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과장하자면 조선시대 못된 세도가 집안에서 벌어질 법한 인권 유린이 21세기 태국의 보석 재벌 가문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치졸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형제의 유산 다툼에 가문은 풍비박산 나고 하인들은 주인 자리를 차지한다.
재벌 회장의 석연찮은 죽음의 비밀이 드러나고, 하인들을 개 다루듯 했던 가문은 철저히 응징 받고, 나아가 하인들이 저택의 주인이 되는 계급 전복의 메시지까지 등장하는데 참 통쾌하겠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미스터리는 느슨하고, 액션은 허술하며, 드라마는 엉성하다. 해서 남는 것은 막장 밖에 없다.
욕하면서 기어이 본다는 국내 아침 드라마를 상당히 닮았다. 나도 개인적으로 정신 없이 보기는 했다. 참 드라마 유치하게 만드네, 하면서 일곱 편을 몰아치듯 봤다. 그 공의 70%는 나홍진 감독의 '량종' 주인공 나릴야 군몽콘켓의 뚜렷한 캐릭터 몫이라 생각한다.
넷플릭스에 지난 18일 공개된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터 오브 더 하우스'(저택의 주인)는 보석 재벌 회장의 미스터리한 죽음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 가족의 어두운 비밀과 암투가 드러나는 과정을 상당히 자세하게 따라간다. 그 시선은 하인들의 것이다. 두 아들이 신나게 유산을 놓고 싸우는데 아내, 자녀도 한결같이 개차반 부류들이다. 하인들을 개처럼 다룬다. 하녀 역할을 하다 어느날 회장의 결혼 제의를 수락한 카이묵(나릴야 군몽콘겟)이 하인들의 반란을 진두지휘한다.
한국과 태국 드라마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은 일종의 '덤'인데 시와롯 콩사꾼 감독은 '월드리 디자이어스'와 '이터니티'를 연출하며 독특한 스토리와 깊이 있는 인물 묘사로 많은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끄집어내는 데 상당한 재간을 부리는데 너무 전개가 느려 답답함을 느낄 때가 적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의 좋은 점을 꼽는다면, 태국 경찰의 부패가 얼마나 심각한지, 부유층과 엘리트 계급이 하층민들을 얼마나 천대하고 쉽게 여기는지, 그리고 하층민들은 이를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 나아가 태국 왕실에 대한 국민들의 무조건적 복종이 이 시리즈 곳곳에 어느 정도 투영돼 있다는 사실이었다.
회장의 손자가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여놓고 조수석에 있던 기사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미국으로 유학 가는 장면은 지금도 간간이 지면에 소개돼 나온다. 해서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전근대적 인권 유린이 지금도 태국 사회 곳곳에서 연출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7회를 보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따라서 나머지 여섯 편은 일종의 빌드업으로 읽히는데 그런 과정이 없었으면 7회의 응징에 통쾌한 마라 맛이 없어지는 역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쁜 이라면 7회 한 편만 봐도 무방할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영화의 반전으로 소개되는 종업원 반란은 이탈리아에서 많이 봤던 신디케이트 반란을 연상케 한다. 종업원들이 힘을 합쳐 공장이나 사업장 운영권을 쟁취해 자주적으로 경영하는 방식인데 국내에서도 서울 명동의 유명 곰탕집 주인이 자녀 대신 종업원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줘 지금도 잘 운영되는 사례가 있다.
영화에 주요 장치로 등장하지만 약간은 허술한 나방과 나비의 변신이란 주제는 조금 더 치밀하게 구성하고 회장의 죽음에 나비 떼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으로 설정되면 더욱 좋았겠다 싶다.
극본을 조금 손질하고 스릴러의 강도를 조금 높여 여섯 편 정도로 줄여 번안해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허튼 상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