미소.
그래서... 다 알았던 거야? 우리집도.. 선배를 향했던 내 마음도.. ...짝사랑이라는 아픈 감정도.
뭐가... 이래.... 왜 이렇게 되어버린거야... 왜 하필 준혁이야.. 왜 하필... 가장 멀어지고 싶지 않은..
"저한테 오세요."
"...어....?"
........
마지막, 끝마무리를 짓는 그 아이의 고백.
"선생님은 십년동안, 저는 열달동안.
우리 둘 다 이 지긋지긋한 짝사랑 좀 끝내면 안될까요.그냥 저한테 오세요."
..모르겠다.
그저, 소중한 제자에 불과한 이 아이의 고백으로, 반응해 버린 심장에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뿐.
.................
..................................
지난 세월 간, 고백을 아주 안 받아본것도 아니였다.
정중히 거절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다르다.
무작정 거절할 수 없다. 그 자리에서 거절할 수 없다.
"...생각 할..시간 좀.. 줄래?"
이 자리부터 피하고 싶은 생각이 우선적이라, 대답을 회피하는 말을 대신했다.
준혁이에게는 안 통했다.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듯 내 손목을 단단히 부여잡는다.
".... 아니요. 그냥 여기서 말하세요."
"준혁아, 내 말좀 들어ㅂ.."
"안 들어요. 우리 여기서 더 복잡해지지 마요. 그냥 지금 그대로의 선생님 감정을 듣고 싶어요."
..피할 곳은 없다. 이건가..
준혁이의 표정없는 얼굴은 여전했지만, 그 아이의 눈동자는 계속 흔들리고 있다.
시선을 바닥으로 던졌다. 그 안타까운 눈빛을 보면서 입을 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주위는 시끄럽기만 한데, 지금은 준혁이의 긴장어린 숨소리까지 들린다.
그 속에서, 나는 조용히 말을 시작한다.
"...넌.... 나에게 넌...
경인고등학교 2학년5반 32번. 하준혁이라는 학생이고,
우리반에서 좀 더, 유별나게 아끼는 내 제자야.
성격은 무뚝뚝하지만 자상하고,
선생님인 날 더 챙겨주는 듬직한 제자고,
오토바이를 좋아하고, 잘 타고,
하지만 공부에도 소홀히 하지 않지. 모범생에다가 얼굴까지 잘생겼구.
뭐 하나 부족한게 없는 내 제자야.
넌.. 나에게 그런 제자 일..뿐이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나의 대답은 이쪽으로 치우쳤다.
냉정과 이성을 따랐다. 내 안에 미세하게 움직이던 감정은 죽여버렸다.
말이 안되잖아.. 제자한테 연모를 느끼는건,
"정말.. 그것 뿐이에요?"
메여버린 목소리로, 그 아이가 물었다.
나도 잔뜩 메여버린 목소리로 답했다.
"....응."
"......"
순간, 준혁이의 표정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봤다.
처음으로, 절대 냉정을 놓치지 않았던 그 아이의 표정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내 마음도 무너진다.
"....미안....미안해. 정말.."
벅차고 올라오는 눈물들을 삼켜보며, 그렇게 말하자
준혁이는 말대신 헬멧을 내밀었다.
마지막까지 챙겨주는 그 아이의 배려에 결국 축축해져 오는 눈가.
떨리는 손으로 그 아이가 건네준 헬멧을 오토바이 위에 내려놓고,
"....아니, 아니.. 선생님.. 들릴 데가 있어. 먼저 가.. 잘 가. 내일 모레 보자.."
얼른 억지웃음을 내보이며 몸을 틀었다. 그리고 바로 발걸음을 떼었다.
...거기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저 두 번 죽이지 마세요."
발목을 잡아채는 그 아이의 목소리.
"......."
내가 그대로 멈춰서있자, 오토바이에 시동 거는 소리와 함께 그 아이의 목소리도 점점 가까워졌다.
"저요. 선생님이랑 예전처럼 돌아가려고 하면 미쳐버릴지도 몰라요.
애초부터 정상적인 사제관계는 깨버리자는 식으로 고백했던 거에요.
이제... 더 이상 선생님을 웃으면서 볼 수 없어요. 돌아갈 수 없어요. 돌아가지 못해요.
선생님한테 고백 해 버린 이상.. 전 계속 선생님 앞에서 제자가 아닌 남자로 설 테니까요."
