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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게시판 정치/사회 2차대전의 기원에 대한 가장 커여운(?) 설명
이름짓기귀찮아 추천 0 조회 936 20.06.28 06:13 댓글 3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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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0.06.28 06:24

    첫댓글 국제관계 이론의 설명이다 보니 역사게시판 대신 학술게시판에 작성하였습니다.

  • 20.06.28 09:49

    흥미롭네요

  • 20.06.28 13:43

    잘 봤습니다. 다만 현상유지와 현상타파를 하려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서술이 없는게 아쉽내요. 실제로 현상유지를 하려는 국가는 광대한 영토를 가져서 배가 부른 상태고,
    현상타파는 광대한 영토도 없고, '풍족함'도 없는 상태에서 도전할 수 있는 힘은 있기에 현상타파를 하는것뿐이죠. 늑대들은 2차대전 후 미국의 간접통치에 놓이지만
    그 미국의 영향아래 풍족함을 맛보았기에 가장 협력적인 양(의 탈을쓴 늑대)이 되는 거죠. 풍족함이 없다면 다시 늑대가 될겁니다, 도전할 역량(인구,자본,기술)은
    충분하거든요.

  • 20.06.28 14:42

    1차대전 직전의 독일은 배도 부르고 충분히 풍족한 상태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현상타파를 시도했고, 오히려 독일에 비하면 풍족하지 못했던 프랑스야말로 현상유지의 편에 섰구요.
    물론 1차대전이라는 사건 자체만 보면 오스트리아라는 자칼에게 묶여버린 것이 더 결정적인 원인이긴 했지만, 어쨌든 독일이 건함계획으로 영국과 경쟁하며 더 많은 배당(greater benefit)을 요구한 것을 보면, 현상타파 성향은 절대적, 상대적 풍요로움과는 무관한 영역이라고 봅니다.

  • 20.06.28 14:53

    @인생의별빛 1차대전 이전은 아무래도 제국주의 체제라서 식민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독일이 풍족하고 프랑스가 그렇지 못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 20.06.29 09:42

    @young026 프랑스가 식민지 많으면 뭐하나요? 국제 영향력 확장하겠다고 죄없는 합스부르크 한 명까지 멕시코로 보내 죽일 정도로 공격적으로 나선 루이 나폴레옹은, 프로이센 군에게 요새에 포위당해 개망했는데...
    프랑스가 독일제국에게 가진 열등감과 위기의식이, 소유한 식민지의 면적으로 상쇄되는 건 아닙니다.

  • 20.06.29 11:16

    @인생의별빛 당시 프랑스가 부족했던 건 풍족함이 아니라 힘이죠. 풍족하지만 힘은 부족한 국가는 현상유지 성향을 띠는 게 당연한 일이고.

  • 20.06.29 11:22

    @인생의별빛 1차 대전 때 프랑스라면, 러불동맹과 영불협상, 이탈리아 회유(비밀동맹)로 대독일 포위망을 완성하고 알자스로렌을 되찾고 위대한 프랑스를 재건하겠다 부르짖던 보복주의에 불타는 국가라서, 현상유지 카테고리는 아닌 것 같네요.

  • 20.06.29 13:30

    @young026 '풍족함'과 '힘'은 서로 정의 관계를 가진다고 생각해서요. 사실 독일이 헤게모니 추구(Weltpolitik)의 방향으로 가지 않고 19세기식 다극체제에 만족했다면, 굳이 비스마르크가 아니어도 비스마르크가 물려준 독일 우위의 국제정치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독일제국은 지속해서 '더 많은 배당'을 요구했죠. 그건 동시대 프랑스 제3공화국의 방향성과는 약간 달랐어요. 파쇼다에서 철수하고 영국과 타협함으로써 영불 양국의 국제적 고립을 완전히 해소했죠. 역으로 고립당한 건 독일이었구요.

