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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락원목사 講解설교모음 스크랩 7강. 넷째 날, 궁창의 해와 달과 별 (창 1:14-19)
jtr28114 추천 2 조회 214 20.07.14 17:53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7강. 넷째 날, 궁창의 해와 달과 별 (창 1:14-19)

 

창 1:14-19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15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18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9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만물이 예수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습니다.

이는 만물을 가지고 예수님의 일하심을 드러내고자 함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하여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도 예수님께서 역사 속에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들을 창조라는 사건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란? 원인에 의한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럼 창조와 구원은 같은 것이므로 구원 역시 원인에 의한 결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원인을 첫째 시간에 창세전 언약이라는 것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창세전 언약이 먼저이고 창조가 나중입니다.

창조는 창세전 언약에 의한 결과물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창조를 논하기 전에 창세전 언약을 알아야 합니다.

창세전 언약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를 보면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지를 알 수가 있어집니다.

 

창조는 구원과 같다고 하였으니 우리의 구원도 언약을 알면 그 결과를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구원이 주어지고 또한 어떻게 구원이 이루어지는지 그 진행 과정도 알 수가 있습니다.

구원이 시작과 끝이 있는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순서로 점진적으로 진행이 되며 또한 심층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씨로부터 출발을 합니다.

 

씨가 싹을 내고,

싹이 잎사귀를 내고,

잎사귀가 줄기를 내고,

줄기가 가지를 내서 열매를 맺습니다.

 

이 과정을 통틀어서 생명의 자람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구원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비유하셨습니다.

 

마가복음 4장을 봅시다.

 

막 4:26-29절.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하나님은 농부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예수라는 씨를 심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씨처럼 오셨습니다.

 

처음에는 예수가 씨처럼 미미하여 점점 우리를 장악하게 됩니다.

씨가 자라가면서 우리 몸은 씨가 품고 있는 내용들을 하나 둘씩 실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일들을 하게 됩니다.

이를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으로 자라간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창세기 1장에서는 첫째 날부터 시작에서 일곱째 날로 나아가는 창조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창조의 모습도 세 과정으로 진행이 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과정은, 갈라짐이고,

둘째 과정은, 채워짐이고,

셋째 과정은, 안식하심입니다.

 

첫째 날에서 셋째 날은 갈라내는 것으로 되어 있고,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채우는 것으로 되어 있고,

일곱째 날은 안식하는 것으로 해서 창조가 완성이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의 여정과도 같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빼내심과 자라감과 안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이를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구분으로 “구원을 받았다”, “구원을 이루라”, “구원을 이룰 것이다”, 라는 삼 시제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세 단계로 진행이 됩니다.

 

첫째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빼내심을 입는 것입니다.

언약적인 관점에 보면 예수님의 피로서 옛 언약인 율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이는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단회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과거적인 것입니다.

 

둘째는, 의와 거룩으로의 부르심을 입는 것입니다.

언약적인 관점에서 보면 새 언약인 은혜 아래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광야에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진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현재진행형으로서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영화로움을 입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주어지는 것으로서 미래적인 것입니다.

 

이 일을 모두 예수님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영생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일컬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 라는 역사적 인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은 전에도 일하셨고, 지금도 일하시고 계시고, 장차도 일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시작을 하셨고,

예수님이 현재 이루어가고 계시며,

예수님이 장차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시나요?

자기 백성들 구원하는 일을 하십니다.

그 구원이 시작과 끝이 있는 역사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구원을 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 라는 시간의 시제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창조 사역에서는 “갈라냄과, 채우심과, 안식함”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과 창조는 동의어입니다.

창조 속에 구원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의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이루어지는 창조의 일 속에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갈라내는 창조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채우는 일을 하게 됩니다.

다 채워지면 일곱째 날에 모든 일을 마치고 쉬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천지(天地)와 만물(萬物)을 다 이루니라고 합니다.

 

오늘은 넷째 날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 한 텀입니다.

이제 넷째 날부터 시작해서 두 번째 텀이 여섯째 날까지는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 텀은 공간을 갈라냄이었고, 두 번째 텀은 공간 속에 채우는 것입니다.

 

넷째 날은 채움을 입는 날입니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 갈라냄을 입었으니,

이제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채움을 입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시작은 빼내심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이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율법애서 은혜로 옮겨진 것입니다.

 

채우기 위하여 옮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하늘에 것으로 채우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옛 것은 제하고 새 것으로 채움을 입는 것입니다.

 

법은 제하고 은혜를 채우고,

땅에 것을 제하고 하늘에 것으로 채우고,

인간의 의는 제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심는 일을 하십니다.

