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에리트리아 선수가 21일(현지시간) 최고의 도로 일주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가 펼쳐진 3주 동안 최고의 스프린트 기량을 펼친 이에게 주어지는 '그린 저지'를 입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물론 검은 대륙 출신 선수로는 처음이다.
비니암 기르마이(24)가 화제의 주인공. 올해 트루 드 프랑스 3구간과 8구간, 12구간 세 차례 구간 우승 기록을 쓴 그는 이날 니스까지 이어진 21일째 마지막 구간 경기를 무사히 마쳐 스프린트 최고의 영예 '그린 저지'까지 차지했다. 하지만 그의 여정에는 온갖 장애물이 놓여 있었다. 문화 충격에다 유럽의 비자 절차, 수천 km 떨어진 곳에 아내와 어린 딸을 두고 온 외로움과 향수병 등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조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물론,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사이클리스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압도적으로 백인의 전유물로 여겨진 사이클 경기에 그의 승리가 커다란 변화를 불러 올 것으로 믿는다. 그는 올해 대회에 참가한 176명의 라이더 가운데 유일한 흑인이었다.
에리트리아는 동아프리카에 있으며, 인구 370만명 밖에 안 되는 조그만 나라다. 그는 자신이 자라난 수도 아스마라의 챔피언이었던 적도 없다. 대신 그는 국제사이클연맹(UCI) 스카우트를 받아 국제 무대에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기르마이는 에리트리아 매체 인터뷰를 통해 에리트리아 챔피언이 되는 것보다 투르 드 프랑스를 우승하는 것이 더 쉬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적은 인구에 견줘 에리트리아는 재능있는 사이클리스트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많은 이들이 글로벌, 대륙 레이스에서 많은 메달을 차지했다. 몇 십년 이탈리아 식민 통치를 받은 에리트리아의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며 여가 보내기가 사이클링이다. 국경 분쟁이나 인권 유린 기사 등 부정적인 기사로 낙담하는 에리트리아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안기는 것도 사이클링이다.
팬들에게 '비니'란 애칭으로 통하는 기르마이에게 사이클리스트의 꿈을 심은 것은 사촌인 아프리카 챔피언 메론 테쇼메였다.가족들도 온통 사이클에 집착하고 있다. 남동생은 지금 프로 라이더로 뛰고 있으며 목수인 아버지는 매년 기르마이와 함께 트루 드 프랑스 중계를 시청하곤 했다. 그의 성장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This is my moment'를 보면 나이 든 여자 친척이 그에게 "내가 어릴 적 누구도 날 이기지 못했다. 심지어 너조차!"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열두 살 때 기르마이는 처음으로 산악자전거 경주에 나섰다. 10대 시절 아프리카 청소년선수권대회에 에리트리아 대표로 선발됐다. 그 대회에서 UCI 스카우트의 눈에 들었다. 그들은 그를 개발도상국 출신으로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없는 젊은 선수들을 초대하는 스위스의 세계사이클링센터(WCC)에서 훈련하도록 했다.
열일곱 살인 2018년 기르마이는 학교를 그만 두고 스위스로 떠났다. 친구도 없고 친척도 없는 그곳에서 문화 충격이 상당했다. WCC의 재능감지국장인 장자크 앙리는 기르마이가 지난해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 준비를 하던 때 과거를 회상하며 "비니를 준비시키는 일이 힘들었다. 그는 많은 것들, 라이프스타일이나 행동습관 등을 바꿔야 했다"면서 "그는 7월에 이곳에 도착했는데 너무 서늘했다. 우리에게는 따듯한 날씨였다. 그는 자갈길도 좋아하지 않았고, 전술을 이해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이슈들을 극복하고 꿈을 이룰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영어 수업을 들었고 프로로 전향했을 때 미디어 인터뷰에 통역을 쓰지 않을 수 있었다. 2020년 프랑스 팀 델코(Delko)에 선발됐다. 프랑스에서 훈련하는 동안 그는 고국에 돌아가 동거녀 살리엠과 결혼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로나 확산으로 귀국하지 못했고 여러 유럽 대회가 취소돼 경주에 나서지도 못했다.
