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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과 독종 재앙(5/6)
출 9:1-12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2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두면
3 여호와의 손이 들에 있는 네 가축 곧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에게 더하리니 심한 돌림병이 있을 것이며
4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5 여호와께서 기한을 정하여 이르시되 여호와가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시더니
6 이튿날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가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한지라
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본즉 이스라엘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니라
8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화덕의 재 두 움큼을 가지고 모세가 바로의 목전에서 하늘을 향하여 날리라
9 그 재가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되어 애굽 온 땅의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서 악성 종기가 생기리라
10 그들이 화덕의 재를 가지고 바로 앞에 서서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날리니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 악성 종기가 생기고
11 요술사들도 악성 종기로 말미암아 모세 앞에 서지 못하니 악성 종기가 요술사들로부터 애굽 모든 사람에게 생겼음이라
12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출 9:1-12 / [다섯번째 재앙]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바로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여라. `히브리 사람이 섬기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내 백성을 내보내라. 그래서 그들이 나를 섬기게 하여라. 0네가 계속해서 고집을 부려 내 백성을 내보내지 않으면 3) 나 여호와가 저 들녘에 너희가 풀어 놓은 가축, 곧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 떼와 양 떼를 손수 내리치리라. 저 가축 위에 심한 전염병이 돌게 하리라. 4) 그러나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치는 가축 떼와 애굽 사람들이 치는 가축 떼를 구별하리라.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축은 하나라도 죽이지 않으리라.' 5)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내일 이 땅에서 반드시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하셨다. 6) 이튿날 여호와께서 정말 그렇게 말씀하신 대로 하셨다. 애굽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던 가축은 모조리 죽었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않았다. 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사정이 어떠한지 알아보게 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던 가축은 한 마리도 죽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이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마음을 더욱 굳게 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8) [여섯번째 재앙]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셨다. `화덕에 붙어 있는 검댕을 두 손에 가득 움켜쥐어라. 그리고 모세가 그 검댕을 바로가 보는 데에서 하늘을 향해 날려라. 9) 그 검댕이 먼지가 되어 애굽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들러붙어 독종이 생기게 하리라.' 10) 모세와 아론은 화덕에 붙어 있는 검댕을 두 손에 가득 쥐고 바로 앞에 섰다. 그리고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그 검댕을 날렸다. 그랬더니 그 검댕이 사람과 짐승에게 들러붙어 독종이 생겼다. 11) 마술사들도 몸에 독종이 생겨 모세 앞에 나오지 못하였다. 마술을 잘 부린다는 애굽 마술사들까지도 온 애굽 땅에 번진 독종에 걸렸던 것이다. 12)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굳게 만드셨으므로 바로는 여전히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였다.
애굽에 임한 다섯 번째 재앙은 가축에게 임했습니다. 그들에게 가축은 부를 모을 수 있는 재산 정도를 넘어 우상으로 숭배되기까지 했습니다. 여섯 번째 재앙은 사람과 짐승에게 생겨난 악성 종기입니다. 이 재앙 앞에 요술사도, 그들이 섬기는 신도 무능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시며 주관자이십니다.
다섯 번째 재앙 / 가축에 임한 심한 돌림병(1-7) 애굽 사람들은 가축의 형상, 특히 소의 형상으로 우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이 습관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에 이르렀을 때도 황금송아지 사건으로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가축은 숭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축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애굽 사람들이 신으로 섬기는 가축을 죽이겠다고 경고하시고 행하셨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의 가축들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상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확인시켜주셨습니다. 바로는 사람을 보내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축이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은 더욱 강퍅해 지기만 합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하여 오직 하나님만이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하나님외의 그 어떤 것을 의지하고 있다면 그것을 내려놓기를 원하십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는 믿음을 요청하십니다. 당신이 내려놓아야 할 그 무엇은 없습니까? 이를 위해 결단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여섯 번째 재앙 / 사람과 짐승에게 임한 악성 종기(8-12)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늘에 날리자 사람과 짐승에게 악성 종기가 생겼습니다. 요술사들은 이 일을 모방은커녕 자신들의 병도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화덕의 재는 그 자체로 심판을 의미합니다. 여섯 번째 재앙이 앞의 재앙들과 다른 것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이 재앙 앞에 애굽의 신들도 요술사도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합니다. 우상의 무능력이 철저하게 드러납니다. 사람의 생명과 죽음까지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이것을 인정해야만 애굽 사람들도 사는 길이 열립니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은 더욱 완악하여져 오히려 하나님의 대적자로 굳어져 갑니다. 당신은 오늘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습니까?
