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상 직전 신어정 가는 길. 능선에 부는 가을바람 같은 발랄함이 있을까. 산행을 함께한 아이들의 천진함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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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 쉴 때도 잘 때도 심지어 죽을 때도 깜박거림 없이 살다 간다. 물고기는 오직 자신이 해야 할 바에 열중할 뿐이다.
불가(佛家)에서는 무릇 정진에 뜻을 품은 자는 이러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결코 감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물고기의 뜬 눈을 사찰의 소리와 상징, 그리고 이름에 새겨 두었다. 신어산(神魚山)은 ‘눈 뜬 자, 신(깨달음, 부처, 見性)을 보리라’는 의미를 이름 전체로 받아들인 김해의 진산이다.
신어산(631.1m)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하는 낙남정맥의 우렁찬 시작이 경남을 오롯이 관통하고 강에 가로막히기 직전, 마지막 힘을 다해 솟아 올린 산이다. 신어산의 능선은 순하다. 도심의 산이라 오르는 길이 많을뿐더러 오르막이 거세지 않아 처음 오르는 사람들도 거부감 없이 길에 접어들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산의 매력은 조망이다. 북으로 영남알프스 자락, 서방으로 금정산, 동쪽으로 불모산 등 영남 일대의 빼어난 산을 모두 볼 수 있다.
그뿐인가, 바다와 강이 만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동낙동강과 서낙동강이 도도히 흘러 바다와 만나는 장면을 목도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삼각주의 오랜 시간까지 가늠할 수 있다. 누런 김해 벌판과 오렌지빛 석양이 만들어내는 빛의 향연은 서비스다. 산, 들, 강, 바다를 모두 누릴 수 있는… 단언컨대 이 땅에 이런 산은 드물다.
- ▲ 정상에서 바라본 신어정과 김해 주변의 연봉. 분성산 너머로 임호산과 경운산 능선이 보인다.
- ▲ 산행 기점에서 5분 정도 아스팔트 길을 올라가면 천진암으로 가는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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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들머리는 신어산산림욕장이다. 산림욕장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신어산은 대여섯 살 된 아이들과 함께 가도 문제없는 코스와 건장한 사내들도 혀를 내두르는 코스, 산을 처음 오르는 어른들이 조금 고단할 수 있는 코스 등 고르는 재미가 있다. 취재 산행은 김해시청에 근무하는 동아대산악회 진동철씨와 그의 예쁜 두 딸과 함께했다. 그는 지역의 토목 공사를 담당하고 있어 지리에 밝고 인근 산을 두루 꿰고 있다.
산림욕장에서 천진암을 거쳐 능선에 붙은 다음 신어산 정상에서 영구암 쪽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3시간 정도의 길지 않은 대중적인 코스다. 10분 정도 아스팔트길을 오르면 은하사 주차장에 이르고 이곳에서 다시 포장길을 10여 분 오르면 천진암으로 가는 등산로가 나온다.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는데 가을 찬바람에도 이마에 땀이 날 정도가 되면 능선에 올라선다. 오르막과 완만한 능선을 오락가락하며 산과의 밀담이 이어진다.
능선에 이르면 정상까지는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다. 주위 산군들을 보며 걷는 아름다운 길이 이어진다. 15분 정도 걸으면 출렁다리를 만나고 여기서 다시 5분을 가면 쉼터 삼거리 갈림길에 이르는데 정상 방면으로 직진하면 된다.
이어서 5분여 걸으면 헬기장을 지나 신어산 정상 직전 신어정(神魚亭)을 볼 수 있다. 신어정 50m 위가 신어산 정상이다. 데크 길이 잘 놓여 있어 어린 아이들도 즐겁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 ▲ 영구암으로 이어진 능선의 바위 위에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낙동강 너머의 산은 금정산이다.
- ▲ 멀리 백양산과 구덕산, 시약산 등 낙동정맥의 마지막 맥이 바다로 이어지고 있다. 부산 강서지역 대삼각주와 능선이 바다와 닿아 있는 곳이 다대포 몰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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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부산의 진산 조망
정상에서는 부산의 진산들을 조망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신어(神魚)가 사는 금정(金井)의 조화인가, 고당봉, 원효봉, 파리봉 등 금정산 형상 전체를 남북으로 쫙 볼 수 있다. 부산 도심에서나 볼 수 있는 금련산, 황령산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게 보이고 백양산, 엄광산, 구덕산, 시약산, 승학산이 바다로 달려가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산 사이에 우뚝 솟은 문명의 이기는 해운대 마린시티의 초고층 아파트들이다. 이들도 이제 하늘 장면 하나를 꿰찼다. 부산에서도 보지 못하는 부산의 진면목이 신어산 앞에 엎드린다.
