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지스강에 풍경
소음으로 인상적인 저녁을 보낸 다음 날 새벽, 다시 갠지스강을 찾았다. 4시 30분에 기상하여 5시 무렵 서둘러 전세 버스에 올랐다. 어제 자전거 릭샤를 타던 곳부터 걸어갔다.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가이드의 말과 달리 손에 보따리를 들고 걸어가는 신도들이 많았다. 전동릭샤, 오토바이, 승용차 등 탈것만 없었다. 소음도 없었다 조용한 새벽길을 기도하고 정성을 들이려는 마음으로 걷는 이들 속에 함께 걸었다.
어제처럼 정신이 없지도 피곤하지도 않았다. 시끄러운 속에 고요함이 주는 묘한 매력에 동화되는 시간이었다. 강가에 도착하자 몸을 씻는 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물이 깨끗해 보이지 않았는데도 몸을 담그는 정성은 그 강이 여신의 강이어서인가 몸을 씻으면 죄 씻음을 받는다는 믿음 때문인지 공식적 푸자가 없어서인지 강 주변은 조용했다.
우리 일행은 통통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예전에는 빨래터로 쓰였다는 곳이 있었는데 강의 수질을 높이기 위해 페쇄되었다 강가의 건물들은 아름다웠다. 호텔로 쓰이고 있는 예전의 왕궁들과 주택인 듯한 건물들 사이에 사원 모습들도 보였다. 뱃길을 돌려 강 건너편 커다란 모래섬에 배를 댔다. 모래언덕을 오르니 섬이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이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낙타와 말을 모는 이들이 사진도 찍고 한 바퀴 돌아보라고 유혹했다. 아침 해가 구름 사이사이에서 황금빛을 비추더니 붉은 해가 되어 얼굴을 내민다. 갠지스강의 일출은 고요하게 시작되었다. 모래밭에 낙타와 말의 똥이 있기는 했지만, 고운 보내와 일출의 빛으로 흥분된 우리 일행의 환호성이 오히려 시끄러웠다. 모래밭에 둘러서서 <아리랑>과<홀로 아리랑> 외 준비한 곡으로 함께 하모니카를 연주했다. 휴대하기 간편한 것이 장점인 주머니 속의 악기로 인도 개지스강 강가에서 붉은 일출을 배경으로 연주하니 묘한 흥분과 함께 이 악기 배우기를 잘했다는 자부심이 들었고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다시 배를 타고 화장터 가까이 갔다. 쌓아 놓은 나무 단 위로 불꽃이 오른 후 뽀얀 연기만 바람결에 날아갔다. 죽음을 위하여 저장해 놓은 장작 무더기가 보였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영원히 이별하는데 곡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가 주변에 번져갔다. 관광객들이 모이를 던져주던 배 주변에 기러기 같은 새가 푸드덕거리며 모여들어 먹이를 먹는 모습이 소란한 듯 들렸다.
너무나 소음이 심했던 갠지스강을 향한 길의 첫인상을 생각하며 코로나 시절에 근무했던 학교가 생각났다. 학생들이 없는 학교는 고요와 정적만 남아있는 무덤과 같았다. 평소에 복도에서 조용히 하라고 잔소리도 많이 했었는데 그때가 그리웠다. 격리 기간이 완화되자 학년별로 등교를 했고 급식도 시작되었다. 점심시간에 복도에서 왁자지껄 시끝벅적한 소리가 나자, 학교는 살아났다. 갠지스강으로 가는 저녁 거리의 정신 없게 만들었던 소리도 이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방식이니 오히려 살아서 움직이는 것같이 느껴졌다 이 소리는 다음 날 아침의 고요와 벗이 되어 생명의 중심을 이룬 것 같았다. 강한 인상으로 내게 다가온 소음과 고요함이 대비된 이 풍경들이 가슴속 깊이 부조되었다.
김혜정
수수밭길 동인지 수필 오블렛, 참여 hjkim0918@hanmail.net
불확실한 일을 위해 확실한 일을 지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