    그리고 더 나아가, 오스트리아의 트롤짓으로 인한 1차대전이 없었다면 독일제국의 '고립'이 그렇게 오래 갔을 것 같지도 않구요.
    독일이 모로코 위기에서 밀려남으로써 벨트폴리틱에도 변화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상황이었는데... 수십 년 간 이어져온 공격적 외교정책의 모멘텀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 20.06.29 13:28

    @수아로그 그건 독일에 한정된 보복주의였지 않았나요? 국제체제 전체로 보면, 일단 1914년 시점에서는 프랑스가 완성해낸 삼국협상이 삼국동맹에 비해 훨씬 견고하고, 우위에 있었죠. 실제로 이탈리아가 동맹을 이탈하기도 했구요.
    프랑스 입장에서 유리한 균형을 프랑스가 스스로 무너뜨려서라도 전면전을 시도하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 20.06.29 13:40

    @인생의별빛 애초에 그런 외교지형을 왜 만들었느냐가 중요한 문제겠죠. 사실 대독일 포위망을 완성한 시점에서 알자스로렌을 되찾고자 개전하려는 유혹은 프랑스 측에 더 강했을 겁니다. 단지 명분이 없었을 뿐.
    결과적으로 사라예보에서의 사건이 오헝과 독일제국이 먼저 방아쇠를 당기게 만들었지만 전쟁은 언제고 터질 일이었어요.
    영국을 위시한 동맹이 현상유지를 원하는 측이라고 프랑스도 현상유지를 원할 거란 건 무리란 거죠. 다른 동맹인 러시아 제국은 발칸으로 세력 부식을 원하는 판이기도 하고.

  • 20.06.29 14:52

    @수아로그 프랑스가 선제공격 입장이 되면, 일단 영국은 빠질 가능성이 높고(독일이 선제공격 입장인데도 벨기에 독립유지 여부를 가지고 독일을 한 번 떠볼 정도로 신중하게 각을 재던...이라기보다는 명확한 대전략이 없었을 정도의 나라였으니), 고작 러시아만 데리고 독일+이탈리아(명백한 방위전쟁이기 때문에 이탈리아가 노선을 바꿔탈 명분이 없습니다. 그나마 친독중립 정도로만 남아준다면 최상의 상태인 상황이죠)에 더해 겸사겸사 오스트리아와도 전면전을 벌인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건 프랑스가 버티기 어려울 텐데요?
    전쟁으로 가게 된 이유가, '오스트리아가 독일을 옆에 끼고 러시아를 공격할 기회'를 드디어 포착했기 때문이며, 독일이나 프랑스나 둘 다 세계대전으로까지의 확전은 예상하지 못했죠. 프랑스가 1914년 시점에서 독일을 상대로 거둔 일시적인 외교적 승리가, 가까운 미래에 영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끌어들여서 독일을 상대로 선제공격하는 것까지 계산한 것이라는 실질적인 증거가 있나요? 그런 최상의 시나리오가 그리 쉽게 실현 가능해보이지도 않고, 그냥 상상해봐도 프랑스의 승리를 썩 장담하기도 어렵구요.

  • 20.06.29 15:05

    @인생의별빛 독일의 세계정책으로 건함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영독관계는 파탄을 향한지 오래입니다.
    영불협상 이후 삼국협상으로 향한 건 결코 독일의 도발에 대한 일시적인 대응이 아니고, 삼국협상이 성립한 이후론 독일이 무리한 세계정책을 접지 않는 이상 적절한 명분이 주어지면 영국도 선제공격에 동참 가능한 쪽으로 돌아선 상태였다고 봅니다.
    단지 그 적절한 명분을 얻기가 쉽지 않아서 문제죠.

  • 작성자 20.06.29 15:12

    @수아로그 당시 영독 관계가 일방적인 적대나 파탄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사라예보 사건과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 선전포고 사이인 7월 말 경에 양국 사이 주요한 분쟁의 원인이었던 바그다드 철도 문제가 타결되었습니다. 영불 사이 정부 차원의 명시적 동맹이 아니었기에, 선제공격에 영국이 가담할 확률은 무척 낮습니다. 애당초 1차대전에서도 참전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애스퀴스 내각에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요.

  • 작성자 20.06.29 15:38

    @인생의별빛 이익을 독립변수로 추가한 스웰러의 신고전현실주의와 달리 신현실주의는 국력분포만을 유일한 독립변수로 간주했고, 특히 모든 강대국의 목표가 지역패권국이 되는 것이라 전제하는 공격현실주의 분파는 1차대전을 지극히 예견된 현상으로 파악했습니다. 1900년 이후 사실상 독일은 유럽에서 월등한 힘을 가진 잠재적 패권국으로 성장했고, 이는 전쟁 발발 위험성이 가장 높은 불균형 다극체제이며, 강력한 대항동맹이 결성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는 것이죠.

