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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 나타난 선지지의 직무
선지자 직무를 맡은 자의 사명
1)선지자는 '개혁'(reformation)을 그 사명으로 하였다.
약 1세기 전만 하여도, 많은 학자들은 대개 문서선지자들을 새로운 교훈의 창시자들로 보았다. 이스라엘에 유일신 사상(唯一神 思想)과 윤리적 행위를 요구하시는 하나님 사상을 소개한 자들이 바로 문서 선지자들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뒤에 와서 많은 학자들은, 이런 견해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선지자들은 새로운 교훈의 창시자들이 아니라, 개혁자들이라고 보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초기부터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을 유일신이요 윤리적 삶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어 왔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초기 선지자들과 후기 선지자들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있을 수 없다.
선지자들의 주 사명이 <개혁>이었음은, 초기나 후기 선지자들에게 있어 다 마찬가지였다. 다만 문서 선지자들이 주로 대중을 상대하고, 그들의 메세지를 기록함으로 그 사명을 수행한 데 반해, 초기 선지자들은 주로 개인과의 접촉을 통해서 그 사명을 행하였을 뿐이다.
이제 그럼 '개혁'의 의미가 무엇인가? 몇가지 관련된 문제들을 상고해 본다 ---
a)개혁은 단순히 율법을 가르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율법을 가르치는 일은, 각 성읍에 있는 제사장들의 일이었다. 제사장들은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율법서의 행을 따라 백성을 가르칠 수 있었다. 그러나 항구적인 체제(體制) 없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선지자들이 이 일을 하기는 어려웠다.
b)선지자들의 개혁 운동은 율법에 비추어 새롭게 살 것을 강권함이었다. 선지자들은 당시의 사회적 종교적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돌이켜 하나님의 율법에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였다(암4:1, 사10:1-2, 겔34:8).
초기 선지자들도 역시 개혁자들로서 율법에 일치된 삶을 살도록 촉구하였다. 사무엘 선지자의 개혁운동은 미스바( )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며(삼상7:1-14), "하나님의 사람"이라 호칭된 한 선지자는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개혁을 호소하였다(왕상 13:1-10). 하나니(Hanani) 선지자는 아사왕과 더불어 이같이 했으며(대하 16:7-9), 아합과 이세벨의 정권에 대항하여 엘리야가 행한 갈멜산 투쟁은, 역시 잘 알려진 놀라운 개혁운동이었던 것이다(왕상 18장).
c)선지자들이 '율법'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별로 하지 않았다는 데서도 그 개혁의 참다운 의미를 엿볼수 있다. 이같은 일은 참으로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율법에 일치된 삶을 촉구하면서 '율법'이란 용어를 별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 이 질문에 대하여 Eichrodt는 이렇게 대답한다 -- "율법이란 말을 별로 언급하지 않은 것은, 종교 행사의 죽은 형식주의와 관습적인 종교적 사고를 최소한으로 줄이려는데 있었다."(Theology of the O.T., p. 304).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회개할 줄 모르면서도, 종교의식만 성대히 행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으로 백성들이 착각하고 있었다. 이런 잘못된 사고가 이미 백성들을 죽은 형식주의에 빠뜨린 것을 인식한 선지자들은, 그와 같은 율법의 불합당한 사
용을 줄이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성전예배의 죽은 형식주의, 외형주의를 선지자들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음에서도 이것이 입증된다(Cf.암 5:21-24).
2)선지자는 <백성을 살피는 자>의 일을 하였다.
이 사실은 렘 6:27이 멸시한다 -- "내가 이미 너로 내 백성 중에 살피는 자와 요새를 삼아 그들의 길을 알고 살피게 하였노라." 백성들의 활동과 행위에서 선악을 살피는 것이 선지자의 사명이었다.
여기 "살피는 자"(바혼)란 말은 원어에 보면 주로 '광석 같은 것을 분석 평가하는 자'를 가리켜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이 말이 사람에게 사용될 때 '선악의 관점에서 백성을 살피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살피는 자"의 직능을 수행하는 것이 선지자의 사명이었다.
3)선지자는 백성 중에서 <파수군>으로 봉사하는 일을 하였다.
