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산책
사람은 제 각각 나름의 생활 철학을 갖고 있다. 나는 시간과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려는데 관심이 많다. 이렇게 살다보면 꼭 오래 사는 것만이 가치 있는 삶이 아님을 깨닫는다. 비록 평균 수명에 미치지 못한 생을 살아도 농축하고 압축시킨 시간을 보내고 공간을 활용한다면 보람 있는 삶이라 자부해도 좋을 듯하다. 그렇게 살려면 평소 부지런한 생활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야한다.
광복절 이튿날은 월요일 같은 수요일이었다. 내가 교과 수업에 든 3학년은 개학해 1주일이 지난다. 내일이면 1학년과 2학년도 개학해 학교가 더욱 활기차지 싶다. 나는 지난 주말 여름 끝자락 주남저수지 연꽃이 궁금해 틈을 내어 한 번 다녀왔다. 광활한 수면을 가득 뒤덮은 연잎과 연꽃은 장엄한 연화장이었다. 철따라 자연의 변화를 제 발로 찾아 두 눈으로 확인함이 내 버릇이다.
수요일 오전 일과에 따라 세 시간 교실 수업에 들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급식소를 찾으니 차림은 냉면이 나왔다. 식후 양치를 하고 나면 내 자리에 등을 기대어 십여 분 짧은 낮잠을 자는데 그러질 않았다. 교무실을 내려가 교정에서 학교 교문을 나섰다. 교문 앞에는 창원대로와 이어진 공원이다. 충혼탑 사거리에서 왼쪽은 올림픽공원이고 오른쪽은 창원수목원과 삼동 분수광장이다.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 창원수목으로 향했다. 능수버들이 자라라는 작은 연못의 데크 탐방로를 따라 걸었다. 수면엔 종류가 다른 연잎이 가득 차 있었다. 주로 수련이었다. 소담스럽게 핀 꽃송이가 몇 개 보였다. 잎이 부채처럼 넓은 백련도 있었다. 잎이 솥뚜껑만한 가시연도 여러 장 자랐다. 가시연은 아직 꽃이 피질 않았다. 잎이 작아 앙증맞아 보이는 노랑어리연꽃도 동동 떠 있었다.
연못을 지나 수목원 언덕으로 올라갔다. 노거수가 울창한 숲은 아닐지라도 수목원 명칭에 걸맞게 여러 종류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나무’ 코너도 있었다. 무궁화와 배롱나무에선 붉은 꽃이 아름다웠다. 산딸나무나 공작단풍도 보였다. 수목만이 아니라 다양한 풀꽃도 자랐다. 익숙한 둥굴레나 옥잠화도 보였다. 계절이 계절인 만큼 한여름에 피어난 풀꽃은 드물었다.
산언덕 맨 꼭대기는 하늘정원으로 명명했다. 암석 표본을 전시한 암석원도 있었다. 분수는 물을 뿜지 않았다. 구름에 낮게 드리운 하늘에선 성근 빗방울이 들었다. 가깝고 먼 시내 일대와 주변 산세를 둘러보았다. 불모산 송신소가 아스라하고 안민고개는 장복산 산등선으로 이어졌다. 늘푸른전당 뒤로는 시티세븐이 우뚝했다. 내가 근무하는 교정과 교육단지 학교들도 시야에 들어왔다.
수목원 언덕 남쪽 기슭에는 규모가 꽤 큰 유리온실이 조성 중이었다. 외벽 유리 설치까진 끝마쳤으나 내부시설 공사는 마무리 되지 않았다. 유리온실이 완공되면 아마도 유리 온실에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지 않는 열대나 아열대 식물을 키우지 싶다. 현장사무실 곁에는 한 인부가 숫돌에다 낫을 갈고 있었다. 너른 수목원 관리 인부는 여름 한철 잡초와 힘겨운 싸움을 펼쳤다.
유리온실에서 다시 언덕으로 올라갔다. 몇 그루 청청한 소나무가 운치 있었다. 나무 데크를 따라 분수 광장으로 내려가 보았다. 날씨가 흐린데다 평일이어서인지 분수는 가동되지 않았다. 어쩌면 분수 가동 시간이 정해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언덕에 설치된 인공암벽에선 시원스런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비록 인위적인 용수 공급이긴 하나 도심 속에서 드문 시원한 물줄기였다.
모처럼 시간을 낸 김에 길 건너 올림픽공원까지 산책하고 싶었지만 빗방울이 떨어져 마음을 접었다. 여름 한낮 수목원 산책에 반시간 남짓 걸렸다. 구름이 낮게 드리워 기온이 그리 높지 않아 땀이 흐를 정도는 아니었다. 매미소리는 잦아들어도 풀벌레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날씨가 맑은 밤이라면 풀잎에는 투명한 이슬이 내려 맺힐 것이다. 언제 아침에 한 번 나가 봐야겠다. 17.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