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5일 성주간 월요일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11
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분
가끔 성경 속의 주인공이 되어봅니다. 그들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도 해보고, 왜 그런 말과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생각에 잠길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라면 그런 때에 어떻게 했겠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전혀 이해할 수도 없기도 합니다. 곰곰이 묵상을 하다보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실마리를 풀어서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이해하기도 하고, 하느님의 뜻을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묵상하는 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이 행복한 것은 주님의 성령과 함께 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가 되어 보았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연인으로 사랑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언니가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서 바쁜데도 언니를 도울 생각을 하지도 않고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을 빤히 바라만 보고 있었던 눈치 없는 여자였습니다. 자기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을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각축전이라도 벌일 준비가 되어 있는 맹렬한 여자였습니다. 게다가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10,42)라고 주님으로부터 칭찬의 말씀까지 들은 기세등등한 여자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마리아를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둘의 사랑의 차원이 다를지는 모르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러니 마리아는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라자로는 꽤 부자였을 것입니다. 죽었다가 예수님에 의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아마 큰 잔치를 베풀었을 것입니다. 언제나처럼 마르타는 손님접대에 분주했을 것이고, 마리아는 오빠를 살려주신 예수님에게 감사의 표현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방법으로 꽤 비싼 순 나르드 향유를 예수님께 발라드리려고 생각 하였습니다. 그 향유는 오빠 라자로가 죽었을 때 발라주려고 준비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한 리트라면 약 320g정도 나가니까 꽤 많은 향유였습니다. 유다의 말대로 300데나리온이나 나간다면 지금 하루 일당을 70,000원으로 계산한다고 하여도 21,000,000원이나 나가는 아주 큰돈의 향유입니다. 라자로가 부자가 아니라면 집에 있을 수도 없는 아주 비싼 향유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정말 그 돈이 아까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렇게 많은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온 집안을 향내로 진동하게 하고 싶을 만큼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신체 중에서 가장 아래에 위치한 발은 가장 지저분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물이 부족한 이스라엘 지역에서는 발은 가장 지저분한 부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 향유를 부어 자신의 머리칼로 닦아 드린다는 것은 예수님은 가장 지저분한 곳마저 향 기름을 발라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을 씻기 위해서 자신의 머리칼로 씻는다는 것은 자신이 고개를 숙일 뿐만 아니라 온몸을 땅에 닿도록 잔뜩 구부려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완전히 헌신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완전히 바쳐야 사랑은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돌아가신 다음에 장례에 바를 향유를 말씀하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곧 세상을 떠나실 당신에 대해서 말씀하시지만 아무도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은 늘 우리의 곁에 있으니 언제나 그 사람들을 위해서 애긍을 베풀 준비를 하고,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리아는 과감합니다. 사랑을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사로잡기 위해서 조금도 망설일 필요가 없고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사람들 앞이라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성호경을 긋고 식사하는 것도 망설이고 부끄러워한다면 이는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하는 분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마태, 10,33) 우리의 사랑은 자신만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해야 마땅한 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외치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2,1-7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펼치신 분
땅과 거기에서 자라는 온갖 것들을 펴신 분
그곳에 사는 백성에게 목숨을, 그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숨을 넣어 주신 분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이배근 가브리엘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