선지자의 파수군의 직무에 대하여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
겔 3:17에서 명시된다 --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계속하여 하나님은 3:18-19에서 무서운 말씀을 하신다. 만일 그 선지자가 이러한 경고를 하면, 그는 그들이 자기들의 죄 가운데 죽어도 책임이 없을 것이지만, 만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그가 책임을 져야 하며, 그들의 피값을 그 선지자가 받게 될 것이라고 한다( = 겔 33:7-9).
선지자의 "파수군"( 초페: watchman)의 직무는, 하나님 앞에 대단히 중요시 된다. 선지자는 큰 위험의 면전에서도 경고할 바를 경고해야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경고해야 할 일에 경고를 못하면, 하나님은 "파수군"이 되지 못한데 대한 책임을 그 선지자에게 지우시는 것이다.
4)선지자는 <중재자>로서 봉사하는 일을 하였다.
구약성경을 보면, 제사장들(priests)이 백성을 위하여 희생제물을 바치는 일로 중요한 중재자(仲裁者) 역할을 하였다. 선지자들(prophets)도, 의식적 행위와는 관계 없이, 어떤 중재적 방법으로 봉사했음을 본다. 그 실례들을 성경에서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
a."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리운 한 선지자는 벧엘(Bethel)의 우상
제단을 대항하여 예언하기 위해 유다로부터 보냄을 받았다. 그 때에 여로보암왕은 그 선지자의 행동을 막으려고 쳐든 그의 손이 말라버렸다. 그 때 왕은 그 선지자에게 간청하였다 -- "청컨데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야웨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으로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왕상 13:6). 이 때 그 "하나님의 사람"은 중재의 기도를 함으로 그 왕의 손을 회복시켜 주었다.
b.엘리야( )는 사렙다 과부의 죽은 아들을 위하여 중재 기도를 함으로 그 아들을 살려준 일이 있다(왕상 17:17-24).
c.엘리사( )도 이와 비슷하게 수남 여인의 어린 아들을 위하여 중재 기도를 함으로 그 아이가 다시 살아나게 된 일이 있다.
d.아모스(Amos ) 선지자는 황충이 땅의 풀을 다 먹게 된 것을 보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 "주 야웨여, 청컨데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암 7:2). 그 결과 주께서 "뜻을 돌이켜" 아모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7:3).
e.예레미야 선지자는 그 누구 보다도 더 자기 백성을 위하여 이러한 중재적 직무를 많이 행하였다 ---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을 인하여 망함이라."(렘 14:17, Cf.렘 14:20-21).
이 모든 사실은, 선지자들이 백성을 위하여 중재의 기도를 드리는 사명을 감당했음을 보여 준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지자 직무의 객관적인 면에 관하여 살펴 보았다. 이제 그럼 선지자 직무의 주관적인 면에 대하여 상고해 보도록 한다.
구약에 나타난 선지지의 직무
1.선지자는 어떤 사람인가?
(1)"선지자"(prophet)의 의미 ---
성경에 사용된 "선지자"를 가리키는 3가지 칭호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로에( ) -- 히브리어 동사 '라아'( 본다)의 분사형으로 '보는 자'(seer)란 의미이며, 한글개역에는 "선견자"(先見者)라고 번역되어 있다.
2)'호제'( ) -- 히브리어 동사 '하자'( 본다)의 분사형으로 역시
'보는 자'란 의미이며 한글개역에는 역시 "선견자(先見者)"라고 번역되어 있다.
3)'나비'( ) -- 한글개역에 "선지자"(prophet 先知者)로 번역된 말이다. 이 말의 의미에 대한 견해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a)어떤 학자는 이 말의 어원이 아라비아어 <나바아 naba'a>('대변하다')에서 온 것으로 "대변자"라고 본다(Cornill, Koenig, Eiselen, G.A.Smith).
b)어떤 학자는 이 말의 어원이 '나바'( '부글부글 끓다')에서 온 것으로, 선지자란 '열정을 가지고 말을 쏟아 놓는 사람'이라고 본다.
c)어떤 학자는 이 말의 어원이 아캇어 <나부 nabu>의 능동태('말한다')에서 온 것으로 선지자란 '말하는 자'(speaker)를 의미한다고 한다.
d)어떤 학자는 이 말의 어원이 <나부 nabu>의 수동태('말을 받다' to be spoken)에서 온 말로서, 선지자란 "말을 받은 자"(one spoken to) 혹은 "부름 받은 자"(one called)라는 의미라고 한다.