  • 20.06.29 15:31

    @수아로그 그 '무리한 세계정책'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게 1914년 초였죠. 당장 드레드노트 건함경쟁에서 독일이 손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 20.06.29 15:38

    @이름짓기귀찮아 뭐, 그게 나름대로 클래시컬한 해석이긴 한데... 음... 개인적으로는 '1차대전이 발발해야 했던 이유만큼이나, 발발하지 않을 이유도 충분했다'는 해석에 더 마음이 동하는 입장이라...;;
    사실 그런 의미에서 스웰러 이론이 조금 더 그럴싸하게 들리기는 해요.

  • 20.06.29 15:53

    @인생의별빛 1912년 독일이 잠수함 전력 확충으로 선회하지만 군비증강 기조는 멈추지 않습니다. 러시아 또한 1909년 이후 계속 전력을 증강하고 있었고, 프랑스는 1913년 제17계획을 통해 병력동원 계획(작전계획이 아닌 동원계획이라 말했죠. 작전적 고려 없이 알자스로렌으로 병력을 밀어넣는 것만 생각한 게 참 병신같지만 슐리펜 계획과는 달리 이제 갓 만들기 시작한 놈이라;;)을 만들 정도로 서로의 군사력 증강은 지속되었죠.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은 분명히 이어지고 있었지만, 군비증강을 멈추지 않는 이상은 시간을 끄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공격하기엔 서로 준비가 덜 되어 있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뿐이라고 봐요.
    기본적으로, 당시 독일 제국은 프랑스 침공을 예방전쟁이라 칭했습니다. (예방전쟁이랍시고 중립국을 치는 꼬라지가;;)
    프랑스가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포위망을 구축하고 조여오고 있었기에 미리 공격한다는 논리였죠.
    다만, 프랑스가 독일을 공격할 준비는 외교적 포위망 구축과는 달리 한참 덜되었던 건 분명합니다. 슐리펜 계획을 오래도록 보완한 독일에 비해 1913년에야 처음 만들기 시작한지라 한참 뒤에나 개전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짐작되거든요.

  • 20.06.29 16:02

    @이름짓기귀찮아 영국이 대륙의 균형조정자를 자임하는 이상 1차대전 참전은 시간문제에 불과하죠.
    다만, 영국이 선제공격에 가담할 확률은 분명 낮기에 동참시킬 적절한 명분이 필요하고, 그래서 적절한 명분을 얻기가 쉽지 않다고 한 겁니다.

  • 20.06.29 16:10

    @인생의별빛 드레퓌스 사건에서 보듯 프랑스 군부는 폭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삼국협상으로 외교적 포위망을 완성한 시점에서 개전 가능성은 언제고 있었습니다만, 프랑스 정계의 고질적인 불안정성이 오히려 그 개전가능성과 시기를 한참이나 낮춰주고 있는 편이 아니었나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선제공격 가능성 자체를 부인하기엔 걸리는 요소들이 너무 많거든요.

  • 작성자 20.06.29 16:11

    @수아로그 독일의 세계정책은 역진불가능한 대결 국면으로의 전환과 전쟁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사후 관리와 수습이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사라예보 사건 역시 초기 한 달 동안 아가디르 위기와 발칸 위기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사건으로 간주되었지요.

  • 작성자 20.06.29 16:14

    @수아로그 불노동맹은 공격동맹이라 보기 어렵고, 영불동맹은 명시적인 방어동맹에 해당하지도 않습니다. 삼국협상이 독일에게 고립감을 주었던 것은 명확하나 이것이 프랑스의 공격 선호 성향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 20.06.29 16:16

    @이름짓기귀찮아 냉전시기 여러 핵전쟁의 위기들을 거쳐온 시점에서야 지난 이야기에 불과하니 리스크가 관리된 것이듯, 모든 위기는 가능성이란 영역에선 열려있죠.

  • 작성자 20.06.29 16:21

    @수아로그 음, 마찬가지로 '전쟁이 일어날 이유가 없다'는 진술의 참거짓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 20.06.29 16:33

    @이름짓기귀찮아 네. 다만, 이 글에선 프랑스가 현상유지를 원하는 플레이어가 아니란 측면에서 여러 이유를 들며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논한 거죠.
    글에 입각한다면 프랑스는 '여우'와 같은 제한적 현상타파 성향 플레이어라고 본다는 겁니다.