이내, 내 앞을 가로질러 희뿌연 매연을 내뿜으며 사라지는 오토바이.
그 아이의 뒷모습도 순식간에 시야 앞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
왜 이렇게... 가슴 한 구석이 쓰라린거지?
자연스럽게 내 일상 속에 스며들었던 그 아이를, 잃어버렸으니까.
...그래, 잃어버렸으니까.. 돌이킬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아픈건가?
열달 전, 처음 선배의 결혼식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보다, ...더.
.................
........................
얼마나 지났을까.
단골술집에 눌러앉아 술잔을 기울이기만 수십 번.
취기에 잔뜩 홀려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리고 나서야, 나는 술잔을 놓고 일어날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술에 취할 때면, 거리 속의 사람들과 섞여 돌아다니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갔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언제나 나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는, 인적 많은 거리.
그렇게 잠시동안 사람들과 부딪혀가며 비틀비틀 걸어대다가,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져 벌써 문을 닫은 옷가게 앞에 주저앉아버렸다.
경계어린 눈초리로 한번쯤은 나를 훑고 가는 사람들.
술만 먹으면 쓸데없는 베짱이 커져서,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들으라는 듯이 크게 떠벌대기 시작했다.
"난 참!! 지지리도 못난 년이죠~ 와.. 진짜 웃긴다.
난 십년동안 짝사랑한 사람한테 차이고.. 날 열달동안 짝사랑한 사람을 차고..
진짜 웃긴 세상이다.... 으흡....흐흐윽..."
이제 정말, 미친여자 취급하는 눈빛으로 나를 찔러대는 사람들.
더 이상 쏟아낼 눈물도 없겠다 싶었던 눈에서는 수돗물을 튼거 마냥 줄줄줄 눈물이 새어나오고,
그래도 창피한 느낌은 있어 얼른 무릎을 안고 얼굴을 묻어버렸다.
"..선생님."
..........
하하..이제.. 환청까지 들리는 건가. 환청치고는 너무 생생한 준혁이의 목소리가 와닿는구나.
"선생님."
.....하지만, 다시 확실하게 나를 부르는 준혁이의 목소리.
..왜, 또... 마주쳐버린거야.
나는 술김을 빌려 베실베실 웃으며 고개를 들었고, 내 앞에 어김없이 준혁이가 서 있었다.
..그 아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질것 같아서,또 어리광을 부릴 것 같아서, 기대고 싶을 것 같아서, 잡고 싶을 것 같아서,
애써 이렇게 말해본다.
"...어...이게 누구야. 내가 차버린... 차버린... 내 제자 아니야?"
그 아이는 조용히 이마에 가득 맺힌 땀방울을 살짝 걷어냈다.
급하게 뛰어다닌 듯, 숨소리가 아직도 거칠다.
"....이럴 줄 알았어. 또 술 퍼마실 줄 알았어.."
준혁이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고,
"떼끼! 말버릇 봐라~ 이 녀석이 어디서 선생님 한테~"
나도 말장난으로 대충 넘겨보려고 했는데..
"....."
주체할 수 없이 떨어진 눈물 한 방울 때문에, 그 아이에게 보여버린 눈물 한 방울 때문에,
다시 무릎에 얼굴을 숨겼다. 그리고 그 상태로, 입을 떼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넌 정말 좋은 '남자'야. 그런데.. 그런데 정말..
니가 말했던 식상한 상식처럼.. 난 선생님이고.. 넌 학생이니까.. 나이차이도 쉽게 극복하기 힘들만큼
많이 나니까...정말.... 어쩔 수 없잖아. ..세상은 식상한 상식에만 기대잖아.."
"...."
"이상해, 준혁아... 왜 이렇게 아픈거지? 너랑 멀어질 생각을 하니까.. 정말.. 마음이 찢겨져 나가는것 같아.
무서워. 우리.. 계속 유지하면 안 될까? 어색해 지고 싶지 않아. 너랑.. 계속... 예전처럼.."
말문이 끊긴다.
그 아이는..아까처럼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아까 그 느낌 그대로,따뜻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왜...왜.. 왜 이러느냐!!"
당황해서 우스꽝 스럽게 변해버린 말투.
"기댈 곳 필요한 거 다 알아요. 그냥 기대세요."
그리고, 나를 또 다시 울리는 준혁이의 한마디.
