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 인개가 자욱했다.
이렇게 안개가 가득 낀 날은 낮동안에 꽤나 더웠다...오늘도 그러하리라.
게다가 봄꽃들이 계절을 잊고 또다시 피는 것을 보면 요즘은 계절,도 자연도 가끔 정신을 놓는듯 하다.
물론 이즈음에는 태풍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역시나 그냥 건너가지 않은 태풍들이 세계 곳곳을 할퀴는 중이다.
필리핀은 아예 초토화가 되었고 홍콩과 중국도 비상이란다.
더구나 저 태평양 건너 미국 플로리다주는 완전 물바다이니 도대체 지구의 기상이변은 어디까지이며
앞으로 이런 자연재해나 천제지변은 어디까지 감당이 가능할지 그것도 걱정이 태산이다.
어쨋거나 지금은 그런 일들이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느껴질만큼 다른 일들에 골몰할 시점이다 보니
집중과 열중이 넘쳐 심신이 피곤하여 시술한 심장 자리가 따금따금 아프기 까지 하다.
은연중에 스트레스가 쌓이는 중이겠다....명절 증후군.
그리하여 그에 걸맞는 글자락이 있어 얼씨구나 싶어 옮겨왔다.
개인적인 취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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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면 낭비' / 안희곤
일에 지쳤고, 날마다 이어지는 약속과 술자리로 피곤이 쌓였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칼럼의 순서가 돌아와 글을 강요한다.
오늘은 그 요구에 공백으로 답하고 싶다. 글자에 글자를 이어붙이고 단어들을 엮어내지만 기실 글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기호들이 모여 의미를 전달한다는 건 우리의 오랜 환상이다.
우리들의 기억은 구성되었다.
당연히 그랬으리라는 추정,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상상을 가지고 우리는 기억한다고 믿는다.
누가 만들어준 이데올로기, 습관화된 단어, 공식적인 표현들에 의지해 우리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마르크 블로크는 말했다.
“역사가에게는 애석한 일이나, 사실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때마다 어휘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사실을 떠나 화석이 된 말이 새롭게 달라진 사실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그러므로 당신이 듣는 것은 내가 말한 것이 아니다. 사실은 나도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다.
누군가 공적 매체에 개인의 사담이나 뇌내 공상이라도 실을라치면 사람들은 곧바로 ‘지면 낭비’라고 한다.
오늘은 그런 말로 지면을 낭비하고 싶다.
하지만 어떤 글로 지면을 낭비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글은 없다.
모두가 안간힘을 쓰며 의미를 실어 나르려 하고, 정보를 전달하고 의견을 피력하려 한다.
너무 많은 뉴스, 너무 많은 주장, 너무 많은 지식에 우리는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러므로 한번쯤은 지면을 낭비해도 좋으리라.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내가 피하고 싶은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무런 뜻도 없는 말들을 던지고 싶다.
카프카는 그의 일기에 썼다.
“내가 타인들과 무엇을 공유하고 있느냐고?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조차 아무런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다.”
독일어를 쓰는 체코 유대인으로서, 카프카는 체코 사람도 독일 사람도 아니었고, 이디시 문화에 속한 유대인도 아니었다.
어떤 공동체에도 소속되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조차 소속되기를 거부했다.
그는 늘 자신의 기억에 배반당했다.
뜬금없이 소송에 걸리고 벌레가 되었다.
니체는 또 다른 맥락에서 말했다.
오래되고 확실한 기억일수록 질병이며 더 중한 질병이라고.
하지만 세상은 늘 선택된 정보와 가공한 기억들을 쏟아내며 ‘사실’이라 강변한다.
적막과 침묵도 소중한 공유재라고 말한 사상가가 있다.
상상해보라.
어느 날 신문의 한 면이 텅 빈 채 배달된다면? 컴퓨터의 인터넷 접속화면이 입력창조차 없이 막혀 있다면?
그러면 우리는 우리 머리를 열고 가득 쑤셔 넣으려는 저 ‘의미’의 쓰레기들을 피해 무한한 정신의 자유로 도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읽기의 폭력과 검색의 강박을 피해 빈 하늘에 눈의 초점을 맞출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먼지가 피어오르는 소리, 나무가 숨 쉬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눈의 권력을 물리친 자리에서 귀가 잠시 승리의 기쁨을 맛볼 것이다.
얼마 전 집의 TV가 고장 났다.
전원이 혼자서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더니 기어이 죽어버렸다.
똑같은 고장이 흔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세계 1위의 전자회사가 10년도 안된 기기의 고장을 으레 있는 일이라며 깔아뭉개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화가 치밀었지만 고작 TV의 전원에 지배당하는 꼴이 우스워 마음을 가라앉혔다.
TV 없이 지낸 일주일이 꽤 그럴 듯했기에 애프터서비스(AS) 기사 부르기도 포기했다.
우리 가족은 좀 더 대화를 많이 했고 책을 좀 더 읽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최저임금 논란, 입시와 교육정책, 인천 퀴어축제의 기독교인 난동, 쌍용차 복직 합의,
9·13 부동산대책까지 세상 돌아가는 것은 다 알고 있었다.
뉴스와 정보가 부족해서 시민됨을 포기해야 하는 일은 없었다.
TV가 꺼진 날, 책을 잡았다.
이성형의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를 다시 읽었다.
일찍 세상을 뜬 저자가 새삼 아쉬웠다.
라틴아메리카 사정이 더 알고 싶어 박정훈의 <역설과 반전의 대륙>을 이어서 읽었고,
차베스와 베네수엘라의 실패를 비웃는 언론들의 논지에 코웃음이 났다.
남 잘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보는 미국과 거대 자본들의 농간 앞에 무너진 그들이 안쓰러웠다.