 

성경은 짝으로 되어 있습니다.

 

빛과 어둠은 짝입니다.

사망과 생명은 짝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짝입니다.

하늘과 땅은 짝입니다.

율법과 은혜는 짝입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은 짝입니다.

구약과 신약은 짝입니다.

육과 영은 짝입니다.

옛 사람과 새 사람은 짝입니다.

신자와 불신자는 짝입니다.

 

빼내심과 채우심은 짝입니다.

하나님은 짝을 가지고 일을 해 가십니다.

그래서 창조의 사건도 짝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창조 6일도 서로 짝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날과 넷째 날이 짝이고,

둘째 날과 다섯째 날이 짝이고,

셋째 날과 여섯째 날이 짝이 됩니다.

 

첫째 날은, “빛이 있으라” 입니다.

이는 빛이 세상에 오심을 말합니다.

빛이 오심으로 하나의 세상이었던 것이 빛과 어둠이라는 두 세상으로 갈라짐이 일어납니다.

빛을 낮이라 하고 어둠을 밤이라 칭하였습니다.

 

빛이 오셔서 흑암 속에서 빛을 불러내셨습니다.

어둠의 세계에 있던 빛의 아들들이 출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넷째 날 해와 달과 별의 창조로 나타났습니다.

 

둘째 날은, “궁창을 중심으로 궁창 위물과 궁창 아래 물의 갈라짐”입니다.

이것이 다섯째 날 바다에는 각종 고기로 채우시고

하늘에는 각종 새로 채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셋째 날은, “물속에서 뭍(마른 땅)을 끄집어내서 바다와 땅을 분리”합니다.

이것은 여섯째 날 짐승과 사람의 창조로 나타났습니다.

바다는 땅을 상징하고, 물 속에서 나온 뭍(마른 땅)은 하늘을 상징합니다.

땅을 육이라고 하고, 하늘을 영이라고 합니다.

땅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자를 육에 속하였다고 하는데 이를 짐승이라고 하고,

하늘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자를 영에 속하였다고 하는데 이를 사람이라고 합니다.

 

첫째 날과 넷째 날이 짝이고,

둘째 날과 다섯째 날이 짝이고,

셋째 날과 여섯째 날이 서로 짝이 되어서 나타난 것입니다.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은 천지라는 공간을 만드는 날이고,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은 천지 속에 만물을 채우는 날입니다.

공간 속에 다 채움이 이루어지는 것이 천지와 만물을 다 이루니라가 됩니다.

그리하여 일곱째 날에 모든 것을 다 마치시고 안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넷째 날을 살펴봅니다.

 

창 1:14-19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15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18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9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첫째 날, 빛이 있으라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둘째 날, 궁창으로 위 세상과 아래 세상으로 나누심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늘 백성과 땅에 백성으로 나누어짐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셋째 날, 물속에서 뭍(마른 땅)을 끄집어내신 것은 예수님이 무덤 속에 있는 자기백성들을 끄집어내심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순서로 예수님의 일하심으로 본다면 넷째 날은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후에 일하심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무슨 일을 하셨나요?

성령으로 새로운 창조의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자기 백성들을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여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하는 일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을 일컬어 하늘 백성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넷째 날 궁창에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는 것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넷째 날에 궁창의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오셔서 일하신 사건을 말해주고 있음이 됩니다.

 

성령의 오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새로운 백성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를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을 빛의 아들들이라고 합니다.

빛의 아들들이 모인 곳을 일컬어 교회라고 합니다.

어둠 속에 빛의 나라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마치 깜깜한 밤에 해와 달과 별이 생긴 것과 같습니다.

 

성령의 오심으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나라가 생긴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혈통적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짜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육적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도 가짜가 되는 것입니다.

 

혈통으로 난 자는 구약의 이스라엘이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신약의 이스라엘입니다.

구약은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난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신약은 예수그리스도로 낳아진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살상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낳아지는 자들은 영적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창조의 방식인 성령으로 낳아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새로운 이스라엘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을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구약은 육적 이스라엘이었지만 신약에서는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육적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이 조상이지만, 영적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조상입니다.

구약은 육의 시대라고 하고, 신약은 영의 시대라고 합니다.

육은 땅이고, 영은 하늘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위로부터 난다고 합니다.

위로부터 난다는 말은 하늘로부터 낳아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하늘로부터 난 자들이라고 합니다.

하늘로부터 난 자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합니다.

성령 강림으로 어둠의 나라에 하늘의 빛의 나라가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이 넷째 날 궁창에 빛인 해와 달과 별의 창조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넷째 날에 궁창에 해와 달이라는 두 광명을 창조하였습니다.