적 용: 하나님의 주인되심과 전능자이심을 고백하십니까? 삶과 죽음으로 대표되는 인생의 문제 앞에서 당신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맨발로 무대에 올라 타악기를 연주하며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었던 스코틀랜드 출신 이블린 글레니. 8살 때 청각장애를 일으키며, 12살에 완전히 청력을 상실하는 장애를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양쪽의 귀 대신 양 뺨과 머리, 가슴 등 온몸으로 소리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습니다. 피나는 연습과 20여 년의 노력 끝에 결국 그녀는 미세한 대기의 변화로도 음의 높낮이를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귀로 소리를 듣는다는 건 한순간이에요. 그 후에는 사라지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더 많은 것들을 몸으로 직접 느끼고 받아들여요." 인생에서 찾아오는 시련은 좌절을 주기도 하지만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도 줍니다.
< 설 교 >
악질과 독종 재앙
출 9:1-7 / 김영수 목사
오늘은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 내린 열 재앙 중 다섯 번째로 가축에게 내린 '악질재앙'과 여섯 번째 재앙인 '독종재앙'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악질(惡疾)재앙'은 지금 우리나라의 축산농가에 큰 재앙을 몰고 온 '구제역'과 같은 전염병으로서 구제역에 걸린 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맥없이 푹 쓰러져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더욱이 '구제역'은 빠른 속도로 전염되기 때문에 구제역 발생 지역을 통행하는 모든 차량에 대하여 지난 6개월 동안 방역을 실시해왔으며, 또 가축의 이동을 금지시키고 심지어 구제역이 발생한 인근 지역의 모든 소를 산 체로 생매장 시켜 죽여버려야 하는 저주의 열대성 가축 전염병입니다.
지금까지 애굽 땅에 임한 재앙(피, 개구리, 모기, 파리)들은 성격이 가축이나 사람을 일시적으로 괴롭히는 수준에 그쳤다면, 다섯 번째 재앙부터는 가축은 물론 사람의 목숨까지 위협하고 빼앗는 보다 심화된 재앙입니다. 이는 바로 왕의 마음이 굳어지면 굳어지는 만큼 더 큰 재앙을 통해 그 굳은 마음을 깨뜨리시려는 하나님의 채찍질입니다.
그런 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있는 '고센'땅에는 아무런 가축의 피해가 없었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애굽 사람들과 바로 왕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다섯 번째: 악질 재앙
Ⅰ. 악질 재앙의 특징
고집 센 나귀에겐 채찍이 약이듯, 강퍅한 바로 왕에게 재앙은 약이었습니다. 바로는 재앙이 격렬하게 임할 때 잠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듯 돌아서다가도, 재앙이 그치면 다시금 옛 본성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고 모세의 요구를 묵살하였습니다. 그러한 바로 에게 하나님은 다섯 번째 재앙으로 '악질(惡疾)재앙'을 택하였습니다.
