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압을 나타내던 바늘이 미세하게 떨리는가 싶더니 경고음과 함께 갑자기 밑으로 푹 꺾여 내려가자 부소장의 심장은 삽시간에 오그라들었다. 그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바늘 끝에 시선을 꽂았다. 분명히 바늘은 빨간색의 위험선 한참 아래로 떨어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뇌파 모니터의 신호 역시 파장이 현저히 줄어든 채 희미한 무늬를 간신히 그려 냈다.
공포를 머금은 그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옆의 심전도 모니터를 거쳐 산소 호흡기로 향했다. 역시 마찬가지로 봉화진료소의 최신식 의료 기계들은 한 사람의 불안한 생명 신호를 간신히 포착해 내고 있었다.
핏발이 곤두선 부소장의 눈이 홱 돌아 바로 곁에 서 있는 심장 전문의와 뇌경색 담당의의 얼굴로 옮아갔다. 이제 40을 갓 넘긴 두 전문의의 얼굴은 아예 백지장처럼 하얘져 있었다. 비록 북조선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러시아 유학파 의사들이지만 이들은 넋을 잃고 있었고 시선은 모니터의 신호 위에서 얼어붙은 채 움직일 줄 몰랐다.
“최, 최 선생! 리 선생!”
“부, 부소장님!”
세 사람의 질린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이들의 뒤로 급히 다가선 호위총국 요원이 부소장의 어깨를 잡아챘다. 그는 시퍼렇게 날이 선 독사 같은 눈으로 겁에 질린 부소장을 압도하며 눈앞에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부소장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젓자 이번에는 네 개를 폈다. 이번에도 부소장이 고개를 가로젓자 그는 당황하며 손가락을 하나 더 보탰다. 부소장이 죄수처럼 고개를 끄덕이자 요원은 다섯 개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24시간 내내 켜고 있던 소형 무전기에 대고 숨 가쁜 목소리를 토해냈다.
“소쩍새 다섯! 소쩍새 다섯!! 소쩍새 다섯!!!”
다음 날 포토맥강이 유유히 내려다보이는 워싱턴의 국토안보부 비밀 회의실에는 각급 정보기관의 북한 담당 요원들이 심각한 얼굴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8월 상순에만 12차례에 걸쳐 군부대를 방문했던 김정일이 중순부터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그의 건강에 이상 징후가 생긴 걸로 예상하고 있던 참이었다.
“지난밤 한국 오산 기지에서 감청한 북한 호위총국의 음어를 해독한 결과 김정일의 신변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어 의료진이 브리핑에 나섰다.
“우리는 그가 8월 14일에서 22일 사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걸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X선 판독 전문가는 30장도 넘는 김정일의 실물 사진과 X선 사진을 일일이 짚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김정일이 노출되는 대로 인공위성을 이용해 그의 X선 사진을 찍어 왔습니다. 처음 그가 쓰러졌을 때는 지병인 당뇨나 심장병으로 의심했지만 X선 사진을 정밀 판독한 결과 그의 뇌에서 미세한 출혈이 감지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뇌졸중입니다.”
해군 정보관이 옆의 중앙정보국(CIA) 동아시아 부장에게 물었다.
“이제 지도자 동지는 아주 끝난 거군요?”
그러나 그는 희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직 분명치 않아. 좀 더 지켜보아야 할 상황이지.”
브리핑이 끝나자 대통령 정보 참모는 잔뜩 찌푸린 채 백악관으로 향했다.
“대통령 각하, 북한의 핵 포기는 완전히 물 건너갔습니다.”
참모의 보고에 부시는 무척이나 애석한 듯 주먹을 불끈 쥐며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제기랄! 김정일이 쓰러져 버렸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회복될 조짐은 없나?”
“아직 정확한 판단을 하기에는 정보가 모자랍니다. 하지만 핵 포기가 물 건너갔다는 사실 하나만은 분명합니다.”
동석한 매케인의 안보 참모는 김정일의 건강 이상이 왜 핵 포기로 직결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 부시에게 캐물었다.
“이봐, 존. 핵 포기는 김정일의 독단적 결심이었어.”
부시는 아직도 아쉬움을 달래지 못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김정일이 핵 포기를 지시한 건 물질적 지원이나 테러국 해제 같은 것 때문이 아니야. 물론 겉으로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먹였지만 본질은 그자의 자기 목숨에 대한 애착 때문이야. 우리는 그가 어디에 숨어도 찾아내 죽일 수 있는 암살 병기들을 개발했지. 무인 비행기에 장착하는 초소형 핵탄두는 그가 아무리 두꺼운 벙커에 들어가 있어도 찾아내 날려 버릴 수 있어. 게다가 우리가 중국과 도출해 낸 타히티 협상이 그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거야.”
“타히티 협상이 뭡니까?”
“우리가 제시한 시한까지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김정일을 암살하는 거였지.”
“중국이 그런 합의를 해 줬습니까?”
“중국도 북한의 핵 보유를 꺼리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럼 김정일은 결국 자신의 목숨을 염려해 핵 포기를 지시했던 거군요.”
“그렇지. 그래서 김정일이 쓰러지면 핵 포기는 원상회복되는 거야. 그래서 이번에 그가 쓰러지자마자 군부가 핵개발 재개를 밀어붙이고 있는 거야.”
“만약 김정일이 식물인간이 되거나 사망하면 어떤 방법으로 북한의 핵개발을 막을 수 있습니까?”
부시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결국은 북한을 중국의 수중에 넘기고 중국으로 하여금 핵개발을 중지시키는 방법밖에 없어. 미군이 북한에 진주하면 30만 명 이상 죽는다는 보고서가 시중에 돌아다니니까 전쟁은 안 돼. 이제 우리 국민은 전쟁에 넌덜머리를 내고 있거든.”
▼ 다음편에 계속 ▼
소설가 김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