 

광명을 “마오르” 라고 하는데,

이는 “참 빛으로부터 온 것” 이라는 뜻입니다.

“참 빛을 받은 자들” “참 빛을 소유한 자”라는 뜻입니다.

의역하면 “참 빛으로부터 낳아진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참 빛이란? 첫째 날의 원초적인 빛을 말합니다.

쳇째 날 참 빛으로 낳아진 자들이 넷째 날 궁창의 해와 달과 별이라는 빛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넷째 날 창조가 된 궁창의 빛은 성령 강림으로 생겨난 교회와 성도들을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가 된 영적 이스라엘이 궁창의 빛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오심으로 영적 이스라엘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영적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가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영적 이스라엘은 하늘에 속한 자이고, 육적 이스라엘은 땅에 속한 자가 됩니다.

영적 이스라엘이 바로 하늘에 있는 빛인 해와 달과 별인 것입니다.

 

잘 보세요.

첫째 날에 빛이 나타납니다.

넷째 날에도 빛이 나타납니다.

 

첫째 날 빛은 빛 그 자체입니다.

원 빛입니다.

이를 참 빛이라고 합니다.

넷째 날 빛은 참 빛으로부터 나온 복사 빛입니다.

그러니까 첫째 날 빛은 원본이고 넷째 날 빛은 복사본 빛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의 오심을 참 빛이 세상에 왔다고 하였습니다.

참이라는 말은 거짓 빛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거짓 빛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침 빛이니까 빛을 의인화 하면 사람이 됩니다.

참 빛이신 사람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자라고 합니다.

 

인자란?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만이 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입니다.

 

죄인인 아담으로부터 낳아진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난 자들은 참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가짜 사람인 것입니다.

이를 짐승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가짜 사람들 중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칭하였습니다.

칭하였다는 말은 실상은 아닌데 간주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구약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 받았습니다.

이는 장차 참 하나님 백성이 오기까지 그림자로서 하나님 백성 노릇을 한 것입니다.

이를 기능적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참 아들을 보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참 아들로 나타나자 그 동안 하나님의 아들 행세를 한 육적 유대인들은 가짜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의인이라야 합니다.

의인이란? 죄가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인 아담의 후손입니다.

아담의 후손은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하나님께 아담의 후손 중에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을 어린 양의 피 안에서 의롭다 여겨 주십니다.

이들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 한 구약의 이스라엘입니다.

실제로는 의롭지 않은데 어린 양의 피 안에서 의롭다고 여겨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하려고 죄를 지으면 흠 없는 제물로 제사를 지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제사를 지내면서 우리는 실제로 의롭지 않은데 흠 없는 제물이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해 주심으로서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라고 하나님은 제사 제도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오해를 한 것입니다.

마치 자기들이 의로운 자라고 착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초림으로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킨 것으로 자칭 의로운 자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 지킴을 가지고 의로운 자 행세를 하였습니다.

자기들만 의인이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불의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스스로를 빛이라고 행세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오셔서 내가 의인이고 너희는 죄인이라고 합니다.

내가 참 빛이고 너희는 가짜 빛이라고 합니다.

내가 참 사람이고, 너희는 가짜 사람이라고 합니다.

내가 참 하나님의 아들이고, 너희는 가짜 하나님 아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출현으로 졸지에 유대인들은 가짜로 드러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이 참 빛으로 나타나자 유대인들은 가짜 빛으로 드러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이 참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자 유대인들은 가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으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의 아들을 낳는 일을 하십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빛의 아들들의 출현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을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영적 이스라엘은 하늘에 속한 빛의 아들들인 것입니다.

 

참 빛으로 낳아진 자들이 빛의 아들들인 것입니다.

이들이 넷째 날 궁창에 있는 빛인 해와 달과 별들입니다.

창조의 첫째 날 빛은 세상에 생명(빛)을 공급해주는 참 빛이신 예수님을 상징하고,

창조의 넷째 날 하늘의 빛은 예수님으로부터 생명(빛)을 받은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두 가지 빛이 있습니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빛과,

빛을 받아서 발하는 복사 빛이 있습니다.

스스로 발하는 빛을 발광체라고 하고,

빛을 받아서 빛을 발하는 빛을 발암체 라고 합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분이십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낳아진 성도들은 예수님의 빛을 받아서 밝히는 복사 빛인 것입니다.

이들이 넷째 날 하늘에 있는 빛인 해와 달과 별들입니다.

 

여기서 잠간 해와 달과 별을 통해서 첫째 날 빛과 넷째 날 빛을 살펴봅시다.

넷째 날 빛은 첫째 날 빛으로부터 나온 자들입니다.