어디까지야. 도대체 너의 배려는.. 끝도 없잖아. 귓가에 전해져 오는 그 아이의 심장소리가 말한다.
안타깝게 말한다. 나는 가만히 그 심장소리에 집중하며 말했다.
"....너 왜그래... 너도.. 너도 아프잖아.."
"..아프긴 뭐가 아파. 아픈 곳 하나도 없거든요."
거짓말.. 이렇게 들려오는 니 심장소리가 말하고 있잖아.
아파죽겠다고. 울고 싶은데 울지도 못하겠다고.
그래서 나도 한계 인가봐.
그 소리를 들어버린 이상 더는 못 참겠으니까.
내 이기적인 본심이 고개를 들어버리고 말았으니까.
"...괜찮겠어?"
너에게 기울어버린 이 나약한 마음이, 제멋대로 말해.
".....네?"
의아한 목소리. 계속해서 밀고나가는 내 입술.
"..올해 서른살이 넘어가는 울보에다가 고집불통,덜렁이,어리버리 노처녀인데.. 괜찮겠어?
"...."
"질투심은 어지간히 많아서 사소한 일에도 엄청 귀찮게 할텐데.. 괜찮겠어?"
"....
"집안일 하고는 완전히 담 쌓은지 오래고.. 요리실력까지 꽝인데.. 괜찮겠어?"
"...."
"이런 이기적인 나라도... 괜찮겠..."
말을 끝내지도 못한 내 입술을,그 아이의 입술이 단번에 틀어막아버린다.
그래서 완벽하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이해했다고, 이 아이의 입술이 말해준다.
그 때만큼은 두렵지 않았다. 달갑지 않게 우리를 쏘아 대고 있을 사람들의 시선도.
....................
.................................
그리고, 어둠이 짙게 깔린 거리에서 꼭 잡은 두 손을 놓지 않고 걸어가는 두 사람.
행복하기는 한데.. 어쩐지 낯뜨겁다. 준혁이하고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이야..
처음, 그 아이가 자기를 기억해달라고 했던 그 때까지만 해도, 절대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준혁이는 마냥 좋은 듯 콧노래까지 부르며 걸어가고 있다.
가벼운 발걸음이 멈춘 곳은, 준혁이의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는 편의점 앞.
준혁이는 나를 오토바이에 태워주려는 것 같았지만, ...지금 이 상태로 저 오토바이에 탓다가는
내 위속에서 출렁대고 있는 알코올들이 한꺼번에 분출될 것이다.
"어휴... 또 오토바이. 남자애들은 오토바이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거니?"
그 말에,오토바이를 타고 싶지 않은 내 심정을 눈치챈 것일까, 준혁이는 나에게 헬멧을 건네주려다
내려놓고 오토바이에 기댔다.
"아찔한 속도를 느끼면서 달리는게 끝내주거든요. 그리고 멋있잖아요."
"아이구 참.. 난 그런거 보면 속이 떨려서 못 보겠든데, 그러다 사고 나면 어쩌려구."
내가 혀를 끌끌차대며 말하자, 준혁이의 눈썹이 묘하게 꿈틀거렸다.
"..선생님, 저 오토바이 안타길 원하세요?"
"당연하지. 위험하잖아.. 오토바이 사고 한번 나면 얼마나 큰일나는데.. 한방에 죽는대잖아.."
나는 절대긍정을 표했고,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입고 있던 재킷안에서 열쇠고리를 꺼내는 그 아이.
-찰랑
"그럼, 이거요."
심플한 디자인의 열쇠고리가 대롱대롱 흔들리다가 내 손아귀에 착지한다.
"엇... 너..이거.. 오토바이 키.."
"제 목숨. 이제 선생님 거니까 선생님이 관리하세요."
여유있게 말하고는, 다시 내 손목을 잡아끈다.
내친김에 오토바이는 저 쪽에 안착시키기로 한 듯하다..
역시.. 쿨하구나.
..요 녀석. 어디서 본 건 많아가지구.
멋지구리한 말만 골라하네.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 나는 오토바이키를 조심스럽게 핸드백 속에 털어놓았다.
그리고 붕붕 뜨는 기분으로 그 아이의 손에 이끌려갔다.
하지만, 문득 걱정부터 앞서간다.
이렇게 급속도로 행복해져도 되는걸까?
앞으로도.. 이렇게 행복하기만 할 수 있을까?