이듬해 델코가 해산돼 또다른 타격을 기르마이에게 입혔다. 다만 그는 아스마라로 돌아가 살리엠과 결혼식을 올릴 수는 있었다. 그 뒤 딸이 태어났지만 기르마이는 벨기에에 근거지를 둔 팀 Intermarché–Wanty로 적을 옮기는 바람에 모녀 곁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사이클 여정을 이어가기 위해 비자를 얻는 일도 쉽지 않았다. 앞의 다큐를 보면 아이 아버지는 아스마라에 있는 동안 많은 비자신청 센터들과 대사관들을 방문했다. 어쨌든 그는 장기 비자를 얻긴 해 오늘까지 갖고 있다. 하지만 기르마이는 솅겐조약에 가입한 29개국에 머무르다 3개월마다 떠나 아스마라로 돌아가야 한다.
2022년 그는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벨기에 겐트웨벨겜에서 그는 하루만 치르는 전통적인 레이스에서 우승한 첫 번째 아프리카인이 됐다. 기르마이는 30km까지 네 라이더가 달리는 팀으로 달리다가 마지막 250m를 뛰쳐 나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를 중계하던 영국인 해설가는 "Veni... vidi... Bini!"라고 외쳤는데 라틴어로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란 뜻이며 그의 팬들과 미디어에 슬로건이 되다시피 했다.
기르마이는 그 뒤 투르 드 프랑스를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큰 대회로 평가받는 지로 디탈리아에서도 역사적인 구간 우승을 기록했다. 그는 시상대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다 코르크가 눈쪽으로 튀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다치고 말아 병원에 실려갔다. 빨리 회복되긴 했지만 아내와 딸이 없어 혼자 쓸쓸히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밖에 없었다.
향수병에도 불구하고 기르마이는 계속 싸웠다. 아내와 딸은 니스로 이주, 그가 투르 드 프랑스를 마친 뒤 상봉하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가 이날 세 번째 구간 우승을 차지한 뒤 아스마라 거리에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 국기를 휘저으며 자동차 경적에 맞춰 춤을 췄다. 에리트리아 팬들도 이번 대회 현장에 자주 나타나 응원했다. 지난해 트루 드 스위스에서 그를 응원하던 사람은 BBC에 "그는 아프리카 왕이다. 우리는 자랑스럽다. 에리트리아는 전쟁 같은 나쁜 일들로 유명한데 지금은 다르다"고 털어놓았다.
기르마이는 대륙을 대표하기도 한다. 가나를 위해 뛰며 블랙 사이클리스트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마니 아더는 지난 주 BBC의 팟캐스트 Focus on Africa에 출연, “우리는 정말로 트루 드 프랑스에서 경쟁하는 흑인 라이더, 특히 아프리카 출신을 많이 보지 못했다"면서 "그래서 기르마이의 경기 모습 뿐만 아니라 그가 그렇게 많은 구간 우승을 차지하는 것을 보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는 세계 최고의 라이더들 가운데 스스로를 증명했다"고 말했다.
기르마이를 10여년 알아온 에리트리아 사이클 코치 아크릴루 하일레는 그의 성공이 커다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다. "때때로 사이클링은 백인들만을 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금 그는 우리에게 사이클링이 전 세계를 위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파리올림픽에도 출전할 예정이다. 그는 메달을 바라지만, 에리트리아를 대표하는 유일한 도로 사이클리스트라 누구도 그에게 스프린트에 나설 기회를 줄 수 있는 펠로톤을 이끌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내년 르완다 세계선수권대회에도 높은 목표를 갖고 있는데 그 나라는 그가 처음 UCI 스카우트를 받았던 곳이다. 많은 이에게 기르마이가 르완다에서 승리하는 일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전 세계에서 찾아온 사이클 팬들이 아프리카 라이더가 아프리카 땅의 결승선을 휙 통과한 뒤 녹색과 푸른색, 노란색이 들어간 에리트리아 국기를 몸에 두르는 장면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