4)"선지자"를 가리키는 이 3가지 용어는 <동일 인물>를 가리켜 다같이 사용될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시간의 흐름과 함께 로에( ) --호제 ( ) -- 나비( ) 순으로 그 호칭이 변화해 왔다. 이 사실은 다음 구절들에서 엿보인다 ---
삼상 9:9에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어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로에 )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나비)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로에)라 일컬었더라"
삼하 24:11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야웨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호제 된 선지자(나비) 갓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역대상 29:29 "다윗 왕의 시종 행적이 선견자(로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나비) 나단의 글과 선견자 (호제) 갓의 글에 다 기록하고"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선지자>를 가리키는 용어가 '보는 자'(seer) 혹은 '말하는 자'(speaker)라는 두가지 의미를 나타내는 것을 볼 때, 여기서 우리는 선지자 직무의 주관적 요소와 객관적 요소를 보게 된다. 왜냐하면 선지자는 "보는 자"(seer)로서 하나님의 계시를 관찰함으로 받아드리는 주관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또한 선지자는 '말하는 자'(speaker)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정을 가지고 선포하는 객관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학자들의 견해만으로서는 "선지자"의 올바른 의미를 확정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이 구약성경에서 어떤 용법으로 사용되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구약에 보면, 선지자는 요약컨데, 다음과 같은 일을 하는 분이다 ---
1)성경은 선지자를 가리켜,'다른 분을 대신하여 말하는 자' 즉 '대언자'(代言者)라고 말한다. 출 7:1에 보면, "야웨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 代言者)가 되리라"고 한다. 여기 "대언자"라는 말이 원어에는 '선지자'( )라고 되어 있다. 아론이 동생 모세를 대신하여 말할 자라고 해서, 하나님은, "아론이 너의 선지자"가 될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선지자"의 의미가 누구를 대신하여 말하는 자 곧 '대언자'(代言者) 혹은 '대변자'임을 보게 된다.
2)성경에 의하면, 또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말하는 자'(신18:15-22),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자'(사6:9, 렘1:7, 암7:15-16) 등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상의 의미들을 종합해 볼 때, "선지자"란, 요약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자'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갈멜산에서의 바알 선지자들의 광란적 행동과 함께 "예언한다"[ 히트파엘형 한역"진언한다"] 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왕상18:29), 선지자를"미친 사람"이라고 사람들이 말했다는 것(왕하9:11,렘29:26,호9:7), 그리고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 비파와 소고 등 악기를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 왔다"(삼상10:5,9-10)는 등의 이유를 들어서, "예언한다"는 말의 의미 가운데는 미친듯한 광란적 행동과 노래 부름이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절들의 내용을 잘 고찰해 보면, 이것들은 단지 선지자의 기본 의미에 情的 의미의 색채를 더할 뿐이다. 즉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자'라는 선지자의 기본 의미에 '열정을 가지고'란 의미의 색채를 부가할 뿐이다.
(2)선지자의 특징 ---
1)구약의 선지자는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 이었다.
a)선지자의 직무는 상속 받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선지자는 제사장과 다르다.
b)선지자는 특별히 선택된 자요 부름 받은 자이다(렘1:5, 암7:14-16).
