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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결론은 같아야 합니다!
참고말씀: 창18:23-32; 41:32; 왕상18:42,43; 욥33:14; 시50:15; 단6:10; 막1:35; 14:33,34,39; 눅22:39; 골4:2; 살전5:17; 약5:13
읽을말씀: 마26:36-46
주제말씀: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첫째, 고민이 많고 슬플 때에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마26:37,38)
기도는 언제 해야 합니까? 쉬지 말고 계속입니다. “기도를 계속하고...”(골4:2 상) /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어째서입니까?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자 끊임없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꾸준하게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계속 기도하기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특별한 일이나 행사를 앞두고’ 일정기간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라도 기도하기를 반복하면 언젠가는 기도생활이 정기적이 될 수 있고, 또 그러다보면 ‘습관화’가 되어 기도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 갔더니.”(눅22:39) /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한편, 언제 또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까? 고민이 많고 슬플 때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이때야말로 기도 시작하기에 좋은 때요 집중적으로 기도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 때문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약5:13 상)
혹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 가지 고민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마음이 매우 고민스러워 죽을 지경입니까? 이럴 때일수록 더욱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고민하고 슬프실 때 그리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평상시에도 계속 기도를 하셨지만,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 십자가 대속을 앞 둔 시점에서 특별히 고민하고 슬프실 때, 곧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을 때에 더욱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셨던 것입니다.
“...고민하고 슬퍼 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37,38절) /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 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 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막14:33,34)
둘째, 피곤하고 육신이 약할 때도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마26:43)
우리는 언제 또 기도에 더욱 힘써야 합니까? 피곤하고 육신이 약할 때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이럴 때는 그냥 쉬어도 좋을 것 같은데 왜 그런 것입니까? 이때가 가장 취약한 때, 곧 시험에 들기 딱 좋은 때이기 때문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41절) /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43절)
생각해보십시오. ‘피곤하다고’ 기도 안하고, ‘졸음이 쏟아진다고’ 기도 안하며, ‘육신이 약하다고’ 기도 안하면, 언제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의 바쁜 나날들을 살아가느라, 하루 중 피곤하지 않은 때가 많지 않고, 졸리지 않는 순간이 많지 않으며, 육신이 약하지 않은 때가 많지 않으므로, 이것저것 다 떼고 나면 기도할 시간이 도무지 남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던 것처럼, 이런 상황에서도 기도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40,41절)
이 대목에서 한 번 묻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피곤한 줄 모르셔서 이런 말씀들을 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습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41절 하) /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43절) 그런데도 왜 계속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38절 하) /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40,41절)
‘피곤해도’ 기도해야 하고, ‘졸음이 쏟아져도’ 기도해야 하며, ‘육신이 약해도’ 기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피곤하기 때문에’ 더 기도하고 ‘졸리기 때문에’ 더 기도하며 ‘육신이 약하기 때문에’ 더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나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루의 첫 세 시간은 기도로 보냅니다.”(I have so much to do that I shall spend the first three hours in prayer)고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참고로, 기도를 하다보면 언제 보통 위기를 맞습니까? 피곤하고 졸리며 육신이 약해져 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이 고비를 잘 넘기면 어떻습니까? 기도시간이 즐겁고 또 기다려지게 됩니다.
셋째, 기도의 결론은 항상 같아야 합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26:39)
예수님의 기도를 자세히 들어보면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기도의 결론이 항상 같다는 점입니다. 항상 무엇으로 끝났습니까?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39절 하) /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42절 하)
즉 어떤 기도로 시작하셨든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39절 중) /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42절 상) 결론을 항상 이렇게 마무리 하셨던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기도란 내 뜻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맞추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우리의 뜻을 맞춰가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 둘 사이에 간격이 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기도하다보면 그 간격은 점점 더 좁혀지게 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어떤 내용으로 기도를 시작했든 간에 항상 그 끝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원망이나 불평으로 시작해도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분함으로 시작해도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고민으로 시작해도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슬픔으로 시작해도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체념이나 자포자기로 시작을 해도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결론짓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같은 내용으로 반복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마26:44)
예수님의 기도의 특징은 또 무엇입니까? 같은 말씀으로 세 번이나 기도하셨다는 점입니다.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44절) /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막14:39)
왜 그리 하신 것입니까?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기도하는 것만큼이나 강력한 기도가 또 없다는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만 반복해서 기도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도 그리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리 했고,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창18:23-32)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가 그리 했던 것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라보고 말하되 아무 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왕상18:42,43)
그러고 보니 하나님께서도 어떤 일을 확증하실 때 무엇으로 이를 증거 하셨습니까? 반복입니다.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창41:32) /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욥33:14)
그러니 우리도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같은 내용을 가지고 반복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이 써준 기도가 아닌 내 언어로 기도하게 되고, 더 이상 억지나 형식적으로 기도하지 않고 즐거움과 진심으로 기도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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