특별히 '악질(惡疾) 재앙'은 ① 살아있는 생축(生畜)들을 주요 대상으로 삼아 그 심판이 이루어졌습니다.(3절) ② 이스라엘의 생축과 애굽의 생축을 구별하여 재앙이 내려졌습니다.(4절) ③ 재앙의 시간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습니다.(5절) 이렇게 역사 하심은 '악질(惡疾) 재앙'이 각종 짐승의 형태를 지닌 애굽의 우상들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임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 애굽 사람들은 각종 짐승들을 금과 은, 동등의 주물로 형상화(形象化)시켜 만들어 놓고 경배하였습니다. 그래서 수양의 머리 형상을 지닌 아문(Amun)신, 날아다니는 매의 형상을 가진 호루스 (Horus)신, 여우와 이리의 중간형인 재칼의 형상을 지닌 아누비스(Anubis), 악어의 머리 형상을 지닌 소보크(Sobok)신, 따오기 형상을 지닌 토트(Thoth)신, 그리고 힘과 생명을 주는 신으로 애굽인 들이 가장 숭배했던 황소 형상의 아피스(Apis)신 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섯 번째 재앙인 악질 재앙으로 애굽 사람들이 신(神)으로 떠받들던 소와 양을 비롯한 여러 생축(生畜)들이 비참하게 땅에 내버려지고 죽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여지컷 부와 행복을 가져다 주는 신(神)으로 믿고 숭배했던 짐승들이 맥없이 땅에 쓰러져 죽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애굽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여러분 우리는 지난 6개월 이상을 우리가 살고있는 평택과 안성지역을 중심으로 번창한 '구제역'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아픔과 어려움을 겪었습니까? 여름 무더위에 차장 문을 열고 도로를 주행하다가 그만 방역 차량 때문에 소독약이 차안에 또는 얼굴에까지 묻은 적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잠시 잠간의 고통이지만 구제역이 발생한 축산농가의 사람들은 그동안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워왔던 젖소와 한우들을 그대로 땅속에다 생매장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요? 실로 자식을 잃은 슬픔보다 더 큰 슬픔과 아픔을 겪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미래의 축산업에 대한 기대를 송두리째 빼앗아 갔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애굽사람들도 악질(惡疾)에 걸려 힘 한번 못써보고 왕궁은 물론 외양간과 길거리 등에 널려있는 황소 및 생축(生畜)의 시체들을 바라보며 많은 절망과 낙심을 하였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 같은 악질재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느리고 있는 소와 가축들에게는 전혀 일어나지 않고, 오로지 애굽의 생축(生畜)들에게만 한정되어져서 나타났다는 사실 앞에 저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존재(存在)와 능력(能力)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Ⅱ. 악질 재앙의 영적 교훈
1. 하나님은 참 신(神)이시다.
하나님은 바로를 악질(惡疾)재앙으로 징치(懲治)하시면서 당신을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로 알리셨습니다. 이는 첫째: 출애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거짓된 애굽 잡신들과는 구별되는 참 신(神)이심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히브리인의 해방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기필코 그들을 구원 해내실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셋째: 모세가 전한 것이 인간 개인의 간청이 아니라 절대 지존하시는 하나님의 엄중한 요구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민수기 23장 19절의 말씀에 있는 대로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 때문에 식언(食言)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기 때문에 후회(後悔)가 없으시며,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심이 없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걸고 행하신 일, 약속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고야 마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2. 하나님은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애굽의 모든 생축(生畜)이 죽어 넘어지는 순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느리고 있는 생축들 속에는 단 한 마리의 생축에게도 피해가 없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믿는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은 참 신(神)으로서 모든 생명체들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근본이시며 그 생명들의 주관하는 궁극적인 해답자가 되십니다.(롬 11:36)
3. 하나님은 말씀대로 행하시는 신실할 분이시다.
하나님은 '악질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5절에 기록된 대로 " 내일 이 땅에서 이일을 행하리라."하고 재앙의 발생 시각까지 구체적으로 예고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바로 왕은 눈앞의 이익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을 내어놓지 아니하므로 악질의 재앙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악질 재앙은 예정한 시간에 정확히 내려져 하나님은 조그만 오차도 없이 말씀하신 그대로 온전히 만물을 이루어 가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온 세상에 분명하게 보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요한복음 1장 12절에 약속하신 대로 우리 모두를 구원하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요1:12, 행4:12)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Ⅲ.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악질 재앙'을 살펴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혹시나 우리에게도 예수님 이외에 내가 믿고 섬기는 우상은 없습니까? 비록 애굽의 짐승 우상처럼 형상화 된 우상은 아닐지라도, 부적이나 어떤 물질을 걸어놓고 그 힘을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의 집에는 옛날에 방문 입구 위에 소 고삐 같은 것을 나무로 매달아 걸어놓았는데 혹시나 그런 것은 없습니까?
당시 애굽인들이 짐승의 우상을 만들어 놓고 이 우상들이 힘과 생명과 축복을 주는 줄 알고 믿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 역시 살아 역사 하시는 참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 다른 그 어떤 것을 더 믿고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날 그것은 보이는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의 형태가 아니라 우리의 삶에 큰 영향력과 힘을 지닌 돈, 명예, 권력, 가문, 지식 등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마치 영원한 행복과 생명을 주는 양 섬기고 매달릴 때, 그것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 좀 세련되어졌을 뿐, 모세 당시 애굽인 들이 짐승의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겼던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여러분! 우리들은 마지막 여호와의 심판의 날에 아무런 힘도 생명도 주지 못하고 맥없이 사라져갈 헛된 우상을 추구하지 말고 오직 우리의 방패요, 힘이 되시며, 도움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나의 중심에 모시고 오직 그분만을 영원토록 믿고 의뢰하며 사시는 참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섯 번째: 독종(毒腫) 재앙
이번에는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 내린 여섯 번째 재앙인 '독종 재앙'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합니다.
