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근불가원과 패거리 문화
김 난 석
광복 직후의 이야기이다.
韓電 직원이 전기요금을 받으러 어느 가정을 방문했을 때
집주인이 돈을 쥐고 주는 듯 뺏고, 주는 듯 뺏고를 거듭했다 한다.
한전 직원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당신들도 전기를 줬다 끊었다 하지 않았느냐?” 고 대꾸했다 한다.
물론 전기가 부족했던 시절의 서글픈 우스갯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이 우스갯소리에 發電의 원리가 숨어있다.
영국의 물리학자 패러데이에 의해 소개된 전자기 유도방식인데
유도 코일에 자석을 댔다 뗐다 하면 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혹자는 불가근불가원을 말한다.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리도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 사달은 일어나지 않는데
이게 일리 있는 이야기지만 생동감이 사라지는 문제가 있다.
물질의 구성요소는 원자다.
원자는 양성자와 전자, 중성자로 이루어져 평형을 이룬다.
만약 어느 조작에 의해 전자 하나가 떨어져 나가거나 더 붙으면
다시 평형을 이루기 위해 하나는 어디론가 달려간다 한다.
그 달려가는 현상을 두고 전기라 하는데
부족해서 달려가는 걸 음전기라 하고
남아서 달려가는 걸 양전기라 해도 크게 어긋나진 않을게다.
만약 옆구리가 시리다면?
그건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신호일 테다.
손에 쥔 것을 들고 누군가를 찾는다면?
그건 넘친다는 신호가 아닐까?
자극에 의해 전기를 일으키는 걸 꾐 전류라 하는데
자극이 없는 상태는 죽음에 다름 아닐 게다.
지구도 그 내부는 단단한 내핵 주위를 유체인 외핵이 쌓고 돌기에
자장이 생기고
자장이 생기기에 지상의 온갖 생명들이 춤추게 된다.
미동도 없는 암흑세계를 생각해보라.
상상하기조차 답답하다.
봄비 추적거리는 날, 무언가 자극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오늘은 괜히 배만 쓸다가 하루가 다 지나간 것 같다.
이렇게 푸념하는 건 불가근불가원을 깨자는 아포리즘이 숨어있다.
불가근불가원의 그 한가운데에 가만히 안주하자는 게 아니라
불가근 불가원의 그 경계에서 춤추자는 것이다.
인간관계 중에서 고질병 중 하나는 또 패거리 문화다.
내 스타일이 네게 용납되지 않듯
네 스타일도 내게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통섭, 융합해 발전해나가야 할 사회가
소규모로 블록화 되어 침체되고 만다.
말 한마디를 트집 잡아 내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제 집 대문을 걸어 잠그는 게 능사인가?
한 번뿐인 인생, 남의 집 구경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때론 예배당의 높은 종루에 올라 종의 끈도 당겨봐야 한다.
그래야 이웃을 깨운다.
때론 해저 2만리도 헤집으며 괴물이라도 찾아보아야 한다.
그래야 노틸러스 호를 만난다.
그러려면 불가근불가원이나 패거리 문화로는 안 된다.
차별없는 역동성 속에 삶의 발전이 있는 것이다.
첫댓글 해질녁의 석촌호수 같은데요
친한 동창친구가 잘쓰는 불가근 불가원 은 어딘가 삭막한 느낌도 들지만
금을 딱 그어놓고 이상도 이하도 허용 안하다는 말 같애서 때에따라 공감도 되지만 어쩐지
맞아요 석촌호수
저 두 보트를 보고 글이 떠올랐는데요
너무 가까우면 충돌하고
너무 멀리 떨어지면 동행이랄 것도 없겠지요.
그러하매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데에 묘미가 있을수도 있겠지요.
결국 삶은 자기가 일구어나가는 거라고 할수있지요.
제가 다가갈 때 문 꼭 걸어닫지 마세요.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늘 건강 하시고 즐거운 나날되십시요
네에 고맙습니다.
오래간만에 전기이론을 맛보는것 같아
기분이 엄청좋아지네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응원합니다.
네에 고맙습니다.
근원
장단
대소
음양
천지
남녀
노소
생사등등
열거하고보니
아윈스탼의 상대성이 떠오릅니다
봄 날 ㅡ꽃과 나비도 ㅡ같은 이치 아닐까요?
맞아요
모든게 그렇습니다.
난석님~
제가 불가근 불가원 을 지키며 살고 있답니다
그게 무난하긴 하지요.
너무 가까이 너무 멀리도
하지말자
보통 중간만 가는 게 좋다
늘 내 시골 친구가 하는 말
너무 가까이 하다보면 사단이 난다고
난 끈고 맺고를 못한다고
구박 많이 받았지요.ㅎ
그게 사람이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