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반달 하나 -- 임현택
야간출사를 갔다. 가로등 불빛에 얼비추는 단풍과 달빛에 물들은 명암저수지 풍경은 신이 내린 선물 같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호수에 빠진 만월(滿月)과 찬란한 불빛과의 조화를 이룬 반영, 고정관념의 틀을 깨지 못한 우리세대는 호수를 배경으로 반영만 찍고 있었지만 젊은 세대는 달랐다. 삼삼오오 짝을 이뤄 호수 속에 반영을 배경으로 우스꽝스런 포즈를 잡기도 하고 나무작대기를 이용해 마법사처럼 날아가는 포즈도 훌륭하게 취한다. 마치 무대에 올려 진 그림자공연을 보는 듯 했다.
젊은이들의 흥미로운 포즈가 궁금해 카메라를 살짝 엿보았다. 카메라 렌즈는 세상을 담은 가장 작은 창이다. 화려한 불빛을 이룬 반영 앞에 멋진 그림자포즈는 기상천외한 흔적을 그려놓았다. 똑같은 위치, 시각, 배경에서도 우리 기성세대와 확연하게 다른 착상을 기발하게 연출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절로 젊어지는 것 같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난 아예 벤치에 앉아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끔씩 재미나는 장면을 살짝 렌즈에 담았다.
카메라가 없는 젊은이는 스마트폰으로 찍어 금새 친구에게 전송하여 기쁨을 나누기도 하고 화상통화로 주위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호수에 비친 보름달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며 하트모양도 그려 달에게 던지기도 하는 저들, 감성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젊음이 내심 부러워 심술도 난다. 함께 출사를 온 동료 중 누구하나 전화는커녕 문자도 없이 휴대폰은 주머니 속에서 졸고 있는데 젊은이들은 통화하랴 사진 찍으랴 바쁘기만 하다.
무대에 올려 진 배우들처럼 행위예술을 한참 열연하던 그들이 떠나고 달빛만 머물러 있다. 그렇게 사진 한 컷을 찍는데도 세대 간의 차는 현저하게 벌어져 있었다. 엉뚱한 상념에 젖어 술회하다 다시 출사를 시작했다. 순간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달을 삼킨 구름이 기울어지면서 반달이 가까워지자 난 떨고 있었다. 지나간 흔적들이 하얗게 달빛 속에 부서지며 내려앉자 가슴은 연신 방망이질이다.
그곳을 다녀오는 날이면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상하리만큼 별 들 사이엔 언제나 반달이 동행했다. 나무처럼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커다란 그늘 아래에는 누구나 쉬어가는 정거장인 그곳. 무거운 삶의 짐을 지고 온 이들의 짐을 덜어주고 손을 잡아주며 중용을 주장하는 주인장이 있는 그곳. 참새와 방앗간이나 다름없는 그곳은 기쁨과 슬픔 노여움과 즐거움이 상생하는 곳이다 보니 다 털어내고 빈 마음으로 돌아가는 곳 그곳이다. 딱히 특별한 면이 있는 곳도 아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으로 풍기는 매력은 권력보다 인간관계의 공감을 형성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모두 다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가는데 외려 난 도로 무거운 짐을 지고 온다. 너무 버거워 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꾸역꾸역 서글픔을 삼키며 돌아오기가 일쑤다.
빛과 어둠이 있고 만남은 헤어짐이 당연한데 이유 없이 순리를 거부하고 싶기 때문에 아픔을 슬그머니 밀쳐내기도 했었다. 정거장이란 떠나는 이의 슬픔과 돌아오는 이의 행복이 무한 교차하는 곳이 아니던가. 아직도 못다 푼 이야기가 입 속에 맴도는 냥 왔던 길을 되짚어 보며 갈지자로 마음이 흔들린다. 누구나 가슴속에 묻어둔 추억이 하나쯤이 있지 않는가. 작별도 자연스러운 일일 텐데 매번 다녀오는 길이면 꼭 뒤가 저리고 아리다. 그렇게 반달과 정거장인 그곳은 내게 아주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건 간절한 소망 하나를 품게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둠보다 더 무겁게 내려앉은 달빛 풍경 명암호수에 빠진 달빛을 건져 올리려니 난 또 떨고 있다.
그리워서 생각이 나는 게 아니고 생각이 나서 그리운 것처럼.
첫댓글 "호수에 빠진 만월(滿月)과 찬란한 불빛과의 조화를 이룬 반영", 감상 잘 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월식도 있었죠... 우린 달을 보면 왜 감상에 젖을까요...?
목욜날 뵙겠습니다.
"그렇게 반달과 정거장인 그곳은 내게 아주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건 간절한 소망 하나를 품게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
아주 황홀한 밤에 다녀갑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그 소망때문에,
지금은 미홉하지만 한 올 한올 엮고 있답니다.
격려해 주시여 감사 합니다.
"어둠보다 더 무겁게 내려앉은 달빛 풍경 명암호수에 빠진 달빛을 건져 올리려니 난 또 떨고 있다.
그리워서 생각이 나는 게 아니고 생각이 나서 그리운 것처럼."
좋은 일 있을 거라며 환하게 웃으시더니 예쁜 책으로 깜짝 놀라게 해주셨죠.
좋은 글들 감동으로 잘 읽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늘 부족합니다.
하여,
목마르게 달리고 달려 채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총무님 늘 감사 합니다.
'어둠보다 더 무겁게 내려앉은 달빛 풍경 명암호수에 빠진 달빛을 건져 올리려니 난 또 떨고 있다.
그리워서 생각이 나는 게 아니고 생각이 나서 그리운 것처럼...'
느낌이 좋은글 감상 잘 하고 갑니다 선생님.
제월님 감사합니다.
이제 정말 한 해 끝자락에서 아쉬움만 남기고 있습니다.
좋은글 많이 쓰시고 언제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