이 모습을 넷째 날 속에 해와 달과 별로 두셨습니다.

 

첫째 날 빛은 스스로 발하는 발광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넷째 날 속에도 첫째 날 빛과 같은 역할을 하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빛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해로 나타난 것입니다.

 

해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체입니다.

이것은 첫째 날 빛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넷째 날의 해는 첫째 날 빛을 상징한다고 하였으니까

넷째 날에도 첫째 날의 빛을 상징하는 해로부터 빛을 받아서 발하는 빛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달과 별인 복사 빛들입니다.

 

달과 별은 해로부터 빛을 받아서 발하는 복사 빛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과 성도 관계로 해석을 해 보세요.

그럼 넷째 날의 해는 예수님을 상징하고 달과 별은 교회와 성도들을 상징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해와 같이 참 빛이고 교회와 성도는 달과 별처럼 복사 빛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넷째 날의 해와 달과 별은 예수님과 교회와 성도들을 보여주는 그림인 것입니다.

 

해는, 예수님을 상징하고,

달은, 교회를 상징하고,

별은, 성도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빛을 자기 백성들에게 비추셨습니다.

그러자 빛의 아들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빛의 아들들이 모인 곳을 교회라고 합니다.

이 모습을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죄 아래 있는 흑암과 혼돈과 공허한 죽은 어둠의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어두운 세상에 예수라는 참 빛을 보냈습니다.

이는 빛의 아들들을 낳고자 함입니다.

빛의 아들들을 일컬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럼 하나님의 아들도 빛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참 빛이라고 합니다.

 

참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낳아진 자들도 빛의 아들들인 것입니다.

참 하나님의 아들로 낳아진 자들이 참 하나님의 아들들인 것입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은 참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가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서 난 자들은 가짜 하나님의 아들들인 것입니다.

신약의 예수님이 참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낳이잔 자들이 참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입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빛의 아들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고후 4:6절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성령이 임하자 빛의 아들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빛의 아들들을 세상이라는 어둠으로부터 격리를 시키셨습니다.

이를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를 일컬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로부터 나온 자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빛의 아들들이 모인 곳입니다.

교회는 어둠이라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빠져나온 빛의 아들들이 모인 빛의 동네입니다.

이를 낮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성도들을 이 세상에 빛의 아들로 두셨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참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여야 합니다.

이를 증인이라고 합니다.

 

시편 기자는 달을 증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시 89:37절 “또 궁창의 확실한 증인 달같이 영원히 견고케 되리라 하셨도다 (셀라)”

 

달은 해를 증거 하는 증인입니다.

자기가 비추는 빛은 자기 것이 아니고 해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는 증인인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달을 교회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알려주는 증인인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성도들을 일컬어 하늘에 허다한 증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증인의 첫째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히 12:1-2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이 증인이고,

그에게서 나온 자들도 증인인 것입니다.

 

무엇을 증거 하는 증인입니까?

 

하나님 나라와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증인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할 증인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행 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요 14: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십니다.

성령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신다는 것은 성령이 임하면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증인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참 빛입니다.

그럼 성령을 받은 성도도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온 세상으로 보내서 이방에 비취는 빛을 삼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행 13:47절 “주께서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엡 5:8절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벧전 2:9절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증인은 받은 것을 증거 해야 합니다.

보고 들은 것을 증거 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의 증거를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셨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예수그리스도부터 보고 듣고 배운 것을 세상에 알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어두운 세상을 비취는 해와 달과 별이 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요한일서 1장을 봅니다.

 

요일 1:1-3절.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사도 요한은 태초에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합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나타내신바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태초부터 있던 생명의 말씀을 눈으로 보았고 손으로 만졌고 귀로 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자신이 보고 듣고 만진 바를 증거 하여서 이 증거를 받는 자들로 하여금 사귐을 갖고자 함이라고 합니다.

 

해와 달과 별은 빛을 세상에 비추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 빛을 등경 위에 두어서 사람들에게 비취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 5:14-16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은 어둠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어둠은 빛에 대하여 소경입니다.

빛의 아들들인 성도들도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소경이었습니다.

예수를 만나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만나서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구원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세상에 증거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두 광명으로 땅을 비추게 하고 낮과 밤을 주관케 하셨습니다.

 

해는 낮을 주관케 하셨고,

달은 밤은 주관케 하셨습니다.

 

“주관하게 하셨다(마솰)” 라는 말은 “지배하다, 다스리다” 라는 뜻입니다.

주관한다는 말은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해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럼 예수그리스도가 주관하는 낮은 누구인가요?

빛의 아들들이 모인 교회인 것입니다.

