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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0 14: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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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박주영 신드롬’의 속편이 개봉했다. 이쯤 해서 잠시 ‘박주영 신드롬’ 1편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박주영 신드롬 1편> #1 대구- 2004년 아시아 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킨 한 소년이 대회를 끝마치고 대구로 돌아온다. 그러나 예쁜 여자들은 모두 서울로 가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소년은 자신도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FC서울과의 계약서에 서명한다. #2 상암구장- K리거가 된 소년이 경기를 치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카메라가 라커룸을 찾아가 소년의 모습을 비춘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소년은 조용한 모습으로 생각에 잠겨있다. 잠시 뒤 그라운드로 걸어나간 소년은 해트트릭을 기록한다. (이날 경기에서는 광주가 서울을 5-3으로 이기는 믿을 수 없는 일도 일어난다) #3 한국 전역- 화면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시끄러운 음악들과 함께 지난 몇 달 간의 하일라이트가 보여진다. 울산 34,000명, 인천 32,000명, 부산 34,000명 등의 K리그 관중수가 자막으로 지나간다. 소년이 골을 터뜨리는 모습이 보인다. 프로 데뷔 첫 해부터 이러한 활약을 펼친 선수는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몇 명 밖에 되지 않는다. #4 서울- 소년이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는 모습이 보인다. FIFA 축구게임에도 그의 얼굴이 찍히고, TV 다큐멘터리에서는 소년의 옛 스승들의 인터뷰가 들려온다. 배경음악으로는 주얼리의 ‘수퍼스타’가 흐른다. #5 서울- 소년을 대표팀에 합류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진다. 신문, 인터넷, TV의 모든 매체는 소년의 2006월드컵 대표팀 합류를 주장한다. 본프레레 감독은 “그 아이는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며 no라고 답한다. #6 타슈켄트- 본프레레 감독이 소년의 합류에 동의함에 따라 19세의 소년 스트라이커는 우즈베키스탄과의 월드컵예선에서 출전 기회를 잡는다. 울퉁불퉁한 그라운드에서 고생하던 한국은 우즈벡에 골을 내준 뒤 끌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경기 종료 직전 소년이 천금 같은 골을 터뜨렸고 한국은 신나는 세레모니를 즐긴다. 며칠 뒤 쿠웨이트전에도 나선 소년은 첫 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페널티킥마저 얻어내며 한국의 월드컵 진출에 공을 세운다. #7 인천공항- 유럽의 에이전트들과 구단 관계자들이 FC 서울과 만나기 위해 한국에 입국한다. 그들이 들고 온 커다란 007가방은 돈다발로 가득 차 있다. 소년의 명성이 계속 높아져가고 유럽의 구단들은 커다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협상테이블- FC서울의 관계자들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모습이 보인다. 유럽에서 온 축구 관계자들은 실망스런 표정을 지으며 안타까운 눈빛으로 서울의 관계자들을 바라본다. #8 독일- 2006 월드컵 스위스전에서 모습을 드러낸 소년은 인상적이지 못한 경기를 펼친다. 이어 스위스가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고 한국은 탈락한다. 사람들의 눈물과 분노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9 한국- K리그에서도 골을 성공시키지 못하던 소년은 부상까지 당하며 불운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언론은 대문짝만하게 “박주영의 슬럼프”라는 헤드라인으로 기사를 쏟아낸다. #10 서울- 아시안컵 명단에 소년의 이름은 없다. 슬픈 음악이 흐르며 소년이 날린 슛이 골대를 벗어나는 영상만 반복된다. 소년은 풀이 죽은 듯한 얼굴로 자신의 방안에서 FIFA 07 게임에 몰두 하고 있다. 그러나 옆에 놓여있는 게임의 커버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던 소년의 얼굴이 사라져버렸다. # 엔딩 <속편> #1 중국 충칭- 대표팀에 다시 승선해 동아시아대회에 출전한 소년은 중국전에서 멋진 2골을 뽑아내며 영웅이 된다. 팀 동료들이 그를 얼싸안고 축하해주는 모습이 보인다. 언론은 열광하며 소년을 칭송하는 기사를 마구 써댄다. 주얼리의 ‘수퍼스타’가 배경음악으로 다시 흐른다. ‘박주영 신드롬’의 속편은 어떤 모습으로 끝을 맺게 될까? 나는 물론 이 가상의 영화가 1편과 비슷하게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악당은 누구일까? 악당은 다름 아닌 우리 모두다. 우리는 데뷔한지도 얼마 안 되는 어린 선수에게 너무 커다란 부담감을 안겨줬다. 특히 언론은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 있었고, 나 역시 이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2005년 10월 박주영이 FC서울 홈경기에서 득점하는 것을 본 나는 영국판 포포투에 ‘아시아의 루니’라는 기사를 송고한 적이 있다. 당시 박주영은 11호 골을 터뜨리며 득점 랭킹 1위에 등극했었다. 2005년의 박주영은 그 흔치 않다는 ‘골 본능’을 갖고 있는 듯했다. 