여섯 번째 주어진 '독종(毒腫) 재앙'은 다섯 번째 주어진 '악질(惡疾) 재앙'과 달리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애굽의 가축들과 사람들에게 내려졌습니다. 얼마나 바로가 완악했으면 비슷한 재앙을 연이어서 그것도 예고도 없이 애굽인 들에게 주어졌을까요? 이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독종'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쉐힌'( )은 '불탄다.' '뜨겁다.' '끓는다.'라는 의미의 동사 '솨한'( )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어원의 의미에서 충분히 상상할 수 있듯이 이 독종 재앙은 극심한 가려움 증세와 함께 피부가 불에 탄 듯 붉게 부풀어 오르면서 주위로 재빨리 퍼져 나가는 무서운 종기의 일종(신28:27)입니다. 이 피부병은 긁으면 물집이 생기고 급기야는 화농(化膿)해서 고름이 흐르는 무서운 피부병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욥이 걸린 피부병이 이와 같은 피부병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욥2:7-8) 따라서 이 독종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있어 공포의 대상이요 저주의 화신이었습니다.
Ⅰ. 독종 재앙의 특징
그런데 바로 이 무서운 독종 재앙이 애굽의 짐승들과 사람에게 임했습니다.(9절) 곧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풀무(용광로)의 재 두 웅쿰을 집어 바로의 목전에서 하늘을 향하여 날리라."(8절)고 명하였습니다. 이에 모세가 그처럼 행하자 그 재가 땅의 티끌이 되어 애굽 온 땅의 짐승과 사람에게 달라붙어 독종을 발했습니다.(10절)
그런데 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술객들도 독종으로 인하여 모세 앞에 서지 못하니 독종이 술객들로부터 애굽 모든 사람에게 발하였음이라."
술객들이 누굽니까? 애굽의 지혜와 능력을 대표하는 자들로서 애굽의 바로 왕 앞에서 지팡이를 던져 뱀으로 만들고 또 하수를 쳐서 피로 붉게 물들인 능력을 행하던 자들이 아닙니까? 거기다가 애굽의 우상 앞에 가장 가까이 서서 각종 제사를 집전하던 제사장 그룹이었습니다. 이들은 청결한 몸으로 엄숙하게 제사를 집전하기 위해 매일 목욕을 하고, 매 3일마다 머리를 깎고, 몸의 털을 밀어서 깨끗함과 정결함을 유지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몸에 독종이 발하여 모세 앞에는 물론 바로 왕 앞에도 나서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독종 재앙은 예고 없는 재앙으로서, 하찮은 한 줌의 재를 가지고도 하나님의 원수들에 대한 보복을 대신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여준 것입니다.
Ⅱ. 독종 재앙의 영적 교훈
1. 술객들의 몸에 독종이 발함을 통해 우상숭배자들의
무능함과 인명경시(人命輕視) 풍조를 징벌하기 위함이다.
애굽의 술객들의 임무 중에 으뜸은 우상 앞에 가장 가까이 서서 각종 제사들을 집전하는 제사장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집행하는 제사 법에 높은 하늘의 신이라고 불리는 타이폰(Typhon)신(神)에게 제사할 때에 제단 위에 소나 양이 아닌 사람을 제물로 올려놓고는 산채로 불태운 다음, 그 불탄 재(滓)를 공중에 뿌렸습니다. 그 이유는 그 재(滓)가 날려진 곳에는 모든 화가 달아나고 복이 임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사를 빙자한 끔찍한 살인행위가 공공연하게 애굽 땅에 자행(自行)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제사를 집전하는 술객들의 몸에 풀무의 재(滓)로써 독종(毒腫)을 유발시켜 고통과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시므로 이러한 애굽 제사의 허무맹랑함을 조롱하고 인명경시(人命輕視) 풍조를 징벌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풀무의 재(滓)가 화(禍)를 쫓아내고 복(福)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오히려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생축(生畜)의 하나로 연장시켜 생각하려는 술객들에게 단죄를 가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소위 신(神)들의 신탁(神託)을 받았다고 자부하던 애굽의 술객들이 위기에 처한 국가를 건져내는 것은 뒤로하고 자신의 몸도 재앙으로 구하지 못한 채 독종에 걸려 자신의 몸을 빡빡 긁고 있는 그 상황을.... <저도 군대 들어가서 옴이라는 피부병에 걸려봐서.... 잘 알지만 너무 가렵고 따갑고 아파서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틀이 멀다하고 의무실에 들러 페니실린 주사를 맞아야만 했습니다. >...... 잠시도 긁지 않고는 못 베기는 악성 종기이다 보니 감히 바로 왕에서 나아가지도 못하였습니다. 만일 바로 왕 앞에서 몸이 가렵다고 긁었다가는 큰 화(禍)나 징벌(懲罰)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모습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까?