 

해는 낮을 주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낮인 빛의 아들들은 해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빛의 아들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빛의 아들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빛의 아들들이 모인 교회를 예수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면서 예수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몸은 머리의 지시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머리의 지시로 살아가는 것을 순종이라고 합니다.

빛의 아들들이 모인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순종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달은 밤을 주관케 하셨습니다.

달에게 밤을 주관케 하신 것은 예수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은 빛의 아들들은 어둠인 이 세상에서 빛의 아들로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빛의 아들로 살아가는 것이 달이 밤을 주관하는 것입니다.

 

골 3:1-2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기 때문에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이는 너희는 하늘에 사람이니까 하늘에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육적인 가치로 살지 말고 영적인 가치관으로 살아가라고 합니다.

빛의 아들들은 하늘에 속하였습니다.

하늘의 가치관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땅에 것을 구하지 말고 하늘에 것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구하지 말라

이러한 것들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너희는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하늘에 속하였습니다.

교회는 세상 위에 있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음부의 권세란? 땅의 권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 가치가 자리 잡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이것에 세상을 주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해와 달을 통해서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징조를 “오트” 라고 하는데, 이는 시대를 알리는 표징을 말합니다.

사시(四時)는 “모에드” 라는 말로서, 이는 ‘지정하다’ ‘고정하다’ 라는 뜻으로서 하나님이 정한 때를 말합니다.

일자(日子)와 연한(年限)이란? 징조와 사시를 년과 날로 순환케 하신 것을 말합니다.

 

쉬운 말로 교회는 하나님의 시간표와 같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역사의 경점을 알려주는 일을 하십니다.

역사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시작한 날이 있으면 끝나는 날이 있습니다.

 

역사는 정해진 때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정한 때는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정한 때를 교회에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일컬어 하나님의 비밀을 밑은 곳이라고 합니다.

 

교회도 역사 속에 존재합니다.

역사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교회도 시작과 끝이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교회가 시작이 되었고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교회의 끝이 이르게 됩니다.

시작을 할 때는 시작의 모습이 있고 끝이 날 때는 끝의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운행하시는 것은 마치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과도 같습니다.

씨를 뿌릴 때가 있고 추수 할 때가 있습니다.

계절이 씨를 뿌릴 때인지 추수 할 때인지 알려 줍니다.

농부는 계절을 통해서 뿌리고 거둠을 합니다.

 

역사의 시작을 씨를 뿌리는 시기라고 한다면 역사의 종말은 추수하는 때입니다.

씨를 뿌릴 때와 추수 할 때의 계절이 다르듯이 역사의 시작의 때와 역사의 종말의 모습도 다릅니다.

 

시작 할 때는 시작 할 때의 모습이 있고 끝이 날 때는 종말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알려주십니다.

교회는 세상의 때를 알려주는 시간표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모습 속에 역사가 어느 경점에 와 있는지 때를 담아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모습 속에 세상 모습을 담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세상 역사는 교회의 시간표에 따라서 그 모습을 달리하면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통해서 알려주셨습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모습은 역사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시간표와 같습니다.

마치 계절이 봄에는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농사를 짓고, 가을에는 추수를 하라고 알려주듯이 교회의 모습을 통해서 시대의 때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교회를 보면 세상을 알고,

세상을 알면 교회를 알게 됩니다.

교회는 세상의 거울이고 세상은 교회의 거울인 것입니다.

 

이걸 사회현상론이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 징조 라고 합니다.

마치 단풍이 물들면 가을이라는 것을 알듯이 교회와 세상의 모습을 보면 역사의 때를 알 수가 있습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역사적인 의미에서 신약교회의 전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일곱 교회를 가지고 초대교회에서부터 종말교회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얼곱 교회는 각 시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의 모습을 일곱교회에 담아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 교회의 모습을 보면 그 시대가 어느 때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교회마다 편지의 내용이 다릅니다.

이는 각 교회에 보낸 편지마다 그 시대상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는 시대를 알려주는 시간표와 같은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편지 속에는,

교회가 세워지는 초대교회 시대를 상징하고 내용이 담겨져 있고,

 

서머나 교회의 편지 속에는,

로마의 박해로 인하여 일어나는 순교 시대를 상징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고,

 

버가모 교회의 편지 속에는,

교회가 로마의 국교가 되는 시대를 상징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고,

 

두아디라 교회의 편지 속에는,

교회가 로마 국교가 되면서 극심하게 타락할 중세암흑 시대를 상징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고,

 

사데 교회의 편지 속에는,

로마 카토릭에서 종교 개혁이 일어나서 개혁교회 시대를 상징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고,

 

빌라델비아 교회의 편지 속에는,

개혁교회의 복음이 온 세상에 퍼져나가는 선교 시대를 상징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고,

 

라오디게아 교회의 편지 속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의 종말의 교회 시대를 상징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구약 교회의 역사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냄으로 시작하여서 예수님의 초림으로 끝이 났습니다.

