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에 들러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고속도로에서 점차 속도를 올리니 땅을 짓누르며 달리는 능력이 돋보인다. 시속 110㎞ 정속 주행은 물론, 그 이상 속도에서도 상당히 안정적이다. 이전 세대에서 느꼈던 약간의 헐거움을 완전히 지웠다. 공차중량은 2,145㎏. 토요타 시에나 하이브리드 2WD와 똑같은데, 묵직한 감각은 카니발이 미세하게 더 나았다.
비결은 역시 플랫폼. 차체 속 무거운 부품을 최대한 아래로 배치하도록 설계했다. 하부 공간을 확보한 결과 자연스럽게 탑승객 엉덩이 위치도 내려갔다. 차체 높이1,740㎜로, 구형 카니발과 같은데도 헤드룸을 늘릴 수 있었던 이유다(기본형 카니발 기준). 3세대 플랫폼 등장 이후 현대차·기아 차종의 주행 안정성이 올라간 까닭도 여기에 있다. 두툼한 모자 쓴 하이리무진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형 현대 팰리세이드와 승차감 차이가 어떤지 궁금한 분들도 계실 듯하다. 두 차의 서스펜션 구조 자체는 앞뒤 각각 맥퍼슨 스트럿, 멀티링크 구조로 같다. 차이점은 플랫폼이다. 2018년 데뷔한 팰리세이드는 아직 2세대 플랫폼을 쓴다. 최근 부분 변경을 치르며 서스펜션을 손봐 승차감을 눈에 띄게 개선했다. 안정적이면서 부드러운, 패밀리카에 제격인 하체를 완성했다.
고속도로에 ‘착’ 붙어 달리는 맛은 카니발이 낫다. 다만 시내 주행까지 고려한 종합적인 승차감은 팰리세이드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하체 근육을 단련한 팰리세이드는 이제 고급 SUV 수준의 주행감을 선보인다. 반면 더 단단한 섀시를 지닌 카니발은 충격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다르다. 노면 정보 전달이 팰리세이드보다 솔직한 편이다.
장점 ③: 풍성한 주행 보조 시스템·실내 편의장비
카니발 하이리무진에는 장거리 운전을 돕는 수많은 기능이 있다. 우선 4세대 카니발부터는 유압식이 아닌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이 들어간다. 따라서 차선 중앙도 유지하는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었다. 이번 시승처럼 장거리를 떠날 때 아주 유용하다. ‘고속도로 운전 보조 시스템(HDA)’은 단속 카메라를 미리 대비한다. 내비게이션 경로를 설정하면 램프 등 곡선 구간에선 알아서 속도를 낮춘다.
지하 주차장의 좁은 통로에 진입할 땐 사방을 둘러싼 카메라의 도움을 받았다. 12.3인치 중앙 모니터에 어라운드 뷰 모니터를 띄워, 차체 주변 장애물을 확인하기 쉽다. 전방과 후방, 앞바퀴 등 특정 구역만 확대할 수도 있다. 즉, 초보자도 큰 덩치에 섣불리 겁먹을 필요 없다.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 덕분에 운전대 돌리기도 수월하다.
2열 옵션도 호화롭다. 시트 통풍과 열선, 빌트인 공기청정기, 21.5인치 스마트 모니터가 기본이다. 창문을 완전히 뒤덮는 커튼은 롤러식 선 블라인드보다 빛 차단 능력이 뛰어나 잠들기 좋다. 지붕 테두리에는 LED 독서등을 숨겼고, 컵홀더에는 냉/온장 기능을 챙겼다. 휴게소에서 산 아이스커피 얼음을 부산까지 지켜낼 만큼 성능도 확실하다.
단점 ①: 활용성 부족한 21.5인치 대형 모니터
그러나 첫 번째 단점도 넘쳐나는 옵션 속에 있다. 머리 위 21.5인치 모니터의 활용성이 의문이다. 스마트폰을 연동하지 않고 쓸 수 있는 기능은 HD DMB. 채널은 많은데, 대부분 수신 상태가 고르지 않다. 게다가 화질도 영 별로라 오래 보고 싶지 않다. 스마트폰 화면을 공유하는 ‘미러링’ 기능은 안드로이드 OS 기기만 지원한다. USB를 꽂아 음악과 영상을 재생하는 방법도 있는데, 매번 파일을 옮겨 담는 수고를 굳이 해야 할까?
이처럼 모니터 활용도가 떨어지다 보니, 카니발 하이리무진 동호회에선 애프터마켓 셋톱박스를 시공하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연결하지 않고 넷플릭스 등 콘텐츠를 재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아빠들이 적극적으로 설치하고 있다. 비싼 돈 주고 하이리무진을 골랐는데,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위해 추가 비용이 드는 점은 아쉽다.
단점 ②: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
두 번째 단점은 바람 소리. 높은 지붕 탓에 바람 맞는 면적이 늘어나, 어느 정도 풍절음은 예상하고 있었다. 내 짐작은 절반만 맞았다. 머리 위는 잠잠했다. 오히려 A 필러 부근 바람 소리가 거슬렸다. 한 겹 일반 유리를 쓴 2열 창문 소음도 운전석까지 들이쳤다. ‘리무진’이라는 이름표를 달기엔 다소 빈약한 방음 성능이다. 별도로 방음 시공을 하자니 예산이 걱정이다.
다행히 개선의 여지는 있다. 힌트는 팰리세이드. 구형은 1열에만 두 겹 유리를 썼으나, 신형은 2열 이중접합 차음유리가 전 트림 기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흡음재도 보강했다. 많은 소비자가 두 차를 패밀리카 후보로 저울질하는 만큼, 카니발 부분 변경 모델에서 NVH 성능 향상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단점 ③: 디젤 엔진보다 답답한 초반 가속
시승차는 V6 3.5L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을 얹었다. 가장 큰 장점은 엔진 정숙성이다. 2.2 디젤 모델과 비교하면 확연히 조용하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았을 때도, 신호등 앞에서 정차 중일 때도 늘 나긋나긋하다. 누적 주행거리는 약 2만6,000㎞. 기자 시승차로 활동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텐데, 여전히 스티어링 휠 또는 시트를 통한 진동이 거의 없다.
정숙성을 얻은 대가는 ‘가속력’으로 치렀다. 3.5 가솔린의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294마력 및 36.2㎏·m. 문제는 최대토크가 나오는 시점이다. 2.2 디젤은 이른 시점인 1,750~2,750rpm에서 45.0㎏·m를 낸다. 반면 3.5 가솔린은 5,000rpm에서야 모든 힘을 쏟는다. 도심 운전이 잦다면 쉽게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평소 시내보다 고속도로 주행이 많은 분들에게 가솔린 모델이 어울린다.
고속 위주의 운행은 연비에도 유리하다. 카니발 하이리무진 3.5 가솔린의 복합연비는 1L당 8.4㎞(7인승, 19인치 타이어). 시승 둘째 날, 서울로 거의 복귀했을 때 체크한 트립 연비는 10.2㎞/L였다. 부산 시내에 들어서기 전에는 12.0㎞/L까지 오르기도 했다.
기아 카니발 하이리무진. 빼곡한 편의장비와 ‘하이리무진’만의 거주성은 경쟁 모델에 없는 뚜렷한 강점이다. 하지만 종합적인 주행 품질에 대한 점수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2열 진동과 부족한 방음 등, 탑승객을 편안하게 모실 핵심 요소를 보완해야 한다.
<제원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