... 준혁이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앞으로의 날들.
"준혁아.. "
"네."
"학교에서.. 우리 사이 소문나면 어떡하지?"
바로 굳어질 표정을 예상했건만, 준혁이의 표정은 태평스럽기 그지 없었고,
"소문 나면 소문 나는거죠. 오히려 더 좋겠네. 선생님 내 거라고 광고되는 셈이니까."
"얘 좀봐..나 잘릴 지도 모르는데도?"
"그러면 그 때가서 생각해요. 벌써부터 그런거 따질 필요 없잖아요"
천연덕 스럽게 말하는 그 아이를 보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래. 벌써부터 따질 필요는 없잖아. 그냥 지금, 이 아이와 있어서 기쁜 것만 생각하면 되.
준혁이가 정말 좋아.그러니까 무섭지 않아.
그런데... 그런데..
...............
"...그런데 준혁아. 진짜, 정말 괜찮겠어?"
다시 터져버린 질문. 졌다, 라는 눈빛으로 나를 향하는 그 아이의 얼굴.
"....나 참, 쓰잘데기 없는 걱정만 많아가지구.또 뭐가요."
귀찮은듯 하면서도 빙그레 웃어주는 것이 보인다.
..사람은 원래 너무 행복하면 불안해져 오는 법이야.
"아무래도 나이가 걸리는데..나.. 정말 엄청 빠르게 늙어갈거야. 나중에는 니 옆에 서기 부끄러울 만큼..
...그런데도 괜찮겠어?"
이번에는 굳어버린 준혁이의 표정.흥겨웠던 발걸음도 멈춰버렸다.
당황해서 불안하게 그 아이를 올려다 보면, 딱딱하게 말을 내뱉는다.
"..누가 선생님이랑 결혼한댔어요?"
...........
"...어...?"
.....내가... 뭔가.. 착각한건가?
그 상태로 얼어버린 나에게,
"저랑 결혼하고 싶으세요?"
여전히 딱딱한 표정과, 딱딱한 말투를 건네는 그 아이.
....미쳤어. 은소진, 미쳤어,미쳤어.
니가 결혼이 궁했던 거지. 급했던 거지. 아우!!
나는 다급하게 손사래를 쳐보였다.
"..아...엄...아니!!! 미안!! 내가 미쳤나봐, 어떻게 그런 말을 했지, 내가?! 미쳤어!!
미안해, 그냥 한 귀로 흘려보내 줄래? 그런 뜻은 절대, 결코 아니였다구!"
내 원맨쑈를 묵묵히 지켜보던 준혁이는, 허공을 마구 휘젓던 내 손을 한번에 잡았고,
"...그런거 따졌으면 애초부터 선생님 좋아하지도 않았어요. ..진짜 귀여워 죽겠네."
그렇게 말하며, 다시 나를 잡아끌었다.
"...에....에..?!"
뒤늦게 그 아이의 말을 이해한 나는, 안도함과 동시에 발끈해서 "뭐야아!"하며 준혁이에게
투정을 부리려고 했지만, 그런 내 말은..
"애부터 만들러 가죠."
정말 진지함이 넘쳐나는 준혁이에게 먹히고 말았다.
내 쪽은 기절초풍 상태.
"..뭣....애..? 애기? 아기?!"
"아직 젊으시니까 이 때 낳아두면 좋잖아요."
"..농담이지?"
외면해보려고 하자, 준혁이는 우습다는 식으로 나를 덥썩 안아들었다.
승리의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맞춘다.
"이래도 농담으로 보여요?"
"아니.. 저기 저..준혁아?! 그렇게 성급하지 않아도..아니아니.. 이건 아니잖아!! 너 결혼 안 한대매!!"
이리저리 발버둥 쳐봐도, 우리집으로 향하는 그 아이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생각이 바꼈어요."
"얘..얘가 미쳤어!!그래도 이건 아니잖니?! 일단 내려놓고 얘기하자, 응? 하준혁!!"
"쉿."
.................
...............................
그 다음부터는, 안 보고도 뻔한 해피엔딩.
첫사랑은 이루어 졌다.
첫댓글 와아- 지금 오랜만에 PC방 왔는데… 오자마자 단편방 들어왔더니 흥미진진한 얘기가 있길래 봤더니, 후후후- 너무 재밌어요!