  • 작성자 20.06.29 16:41

    @수아로그 말씀하신 바에 동의합니다.

  • 20.06.29 16:48

    @수아로그 뭔가 이야기가 너무 진행된 느낌이 드는데, 제가 처음 발언한 원래 의도는 '1차대전이라는 사건 자체에서는 프랑스가 현상유지의 입장에 섰다'는 겁니다. 위에서 이름짓기귀찮아 님이 언급한 것처럼, 삼국협상은 공격동맹이 아니었고, 삼국동맹도 공격동맹이 아니었습니다. 독일제국의 현상타파 성향조차도 나치독일의 그것과 비교하면 훨씬 제한적이었고(나치독일처럼 폭주기관차가 되어 달려가지 않았죠), 프랑스 제3공화국은 그것보다도 더더욱 제한적이라, 이걸 현상타파에 분류해야 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는 겁니다.
    프랑스의 동원계획을 현상타파론의 근거 중 하나로 쓰려면, 한국군이 지금 갖고 있는 대북한 작전계획도 현상타파론의 근거 중 하나가 될 겁니다. 전간기 미국도 가상적국별로 색깔을 코드명으로 매겨서 전쟁상황 시 전략을 정리해놓곤 했지만, 그런 유사시 계획이 있다고 해서 그 나라가 전쟁을 지향하는가 하는 근거로 동원할 수는 없죠.
    1914년 초여름, 프랑스의 입장은 간단합니다. '러시아 건드리지 마라(=세르비아 건드리지 마라)' 그거 하나잖아요. 영국의 입장도 간단했죠. '벨기에 건드리지 마라' 그러면 독일의 입장은 뭐였나요? 예방전쟁 운운하는 프로파간다 말구요.

  • 20.06.29 16:54

    @인생의별빛 어쩌면 서로의 초기 상태에 대한 가정이 다를 지도 모릅니다.
    저는 군사적인 걸 떠나서 외교적으로도 프랑스는 보불전쟁 이후 비스마르크에 의한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현상타파적 성향에서 출발한다고 보거든요.
    러불동맹을 맺고 차관을 퍼줘서 철도망을 깔게 만들고, 영불협상과 삼국협상으로 이어져 결국 대독일 포위망의 완성에 이르는 과정을 과연 현상유지 성향의 플레이어가 보이는 행위라고 설명할 수 있는가, 거기서부터 저는 부정적이거든요.

  • 20.06.29 17:10

    @수아로그 러시아에 대한 차관은 당연히 군사적인 관심이 제1이지만, 극한에 다다른 해외투자 열풍도 무시할 수 없죠. 영국 자본가들이 너도나도 호주와 남아공 광산에 투자한 것처럼, 프랑스 자본가들도 너도나도 러시아로 달려들었으니까요. 물론 러시아만이 아니라, 하여튼 손 안댄 나라가 없긴 한데;;

    뭐 암튼 간에, 제 가정은 이렇습니다. 삼국협상이 완성된 시점에서, 그러니까 영국 러시아와의 갈등이 최종적으로 해결을 보고 고립을 탈피한 순간, 프랑스가 목표로 하던 현상타파는 이미 한 번 성공했다는 겁니다.
    프랑스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독일을 재기불능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지금 갖고 있는 대독포위망을 유지할 것인가의 기로에서, 전자를 선택한 것처럼 보이진 않아요. 삼국협상이 완성된 1907년(영불협상만 치면 1904년)부터 세계대전이 벌어진 1914년 사이에, 프랑스가 주도해서 독일에게 더 많은 배당을 요구한 사례는 제가 알기론 없거든요. 물론 1914년에 세계대전이 벌어지지 않고, 상황이 프랑스에게 더 좋게 흘러갔다면, 마침내 여우 내지는 늑대로서의 본성을 드러냈을 수도 있는데, 대충 비둘기와 사자 사이의 어딘가쯤에서 멈춰있었던 것 같습니다.

  • 20.06.29 17:18

    @인생의별빛 뭐 하긴, 오히려 러불동맹을 파탄내려는 독일제국의 집요한 술수를 떨쳐내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만으로도 프랑스는 골머리를 앓아야 했으니까 말입니다... 러시아 붙들어놓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깨질 듯한데, 독일과의 전쟁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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