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두! 그의 전직은 건설업자다. 대학생 시절부터 집장사를 해 돈도 많이 벌었다. 하지만 사업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공예품 수집하는데서 욕구불만을 풀었다. 돈을 벌면서 유물수집에 나섰고 벌써 25년이 됐다.
권 관장은 최근 강동에 있던 사옥을 200억원에 팔고 이 돈을 몽땅 박물관에 쏟아 부었다. 그는 돈만 생기면 아파트 두 채에 해당하는 돈을 들고 인사동을 돌아다녔다. 건설업을 하면서도 정신은 문화재에 둔 셈이다.
- 언제부터 건설업을 하셨고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아버님이 건설업을 하셔서 일찍부터 건설에 눈에 떠 대학시절에 집을 지어 팔았고 민속학과 공예품을 전공했습니다. 계기는 아마 팔자 소관이랄까요? 충북 음성에서 서울로 유학을 와 옛것에 대한 애틋한 정이 살아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가 이렇게 문화에 심취한 데는 전통에 대한 피가 흐르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학창시절 학교에서 상표나 우표 모으기 과제를 내줘 모으기 시작한 우표가 수천장이나 된다. 시골에서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 혼수품을 박물관에 전시했다. 양촌 권근의 18대 후손인 그는 양촌의 효행록과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 등 조선 선비들의 명필 서간들도 전시한다.
박물관은 맹사성 집터이다. 문화박물관 자리를 보러 다니던 중 우연히 이 집을 보았고 둘러보니 서울의 사방이 다 보였다. 부동산업계에서 달라는 대로 40억 원을 다 주고 3년 동안 리모델링했다. 그는 자기 기술을 이용해 모든 것을 직접 했다. 자료수집 30년, 민속품 수집 40년 동안의 열정이 모두 이 박물관에 녹아들었다.
===박물관에서 우연히 권영두 관장을 만나서 몇 마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입구의 이 그림도 우리 정신을 살려서 만든 권영두 관장의 작품입니다. 우리 옛 기와을 모아서 잘라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 북촌 동양문화박물관 입구에 있는 조각품.
# 북촌 동양문화박물관 담벽도 권영두 관장이 창안품입니다.
옛 우리 기와을 수집하여 잘라서 만드신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풍산과 몇 분 동안 대화를 하였습니다.......
‘30년 수집벽’이 모은 유·불교 유물 1만여점
개인 박물관엔 ‘외골수 수집’으로 평생을 보낸 한 사람의 인생이 전시돼 있다. 그곳의 전시품들은 우리 역사와 문화이기도 하다. 전국에 있는 개인 박물관을 찾아 수집가의 인생과 우리 역사·문화를 돌아본다.
조선 태종 때. 대사헌 고불 맹사성(1360~1438)은 역모 사건을 조사하며 부마(왕의 사위)를 잡아들인다. 태종은 허락 없이 사위를 국문한 맹사성에게 참형을 내린다. 성석린·권근·하륜 등 최측근 신하들이 구명운동에 나선다. 결국 맹사성은 곤장을 맞고 목숨을 유지해 유배를 간다. 유배에서 돌아온 맹사성은 세종 때 정승 자리에 올라 황희 정승과 함께 청백리, 명재상이 된다. 구명운동을 한 양촌 권근(1352~1409)은 맹사성의 스승이다.
600년쯤 뒤 2006년, 권근의 18대손이 박물관을 지을 터를 물색하러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을 찾았다. 마침 매물로 나온 300평 남짓한 터. 임금인 세종도 밤마다 올려다보고 그 집의 불이 꺼져야 비로소 침전에 들었다는 스승 맹사성의 집터였다. 권영두 관장(51·사진)은 18대를 이어온 연(緣)에 달라는 대로 다 주고 ‘맹사성 집터’를 사들였다. 권 관장은 2년여 동안 터를 고르고 기왓장 쌓아 지난해 북촌동양문화박물관을 열었다.
권 관장은 수집가가 될 팔자를 타고났다. 충북 음성의 고향집엔 그의 수집벽을 충족시킬 물건이 지천이었다. 어머니 손때가 묻은 혼수품과 수예품, 놋쇠 밥그릇과 옻상, 독과 항아리, 짚신과 떡살, 외양간 소가 맸던 워낭 등 세간살이 모두가 수집 대상이 됐다. 그런 그가 기특하다며 집안 어른들도 집안의 옛 물건들을 모아줬다. 권 관장이 30여년 모은 3000여점의 민속품 가운데 절반이 그렇게 모은 것이다.
선친의 권유로 대학생 시절 손을 댄 건설업에서 제법 돈을 모았다. 술·담배도 화투도 골프도 모르는 그는 그 돈을 들고 ‘땡 퇴근’해 인사동과 장안평 등 고미술품 시장을 돌아다녔다. 수집벽이 절정이던 때 그의 별명이 ‘아파트 두 채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유물 구입에 하루 5억원을 쓰기도 했다. 명성황후의 친필 서간, 조선시대 철화백자, 중국 청나라 때의 전황석 인장, 간다라 불두 등을 모았다. 그가 수집한 유물들은 불교와 유교, 민속 관련 유물이다. 동양문화의 원형질인 유·불·선교의 유물을 모으고 싶었지만 선교 유물이 없어 대신 민속 유물을 모았다. 집과 회사 창고에 가재도구나 건설자재 대신 들어찬 소장품은 1만여점.
권 관장이 건설업을 접고 박물관을 세운 이유는 단순하다. 건설업은 잘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지만 제대로 된 사립박물관은 몇 없었기 때문이다. 권 관장은 박물관을 종합 문화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문화 체험교실을 열었다. 박물관 앞 5층 건물에 문화체험관과 사랑방을 만드는 공사도 진행 중이다. 박물관 앞마당도 서당 겸 한옥공연장으로 만들 예정이다.
# 권 관장의 박물관 벽 작품과 고불 맹사성 좌의정 댁 안내문..
첫댓글 저도 한번 가보아야하겠습니다. 정확히 북촌이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아! 삼청동에 있군요. 그러면 광화문에서 멀지 않군요.
지난 토요일에는 성곡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집사람과 오랜만에 나왔는데 서울 도심 한가운데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숲이 우거지고 매미, 새소리가 들렸습니다. 세종문화회관 뒷동네 인데 그곳에서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결코 넓지는 않았지먼 조용히 산책하고 감상하기에 좋았습니다. 바로 옆에 축구회관도 있어서 앞집 가정식 백반집에서 점심도 먹었습니다. 그 집 주인 이야기가 자기 집에는 축구회관 회장님도 식사를 하고 박지성도 식사를 했답니다. 그런데 박지성은 요즘에는 안온답니다. 보디가드가 겹겹이 싸고 다녀 그곳에는 안온지 오래 되었답니다. 이제는 귀한 몸이라...
서울 광화문 국립민속박물관 정문에서 큰 길을 건너서 골목길로 들어서면 북촌 동양문화박물관 이정표가 있는데 잘 찾아가야 합니다...산 위에 있는데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ㅎ...ㅎ...ㅎ............풍산
감사합니다. 늙어서 좋은 것이 미술관 다니기랍니다. 골프는 좋지 않답니다. 돈 많이 들어가고, 또 내기 골프를 많이 한답니다. 어부인과 같이 여기 저기 다니는 것도 좋은 방밥이라고 누가 소개합디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