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인류세는 어떻게 도래했을까?
과학기술, 문학, 예술, 철학, 종교, 윤리의 측면에서 인류세를 조망하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질시대를 ‘홀로세(Holocene)’라고 불렀다. 대략 1만~1만 20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이때부터 상대적으로 기후가 안정되었고 그 덕택에 사람들은 세계 도처에서 정착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파울 크뤼천과 유진 스토머는 2000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 크뤼천은 1995년 오존층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대기과학자이며, 유진 스토머는 ‘인류세’라는 용어를 처음 고안한 생물학자이다. 이들은 1784년, 그러니까 18세기 후반을 인류세가 시작한 시점으로 보자고 말한다. 그러니까 약 200년 전에 지질시대를 나눌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말이다. 그 사건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1784년은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한 연도이다. 이때부터 증기기관 내부에서 화석 연료를 연소하는 방식이 개발되었고, 이후 나온 증기 보트나 기차, 그리고 증기를 동력원으로 하는 여러 산업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대기권에서 배출된 온실가스의 양이 대폭 증가했다. 그리고 추후 연구된 결과에 따르면, 이때부터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대기 내 축적량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는 인류세의 파괴적인 결과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다. 이상기후 현상에 관한 뉴스를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고 있으며, 사회 전체가 저탄소 체계로 전환하려 발버둥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인류세의 다양한 특성을 정리하고 과학기술의 역사, 문학, 예술, 철학, 종교, 윤리의 측면에서 어떻게 인류세라는 시대적 위기에 대응하는지 조망한다. 기후변화의 파괴적인 결과는 얼마 전부터 가시화되었지만 인문학은 이미 이러한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캐럴린 머천트는 인류세가 도래한 것은 단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한다. 과학, 예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관의 전환, 관점의 전환, 가치의 전환이 일어났기 때문에 인류세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가 인류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새로운 세계관, 관점, 가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 저자 소개
캐럴린 머천트
미국의 대표적 에코페미니스트 철학자이자 과학사가. UC 버클리의 환경사, 철학, 윤리학 명예교수이며, 환경철학과 사상, 과학사와 환경사, 여성 문제를 주제로 연구해 왔다. 주요 저서인『자연의 죽음: 여성, 생태학, 과학혁명』을 포함하여 그간 총 12권의 책을 편집 또는 집필했다. 문명 전환을 위한 개론서이자 선언서의 성격을 지니는 이 책은, 저자의 또 다른 기념비적 저작으로 기록될 것이다.
📜 목차
서문
감사의 말
프롤로그: 기후변화와 인류세
1장 역사
2장 예술
3장 문학
4장 종교
5장 철학
6장 윤리와 정의
에필로그: 인류와 지구의 미래
주
참고문헌
그림 출처
📖 책 속으로
인류세라는 개념 덕에 우리는 인문학을 21세기의 매력적인 학문으로 다시 개념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언어와 이미지는 개인들의 행동 방식과 공공 정책에 변화를 일으키고 대중을 일깨우는 데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역사, 예술, 문학, 종교, 철학, 윤리와 정의로 예시되는) 인문학 담론은 향후 50년에서 100년간 그리고 그 너머로 이어질 시대에 우리가 마주치게 될 중대한 선택지들에 관한 새로우면서도 설득력 있는 인식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서문」중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논란과 논쟁은 인문학 쪽에서 이 문제에 개입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윤리학자, 작가, 시인, 예술가, 신학자 등 인문주의자들은 지구적 기후변화와 그것이 여러 인종, 계급, 젠더에 미칠 영향에 관한 사회적 담론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자연이란 무엇인가, 지구온난화 시대에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향후 인류는 어떤 식으로 기술을 사용해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게 될까? 과학자도, 인문주의자도, 미래를 위해 가능한 선택지들을 밝혀내는 기후변화 논쟁에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
---「프롤로그」중에서
프리고진의 비평형 열역학은 하나의 계가 붕괴할 때 더 높은 수준의 조직이 무질서로부터 자발적으로 출현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의 이론은 닫혀 있기보다는 열려 있는 사회계와 생태계에 적용되며, 생물학적 진화와 사회적 진화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생물의 영역에서 과거의 구조가 붕괴하는 경우, 자그마한 투입분이 새로운 효소나 세포 구조의 생산으로 이어지는 자기 강화적 반환력을 유발할 수도(그러나 꼭 유발하는 것은 아님) 있다. 사회의 영역에서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즉, 어느 한 사회가 과거와는 다른 사회적 또는 경제적 형태를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는 대규모의 사회적 또는 경제적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1장 역사」중에서
몇몇 일러스트 작품은 당시 철도 건설과 유지·보수 작업에 투입된 중노동과 어마어마한 노동 시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 이미지들은 인류세라는 시대 속 육체노동의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경우 인류세는 남자의 시대, 아니면 더 부정적인 용어로 말해 가부장세Patriarchalocene, 수컷세Androcene, 노예세Slavocene라고 해석해야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들과 흑인들이 미국 철도 산업에서 기관차 엔지니어와 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2장 예술」중에서
린 화이트는 이렇게 주장한다. “특히 서구에서 그런 성격이 짙은데, 기독교는 세계에 출현한 종교들 가운데 가장 인간 중심적인 성격의 종교이다. (…) 고대의 이교, 아시아의 종교들과 절대적으로 대비되는 기독교는 (…) 인간/자연 이원론을 확립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정한 타당한 목적을 위해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는 행위가 신의 의지라고도 주장했다.”2 기독교는 인간이 자연과 나/당신I/Thou 관계를 맺는다는 비기독교적 사상에 도전했는데, 이 관계 속에서는 움직이는 것이든 아니든 모든 존재자가 살아 있었다.