오래전 포기한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수탈된 대지>와 <불의 기억>도 책장 깊은 곳에서 찾아내 읽기로 했다.
난삽한 번역을 이겨내며 한 줄 한 줄 읽어나갔다.
어떤 날은 책조차 집어치웠다.
책을 읽지 않아도 좋았다.
우산을 들고 집 앞 산책로에 나가 빗소리를 들었다.
TV가 멈추어도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그 시간은 빈 시간이 아니었다.
(경향신문/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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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의 삶을 살아가면서 세상사에 휘둘리지 아니하고 제가 살고 싶은대로 살기란 얼마나 곤혹스런 일인가?
하지만 그러자고 안성 산속으로 들어와 살면서 웬만하면 저잣거리 행태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살고는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정체성이나 생각, 이념, 확신 따위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므로 더욱 더 당당하게 살아내고는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더러 문화생활의 부족과 불편이 자유로운 시골생활에 걸림돌이 되기는 한다.
그래서 찾아다니며 문화를 가까이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온라인을 통해 문화생활을 공유하기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문화생활에 대한 아쉬움과 부족함이 남겨지는 것이 안타까워
문화 관련에 뭔가 나눔을 하고 공공의 아이디어를 내어주기도 하지만 그 또한 2% 부족이라 늘 아쉬웠다.
처음에 안성으로 둥지를 옮긴 후에는 그래도 안성 문화예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정말 수준이하의 시설을 지닌 안성의 문화란 정말 어처구니 없을 정도였고
그중에서도 자주 접하던 그나마 유일한 공간이던 시민회관을 보고 경악에 가까운 절규를 하다가
웬만하면 저작권 상관없이 아이디어를 내어주기도 하고 그런 아이디어들이 모아져 새롭게 창출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별만 문화창출에 대한 기대감과 욕구에 부응하는 행태가 거의 보이지 않다가
많은 이들의 희망사항과 열망이 차고 올라 드디어 괜찮은 문화시설을 제대로 만들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시민들의 희망사항이 여러 의도와 맞물려 긴 시간 논의 끝에 안성 복합예술공간, 일명 안성 아트홀이 문을 열었다.
처음엔 허접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싼티나느 격 떨어지는 건물같은 느낌이어서 별별 걱정이 많았다....역시나 다.
어째 불안은 결국은 영혼을 잠식할 정도로 딱 맞아 떨어지는지 원.
외양은 겨우 체면치례 정도이었지만 좀 수준이하였어도 그나마 음향시설이 나아진 듯 하여 그런대로 위로를 받다가
결국엔 일년 내내 프로그램을 기획할 능력이 없는 그들의 능력에 실망을 하다가 이제는 격분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안성시민들의 혈세로 지어진 복합문화예술공간 "안성 아트홀"이 프로그램 기획 부족에 더하여
시민들의 치졸한 아우성과 극성스런 떼씀에 겨우 학예회나 하는 그런 공간으로 전락하게 생겼으며
조례까지 개정을 하여 결국엔 너나들이로 그 공간을 마구 집어삼켜 활용하는 공간으로 추락할 처지에 남겨졌다
도대체 어찌 이리도 무식하기 짝이 없는 개같은 경우가 다 있다는 건지,
얼마 전에 음악하는 지인에게 들은 소식에 격분하다 확실하게 확인사살을 하고 보니 절로 몸이 떨려왔다.
뭐 이런 인간 쓰레기 같은 발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시정자들과 시민들이 있다는 건지.
제 값어치를 하여야 할 공간을 그야말로 초딩 수준으로 끌어내려 유치원 아이들 발표회 따위나
전혀 상관 없는 부류들의 세미나 프로그램 따위를 그 공간에서 하시겠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리고 복합 문화 공간이라는 의미가 쓸데 없는 단체들의 집합처로 전락한다는 것 자체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이기적인 발상들이 모여 저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그들의 행태에 그것도 권력이라고 헛소리를 해대는
그런 의미 없는 짓들은 대체 누가 허락을 하였다는 건지...물론 안봐도 비디오이긴 하지만서도 말이다.
어쨋거나 시민의 휴식과 문화를 책임져줄 복합 문화 공간이 학예회 공간으로 전락하고 추락한다는 사실에 절로 화가 난다.
몸과 마음의 쉼이 필요할 때 위로가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문화 예술의 공간이 아닌
어중이 떠중이 죄다 몰려드는 그런 공간이라고 한다면 안성시민의 혈세가 아깝다...에효.
겨우 문화 공간 하나 확보하였다고 좋아하였던 사실이 민망하다.
와중에 멋진 공간을 창조할 기회를 잃어버린 전전 시장 이동희님의 3선 선거 유세의 선거 공약은
이미 지켜지지 않았으므로 빈 공약 남발의 주인공이요
그나마 제가 재임하던 시절에 드러내지는 자신만의 업적을 들여다보며 좋아했을 전 안성시장 황은성님의
억지춘향식의 결단으로 지어진 안성 아트홀의 꼬락서니가 참으로 안타깝다.
그들의 서로간에 이해관계에 맞물려지어진 공간 구성이 아주 기가 막히다는 말이다.
정말 어이가 없어 이사가야 할까보다....안성의 자연과 문화를 활용하고자 거처를 옮겨왔건만
절로 욕이 나. 온. 다
아. 쉽. 다 가 아니라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첫댓글 우짠지 회원가입하기 싫어 미루고 있었더만... 천안문예회관 정도로만 운영되고 감지덕지다 싶었는데... 에효~! 민도를 우째 갑자기 뛰어 넘으리요~? 에효~!
정말로 한심떠라지 같은 발상이 아ㅣ겟습니까?
그래도 간간이 좋은 기획은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조만간에 있을 유키 구라모도 피아노 연주는 기대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