출3:4에 보면 모세는 불붙는 가시덤불에서, 이사야서 6장에 보면 이사야는 이상 중에 성전에서 하나님을 보는 중에, 그리고 겔 1:1과 2:2-3에 보면 에스겔은 바벨론의 그발강가에서 각기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거짓 선지자가 거짓됨은 바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렘14:14, 28:15).
c)참 선지자의 부름에는 일반적으로 그 부름을 확신시켜 줄 어떤 영적 체험이 있었다. 모세, 이사야, 에스겔이 다 그러하였다. 즉 참 선지자들은 그 소명 받은 일을 수행하기에 앞서 <준비 과정>이 있었다. 모세는 그의 사역을 행하기에 앞서 지팡이가 뱀이 되고 물이 피가 되는 등의 이적의 신임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고, 또 그의 형 아론이 자기의 대언자(代言者 )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출 4:1-16). 이사야는 그의 사역에 앞서 그의 입술이 성전 단에서 취한 핀 숯에 닿음으로 정결하게 되었다. 그리고 에스겔은 그 두루마리를 먹음으로 그것이 상징하는 바 힘 있는 선포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케 되었다.
2)구약의 선지자는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힌 용기의 사람> 이었다.
하나님께서 왜 선지자들을 상속(相續)에 의해 계승할 수 있도록 하시지 않았는가? 그것은 선지자들이 각기 하나님의 영의 능력을 힘입어 특수한 사명들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사장은 그렇지 않았다. 제사장 가문의 허약한 아들이, 오히려 그 직을 잘 수행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제사장의 일은 규칙적인 절차를 따라 그렇게 힘 안들이고 행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렇지 않았다. 선지자는 어떤 일정한 모형(pattern)을 따라 행동하는 자가 아니었다. 선지자는 빈번히 이전 선지자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일과 그가 취해야 할 길을 주셨다. 그 때 그는 그 길이, 비록 많은 도전을 받는 길이라 할지라도, 전적 순종하고 가야 했다.
선지자는 일국의 왕을 기름부어 세우고 그 다음에는 그 세운 왕을 신랄하게 책망해야 하였다. 선지자는 때로 백성에게 희망을 불러 일으켜 주기도 했는가 하면, 때로는 슬퍼해야 할 이유를 제시함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는 빈번히 가지가지 고통과 비방과 불의에 대항하여 이겨내야 하였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성령에 붙들린 대담한 사람, 용기의 사람이어야 했다(겔2:2, 3:24). 안일위주로 살아가는 무력한 사람은 결코 선지자가 될 수 없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a)선지자 사무엘(Samuel )의 행동이 그러하였다 -- 당대의 대제사장이요 스승인 엘리(Eli)에게 그의 집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다고 선언해야 하였으니, 이것은 하나의 도전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는 또한 이스라엘의 첫 왕 사울(Saul)을 기름부어 세우고, 그 다음에 그 왕이 버림 받았다고 선포해야 하였다.
b)나단(Nathan) 선지자의 행동이 그러하였다. 다윗왕이 감음과 살인죄를 지었을 때, 목숨 걸고 그 범죄를 지적하여 회개토록 하였다.
c)갓(Gad) 선지자가 그러하였다 -- 인구 조사의 죄로 내릴 3가지 형벌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선언하기 위하여 다윗 왕에게 가야 하였다.
d)아히야(Ahijah) 선지자의 행동이 그러하였다 --- 그는 처음에 여로보암(Jeroboam)에게 이스라엘의 새로운 국가를 약속했지만(왕상11:
29-39), 그 뒤 그에게 그 나라가 빼앗길 것을 또한 선언해야 했던 것이다(왕상14:6-16).
e)"하나님의 사람"이라 호칭된 한 선지자의 행동이 그러하였다 -- 그는 벧엘(Bethel)의 우상제단에 대해 여로보암 왕을 책망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던 것이다(왕상13:1-10).
f)엘리야(Elijah)의 행동이 그러하였다 -- 그는 기근(famine)이 있을 것을 경고하고 갈멜산(Carmel)에서의 투쟁을 통해, 왕 편의 수많은 성직자들을 죽이고 참 신 하나님 공경할 것을 촉구하였다(왕상17:1, 18:25-38).
g)엘리사(Elisha)의 행동이 그러하였다 -- 그는 하사엘에게 수리아(Syria )의 왕이 될 것을 내다 보며 통곡하였던 것이다(왕하 8:7-13).
선지자들은 비범한 인격의 사람이요 용감하고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이었다. 그들이 이러한 사람이 된 것은, 성령님이 그들을 붙잡아 주셨기 때문이다(Cf.벧전1:10-11, 겔2:2,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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