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전례에서 평화의 인사는 서로 화해하거나 죄를 용서하는 예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신분을 드러내는 신분증인 동시에 기도한 내용에 동의함을 의미하는 인장이며, 한 분이신 주님의 몸을 함께 나누어 먹음으로써 교황과 주교를 중심으로 온 교회가 일치하고, 산 이와 죽은 이가 일치하며, 지상 전례 공동체와 천상 전례 공동체가 일치함을 드러내는 장엄한 인사입니다.(구원의 성사 71항)
따라서 이 인사를 떠들썩하고 번잡하게 해서는 안 되며, 각자는 가까이 있는 이들과 차분하고 장중하게 평화를 표시합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82항) 이때 사제는 봉사자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성체가 있는 제단에 머물러야 하는데,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가까이 있는 교우 몇 사람과도 인사를 나눌 수 있습니다.(총지침 154항; 구원의 성사 72항)
그리스도인의 삶이 지상공동체에서 천상공동체로 이어짐을 드러내는 장례미사야말로 평화의 인사가 더욱 빛을 발하는 순간이므로, 장례미사라는 이유로 이 인사를 생략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평화의 인사는 ‘성체를 통한 구원의 일치’라는 미사의 의미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미사에서 함부로 생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평화의 인사를 일상적인 인사와 혼동하여 미사의 의미가 흐려질 우려가 있다면 오히려 이때 주례사제는 현명하게 판단하여 평화의 인사를 생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장례미사에 신자보다 비신자가 더 많이 참석했을 때는 이 인사를 생략할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장례미사에서 애도를 표한다거나 세례, 견진, 성탄, 부활 미사 등에서 축하를 전하는 의미로 평화의 인사를 하지 않도록 적절한 교리교육을 통해 교우들을 양성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