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9장 11절 ~ 18절
O 이제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왕이 예레미야에 대하여 경호대장 느부살아단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11)
Now Nebuchadrezzar king of Babylon gave charge concerning Jeremiah to Nebuzar-adan the captain of the guard, saying, 11)
"그를 데려다가 잘 보살피며 조금도 해치지 말고, 다만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므로 12)
Take him, and look well to him, and do him no harm; but do unto him even as he shall say unto thee. 12)
경호대장 느부살아단과 느부삿반과 랍사리스와 네르갈사레셀과 랍막과 바빌론 왕의 모든 고관들이 보내니 13)
So Nebuzar-adan the captain of the guard sent, and Nebushasban, Rab-saris, and Nergal-sharezer, Rab-mag, and all the king of Babylon's princes; 13)
즉 그들이 사람을 보내어 감옥 뜰에서 예레미야를 데려다가 사판의 손자요, 아히캄의 아들인 그달랴에게 맡겨 그를 집으로 데려오게 하니 그가 백성 가운데 거하니라. 14)
Even they sent, and took Jeremiah out of the court of the prison, and committed him unto Gedaliah the son of Ahikam the son of Shaphan, that he should carry him home: so he dwelt among the people. 14)
O 그때 예레미야가 감옥의 뜰에 갇혀 있는 동안 주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니라. 15)
Now the word of the LORD came unto Jeremiah, while he was shut up in the court of the prison, saying, 15)
너는 가서 에디오피아인 에벧멜렉에게 고하여 말하라.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 성읍에 내 말들을 재앙으로 가져오고 복으로 가져오지 아니하리니 그 말들이 그 날에 네 앞에서 이루어지리라. 16)
Go and speak to Ebed-melech the Ethiopian, saying, Thus saith the LORD of hosts, the God of Israel; Behold, I will bring my words upon this city of evil, and not for good; and they shall be accomplished in that day before thee. 16)
주가 말하노라. 그러나 내가 너를 그 날에 구해 내리니 너는 네가 두려워하는 자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 17)
But I will deliver thee in that day, saith the LORD: and thou shalt not be given into the hand of the men of whom thou art afraid. 17)
위 말씀은 마치 마지막날에 일어난다고 믿는 휴거의 모습이 연상되는 말씀입니다. 휴거란 노아의 방주처럼 분리되어 보호받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방식은 분리보호방식만으로 존재하는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방식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내가 반드시 너를 구해 낼 것임이니 너는 칼에 쓰러지지 아니할 것이요, 네 생명이 네게 약탈물같이 되리니 이는 네가 나를 의뢰하였음이라. 주가 말하노라. 18)
For I will surely deliver thee, and thou shalt not fall by the sword, but thy life shall be for a prey unto thee: because thou hast put thy trust in me, saith the LORD. 18)
에벧멜렉은 주를 의뢰함으로 인하여 주의 보호하심을 땅에서 입었습니다. 백신에서도 주의 보호하심으로 백신을 거절하는데 이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중의 하나로 백신을 모르던 제가 기도하다가 백신이 매우 슬픈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로 백신에 대해서 더 찾고 공부하게 되었고, 백신의 실체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백신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연약함과 능력없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그 메시지가 전달되지 못하고, 제 주변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맞고 말았습니다. 드라마 출연중인 배우가 여름에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것은 비록 그의 나이가 70대라고 해도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백신의 부작용은 당장 문제가 없다고 끝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위의 예레미야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믿음이라는 것 순종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믿음이란 당신의 의지나 굳은 결단으로 실행함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위 말씀에 에벧멜렉이 하였던 것처럼 주께 의뢰함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하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주를 믿는 믿음, 의뢰함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해서 솔직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불과 몇주전에 에코프로라는 주식이 150만원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주식은 원래 3만원대의 주식이었습니다. 만약에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 3만원인 그 에코프로주식이 곧 150만원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 주식을 살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액을 구매할 수는 있지만 전재산을 투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믿음이란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전재산을 에코프로에 투자하는 것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에코프로에 전재산을 걸지 못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약속에도 전재산을 걸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주식을 잘하는 사람의 말은 불완전하고 틀릴 수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약속은 이 우주가 깨어지는 한이 있어도 이루어지는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이라는 엄청난 대박을 위하여 우리가 가진 전재산을 투자해야 합니다.