신약의 교회의 역사는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시작하여서 예수님의 재림으로 끝이 납니다.

이걸 에베소 교회로부터 시작해서 라오디게아 교회로 끝나는 것으로 담아 놓았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초대교회를 상징하고 있으며,

라오디게아 교회는 말세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 속에는 종말의 시대상도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징조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을 봅시다.

 

마 24:1-14절.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3.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예수님께서 타락한 예루살렘 성전을 척결하시고 나와서 감람산에 이릅니다.

그리고는 때가 이르면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멸망당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성전이 멸망당할 때와 더 나아가서 이 세상 끝에는 어떤 징조들이 일어나겠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징조란? 현상을 말합니다.

 

제자들이 종말에는 어떤 현상들이 일어납니까? 라고 물은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습들을 가지고 알려 주십니다.

세상 끝이 되면 이러한 일들이 사회적으로 만연하게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첫 번째 징조로 거짓그리스도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단들이 창궐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시대이고 이단들은 항상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종말이 되면 우후죽순처럼 많이 일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이단이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자들입니다.

이단들이 창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도적질 당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들이 자기 맘대로 성경을 해석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켜서 성도들로 하여금 타락케 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예수님 초림 때 예루살렘 성전이 장사하는 곳과 강도의 소굴이 되었듯이 종말에도 거짓 종들이 교회를 비즈니스 모임 장소로 전락시켜 놓을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교리적으로는 인본주의가 교회 안에서 진리로 둔갑을 하여서 성도들을 미혹케 된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서도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계 6:1-17절.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4.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5. 세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세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7. 네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네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어린 양이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취합니다.

그리고 그 인을 하나씩 뗍니다.

그러자 말들이 뛰기 시작합니다.

말들이 뛸 때마다 이 세상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운행을 어린 양에게 맡기셨다는 뜻입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책에 기록된 대로 역사를 운행하십니다.

책은 역사의 시나리오 입니다.

 

역사의 시간표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마치 드라마의 시나리오처럼 첫 회에서부터 마지막 회까지 진행되는 과정이 있듯이 이 세상 역사도 하나님이 정한 때에 따라서 그 시대상이 드러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광의적인 의미에서는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언적인 의미에서는 종말에 일어날 일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을 하시고 성령 강림으로 교회가 세워지면서부터 종말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점진적으로 보다 심층적으로 전개가 되어갑니다.

이 세상의 역사는 마치 꽃이 몽우리로부터 시작하여서 서서히 피어서 만개가 되다가 지는 것처럼 진행이 되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이 서서히 늙어가듯이 교회의 타락도 하루아침에 타락하는 것이 아니고 서서히 타락하여 가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이고 징후들은 있어왔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의 세상의 징조들은 늘 있어왔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재림이 가까워지면서 그 모습이 만개하여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징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복합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요한계시록의 축소판과도 같습니다.

종말의 징조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서도 그 첫째가 적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흰 말은 적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출현을 하면 진리가 변질됩니다.

진리가 변질이 되면 성도들의 신앙은 자연히 타락의 길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흰 말 다음에 붉은 말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붉은 말은 전쟁을 상징합니다.

적그리스도 세력이 나타나면 반드시 진리와 비진리의 전쟁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걸 마태복음 24장에서는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전쟁이 일어나는 것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단이 나타나면 반드시 교인과 교인끼리 싸우고 교회와 교회끼리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작게는 성도들끼리 다툼이 일어나고 크게는 교회끼리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여 왔습니다.

이 시대는 교회마다 뱀의 말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본주의 신앙이 창궐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의는 사라지고 인간의 의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초림 때 유대인들이 율법의 의로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듯이 이 시대도 거짓 종들이 인간의 의로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가려서 세상 종교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 기근입니다.

그래서 붉은 말 다음에 검은 말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검은 말은 기근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도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면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적그리스도 세력이 창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에 기근이 닥칩니다.

거짓 종들이 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종들을 이단으로 매도하기 때문입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전쟁이 나면 기근을 당하고 기근을 당하면 온갖 질병들이 창궐하게 됩니다.

그래서 검은색 말 뒤에 청황색 말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청황색 말은 각종 질병과 사망을 일으킵니다.

이것을 마태복음 24장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죽이고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근이 오면 영적 질병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교인들은 귀가 가려워서 자기 사욕을 쫓을 스승들을 찾아갑니다.