저희 교회 주변에는 무당과 점치는 집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무속인 들의 집이 하나같이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무당과 점쟁이들을 향해 외치고 싶은 한 마디는 "여보쇼! 당신이 그렇게나 점괘를 잘 맞추고 신통하다면 당신의 앞날이나 정확히 알아맞추어서 잘살지! 이게 뭐요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이렇게 사는 꼴이 뭐요.... 쯧쯧쯧 .... 예이 여보쇼 ! 거짓 나부랭이 짓 하지 말고 정신 차리시오!" 하고 충고해주고 싶습니다. 더욱이 그런 누추한 집을 찾아가 팔자 고쳐보겠다고 점치는 사람들을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하루속히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살아 움직이는 세상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점쟁이들과 같은 거짓신자와 우상숭배자들이 판을 치지 못하고 선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인정받고 대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 미미한 것이지만 엄청난 파괴력과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커다란 재난이라 할지라도 그 시작은 아주 미미한 것에서부터 생겨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금 김해지역은 몇 일간 내린 집중성 호우로 인하여 강물이 넘쳐 온 마을이 물 속에 잠긴 채 아직도 고립되어 있다고 합니다. 비가 그친 이후 복구작업을 시작하면서 홍수의 피해가 점차 인재였음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안전불감증과 공무원들의 방만한 업무행정이 이 같은 엄청난 재해를 초래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간'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아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탐심에 눈이 어두워 '외투 한 벌과 은 이 백 세겔과 오십 세겔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장막 속에 숨겼습니다." 이 같은 아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아이성의 전쟁에서 대패하고 많은 생명을 잃었습니다.,(수7:21)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작은 죄에 대하여 우리가 민감하지 않으면 어느새 작은 죄가 큰 올무가 되어 우리 영혼과 몸과 삶을 망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속담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자그마한 오해와 실수로 말미암아 교회 공동체가 파괴되는 경우도 생길 수가 있습니다. 지난번 우리교회에서 있었던 노명선 전도사 사건도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 극렬한 예입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죄와의 타협이 나를 세상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아래와 축복아래서 내몰수 있음을 깨닫고 날마다 몸과 마음을 주안에서 정결케 하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Ⅲ. 결론
악질 재앙이 주로 가축(소)들에게 임한 반면 독종 재앙은 술객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11절) 이를 통하여 아무리 세상 적으로 지혜롭고 능력이 많은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과 지혜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입니다.(고전1:25)
안타까운 사실은 문명과 과학이 발전함 속에서 일어나는 구제역과 같은 전염병 그리고 AISE 에이즈 (후천성 면역결핍증)와 같은 죽음의 병, 그리고 지구 온난화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대홍수 등을 통해 인간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깨닫고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들이 수재민 돕기를 위한 구호사업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 지도자들이 더욱 깨어 바른 믿음을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무 기복적, 숫자적으로만 흐르고 있는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움이 많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7-8)
일곱째 재앙 – 우박
출 9:13-35 / 임덕순 목사
하나님께서 애굽왕과 그 백성들에게 당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확실히 인식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거기서 고생하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일곱 번째로 내리신 재앙을 상고하려고 합니다.