이러한 구원의 약속에 분산투자, 계란은 한바구니에 담지 않는다는 투자철학은 사망의 길입니다. 당신의 구원은 조금도 잃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즉 분산투자란 결국 자기의 한 부분을 잘라내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에 있어서 분산투자란 자신의 일부를 사탄에도 투자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온전하게 모두 승리해야만합니다.
O 또 천국은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으니, 어떤 사람이 그것을 찾으면 다시 숨겨 두고 그 기쁨으로 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태복음 13장 44절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불완전한 확률통계가 아닙니다. 그래서 온전히 한 쪽을 선택하여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남습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사람의 의지, 지혜와 결단력, 인내력등 이런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내는 결과물이지 과정에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말씀과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영의 양식이라 하는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주의 호흡으로 에너지를 얻듯이 살아있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음이며, 그것은 말씀안에 있고, 기도로 살아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불확실하게 바라보지 않으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소유, 즉 목숨까지 거는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과 옥함을 깬 여인은 그 행위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 행함이 아무 망설임이 없는 당연한 일로 여기게 되기 까지의 믿음이 대단한 것입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말씀과 하루 하루의 삶에서 기도로 매달려 있음으로 살아있음으로 세상에 쓸려가지 않고 버티어 살아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뜻에 순종함이 당연한 것임은 살아있는 믿음의 현상입니다.
구원을 위해서 해야할 일은 우리의 영이 죽지 않기 위하여 말씀이라는 양식을 모자람이 없이 받아들이고, 기도로 그뜻에 순종할 수 있게 안내받으며 살아 있는 것입니다. 육체가 살아있다고 모두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그 영이 살아있고, 기도로 안내를 받는 사람이 오직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음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라.
요한복음 4장 34절
모두 같은 영적 음식을 먹었으며,
모두 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다는 것이라. 이는 그들이 그들을 따랐던 그 영적 반석에서 나온 것을 마셨음이요.
그 반석은 그리스도셨음이라.
고린도전서 10장 3절 4절
반석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버티는 인내의 바탕이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당연한 인내를 저절로 하게 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중에는 반석이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그 반석이 이만희이거나 혹은 교회가 되면 당연한 인내가 힘들고 고통스럽게 되어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교회목사의 설교로는 죽음도 각오하는 당연한 순종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고는 하지만 세상의 돈과 사람을 반석으로 형식의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교회나 사람을 의존할 생각을 하지말고,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라는 믿음의 기반이 되는 같은 영적 음료를 마셔야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살아 있어야만 합니다. 죽은 믿음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도와주지 못합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하여 양식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믿음도 살아있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반석이 되신 주의 말씀을 가까이하여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할일은 말씀과 기도인 것입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살아있는 자의 결과입니다. 천국에 가서 지금의 이 땅에서의 삶을 돌이켜본다면 우리가 불확실하게 믿어 손해본것에 대한 후회를 많이 할 것으로 보입니다. 에코프로 주식이 3만원이고, 강남의 땅이 몇천원하던 시절을 지금 우리가 돌이켜 보는 것과 같습니다.
주식이나 부동산은 불확실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한 약속이 있고, 그것을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매일 읽는 것과 기도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물어보는 삶은 하나님의 약속이 당연한 것이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죽기까지도 부인하지 않는 인내에 이르는 믿음은 남들이 보기에는 대단해 보일 수 있어도 당연한 것이며, 그러므로 믿음은 당연한 삶의 결과물이지 결단이나 의지가 아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