---「4장 종교」중에서
플라톤은 지식이 클라우드 속에 저장될 수 있다는 점에 흥분할 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을 찾아내는 일이 어떤 식으로 가능한지 알고 싶어 한다. 엔지니어 마커스는 사용자가 제기하는 질문에 응하는 검색 엔진이 무수한 결과를 찾아낸 후 관리 가능한 순서로 정렬해 낸다고 설명한다. 모든 지식을 구글이 집적하고 있다고, 마커스는 자랑스럽다는 듯 말한다. 플라톤 그 자신도 알고 있겠지만 지식이란 좋은 것이라고.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플라톤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매우 부드러운 어조로 속삭인다. “그건 정보죠, 지식이 아니라.”
---「5장 철학」중에서
필요와 의지는 다른 것이며 따라서 윤리는 생산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필수 요소일 수밖에 없다. 기후 협상 테이블의 주요한 논점은 전부 윤리적인 사안이다. 다시 말해 협상 테이블 위에 놓인 난제들 각각의 실마리를 풀려면 윤리적 원칙들과 사유가 필요하다. 피해에 대한 책임 소재, 합리적 감축 목표, 탄소배출권 거래량의 할당, 각국의 재정 부담, 책임량의 정도,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한 평가, 절차상의 공정성 같은 난제들 말이다. 기후 윤리와 관련된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기존의 윤리 이론들을 평가하는 동시에 새로운 이론들을 제안해야 한다.
---「6장 윤리와 정의」중에서
인문학은 기후변화 충격 완화를 돕고 그 충격에 대응하는 방식의 생태적 관리 전략에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 인문학의 주요 분야들, 즉 예술, 문학, 종교, 철학, 윤리와 정의 사이에는 중대한 연결고리와 상호 중첩되는 이슈들이 있고, 이것들은 21세기와 그 너머의 시기에 인류가 마주할 환경 문제의 해결을 위한 프레임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에필로그」중에서
🖋 출판사 서평
인문학이 기록한 인류세의 역사
인류세는 어떻게 인류의 인식을 변화했나
이 책의 1장인 ‘역사’는 사실상 인류세와 관련된 과학기술의 역사이다. 어떤 과학과 기술이 등장하고 발전해서 인류세로 가는 길을 열었는지 세심하게 논의한다. 그 가운데서 중심이 되는 것은 ‘열역학 제2법칙’(소위 말하는 ‘엔트로피의 법칙’)의 발견과 그 활용인데,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뿐 아니라, 사디 카르노, 에밀 클라페롱, 윌리엄 톰슨, 루트비히 볼츠만, 비교적 최근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일리야 프리고진까지 언급하며 인류세를 발생시킨 과학적 기반을 고찰한다. 이 책의 저자인 캐럴린 머천트는 에코 페미니스트로 가장 명망 있는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과학사가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과학사와 관련한 그녀의 분석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만한 시사점을 전한다.
예술이나 문학의 측면에서 볼 수 있는 기록들도 매우 흥미롭다. 조지프 터너나 클로드 모네의 미술 작품에서는 증기선박이나 증기기관차 같이 증기기관이 등장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그림에서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경외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미국 화가 존 케인이 그린 「모농가헬라강의 계곡」 같은 그림에서는 새로운 기술에 힘입어 진보하는 산업 현장의 분위기를 잘 그려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진보에 희생되는 들판, 오염된 물과 공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찰스 디킨스, 마크 트웨인 같이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들도 급격하게 산업화되는 풍경들을 포착해 그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감상을 작품으로 남겼다. 그러한 작품들에는 산업화가 되며 발전하는 세상에 대한 경외감과 희망도 있지만, ‘희뿌연 그을음’ 같은 표현으로 묘사되는 불안감도 있다. 인류세를 통해 자연을 지배하게 되었지만, 그 충격은 한편으로 사람들의 삶과 인생을 짓누르게 되었다.
인류세를 넘어설 시대는 어떻게 도래할까?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가치를 모색하다
현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화두는 기후변화에 따른 사회 시스템 변화일 것이다. 사회 시스템을 변화하기 위해 과학기술과 정책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점에 많은 이가 공감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마도 인류세라는 시대를 만든 세계관과 가치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인류세의 대안을 논의할 때 인문학에 대한 고려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기후변화나 인류세와 관련해 또 하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은, 이 이슈도 뿌리 깊은 불평등 문제와 관련해서 이해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이미 기후변화는 많은 사람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주고 있는데 그 피해를 사람들이 공평하게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치명적으로 타격을 받고 있고, 주로 취약한 지역과 계층에 속한 사람들일수록 그렇다. 저자는 블룬틀란 보고서에서 말하는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대신 ‘지속가능한 살림살이(sustainable livelihood)’라는 표현을 쓰자고 주장하는데, 이는 기본적 필요의 충족, 건강, 고용, 노후보장, 빈곤 해소, 자기 몸과 피임법과 자원에 대한 여성의 통제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인류세 시대에 인문학은 또 다른 중대한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인간들뿐 아니라 자연 전체를 조화롭게 만드는 가치를 세우고 사람들이 이를 실천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과제이다.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새로운 가치가 통용되어야만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