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를 입에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일찍이 맬서스는 전쟁과 가난을 ‘자연의 인구법칙’이라고 역설한 바가 있지만, 오늘날은 이상기후와 대유행병이 자연의 인구법칙이라고 할 수가 있다. 노벨이 예측한 대로, 대량살상무기와 원자폭탄에 의해서 제1차, 제2차 세계대전과도 같은 대규모적인 전쟁은 불가능해졌고, 산업혁명과 자연과학에 의하여 식량의 안정적인 생산과 보관이 가능해졌으며, 이 두 가지의 성과에 의하여 지난 20세기 초에서 21세기 초까지, 즉, 100년만에 50억 명 이상의 폭발적인 인구가 증가하게 되었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양이 있으면 음이 있다.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악이 있으면 선이 있다. 전쟁과 가난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것도 같았지만, 그러나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는 이상기후와 함께 대유행병을 몰고 왔다고 할 수가 있다. 엘리뇨와 라니냐 현상, 자연의 가뭄과 대홍수, 그리고 폭풍과 폭설과 폭염 등이 사시사철을 가리지 않고 나타났고, 에볼라, 사스, 메르스, 코로나, 조류독감, 광우병, 돼지열병과도 같은 대유행병이 전지구촌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한다.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와 함께, 생태환경과 자연의 파괴에 대한 ‘자연의 인구법칙’이 작용을 한 것이다. 지난 20세기 초처럼 지구의 적정 인구는 20억 명 정도면 될 것이고, 나머지 50억 명은 이상기후와 대유행병이 살처분하면 될 것이다.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는 한국의 대표적인 명시이며, 1960년대 문명비판의 차원에서 ‘사랑과 평화의 새’인 비둘기를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는 것은 자연의 공간이 인간에 의해서 침탈을 당했다는 것을 뜻하고, “새벽부터 돌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는 것은 성북동 비둘기의 몸과 마음이 다 훼손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바퀴” 휘돌아 보지만, 이제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만이 들려온다. 가슴에 금이 간 성북동 비둘기는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를 입에 닦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농촌공동체를 붕괴시킨 대신, 인간에 의한, 인간만을 위한 대도시들을 탄생시켰다. 아주 좁고 제한된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게 되었고, 그 결과, 무차별적인 자연을 훼손하게 되었다. 자연의 원주민들이라고 할 수 있는 수많은 곤충들과 새들과 짐승들과 나무들이 그들의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고,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인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던 것이다. 김광섭 시인은 그의 대표작인 [성북동 비둘기]를 통해서 도시문명을 비판하고 인간과 비둘기가 공존하는 그런 자연을 노래했다고 할 수가 있다. 새는 사람을 어진 성자처럼 사랑하고, 인간은 비둘기를 사랑과 평화의 새로서 사랑한다. [성북동 비둘기]의 시적 주조는 분노보다는 안타까움이고, 이 안타까움 속에는 자연과 평화를 사랑하는 그의 인문주의적 사상이 담겨 있다고 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러나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는 그래도 인간과 비둘기가 공존하는 자연회복의 가능성이 어느 정도 담겨 있었지만, 오늘날의 산비둘기가 아닌 도시비둘기는 사육된 비둘기이거나 거지 비둘기들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비둘기들이 자연의 야성을 잃어버리고 도시빈민처럼 쓰레기더미를 뒤지거나 인간이 던져주는 먹이를 주워먹는 거지 비둘기가 된 것이다.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도 낳지 못하는 비둘기----. 자연과 인간, 비둘기와 인간은 더 이상 공존이 불가능해졌는데, 왜냐하면 인간의 문명과 문화보다도 자연의 파괴가 더욱더 끔찍하고 무서울 정도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우주도, 자연도, 자연의 이상기후도 참지 못할 대역죄인이 우리 인간들이며, 우리 인간들은 그 어떤 대유행병보다도 더 독한 불치병의 바이러스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자연을 파괴한 것도 인간이고, 사랑과 평화의 새인 비둘기를 죽인 것도 인간이다. 더 이상 우주공동체와 지구촌의 종말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무관용의 원칙에 따라 살처분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