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시는 하느님... 프랑크푸르트에서부터의 일정들은 철저한 혼자만의 여행이었는데요. 대모님가정방문과 20년만에 다시 밟은 저의 출생지... 오스트리아 린쯔에서의 3박 4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겐 영성의 고향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테제에서의 20여일의 시간들... 모든 길은 로마를 통한다고... 로마에서 삼일을 더 묵고 70여일의 순례를 종결하였답니다. 성소에 대한 응답을 드릴 수 있도록 배려되어진 환경과 만남들 속에서 제 영혼은 점점 제 자신과 제 모든 과거들과 화해하며 신뢰를 회복해갈 수 있었답니다. 특별히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저의 유년기를 보냈다는 것이 너무도 벅찬 감사함이었던 린쯔방문은 고향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옛친구 가정의 따뜻한 환영과 유학중이셨던 두 분 부제님의 자상한 환대... 다른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정겨운 사람들의 친절과 미소... 어릴 적 크고 높게 보였던 그 모든 것들이 이렇게 작아보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던 시간들이었죠. 그리고 테제... 테제는 이렇게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만 같은... 제 인생의 그 이름자체가 큰 의미가 되는 곳이었답니다. 95년 세계청년대회때 테제기도를 처음 접해보았고, 97년에 삼일정도 머물렀었고,이번이 두번째 방문이었는데요. Taize는 참으로 특별한 땅이랍니다. 테제 언덕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소박하지만 정성스럽게 꾸며진 성당에 들어서면 모든 영혼은 하느님만 바라게 됩니다. 80여명의 흰수도복을 입으신 수사님들 뿐만아니라 철없어 보이는 사춘기 아이들도, 아직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어린이들도 평화롭게 감싸시는 하느님의 임재하심 안에서 우리의 언어가 얼마나 부족하고 유한한지를 절감하며 아주 단순한 고백을 고요한 기쁨이 있는 멜로디와 대침묵 안에 담습니다.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현존 안에서... 모든 불신과 두려움은 어느새 그 소리를 그치고, 제 영혼은 하느님의 사랑에 그냥 젖어 가는 것이죠... 해 지는 노을처럼... 또한 이러한 침묵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나게 해주는데 유난히도 아름다운 남부프랑스의 자연이기도 하지만, 일출과 일몰, 월출과 월몰, 작은 들꽃... 흰구름... 산, 나무, 연꽃... 햇살은 화창하지만 습하지 않아 산책하기 괜찮은 오후, 두터운 상의를 필요로 하긴 하지만 무척이나 상쾌한 아침, 저녁의 공기... 축복받은 자연과 인사하고 온몸으로 느끼다보면 어느새 마음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향해 활짝 열려있음을 발견하게 된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이곳에서 제가 제 삶을 여태껏 지탱시켜왔던 가장 큰 힘이 어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드리고자 싶어하는 마음임을... 타인의 평가와 인정 속에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제 뿌리깊은 연약함을 직면하게 되었고... 중요한 결정의 계기가 있어서 (부모님을 포함하여)모든 분들께 실망시켜드리는 전화를 드렸죠... 그렇지만 제 인생에 처음으로 제 삶을 결정했던 순간이었고... 그것은 작은 해방체험이기도 했답니다. 주위의 시선이 아닌 저와 하느님 관계를 가장 중요시여기며 결정했던 첫번째 일이었거든요. 그런 저에게 삼위일체 하느님은 다양한 현존의 모습으로 제 마음 깊숙히 찾아와주셨고... 단순하고 아름다운 테제노래를 통해서 두려움이 있을 수 없는 하느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새롭게 인식하며... 성소라는 것은 제 안의 하느님나라가 열리는 것임을 깨닫게 해준 짧은 노래와 모든 것을 봉헌하게 하는 짧은 고백을 통해 "In manus tuas Pater, commendo spiritum meum ; 아버지의 그 손에 제 영혼 의탁합니다" 아주 조금씩 하느님의 이끄심에 제 자신을 맡기게 되었답니다. 테제에서 가장 특별한 경험은 십자가경배시간이었구요. 매 주 금요일마다 테제십자가를 바닥에 눕혀놓고 젊은이들이 무릎으로 걸어가서 그 십자가에 입을 맞추거나 손을 대거나 자신의 얼굴을 대고 경배를 드리는 형언하기 어려운 십자가의 예수님과 아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시간이 있는데요. 이전에도 테제기도 참석을 통해서 경험했던 그 시간들이었음에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이렇게 또 바닥까지 낮아지셔서 가장 무력한 모습으로 죄많은 우리들의 눈물과 고백을 받으시는... 그 처절한 사랑 앞에서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에 대해 쏟아지는 눈물 속에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제 마음안에 있는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거절하고자 하는 모든 속삭임들이 그 무력한 십자가의 사랑 앞에서, 그 소박한 침묵 안에서 그냥 녹아버렸다고 표현해야할까요. 이러한 테제에서의 3주 조금 넘는 시간동안 저는 하느님의 부재(체감되어지지 않는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냈고, 비록 미래에 대한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하였지만 평안한 마음으로 그곳을 떠나왔답니다. 마지막 로마에서의 시간도 전체 순례의 마무리로 감사한 시간이었구요. 요한부제님과 함께 방문했던 바오로사도의 순교지인 Tre Fontane에서 순례의 마지막기도를 드리며 많은 것을 정리할 수 있었답니다. 70일의 여정 가운데 35일동안의 일정을 24회에 연재해놓고, 나머지 35일을 이렇게 한 회에 담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전 이제 이 긴 순례기를 종결하려합니다. 신뢰와 화해의 순례였던 이 시간들을 통해서 저는 하느님께서 저에게 엄청난 하느님나라라는 보물을 마련해두고 계심을 알게 되었고, 그 보물을 왜 찾아야하고 어떻게 찾아야하는지를 그리고 그 보물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이 모든 시간과 환경 안에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본격적인 보물찾기... 외적인 순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했다면 이젠 매 순간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하는... 내적인 순례에 들어가려합니다. 이틀뒤에 있을 수녀원입회가 제겐 그 작은 시작이 되겠죠.. 이 모든 은혜를 받기에 너무도 합당하지 않은 자였기에.. 이 은총을 꼭 나누어야할 것 같았습니다. 좋으신 우리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순례기를 마칠 수 있도록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