히로유키님 반갑습니다.^^ PC방이시군요. PC방에서도 인소닷에 들려주시다니 히로유키님도 인소닷에 많이 들리시나봐요~^^ 사제지간의 사랑. 흥미진진한 소재죠~ 첫번째로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준혁아!;ㅁ;
코파님 안녕하세요.^^ 하하; 단 한마디. 준혁아! 라고 남겨주셨군요. 남주인공에게 찬사를 보내시는 그 마음이 충분히 담겨있는 그 한마디. 왠지 보고 풉, 웃어버렸답니다.^^.. 소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꺄아악, 병원에서, 퇴원하고나서 처음으로 들어와서 본 소설인데, 본편에다 덧글 안써서, 죄송해요 ㅜㅜ 그래도 전, 번외가 있을꺼라고, 굳게 믿었거든요, 완전 재밌게 보고 가요, 다음소설 완전 기대해도 되죠?
나르세크님 안녕하세요.^^ 어쩐지 오랜만에 뵙는 느낌이에요~ 병원에 입원하셨었어요? 어디가 아프셨길래..ㅜㅜ 지금은 괜찮으신거죠? 본편도 봐주셨었군요~! 괜찮아요. 제 소설을 봐주신것 만으로도 정말 감사드린걸요..^^ 나르세크님도 번외를 원하셨다니 번외를 올리길 잘한것 같아요~^^ 번외편 재미있게 봐주셨다니 뿌듯합니다. 급한마음에 휘갈겨 써서 확인도 제대로 못해보고 올린지라 좀 불안했거든요..^^ 다음에는 더 좋은소설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으와아아앙- 어째서 해핀데 자꾸 눈물날라고 하죠?!...잉ㅠㅠ 너무 재밌어서 그런가봐요..헤헤.(방금 600바이트 꽉꽉- 채웠는데 막 지워졌어요...) '작은시작' 번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얼마나 갈망하고 있었는지몰라요!! 근데 요로코롬 번외가 번듯이 올라와있으니까 무진장 기분이 붕붕- 뜨면서 좋아지네요!! 하하하- 역시 우리 김여자님은 제맘을 너무 잘아신다니깐요!!! <-그런건...아니겠지만;; 하하. 무튼 너무너무 재밌어요!!! 매번 이렇게나 훌륭한 소설을 쓰시니까 정말 안존경할수가 없는거라니깐요ㅠㅠ!!! 김여자님은 예전부터 바랬지만 꼭!!! 장편도 썼으면 좋겠어요~ 정말!! 대박치실텐데...헤헤!! 나중에 쓰실 생각있
으시면 꼭 알려주셔야해요!!! 무조건 환영입니다! 하하. 이번소설 말고도 곧 돌아오실거라고 믿어요~ 다음 소설이 벌써부터 두근두근- 기대됩니다!! 그럼 다음소설도 엄청나게 기대하면서...사랑해요!!하하.
슬퍼지자님 안녕하세요.^^ 이제 소설을 올릴 때면 무의식적으로 슬퍼지자님 감상글을 기다리게 되요^^ 이번에도 제 마음까지 꽉꽉 채워주시는 슬퍼지자님의 감상글. 600바이트를 날려버리셨는데도 다시 이렇게 채워주시다니..어김없이 저를 감동시켜 주시는군요..ㅜㅜ 슬퍼지자님도 번외를 원하셨었군요. 저도 어쩐지 미지근한 결말이 좀 걸려서 얼른 번외를 썼었거든요..^^ 하하. 슬퍼지자님도 마음이 통했군요! 헐레벌떡 쓰느라 많이 부족한면이 많을텐데 괜찮으셨나요..?^^ 매번 저를 과분한 칭찬으로 띄어주시니 몸 둘바를 모르겠어요..ㅜㅜ 슬퍼지자님의 실력이야 말로 제가 존경해야 하는걸요^^ 아아, 장편얘기가 나왔군요.
장편은 제가 정말 욕심내고 있기는 한데..^^ 시간과 실력이 아직 안따라주니까요.. 만약 쓰게 되면.. 슬퍼지자님께 제일 먼저 알려드리고 싶어요!^^ 전에 남겨주신 핸드폰번호로 문자를 날려드리고 싶은데 알이... 아직까지.. 안들어오네요^^;.. 조만간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슬퍼지자님 소설도 아까전에 봤는데 슬퍼지자님도 곧 돌아오시길 바랄게요~^^ 저도 사랑합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우아아아아아진짜 준혁이정말멋있어요 ㅜ0ㅜ 나같으면 안저랬을.... <;ㅁ; 재밌었어요!!