이는 교인들이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듣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수많은 말씀들이 인터넷으로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말씀들이 마치 백화점에 진열이 된 상품처럼 있습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것을 찾아서 들으면 됩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골라잡으면 됩니다.

 

교인들은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목사를 찾아다닙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적 신앙에서 이탈하여 거짓 종들의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공교하게 지은 말에 미혹당하여서 병든 신앙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거짓 종들은 귀에 달콤한 말로 미혹하는 것입니다.

 

계 18:2-5절.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종말의 타락한 교회를 음녀라고 합니다.

음녀란? 여러 남자와 상간하는 여자를 말합니다.

교회의 남편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의만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말의 교회들은 예수그리스도 의 이외 다른 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음행의 포도주라고 합니다.

포도주는 포도주인데 음행의 포도주인 것입니다.

 

음행이란?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버리고 인간의 의를 붙잡는 것을 말합니다.

이름하여 뱀 사상인 인본주의 신앙을 말합니다.

그래서 종말의 교회를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귀신의 처소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세요.

별 희한한 신학과 신앙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각종 프로그램이라는 인본주의 사상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기복주의 신비주의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인들의 신앙생활이 무당 푸닥거리 하듯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고 합니다.

그들의 죄에 참예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모습이 요한계시록 11장에 두 증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타락한 교회에 들어가서 다시 예언하는 일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계 10:7-11-11:1-3절.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11: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하나님께서 두 증인들에게 작은 책을 먹입니다.

에스겔 2장을 보면 그 책의 내용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입니다.

심판의 내용입니다.

 

겔 2:8-10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9.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10.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두 증인들이 굵은 베옷을 입은 것은 회개를 촉구하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란? 인간의 의를 버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붙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예언을 한다고 합니다.

 

다시 예언이란? 과거에 하던 그 예언을 하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무슨 예언을 하였나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도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초대교회가 세워집니다.

날마다 교회로 모여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주신 구원의 즐거움을 찬양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의만 자랑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마귀가 교회에 인본주의 신앙을 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게 갈라디안식 신앙입니다.

갈라디안식 신앙이란? <예수 믿기 + 율법 지킴 = 온전한 신앙> 이라는 등식의 신앙입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 말씀을 지켜서 온전해지고 의로워지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의에다가 인간의 의를 섞는 것입니다.

이를 혼합주의라고 하고 음행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종말의 교회를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고 취한 타락한 음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인본주의 사고로 세우지는 교회는 음행의 포도주로 취한 음녀들입니다.

 

이러한 때에 두 증인들이 외칩니다.

엘리야와 세례요한처럼 회개를 촉구하게 됩니다.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타락된 신앙에서 돌이키게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손에 낫을 들고 곡식을 추수하듯이 교회 안에서 참과 거짓을 갈라내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 모습은 구약에서부터 줄 곳 있어 왔던 것입니다.

 

아합 왕 시절에 거짓 선지자들이 바알과 아세라로 미혹하여서 백성들의 신앙을 여호와를 떠나도록 하였습니다.

이 때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사이에 머뭇거리지 말고 돌이키라고 외칩니다.

이게 구약의 끝인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하는 때까지 이르게 됩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낸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와서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 세례요한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와서 강력하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도 두 증인들이 엘리야의 능력과 심정으로 와서 강력하게 회개하라고 촉구하게 됩니다.

종말의 두 증인들이 엘리야의 능력과 심정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종말의 교회의 영적 상태가 구약의 아합 왕 시절의 때와 같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거짓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합 왕 시절에 백성들은 거짓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바알과 아세라는 하나님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쉽게 넘어간 것은 바알과 아세라가 이 땅에 복을 준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교회들이 예수 잘 믿으면 땅에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교인들이 복 주는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빼내려고 오셨는데 거짓 종들은 이 땅에 정착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두 증인들이 땅에 거하는 자들과 한판 싸움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사 라는 시간표로 이 시대 교회의 모습을 보면 바로 종말의 타락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마지막 시대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의 교회 모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이 어떤가요?

 

계 3:14-22절.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예수님이 진단한 모습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고 합니다.

이것은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도 아니고 불신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노아 시대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이 하나가 되어서 낳은 네피림의 모습인 것입니다.

네피림이란? 거인 족을 말하는데 이는 자기 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 모습이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스스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자기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의에 사로잡혀서 자긍하고 자족하고 자만하고 자랑하고 자위하고 자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인간의 힘으로 하늘에 닿자고 하던 바벨탑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무나 역겨웠으면 입에서 토하여 낸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사야 1장의 모습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꼴도 보기 싫다고 하면서 다시는 내게 제사하지 말라고 합니다.