박주영은 기량이 완벽하게 다듬어지지는 않은 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골대 앞에서는 상당히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박주영이야 말로 모두가 기다리던 그런 스트라이커인 듯 했다. 그러나 다음날 한 스포츠 신문은 골을 넣고 기뻐하는 박주영의 사진을 1면에 대문짝만하게 올리고 ‘레전드’라는 헤드라인을 썼다. 한 신인의 28번째 프로 경기가 끝났을 뿐인데 말이다. 이러한 일들은 박주영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줬다. 물론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한국 축구에 도움을 주는 현상일 수도 있었다. 축구 팬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박주영과 K리그에 열광했다. 언론과 팬이 영웅을 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한 시즌도 채 끝마치지 않은 어린 선수에게 ‘레전드’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었다. 널리 알려진 박주영의 별명 ‘축구 천재’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될 수 있다. 박주영이 어느 시점에서건 슬럼프에 빠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상도 생겨날 수 있었고 컨디션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슬럼프에 빠진 박주영은 자신의 본능을 믿지 못한 채, 그저 너무 열심히 만 하려고 하는 듯했다. 모든 언론이 ‘박주영의 슬럼프’라는 기사를 내보내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영국에서도 이러한 경우를 많이 봤다. 영국 언론은 한국 언론보다 훨씬 더 비판적이고 악랄하다. 그들은 선수의 명성을 한껏 높여주다가 재빨리 그것을 파괴하곤 한다. 박주영은 중국전에서 2골을 성공시키며 언론의 1면으로 다시 돌아왔다. 자신감에 넘치는 날카로운 박주영은 한국 축구에 상당한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가 달라져야 한다. 박주영에 대한 좀더 조심스럽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벌써부터 박주영의 부활’을 다룬 TV 프로그램이 제작되고 있기는 하지만……) 언론들은 취재에 비협조적인 박주영의 태도를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침묵’은 박주영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옵션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모두가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해 1편과는 다른 ‘박주영 신드롬’의 속편을 만들어보자. http://cafe.empas.com/duerden 번역: 조건호 (스포츠 전문 번역가) |
http://news.empas.com/issue/show.tsp/4249/20080220n12354/spo
첫댓글 악당은 다름 아닌 우리 모두다............절대적으로 동감
다른 기자들도 듀어든기자처럼 좀 반성하면 좋을텐데요...박주영이 인터뷰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보복할 생각만 하지 말고..
역시 듀어든 ........................
역시나 듀어든 ?.... 진짜 글 잘쓴다.. -> 결론 = 팬들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가 된다
제목보고 발끈했던...뭐야 또 시작들이야 우리 주영이 좀 내버려두라고!! 하면서....읽어 보니 찡하네요 ㅠㅠ 그런데 박주영의 부활을 다룬 TV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있다구요?ㄷㄷㄷㅡㅡ;; 진짜 오싹하다 이노무 언론들 ㅠㅠㅠㅠ
박주영의 부활이라,,, 완전히 들었다 놨다 하는군요,,;;; 오늘 골이 안들어가면 또 난리를 치겠죠?? 그 프로그램도 취소되는 건가???? 골을 넣으라고 빌어야 할지 넣지 말라고 빌어야 할지,,나원참,,
개념기사다. ㅎㄷㄷㄷㄷ
잼잇네 ㅋ
진짜 이분을 축협회장으로..
역시 개념충만 듀어든기자
진짜 .. 사람들은 독일월드컵 스위스전의 실수만을 보고 박주영을 밥줘영이라는 말로 비난하지만 , 박주영이 아니었으면 본선진출도 불가능 했을텐데 ...
재미있다..
재미있다..
역시 되는기사거리제공하는 듀어든 정말
와 진짜 개념기사
역시 뛰어난 글쟁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개념글;;박주영이 잘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진심진심.
오....... 훌륭하다.... 이렇게만 기사써다오. 스포츠 기사 속에 웃음 공감 감동까지 녹아있다니..
언론들은 취재에 비협조적인 박주영의 태도를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침묵’은 박주영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옵션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부분 정말 와닿는말이네요...
아시아의 루니는 정대세던데...ㅋㅋㅋㅋ
박주영은 분명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입니다..하지만 사람들이 박주영을 믿어주질 않았기 때문에 박주영 본인도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시작한거죠. 우리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듀어든기자님의 말씀에 적극 공감합니다.
그나마 박주영의 성격이 조용해서 다행이지. 언론의 띄우기에 자만심으로 가득차 나락으로 떨어졌던 스타가 얼마나 많던가. 가깝게 고종수,이동국(군대가서 정신차렸지만) 같은 케이스는 정말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