소음바다님 반갑습니다.^^ 준혁이.. 뭔가 애착이 가는 캐릭터였죠. 선생님을 좋아할만한 듬직한 캐릭터로 밀고 나가고 싶었답니다.^^ 으흠.. 나같으면 안저랬을.... 이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저는 이해가 잘.. 하하; 양해해주시구요..ㅜㅜ; anyway.재미있으셨다니 다행이에요^^씻고 와서 기분좋게 답글 남깁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우아...........진짜 준혁이 멋있어요. 늘 배려하고 뒤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그러나 기회를 놓치지는않는!! 후. 깔쌈하고 멋있는 자식. 너무 멋있고 예쁜소설이였어여
티없이맑은아이님 안녕하세요.^^ 와, 준혁이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해주셨네요~ 준혁이의 캐릭터는 '조용한 강함'이였답니다. 다혈질에다가 쿨하지만 순정파소년이지요. 연하남 답지 않은 듬직한 이미지를 부각시켰죠^^ 부족한 소설을 멋있고 예쁜소설로 칭해주시니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지는걸요?^^ 번외편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준혁이 멋져요~아 몸이 타버릴듯한 더위 몇번이나 씻어도 땀이 비는 안오고..ㅠㅠ 벌써부터 다음편이 기다려져요 ㅎㅎ
맛난아이쮸크림님 안녕하세요.^^ 이번 남주인공이 인기가 많네요~ 오늘 정말 더웠죠 잠깐 소낙비가 내리긴 했는데 계속 내릴줄 알았더니 무섭게 개더라구요. 저는 괜히 비온다고 가디건까지 걸치고 외출했다가 더워서 고생했답니다.ㅜㅜ 더위병 조시하세요~ 다음에는 더 좋은소설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번외편도 봐주셔서 감사드려요.언제나 행복하시길^^
아흑~완전재밌어요!!!
바다님 안녕하세요.^^ 역시 번외편도 봐주셨군요~ 번외편을 써본건 이번이 세번째인데 이 소설을 가장 열정적이게 쓴 것 같아요. 하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 내심 들었는데 완전재밌다고 해주시니까 마음이 놓이네요^^ 감사합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김여자님 ㅠㅠ 번외를 써주셨군요~~~ 감사해요~~ 근데 정말 방수 마스카라의 센스와~~ 오토바이키를 건네며 날린 멘트에 이 누님은 준혁이한테 넘어갔습니다ㅠㅠ 왜케 멋진거예요~~~ 소설속 주인공들이 너무 멋져서 눈만 높아진다니까요ㅡㅜ ㅋㅋㅋㅋㅋ 재밌게 잘 봤어요 ㅎㅎ 더운데 더위 조심하시구~~ 또 재밌는 소설 부탁드려요^^
상큼소녀님 안녕하세요.^^ 제일먼저 상큼소녀님의 감상글을 보고 바로 번외편에 도전했답니다.센스가 남다른 우리 준혁이.^^ 여자친구 화장품을 사는 남자의 모습을 상상하며 썻는데,저도 쓰면서 빙긋 웃었답니다. 오토바이 키 에피소드에서는 어디선가 많이 떠돌아다니던 멘트를 살짝 빌려썻구요^^현실과는 거리가 먼 우리 소설주인공들이기 때문에 저 또한 그들에게 빠져 눈이 높아져버렸죠ㅜㅜ 아아 상큼소녀님도 더위 조심하세요~^^ 지금 아침인데도 햇빛이 엄청나게 따사로와요. 다음에 더 좋은소설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번외편도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언제나 행복하세요^^
헛! 처음본다.왼지 상큼한데...앞으론 더 깊게 보게 될것같은 김여자님.. 잘부탁드려요 -아직 정회원 못되 못올리고 있는 人-
똥개로망스님 반갑습니다.^^ 아앗 이 소설을 상큼하게 봐주셨다니 기분이 남다르게 좋네요.^^ 네 잘부탁드립니다. 저도 로망스님을 깊게 볼것 같아요 ^^정회원이 되시면 단편소설방에 자주 들러주세요~ 로망스님 소설도 보고싶어요^^ 감사합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