일곱 번째 재앙을 통해서는 세 가지를 교훈하십니다. 하나님의 전능성과 하나님의 성실성과 하나님의 자비를 애굽과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전능성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애굽은 열대인 아프리카에 속한 지역입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얼음덩어리인 우박이 떨어졌다는 사실은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요즘에는 그런 일이 가끔씩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기록된 우박 재앙은 단지 우박만 내린 것이 아니라 우박과 함께 불이 섞여 내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3). 이것은 우연한 기상이변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행하신 특별한 사건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섬겨왔던 신들처럼 무기력한 신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다 하시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애굽 왕에게 알리려고 이 재앙을 내리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 시대에 먹고 마시고 죄짓는 데에만 몰두하는 당시의 사람들을 물로 심판하시어 당시의 모든 사람을 멸절하신 분입니다.(창6-9:) 그 하나님께서 애굽이라는 나라를 지상에서 없애버리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재앙을 내리시는 것은 그들을 아주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당신이 누구신가를 알리기 위해서 이 기적들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과 모든 권세는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능력이나 권세를 받았으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서 선을 행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능력과 권세의 근원이십니다.
이사야 43:13에 보면 “과연 태초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라고 하셨습니다.
전도서 7:13-14에 보면,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며, 모든 주권과 능력의 근원이십니다.
왕이나 대통령이나 권세를 맡은 사람은 자기에게 주권을 맡기신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그분의 뜻과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뜻을 받드는데 충성해야 합니다. 그분의 능력을 무시하고 거부할 때는 제 아무리 강한자라 할지라도 그를 꺾어 버리십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도 그것을 알고 일해야 나라도 살고 자기도 삽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권세를 잡은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바로의 죄악을 꼬집어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네가 여전히 내 백성 앞에서 자고하고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자고" 란, 올라선다, 일어난다. 교만, 자만 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전능하신 주권자 하나님 앞에서 제가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교만하고, 자기가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이 ‘자고’ 입니다. 성경이나 역사를 보면 이런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고’하는 바로를 혼내 주시로 결정하시고 일곱째 재앙을 내리십니다.
18절에 “내일 이맘때면 내가 중한 우박을 내리리니, 개국 이래로 이 같은 것이 있지 않았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불순종하는 애굽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 하나님은 그 땅에 재앙을 쏟아 부으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당할 나라도 아직 없습니다. 아무리 강한 나라도 미국과 맞서지는 못합니다. 그들이 가진 무기가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만약 미사일을 발사하고 스텔스기를 발진시켜 폭탄을 퍼붓는다면 견딜 나라가 아직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을 당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늘에서 우박과 불을 내리게 하실 수 있고, 땅을 좌우로 아래위로 흔들어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분입니다. 바닷물이 밀려와 땅을 덮어버리는 것을 해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죄악이 관영한 사회를 심판하려 하신다면, 바닷물을 잠깐 풀어놓으시면 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사람은 그분의 전능하심을 확실히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대항하여 싸우려 했다가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땅에서 살아남을 수조차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이사실은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우박에 대한 말씀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출9:23, 수10:11, 시18:13, 사28:2, 겔3:11, 계8:7 등입니다. 우박은 농작물을 파괴하고, 생명체를 죽이고, 우뢰와 폭풍을 동반하며, 모든 동식물과 사람들에게 공포를 줍니다. 우리나라에도 가끔 계란만한 우박이 떨어지는 예가 있어서, 농작물을 파괴하고, 양계장의 닭도 죽은 일들이 있는데, 본문에서 말하는, 당시에 애굽 땅에 내린 재앙의 우박은 사람도 죽이는 전무후무한 것이었습니다.
18-19절을 읽어봅니다. “내일 이맘때면 내가 중한 우박을 내리리니 애굽 개국 이래로 그 같은 것이 있지 않던 것이리라. 이제 보내어 네 생축과 네 들에 있는 것을 다 모으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릇 들에 있어서 집에 돌아오지 않은 자에게는 우박이 그 위에 내리리니 그것들이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미리 친절히 경고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너무나 무서운 것이어서 당한 뒤에는 회개고 반성이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리 경고해 주십니다.