성전 마당만 밟을 뿐이라고 합니다.

말라기는 이러한 것을 절기의 똥을 얼굴에 처바른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이 신앙이 똥과 같다는 뜻입니다.

 

똥이란? 양분이 없는 껍데기를 말합니다.

이걸 외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초림 때 구약교회를 보고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외식신앙으로 가득했습니다.

자기 의에 사로잡혀서 영광을 받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이들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자기 의로 치장한 자들을 독사 새끼라고 할까요?

이는 마귀적 신앙으로 치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인간의 의로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가리는 일을 합니다.

이를 인본주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인본주의 신앙이 왜 무서운가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헛것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의로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가리게 되면 인간들은 자기가 죄인인줄 모르게 됩니다.

자기가 죄인인줄 모르면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은 취미생활로 전락하게 됩니다.

결국 교회가 인간의 의를 인정하는 세상 종교 놀이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에 비친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바라본 외식으로 가득한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사 1:1-15절.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외식신앙을 신랄하게 책망을 합니다.

책망의 내용은 이스라엘은 한마디로 주인을 몰라보는 자로서 짐승만도 못하다고 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데가 없다고 합니다.

얼마나 타락을 하였으면 소돔과 고모라 백성이라고 하였겠어요.

 

이스라엘은 절기 때마다 열심히 모였습니다.

정성껏 제사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모임과 제사가 자기 의를 치장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모이면 모일수록 자기 자랑이 쌓이고 제물을 바치면 바칠수록 자기 의가 쌓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바라본 바리새인들의 신앙과 같은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신앙을 한마디로 하면 외식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신앙생활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이 백성은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외식이란? 사람의 눈을 의식하여서 드리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이유는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 영광을 받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열심과 충성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기 의로 충만해졌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지킴을 힘으로 삼았습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 때 나타날 종말의 교회를 상징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과 동일한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이사야를 통해서 강하게 책망을 하였고,

예수님 초림 때 바리새인들은 세례요한이 강하게 책망을 하였고,

예수님의 재림 때 귀신의 처소가 된 음녀 교회는 두 증인들이 강하게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이고 항상 시대 말에는 극심한 타락으로 나타났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바로 외식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스스로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면서 자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강력하게 주문을 합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흰 옷을 사서 입고 수치를 가리라고 합니다.

 

너희들이 나를 전부 문 밖으로 쫓아냈다고 합니다.

참 종들이 외치는 말씀을 듣고 돌이키라고 합니다.

내 음성을 들으라고 합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성령이 무슨 말을 할까요?

인간의 의를 버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붙잡으라고 합니다.

이를 회개라고 합니다.

 

회개하면 함께 먹고 마시게 된다고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게 된다고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어야 하나님 보좌에 앉게 됩니다.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이들을 데리고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와 세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나니까,

시대의 타락이 교회의 타락으로 몰고 온 것입니다.

교회의 타락상은 시대의 때를 알려주는 시간표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성도를 상징하는 해와 달과 별을 징조와 사시와 연한을 이루는 역사의 시간을 알리는 좌표로 두신 것입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오실 때가 가까운 때입니다.

모든 만물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들리는 것마다 상한 탄식의 소리뿐입니다.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일들이 지구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만물이 종말의 징후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종교도 썩었고,

인간도 섞었고,

사회도 썩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모든 것들이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습니다.

몸이 늙으면 죽음의 그림자들을 토해내듯이 이 세상도 그 끝이 다다랐음을 각양의 사건과 사고들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교회가 썩었기 때문에 사회가 썩는 것입니다.

지금은 영적으로 흑암이 깊은 때입니다.

흑암이 깊다는 것은 하나님이 오실 때가 가까이 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구약 교회가 가장 타락하였을 때입니다.

그래서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와 같은 교회가 가장 타락한 영적 흑암일 때입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 하늘에 별이 동방 박사들을 예수그리스도에게로 인도 하였듯이,

예수님의 재림 때도 하늘에 속한 종들이 하늘의 별이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시 오실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살전 5:5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롬 13:12절 “밤이 깊고 낮이 가까 왔으니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우리 모두가 별이 되어서 어두운 땅을 비추어야 합니다.

지금이 어떤 때인지 시대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영적 깊은 잠에 빠진 자들을 깨우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과 별이 해야 할 일들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흑암에 앉은 자들에게 참 빛을 비추어서 빛이 되게 하여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부터 하늘의 빛이 되어서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때를 알리는 시간표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오실 신랑을 소망하면서 세상을 이기게 하시고 세상 속에서도 빛의 아들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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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0.07.14 21:12

    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21.08.13 23:29

    설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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