시선을 남방으로 옮겨보자. 눈앞에 펼쳐진 김해 벌판 사이로 낙동강 본류가 흐르고, 우측으로 본류에서 나와 다시 본류로 들어서려는 서낙동강이 굽이쳐 들어간다. 희미한 실루엣의 거제도와 바다에 떠 있는 가덕도 연대봉, 그들과 닿을 듯 말 듯한 명지신도시가 이어져 있다. 바다로 뛰어드는 다대포와 낙동정맥 끝자락 몰운대의 마지막은 가을 햇빛이 스푸마토 기법으로 빚어낸 명작이다.
북방으로는 무척산과 천태산, 토곡산이 나란히 그러나 명암을 달리하고 있다. 양산의 정족산, 원효산, 천성산도 보인다. 그 뒤 더 희미한 먹물로 영남알프스 준봉들이 ‘나도 있소’ 하며 서 있다. 서쪽으로 장유신도시와 굴암산, 눈을 크게 뜨면 불모산 철탑이 보인다.
신어산의 유래는 2,000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옛날 가야연합의 중심에도 신어산이 있었다. 주변 여섯 부족 중 가장 강력한 부족의 수장이었던 ‘김수로’는 부족을 통합하고 초기 국가 형태인 ‘가야’를 건국한다. 이때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허황옥(許黃玉)을 왕후로 삼는다. 지금도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는 동성동본으로 본다. 그녀와 같이 온 그녀의 오빠 장유화상은 인도불교를 이 땅에 전파하고 부족연합의 통일을 위해 신어산 자락에 사찰을 세우니 그곳이 지금의 은하사다.
- ▲ 신어산 정상에 선 진동철씨 (동아대산악회)와 그의 아이들. 왼쪽부터 둘째 딸 서윤, 첫째 딸 채원, 필자의 아들 세현. 가을 빛에 눈을 얇게 떠야 했지만 언제나 즐거운 정상이다.
- ▲ 정상에 서 있는 안내 표지판. 우리 일행은 영운리고개 방향으로 내려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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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어(神魚)는 당시 가야불교의 독창적 문양이며 용문양의 물고기 형태로 지금까지 전해진다. 수로왕과 허왕후의 신혼여행지라 전해지는 김해 장유동 장유사, 수로왕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한 무척산 모은암, 수로왕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한 천태산 부은암 등은 모두 이때 지어진 절이다.
은하사 총무스님인 현려스님의 말에 따르면 이전에 금강산(金剛山)으로 불리던 것이 인도 남방불교 전파에 힘입어 그 특유의 문양을 이름으로 빌려 신어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정상에서 다시 온 길로 5분여 내려가면 쉼터 삼거리에 닿고 여기서 영구암 방향인 좌측 길로 내려선다. 내리막길은 가파르다. 데크 계단이 놓여 있지만 한 손은 반드시 난간을 잡아야 하는 길이다. 이런 길이 하산을 완료할 때까지 이어지니 이때부터 다리에 힘을 바짝 주고 걸어야 한다. 가파르게 5분여 내려서면 깎아지른 절벽에 영구암이 있다. 시원한 약수와 화장실이 있어 목을 축이고 길고 사나운 내리막을 준비할 수 있다.
이후 빼어난 기암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영구암에서 5분 거리 밑에는 등반지로 손색없을 바위벽이 있는데 페이스와 루프가 발달해 있어 신규 개척도 가능하리라 본다. 또한 가을에는 단풍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 내려가기에 좋은 길이다.
무릎이 좋지 않은 산객들은 서너 발 내리고 경치 보고 하며 만보(漫步)를 즐길 수 있다. 은하사 길과 동림사 길이 만나는 주차장이 나온다. 하산을 시작한 지 30~40분 걸어 산행기점에 도착한다. 포장된 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면 김해하키장이 나오고 김해대학과 영운중학교를 지나면 삼방동에 도착한다. 여기서 버스와 경전철 등을 이용할 수 있다.
- ▲ 신어산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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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김해와 부산을 잇는 시내버스 123번, 126번, 1004번 버스를 이용한다. 김해 시내버스의 경우 삼방동을 경유하는 1번, 1-1번, 2번을 타고 화인아파트 앞에서 하차한다.
숙식(지역번호 055) 김해는 부산과 인접한 대도시라 잘 데와 먹을 데가 많다. 인근에 유명한 국수집이 있고 발품을 팔아 김해 맛집을 찾아가 보자. 근처에 민물장어촌이 즐비하고 주변의 삼방동과 어방동에는 대학가 인근이라 젊은이들이 찾는 먹거리가 많다. 분위기 있는 찻집도 많이 생겨서 산행이 끝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