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례는 참회하는 사람이 자기의 비참한 처지를 깨닫고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게 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고 그를 회개로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주님의 현존 선언 다음에,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기에 앞서, 잠시 침묵 가운데 우리가 죄인임을 자각하고 고백하는 예식을 거행합니다. 이 참회 예식은 신자들이 거룩한 신비를 거행하기에 합당한 마음가짐을 갖도록, 자기 죄를 겸허하게 인정하는 세리(루카 18,13)와 같은 마음을 갖도록 초대합니다. 사실 꼿꼿이 서서 스스로 죄인들과 같지 않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루카 18,11)은 주님의 식탁에 앉을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고백은 벌이 아니라 새로운 깨끗함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1요한 1,9). 고백은 우리의 죄에서 출발하여 영원히 변함없는 하느님의 자비라는 목적지로 가는 기차입니다.
참회 예식은 보통 세 가지 양식 중 하나를 선택하여 거행합니다. 첫째 양식은 가장 자주 사용되는 ‘제 탓이요’ 기도(고백기도)인데, 이 기도는 죄로 인한 낙담으로 할 말을 잃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향한 희망과 감사로 변화될 수 있도록 교회가 우리 입에 넣어 주는 말입니다. 또 이 기도는 마리아와 성인들께 우리를 위한 전구를 청하고, 아주 옛날부터 전해오는 몸동작(몸을 가볍게 숙이며 가슴을 치는 동작)을 지금도 똑같이 취한다는 점 때문에 천상 교회와 지상 교회의 일치, 교회 전통 안의 일치를 더 강하게 표현해 줍니다. 참회 예식의 둘째 양식은 성경 말씀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바룩 3,2; 시편 85,8 참조), 잘 사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간결함이 참회 예식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고 전례 흐름에도 잘 들어맞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참회 예식의 세 번째 양식에는 주님 또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 바치는 다양한 형태의 청원 기도가 등장합니다. 이 기도문들은 꼭 사제가 아니라 누구라도 읽을 수 있고, 또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습니다. 또 그날 전례나 축일에 맞게 바꿀 수 있습니다.
미사 전이나 도입부에서 다른 예식이 거행될 때 참회 예식은 생략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일(특히 부활시기)인 경우에 성수 예식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성수 예식을 통해 우리는 세례 때 시작한 여정을 다시 시작하기로, 곧 하느님과 이웃을 우리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사랑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미사 시작 때 물을 축복하고 뿌리는 예식은 세례와 성찬례가 이루는 이러한 관계를 강조합니다.
참회 예식이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거행되고, 또 가끔 생략된다고 하여 그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대에 예물을 바치기에 앞서 형제들과 화해하라 하신 그리스도의 권고(마태 5,23-24)와 성체성사에 참여하기 전에 각자의 양심을 성찰하라는 바오로의 경고(“각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 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1코린 11,28].)는 언제나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러한 참회의 차원이 없는 성찬례는 그 가장 심오한 차원들 가운데 하나가 빠진 성찬례입니다.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있는 그대로 속속들이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자아 연민의 태도에서 벗어나 하느님 앞에서 진리 안에 머무르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비를 고백하게 되고, 따라야 할 올바른 길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찬미와 감사의 자세를 갖추게 되고, 마침내 올바른 양심성찰의 도움으로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고,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그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성소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