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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일 | 시 간 | 일 정 |
5/27(수) | 07:00 | 서울 출발 |
11:00 | 바래미 마을 고택 탐방 및 봉화시장 탐방 | |
13:30 | 점심식사 | |
14:30 | 삼계서원~석천정사~충재 박물관(청암정)~달실 마을 | |
17:00 | 띠띠미 마을 탐방 후 목재체험관(시간 관계로 취소) | |
19:00 | 숙소 도착, 저녁식사 및 자유시간, 취침 | |
5/28(목) | 07:30 | 아침식사 |
09:00 | 숙소 출발 분천역 도착 | |
10:20 | 협곡열차(V-Train) 탑승(분천역~승부역 | |
11:10 | 낙동정맥 트레일 2구간 출발~배바위고개~비동 마을(점심식사)~분천역 도착(10km, 4시간 소요) | |
17:00 | 서울 출발 |
그럼, 타임머신을 타고 그 옛날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와 용기를 만나러 가겠습니다.
g 바래미 마을
봉화읍 해저리(海底里)에 있다. 만회고택, 영규헌(映奎軒), 단사정(丹砂亭), 남호구택 등 많은 문화재와 고색창연한 고택들이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선비마을다운 기품을 보여준다.
일행이 봉화마을에 있는 남호구택을 탐방하고 고택을 나서고 있습니다.
g 봉화 남호구택(南湖舊宅)(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85호)
웅방산 줄기의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솟을대문의 대문간채를 들어서면 안채와 사랑채가 연접 하여 ‘ㅁ’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이 지방의 ‘ㅁ’자형 집은 사랑채가 있는 정면에 중문간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가옥은 측면으로 중문간을 두고 정면 중앙부분에는 돌출된 도장방을 두어 특이한 평면을 보이고 있는데 이 마을에는 이러한 유형의 가옥이 몇 채 남아있다.
이 가옥은 농산 김난영이 조선 고종 13년(1876)에 건립하였다 하며 그의 아들 남호 김뢰식(1877~1935)이 살던 곳이다. 남호는 경상도의 명망 높은 부호이었는데 상해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집에 전 재산을 저당하고 대부를 받아 제공하여 그 공으로 1977년 건국 공로 표창을 받았다.
g 팔오헌(八吾軒) 종택
팔오헌 종택은 입향조 팔오헌 김성구(1641~1707)공이 창건하고 그 후손들이 조선시대 후반기에 현재의 건물로 중창하였다. 팔오헌 공은 조선 현종 3년 사마시에 장원, 동 10년 명경과 갑과로 급제하여 현감, 수원부사, 지평, 수찬, 여주목사, 부승지, 정언, 강원도 관찰사, 성균관 대사정 등 내직과 외직을 두루 거쳤다.
위민복리에 근본한 공의 사상과 철학은 목민관의 귀감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숙종조에 청백리로 추천되었다.
낙향 후 공은 자손들이 만대를 살아갈 터를 이곳 바래미로 정하고 학록서당을 세워 후학양성에 매진한 결과, 면학분위기가 대대로 이어져 수 많은 인재(대과 14장, 소과 66장)가 배출되었다. 팔오헌 김성구 공은 불천위로 봉하고 있고 봉화 10현(十賢)을 모시는 송록서원에 배향되고 있다.
팔오헌 종택은 정칭(정면 6칸, 측면 5칸과 사당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사대부가의 거주생활을 살펴보는데 일정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터전이 되기도 한 이 건물은 전통 목구조 수법에 의해 건축된 건물로, 전통한옥에 신 문명이 결합되면서 동선처리와 프라이버시 확보 등 주거건축의 변화를 살릴 수 있는 평면구성법을 지니고 있다.
팔오헌 종택 옆에 있는 사당 건물
바래미 마을에는 오래된 우물이 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이 우물에서 식수를 해결했다고 합니다.