그런데 20-21절에 보면 하나님의 경고에 대한 반응은 두 갈래였습니다. “바로의 신하 중에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종들과 생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였으나,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자는 그 종들과 생축을 들에 그대로 두었더라.”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두 가지의 태도로 반응합니다. 첫째는, 모세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두려워함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말씀이 참말 같으니 대비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력도 있고, 하나님은 한다 하시면 그대로 하시는 분이니, 알아서 순종하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무섭지 않으냐,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짐승과 곡식들을 모아서 거두어 들였습니다. 그들은 진노를 받을 대상이긴 했지만, 경고를 받아들였으므로 피해를 당하지 않을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도 아무리 악한 죄인도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신하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마음에 담아 두지도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하나님이라는 신이 정말 계실까? 저 모세가 괜히 꾸며낸 것이 아닐까? 여호와가 있다고 해도 자비의 신이라는 하나님이 심판을 과연 내리실까? 나는 못 믿어,’ 라고 생각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경고를 마음에 담아 두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곡식을 거두지 않았고, 동물들을 들에 놔두었습니다. 아마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롯의 사위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오늘도 성경의 말씀을 사람이 지어낸 종교서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고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사람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전도할 때에도 사람들의 태도는 두 가지입니다.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믿지 않고 비웃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성품이나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판단력의 차이 때문도 아닙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성령님을 보내어서 마음을 감동시켜 주셨느냐, 그 마음을 움직여 믿고 순종하게 하셨느냐 아니면 내버려 두셨느냐의 차이입니다. 성령이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지 않으면 사람이 스스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22-26에 보면, 애굽에 우박이 내리게 하였고 뇌성과 불이 내려 땅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23절에 보면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뇌성과 우박을 보내시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시니라.”라고 쓰여 있습니다.
우박은 하늘에서 얼음덩이가 내리는 것인데, 그 덩어리의 크기에 따라서 짐승과 사람의 치사율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그냥 우박이 아니라 불이 함께 내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불덩어리란 벼락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주먹만 한 우박과 함께 천둥벼락이 떨어져서 짐승들이 우박에 맞아 죽고, 벼락이 떨어진 곳에 불이 붙어서 사방으로 번져갑니다. 정말 정신 차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여기저기에 벼락이 떨어지고, 벼락이 떨어진 곳에는 불이 나서 옮겨 붙습니다. 그런데 그 불이 번지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불이 땅에 달려가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23-24절의 묘사를 보면 “여호와께서 우박을 애굽 땅에 내리시매, 우박의 내림과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림이 심히 맹렬하니, 애굽 전국에 그 개국 이래로 그 같은 것이 없던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짐승과 사람만 죽는 것이 아니라, 곡식과 채소와 나무까지 완전히 쑥대밭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재앙이었습니다.
모세가 내일 이맘때에 중한 우박을 내린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을 때 듣지 않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짐승들은 다 들에서 우박에 맞아서 죽었고, 곡식들은 다 망가졌고, 그들의 집은 벼락에 맞아 불타버리고 완전하게 망하였을 것입니다. 얼마나 후회했을까요? 그 후회가 가치가 있을까요? 때늦은 후회는 어리석은 자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말씀은 현실입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따라야 합니다.
2. 둘째는, 자기 백성을 철저하게 보호하시며,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보여줍니다.
우박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백성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돌보시는 분이며, 그들에게 말씀하신 약속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시는 분인가, 얼마나 진실하시고 믿을 만 하신 분인가를 알리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알리기 위해서 이 재앙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난리가 애굽 온 땅을 다 휩쓸고 있는데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주하는 고센 지방에는 전혀 피해가 없었습니다.
25-26절을 보면, “우박이 애굽 온 땅에서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무릇 밭에 있는 것을 쳤으며 우박이 또 밭의 모든 채소를 치고 들의 모든 나무를 꺾었으되 이스라엘 자손의 거한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신기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런 신기한 보호와 인도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보호와 인도가 영원히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사 43:1-3에 보면,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네 구원자임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자동차 사고가 나서 같은 차에 탔던 사람이 거의 다 죽었는데, 유독 한사람은 다친 데 한군데도 없이 살아나오는 경우를 여러분은 보셨지요?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보내어 그들의 죄를 완전히 사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것이 구약 성경 전체에 흐르는 약속입니다. 둘째는,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 마음속에 당신의 영인 성령을 보내어, 성령이 평생토록 그와 함께 하시면서 가르치고 인도하고 보호하고 돕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을 철저하게, 영원히 책임지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한 이사야는, 그분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는 말입니다. 초월자이신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해 주신다는 이 말처럼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이 또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 즉 초월자이시지만, 믿는 사람의 곁에 항상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마 28:20에 보면 주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이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주님은 이 약속을 철저히 이행하시는 분입니다.
