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댐 아래서
개학은 지난 주 했더랬다. 주말에 이어 광복절을 앞둔 징검다리 월요일은 정상 근무로 출근했다. 일과 따라 정한 수업만 끝내고 평소 퇴근보다 이른 시각 학교를 빠져나왔다. 젊은 날부터 방학이면 대학 동기들이 1박 2일 모임을 갖는 날이었다. 지난번 겨울방학 땐 당항포 교육종합복지관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그때 헤어지면서 오는 여름 밀양 강변 어디쯤서 만나자고 했다.
부부 동행하여 만나는 자리다만 아내는 수 년 전부터 얼굴을 내밀지 않아 나는 혼자 다닌다. 인근에 사는 친구 내외가 집 앞으로 차를 몰아왔다. 이 친구는 윤번제에 따른 회무를 맡아 펜션을 예약하고 시장을 보느라 신경을 썼지 싶다. 마침 관리자 인사 발표가 나는 날인데 그간 김해지역 교장으로 근무하다 이번 가을부터 창원 시내 집 근처 학교로 옮겨온단다. 역량 발휘가 기대된다.
빗길을 달려 도청 뒤에서 정병산 터널을 지나 수산을 거쳐 밀양 시내를 벗어났다. 숙소로 예약된 곳은 표충사가 멀지 않은 밀양댐 아래였다. 창원 둘, 울산 셋, 대구와 함양과 통영이 각 한 가족이다. 울산에서 한 가족이 불참 통보가 왔고 나는 혼자였다. 댐 아래 냇물에는 막바지 피서 인파들이 물놀이에 여념 없었다. 어른들은 그늘막 아래서 쉬고 아이들은 물속에 들어 신나게 놀았다.
우리가 숙소로 정한 펜션은 밀양댐 아래 강변에 여러 채 있는 것 가운데 하나였다. 펜션 주인은 여러 개 평상 대여도 함께 했더랬다. 여름 끝물이고 비가 오락가락해 평상에서 더위를 식히는 사람은 없었다. 먼저 도착한 일행은 각처에서 오는 친구들이 오길 기다리면서 한 친구 아내가 손수 빚어온 곡차를 들면서 환담을 나누었다. 통영과 대구 친구도 내비의 길안내로 속속 도착했다.
저녁 차림으로는 창원에서 동행한 친구 아내가 솜씨를 발휘한 오리 한방백숙이 익어갔다. 친구들은 떡밥 미끼를 으깨어 통발을 놓을 준비를 했다. 미끼를 넣은 통발을 맑은 냇물에다 설치해 놓고 오리백숙을 들었다. 모두들 좋은 상차림이라고 치사를 했다. 승진과 영전을 축하하는 건배와 함께 여러 순배 잔이 오갔다. 모두 맑은 술을 넉넉히 비웠으나 울산서 온 친구는 맥주를 들었다.
만찬을 끝내니 외등이 켜지고 사위는 어둠이 깔린 밤이 되었다. 친구들은 아까 낮에 설치해둔 통발을 걷으러 갔다. 어두워 손전등을 비추고 헤드랜턴을 써야 했다. 냇물에 펼쳐둔 통발 열 개를 모두 건져냈다. 물고기는 기대만큼 들지 않았다고 했다. 한 친구가 본래 물고기가 없는 자리인지 시간이 너무 경과되어 통발에 든 물고기가 떡밥을 먹고 유유히 빠져나갔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친구들은 각자 취향에 따라 숙소 안팎에서 작은 모둠으로 잔을 드는 연장전이 계속되었다. 회무를 보는 친구가 안주를 비롯해 간식은 넉넉히 준비했더랬다. 그런데 한 친구가 즐기는 맥주가 바닥이 나 현지서 구할 수 없어 아쉬웠다. 여성 동무들은 그들만의 취침 공간을 먼저 확보했고 날짜 변경선이 넘어서자 취기가 올라 한둘 쓰러져갔다. 나는 코골이를 피해 거실바닥에서 잠들었다.
이른 새벽에 잠을 깨어 바깥으로 나가니 사방 산들로 에워싼 골짜기는 운무가 가득 끼고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바깥 샤워장에서 남들보다 먼저 세면을 끝냈다. 거실로 드니 친구들이 속속 잠깨었다. 주방에선 미리 준비된 재료로 구수한 된장국이 끓여져 아침상이 차려졌다. 나는 해장술로 준비된 곡차를 혼자 두 병이나 비웠다. 운전에서 자유롭고 근무 부담도 없는 휴일이기에 가능했다.
아침 식후 느긋하게 여장을 꾸려 길을 나섰다. 밀양댐 전망대에 올랐다가 표충사로 향했다. 법당에는 빼곡하게 들어찬 신도 앞에서 스님이 법문을 했다. 주제가 ‘염불은 요리입니다’였다. 우리 일행은 산문 바깥 개울에 발을 담근 뒤 얼음골 호박소를 둘러 운무가 자욱한 재약산 케이블카를 탔다. 우리는 메기탕 집으로 옮겨가 늦은 점심을 들고 오는 겨울엔 울산 근처서 만나자면서 헤어졌다. 17.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