토향고택
토향 고택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g 만회고택(晩悔古宅)
조선 순조 때의 문신인 김건수(1790~1854)가 살던 집으로 해저마을 오른쪽 깊숙한 곳에 우거진 뒷동산을 배경으로 남향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의 본관은 의성(義城)으로서 자는 공립(公立)이고 호는 만회이며, 순조 30년(1830) 문과에 급제하고 봉화현감, 김해부사를 거쳐 우부승지를 지냈다. 이 건물은 현재 김건수의 6대조가 이 집에 살던 여(余)씨로부터 매입한 ‘ㄷ’자형의 안채와 그가 직접 건립한 ‘T’자형의 사랑채인 명월루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ㅡ’자형 중문간채와 함께 튼’ㅁ’자 형태로 된 맞배 기와집이었으나, 1981년에 중문간채가 철거되고 현재는 남쪽이 트인 상태이고, 안채는 남향한 중앙에 대청이 있으며 대청 양쪽에 안방과 상방(주인이 거처하는 방)이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1919년 3.1만세운동 직후 심산 김창숙선생 등이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한 독립청원서를 작성하였던 곳인 해저 만회고택은 역사적인 의의와 더불어 옛 경부지방의 ‘ㅁ’자 집 평면배치법 등 조선시대 주택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만회고택의 안채의 모습.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편에 안방과 오른편에 상방이 있습니다.
만회고택의 안방마님
옛부터 읊어오시던 노래를 들려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만회고택 안방마님이 소장하고 계신 가사집.
어느새 핑키아이님은 뒷편으로 가셨나요?
수선화님이 촬영에 여념이 없으십니다. 자세가 역동적입니다.
떠나기가 아쉬워 나오면서 뒤돌아 보고 한 컷 더 했습니다. 너른 마당에는 원래 중문간채가 있었던 자리입니다.
봉화시장에서 마주한 문어!
저녁을 마치고 우리 멤버들은 봉화문어의 맛을 봤습니다.
g 봉화 삼계서원
영남서림의 대표인물인 충정공 충재 권 벌(1478~1548)의 충절과 학덕을 경모하기 위하여 선조 21년(1588)에 당시 안동부사로 재임하고 있던 문정공 김두웅에 의해 건립되었고, 선조31년 문목공 정 구에 의해 당호가 지어졌다.
석천계곡으로 들어가기 전 입구에서 해설을 듣고 있는 수선화님과 따신맘님...
g 석천계곡(石川溪谷)과 청하동천
청하동천(靑霞洞天)은 하늘 위에 있는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충재 선생의 5대손인 대졸자(大拙子) 권두옹(1656~1732)의 글씨이다.
기암괴석이 많은 석천계곡에는 도깨비들이 몰려와서 놀았고 이 때문에 석천정사에서 공부하던 서생들이 괴로움을 당하자, 권두옹 명필이 바위에 글씨를 새기고 주사 칠을 하여, 필력으로 도깨비들을 쫓아냈다고 전한다.
석천계곡에서 발도행 미인 3인방!!!
언제나 그렇듯이 발도행 길우들을 위해 헌신적인 봉사를 아끼지 않는 운영위원들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또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건강하세요~~~
뒤로 석천정사를 배경으로 수선화님과 따신맘님!!!
다정한 두 분의 우정이 석천계곡의 도깨비들을 몰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석천정사로 가기 위해 개울을 건너는 엘리사벳님......
조그만 나무 다리에 많은 미인들이 서 있습니다. 밑으로 흐르는 여울이 시원해 보이네요. 다리에 하중이 너무 많이 걸렸나요?
달실 마을의 전경입니다. 카메라의 '파노라마' 기능을 활용했습니다.
g 달실마을
봉화읍 유곡리에 있는 달실마을은 안동 권씨 집성촌으로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닭실(달실)’이라 일컬어지며 경주의 양동, 안동의 내앞, 하회와 함께 3남(三南)의 4길지(四吉地) 중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달실 마을에 있는 충재 박물관의 전경
g 충재 박물관
충재 권 벌 선생의 종가와 유물각을 박물관으로 조성하였다. 이곳에는 충재일기(보물 제261호)와 근사록(보물 제262호)을 비롯하여 전적과 고문서, 서첩 등 다수의 보물급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청암정에 있는 연못
청암정과 충재 건물 사이에 있습니다.
청암정에서 우리 식구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충재 선생님의 후손이 청암정을 폐쇄하겠다고 해서 천곡이 '울컥'했습니다.