롬8:28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고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우리와 항상 동행하시기 때문에, 믿는 사람의 삶에서는 언제나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날마다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믿습니까? 우리가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주목하고 느끼면 느낄수록, 내 삶에서 주님의 간섭과 인도는 늘어나고 감사와 찬양은 깊어집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고 나와는 별로 가깝지 않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인도와 간섭은 희귀해지고 감사와 찬양은 메마르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의 임마누엘 되심을 체험하며,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을까요?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주목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주목하지 않고 느끼려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지도 못하고 인도를 받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체험하며 사는 성도가 됩시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고, 그분이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하기 위하여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우리를 당당하고 행복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을 인식하고 체험하는 신자만 살아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자비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보여줍니다.
이번 일에 충격을 받은 바로는 즉시 모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번은 내가 범죄 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내 백성은 악하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진심이 아니라 급하니까 우선 재난을 피해보자는 생각으로 해 본 말이었습니다.
“이번은 내가 범죄 하였노라.” 라는 말은, 지금까지의 죄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이번만 범죄 했다고 말함으로서 내가 별로 잘못한 일이 없었다는 뜻을 숨기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내 백성은 악하도다.” 라고 한 것도, 회개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시인한 것뿐입니다. 악한 사람이 자기의 죄를 시인했다고 해서 새 사람으로 변화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자기의 죄를 자백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변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는 변화된 것이 없이 잠시 재난을 피해보려는 수단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는 모세에게, "여호와께 구하여 이 뇌성과 우박을 그만 그치게 하라.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다시는 머물지 아니하리라"(28) 고 했습니다. 이번 재앙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알 만큼 알았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더 이상 잡아두는 것도 유익하지 않다고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습니다. 변화된 모습 없이 깨닫기만 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린 재앙을 즉시 거둬 주셨습니다. 사람이 겉으로만 회개해도 하나님은 다시 한번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29에, 모세가 바로에게, “내가 성을 나가자 곧 내 손을 여호와께 펴리니, 그리하면 뇌성이 그치고 우박이 다시 있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같았으면, 우박을 계속 내려서 애굽의 모든 곡식들을 다 없애버리고, 모든 짐승들을 다 죽게 해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해버릴 것 같고, 그렇지 않더라도 한 이틀 더 재앙을 내린 다음에 천천히 재앙을 거두셨으면 좋을 텐데 바로가 잘못했다고 하자마자 즉시로 재앙을 거두어 주셨습니다. 모세가 제 마음대로 했겠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자비하신 분이십니다. 출34:6에서 율법을 주실 때,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라고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시 103:8에 보면 하나님을 경험한 성도도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과연 자비하시며 쉽게 용서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께 재앙이나 받는 사람은 정말 바보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더 있습니다. 31-32에 보면, 그 당시가 어떤 계절이었나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그러나 밀과 나맥은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 하였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리는 이삭이 나왔기 때문에 우박으로 다 못쓰게 되었지만, 밀과 나맥은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 없었다는 말씀인데,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그들의 식량을 치시는 이번 경우에도 먹을 것을 다 없애신 것이 아니라, 생명을 이어 갈 최소한의 양식은 남겨 주셨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아주 치려고 작정하셨다면, 아직 자라지 아니한 밀과 나맥을 치실방법이 없었겠습니까? 하나님이 정말로 애굽 사람의 씨를 말리려고 하셨다면, 열 번씩이나 재앙을 끌고 가실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단 한번으로도 나라를 없애버릴 수가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들을 없애시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복종하여 복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방민족들도 하나님께 돌아와서 구원을 받게 하는데 있음을 성경은 수없이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은혜로운 분이시고, 자비하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애굽의 왕과 백성들로 대표되는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 여전히 등지고 있습니다. 34-35에 보면, 이번은 내가 잘못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나는 악했다고 고백 했던 그 바로가 또다시 반역을 시작합니다. 자비와 인내와 긍휼의 하나님을 조롱하고 농락하는 것입니다.
"다시 범죄 하여 마음을 완강케 하니", "바로의 마음이 강팍하여" 라는 표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정말 구제불능의 죄인이요 하나님의 진노를 면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거듭 거듭 거역하는 불경스럽고 악한 사람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정당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일곱째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과, 하나님께 속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은혜와, 하나님의 한없는 자비를 보았습니다. 한없는 능력과 자비를 가지고, 우리를 철저하게 보호하고 도우시는 하나님과 날마다 동행하며 하나님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