훼손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후손의 마음은 십분 이해하나 그 보다 더 선조님들의 지혜와 용기를 후손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g 청암정
거북이 모양의 바위 위에 지어진 정자와 거주목적의 정자(충재)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인 충재(沖齋) 권 벌 선생께서 기묘사화로 인해 파직된 후, 낙향하여 1526년 건립한 정자이다.
충재 선생께서 기거하시던 곳
우리의 호프 헬멧님 인증샷!
띠띠미 마을로 한참 걸어 오르니 솟을 대문과 함께 대궐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건물 주면을 살피느라 이 집의 내력을 듣지 못했습니다. 주변경관이 수려한 곳에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재(城 敬 齋)
띠띠미 마을에 대한 유래를 담벽에 새겨 놓았군요. 꽉 막힌 마을이라는 설명. 더 이상 나갈 곳이 없는 산으로 깍 막힌 오지마을이라는 뜻이랍니다. 두동(杜洞) 마을이라고도 불린답니다.
띠띠미 마을을 지나 조그만 동산을 넘어 온 곳에 남양 홍씨 종택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증수한 건물이어서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네요.
바래미 마을 팔오헌 종택 대청마루에 걸터 앉아 있는 일행들......(록키님 사진첩에서 인용했습니다.)
충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충재선생 급제 교지와 답안지(록키님 사진첩에서 인용했습니다. 충재 박물관에 들어갈 때 사진 촬영이 금지한다는 경고문(?)을 보고 천곡은 샷터를 누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첫날은 우리 모두 옛날로 돌아가 그 시대의 역사를 몸으로 익히고 숙소로 돌아 왔습니다.
웬지 독립청원서를 만들며 의지를 다지셨던 선열들의 모습이 아른 거리네요.
이어서 낙동정맥 트레일 기사는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Stay tuned, never change chanel!!!
첫댓글 즐거웠습니다~
해라님 고맙습니다.
부군과 함께 정답게 걸으시는 모습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 올렸습니다.
건강하시고 자주 뵙기를 기원합니다.
첫날엔 여러 고택 탐방을했지요
천곡님에 설명이있으니 기억에서 멀어져가도 다시 볼수있네요
넘넘 수고하셨습니다 고운 추억 간직할께요
감사합니다~~*^_^*
여러 고택을 들리면서 옛날에 그곳에서 사시던 분들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욱 오지였을 터인데 어찌 삶을 영유했을까 궁금하기도 했지요.
한편 서글픈 마음도 들었답니다.
고맙습니다. 항상 수고하시고 봉사하시는 모습 아름답습니다.
고운 사진 감사히 보고 갑니다. 1년전 방문했던 기억이 새록거리네요 ^^
품위있는 발도행 식구들이 돋보이는 여행이었습니다.
이웃 카페 사람들보다 훨씬 격이 높은 길벗님들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더욱 자랑스럽기도 했구요.
오랫만입니다. 얼굴도 잊겠군요.
고맙습니다.
고택방문시 해설사님의 이야기를 제데로 못들었눈데
이렇게 자세한 해설을 붙여주시고 시간별 일정.
타카페와 함께 하였을때 발도행 회원님들의 적극적인 협조
감사 했습니다.
헬멧님의 노고가 우리로 하여금 좋은 경험과 조상님들의 은덕을 기릴 수 있었습니다.
묵묵히 봉사하시는 님이 있어 우리 모두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모르고 있었던, 막연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걷기 열풍 덕에 구석구석 구체적으로 정리가 됩니다. 나그네들 덕분에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천곡님 '♡♡
언젠가 고향 이야기를 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좋은 곳을 고향으로 두셨군요.
함께 가셨으면 더욱 실감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터인데 안타깝습니다.
다음 기회로 미루지요.
그 향기가 어디로 가지는 않을 듯 합니다.
고맙습니다.
천곡님의 사진 설명과 함께 보니 다시 그곳에 있는 것 같아요.
수고 많으셨어요.^^
뒤 늦게 후기를 읽었습니다.
아이들 일로 멀리 나와있습니다.
이번 봉화답사여행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에 많은 도움을 준 선비들의 충절과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천한 분들의 고택을 직접 접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시간과 공을 들여 많은 자료를 찾아 올려주시고, 오래 남을 사진으로 후기를 써주셔
그 노고에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를 드립니다
사진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